2003/07/09 00:10
“어이, B급!” 박래군은 늘 나를 그런 식으로 부른다. 작년에 페미니즘 일로 괜스리 시끄러울 때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큰소리로 나를 “마초!”라고 부르곤 했다.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사람들 앞에 드러나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내 성격에, 다른 누가 그랬다면 바로 코라도 주저 앉혔을 것이다. 박래군이 그러면 그냥 “저 웬수.”하며 웃고 만다.

그는 정이 많은 사람이고 그의 그런 장난끼 어린 조롱엔 무슨 대단한 운동을 하는 것도 아니면서 세상과 끊임없이 불화하는 나에 대한 속 깊은 염려와 조심스런 지지가 담겨 있다. (설사, 그게 진짜 조롱이라 한들 어떤가. 현역 활동가인 그가 나처럼 입이나 놀리는 얼치기 좌파를 조롱하는 건 눈곱만큼도 사리에 어긋나지 않는다.)

몇 년 전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그를 의심했다. 그가 지나치게 좋은 사람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그처럼 어디서나 좋은 사람 소리를 듣는 사람을 믿지 않는다. 세상은 헤아릴 수 없는 옳음과 그름으로 중첩되어 있는데 어디서나 좋은 사람이란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 경험에 근거하면, 어디서나 좋은 사람이란 대개 가장 세련된 처세술을 가진 위선자들이다.

박래군과 친해지면서 어디서나 좋은 사람이면서 옳은 사람도 있을 수 있겠거니 싶어졌다. 나는 확실히 박래군과 친해졌다. 그러나 내가 박래군과 친해졌다는 건 박래군과 사적으로 친해졌을 뿐만 아니라 그의 활동가로서 삶과 친해졌다는 뜻이다. 활동가도 인간인지라 대개 제 신념을 제대로 드러낼 수 있는 운동을 하고 싶어 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박래군은 지난 십수 년 동안 한국 사회의 가장 궂은 부위에서, 빛도 이름도 나지 않는 그런 운동을 해왔다.

노동운동을 하던 박래군이 그렇게 된 일이 있다. 박래군은 1988년 ‘광주학살 원흉처단’을 외치며 제 몸을 불사른 박래전 열사의 친형이다. 동생의 주검과 그 주검이 남긴 신념을 수습한 박래군은 잇따르는 수많은 주검들과 그 주검들이 남긴 수많은 신념들을 외면할 수 없었다. 김지하가 <조선일보>에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를 쓴 1991년을 전후로, 박래군이 수습하고 장례를 치룬 죽음은 50여건에 이른다. 그는 ‘장의사’라 불렸다. 박래군은 어디서나 좋은 사람이기 이전에, 비탄과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다.

“명동성당이라고? 엊그제 에바다*라며.” “야, 그게 언젠데. 너한테 전화한 다음날 들어왔어. 벌써 9일째야.” “그랬어. 네이스 반대 농성 얘긴 들었는데 박래군이 있는 건 몰랐지. 신부들이 뭐라 안 해.” “나가라 그러지.” “한심한 X들. 예수가 그래서 바리새인들을 싫어했지.” “요즘 다 그런걸 뭐.” “몸은 어때.” “이번엔 준비를 좀 했어. 괜찮아.” “필요한 건.” “노숙 단식에 뭐가 필요하겠냐. 저녁에 한번 놀러나 와라.” “가는 거야 어렵지 않은데, 나 같은 놈이 가서 분위기나 흐려지지.” “어유, 겸손할 줄도 알아.” “나야 가진 게 겸손뿐이지. 내 맛난 것 한 보따리 싸가지고 갈게.”

싱거운 농을 주고받으며 전화기를 내려놓지만 속은 끓어오른다. ‘세상이 갈수록 지랄 같아지는구나. 6년 전에 전자주민증인가 하는 것도 여론에 밀려 폐기됐었는데 극우 반동들이 밀린다는 오늘 그보다 더 악랄한 네이스를 두고 하네 마네 난리니 온 나라가 기억상실증이라도 걸린 걸까. 싸울 수밖에, 싸워서 이기는 수밖에.’ 불과 몇 분 전 안온하던 내 속은 점점 더 뜨겁게 끓어오른다. 활동가는 분노를 실어 나른다.

* 지난 7년 동안 평택 에바다농아원은 ‘법이 멈추는 공간’이었다. 도둑들은 농아어린이 70여명을 인신매매하고 강제노동, 임금착취에다 국고보조금 및 후원금을 횡령했고, 6명이 변사했다. 지난 5월 28일, 똥물을 뒤집어쓰고 폭행을 당하는 오랜 싸움 끝에 드디어 민주이사진이 에바다를 접수했다. 사람들아, 에바다를 기억하자.(씨네21 2003/07/09)
2003/07/09 00:10 2003/07/09 00:10
2003/06/25 00:08
대통령 선거 날이던가. 나와 소주잔을 기울이던 선배가 환호하는 군중을 보며 말했다. “안 됐군. 그래도 실망하는 데 일년은 걸리겠지.” 내가 대꾸했다. “사람 스타일이 그렇게까지 안 걸릴 것 같아요. 이회창을 따돌렸을 때 김영삼한테 달려가는 거 봤잖아요.”

노무현의 스타일. 그게 언제나 나빴던 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이야말로 노무현이 극적으로 대통령이 되는 중요한 힘이었다. 역겨운 스타일의 중년남성들로 가득 찬 한국 제도 정치권에서 노무현의 솔직하고 화끈한 스타일은 사람들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저 이가 대통령이 되면 이 역겨운 정치도 신선해지리라, 마법처럼.

오버의 연속. 그런 걸 두고 ‘입만 벌리면 실패한다’고 하던가. 대통령이 되자 그 스타일은 간단하게 바닥을 드러냈다. 솔직함과 화끈함은 단순함과 오만함으로 밝혀졌다. 하여튼 노무현의 스타일은 갈수록 무너지고,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정신건강은 갈수록 정처 없어져간다.

그러나 노무현의 스타일은 여전히 노무현을 돕기도 한다. 노무현의 스타일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 스타일에 집중하게 함으로써 정작 내용은 덮어두게 만드는 힘이 있다. 사람들은 그의 단순함과 오만함 앞에서 “무슨 말을 저 따위로 하는 거야”, 짜증이나 내고는 좀더 진지하게 노무현의 문제를 따져보기를 성가셔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잊는 건 노무현의 스타일이 살아나건 무너지건 그 스타일 속에 든 노무현의 정치적 내용이 달라지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이를테면 그가 부시 앞에서 천박하게 말했든 위엄 있게 말했든 정작 말하려고 한 바, 즉 한미관계에 대한 그의 의견은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

그의 정치적 의견은 그의 개인적 인격이나 스타일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그의 ‘사회적 인격’, 즉 이념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개인적 인격이 개인적 행태로 반영되듯 사회적 인격(이념)은 사회적 행태로 반영된다. 그러나 사회적 인격(이념)은 매우 복잡한 사회적 이해관계들에 의해 끊임없이 재규정되기에 대개 더욱 오차 없이 반영된다.

오늘 한 사람의 이념을 가늠하는 가장 정확한 잣대는 이른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태도라 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야 말로 오늘 세상의 정치, 사회, 문화적 현상들을 규정하는 가장 강력한 근거이기 때문이다. 모든 전쟁이 모든 착취가 모든 사회적 악행이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이름으로 기획되고 집행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보수주의자나,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수용하는 진보주의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알다시피, 노무현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매우 충성스런 정치인이다. 이라크 침략전쟁, 한미관계, 노동운동 따위 이런저런 사회 문제에 대한 그의 일관된 보수적 태도는 놀랄 만한 일도, ‘대통령이 되더니 달라져서’도 아니다. 그런 모든 태도들은 단지 보수주의자로서 그의 이념을 오차 없이 반영할 뿐이다.

돌이켜보면, 노무현의 개혁적 면모들도 대개 부풀려진 것이다. 이를테면 <조선일보>와 지역감정 문제에 대한 그의 ‘용감한 도전’을 되새겨 보자. <조선일보>야 이미 그가 잘 보인다고 해서 잘 해줄 가능성이 없는 상황인데다 안티 조선 분위기도 무르익어 아예 맞서는 게 이득이었다. 지역감정을 무릅쓰고 부산에서 출마한 일도, 당내 정치적 기반이 취약한 그가 대통령 후보급으로 뛰어오르려면 획기적인 여론적 지지를 업는 방법밖에 없었다는 점에서 역시 당연한 선택이었다.

물론 그런 행동들과 관련해서도 노무현의 진심이 무엇이었나를 따지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노무현과 사귀려는 게 아니라면, 그의 개인적 인격이나 스타일은 접고 그의 사회적 인격(이념)에 집중하는 게 좋다. 하여튼 오늘 노무현은 온 세상의 이목을 제 스타일에 집중시킴으로써, 선량하고 양심적인 사람들이 보수 정치에 침을 뱉고 돌아설 수많은 순간들을 예방하는 보수의 전사로, 숭고한 보수의 전사로 살아가는 중이다.(씨네21 2003/06/25)
2003/06/25 00:08 2003/06/25 00:08
2003/06/12 00:07
1917 년 러시아혁명을 시작으로 지구 곳곳에 사회주의 나라들이 생겨났다. 그 나라들은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자본주의 나라들과 긴장하며 자본주의의 야만을 극복한 사회를 시도했다. 70여년 뒤, 그 가운데 동구 사회주의 나라들이 일제히 무너졌다. '현실 사회주의'의 그런 결과는 대개 사회주의에 대한 돌이킬 수 없는 판단으로 이어진다. 사회주의란 실현 불가능하거나, 가능하더라도 끔찍한 것이라고 말이다.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약탈적 형태로 내달리는 오늘 우리는 10여년 전 그 일을 한번쯤 되새길 만하다. 그 사회주의는 우리가 확신하듯 그저 끔찍한 것이었나. 만일 그렇다면 모든 사회주의적 시도는 미망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회주의에 존중할 만한 구석이 있어서 그렇게 무너지고 만 게 애석한 일이라면, 우리는 사회주의에 대해 좀더 사려 깊게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분명한 것 하나는 우리가 현실 사회주의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 사회주의를 판단하는 이런저런 정보들이란 대개 (CNN에 의해 걸러진 이라크처럼) 다시는 지구상에서 자본주의를 극복하려는 시도가 일어나길 바라지 않는 반공주의자들에 의해 걸러진 것이다. 사실 한 사회가 살 만한 곳인가를 판단하는 건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가장 쉽게 범하는 실수는 사회주의 사회를 자본주의 사회의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그것은 이른바 '자유'라는 말로 요약된다. 그러나 그 자유란 단지 자본주의적 자유다.

자본주의가 야만의 체제인 건 경쟁력 있는(잘나고 능력 있는) 소수의 인간은 한없이 안락하고, 평범한(정직하고 성실할 뿐인) 다수의 인간은 한없이 고단한 인생을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안락한 소수에겐 고단하게 살아볼 자유마저 보장되지만 고단한 다수에겐 고단하게 살 자유만 보장된다. 자본주의에서 자유란 어디에나 진열되어 있지만, 돈이 없으면 구매할 수 없는 상품이다.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적 자유가 제한되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그 제한은 좀더 많은 정당한 자유를 위한 제한이다. 사회주의에선 경쟁력 있는 소수가 평범한 다수보다 몇백 몇천배 안락할 자유는 보장되지 않는다. 자본주의에선 그게 정당한 일일 수 있지만 사회주의에서 염치없고 부도덕한 일일 뿐이다. 그러나 사회주의에선 제 아무리 경쟁력 없는 사람도 사회성원으로서 의무를 다한다면 최소한의 인간적 품위를 유지할 자유가 보장된다.

경쟁력 있는 소수에게 사회주의란 달갑지 않은 것이다. 나처럼 잘나고 능력있는 사람이 저런 평범한 멍청이들과 큰 차이없이 살아야 한다는 건 견딜 수 없는 모욕일 테니. 그러나 한없이 고단하게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사회주의란 여전히 희망의 근거다. 사회주의는 유식한 혁명가들의 고민거리가 아니라 나와 내 새끼들의 미래를 염려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고민거리인 것이다.

현실 사회주의를 진지하게 되새겨보는 일은 그런 고민을 푸는 한 갈래가 된다. 우리가 들어야 할 것은 반공주의자들의 목소리나 사회주의에 살았으되 자본주의적 자유를 갈망했던 특별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아니라, 사회주의에서 살았던 평범한 사람들의 목소리다. 우리가 이라크 전쟁의 진실을 이라크의 평범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통해서만 들을 수 있었듯 말이다.

불가리아의 장수마을(요구르트 먹고 장수한다는 광고에 나온 그 마을)엔 더이상 장수노인들이 없다. 마을 묘지엔 1990년즈음 세해 동안 죽은 사람들의 묘로 그득하다. 마을 사람들의 얘기는 이렇다. "사회주의 시절엔 안락하진 않았지만 적어도 먹고사는 문제를 걱정하진 않았다. 소박하나마 집과 자동차도 나왔다. 그러나 사회주의가 무너지면서 사람들은 먹고사는 문제를 스스로 감당해야 했다. 노인들은 그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했다."

그 노인들의 장수비결은 요구르트가 아니라 사회주의였던 셈이다. 그게 그 마을에만 해당하는 이야기인지 아닌지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우리는 그걸 알아야 한다.(씨네21 2003/06/12)
2003/06/12 00:07 2003/06/12 00:07
2003/05/14 00:05
현재는 언제나 우리에게 당연하게 느껴진다. 현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당연한 현재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크고 작은 놀라운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에 제 정신을 가진 모든 한국인들이 반대한 일이 그렇다. 한국인들은 제국주의 침략전쟁이라는 점에서 다를 게 없는 베트남 전쟁을 ‘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싸움’이라고 믿었던 유일한 나라의 사람들이었다.

지난 50여 년 동안 한국은 거대한 반공주의 파시즘의 감옥이었다. 오늘 한국인들은 줄지어 그 감옥 문을 나서는 중이다. 노무현이 온갖 위기를 넘어 극적으로 대통령이 된 일은 오늘 한국인들에게 부는 바람, 이른바 개혁의 바람을 상징한다. 바람은 거세며 그 바람을 주도하는 사람들의 말대로라면 한국은 이제 조중동을 비롯한 수구 반동 세력만 제거하면 짐짓 낙원에 이를 모양이다.

물론 그런 세력을 제거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는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이 다른 중요한 것을 생략하거나 무시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이라크 침략전쟁은 우리로 하여금 그런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하고, 오늘 한국사회를 휘감은 개혁 바람과 그 상징인 노무현의 진실을 스스로 폭로하게 했다.

노무현의 침략전쟁 지지에 실망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런 사람들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품위 없는 세상에서 순진함은 가련함과 그리 다르지 않다. 세상은 이미 품위를 잃은 지 오래다. (이를테면, 한국사회의 모자람을 말할 때 단골로 등장하는 프랑스나 독일이 이라크 침략전쟁을 반대한 건 얼치기 지식인들이 말처럼 그들의 높은 양식 때문이 아니라, 옛 동구와 중동 지역을 독차지하려는 미영 제국주의에 대한 유럽 제국주의의 반발일 뿐이다.) 세상은 그저 어느 음악가의 노랫말 대로다. “이 좆같은 세상 다 썩어가네. 총알은 튀고 또 피바다 되어. 돈 쫓아가다 다 지쳐버렸네 어린애들은 다 미쳐버렸네.”

노무현이 침략전쟁 지지를 선택한 건 그 선택을 설명하는 노무현의 고통스런 얼굴과는 달리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노무현의 그런 선택은 지역감정이나 조선일보에 대한 노무현의 태도로는 추정하기 어려운 노무현의 보다 근본적인 태도, 바로 노무현의 이념에서 나온다. 그것은 이른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노무현의 태도이기도 하다.
자본주의는 미국 위주의 초국적 금융독점자본이 세계를 침략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길로 접어든지 오래다. 자본주의는 케인즈주의, 혹은 수정 자본주의로 불리는 최소한의 절제를 벗어던지고 초기의 약탈 자본주의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세계는 20의 부자 나라를 위해 80의 가난한 나라가 존재하고, 20의 부자를 위해 80의 가난한 인간이 존재하는 20:80의 세상으로 변하는 중이다. 이라크 전쟁은 그런 야만으로 회귀가 낳은(낳을) 수많은 에피소드 가운데 하나다.

노무현은 한국 경제에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길을 닦은 김대중에 이어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거스르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한 정치인이다. 바꿔 말하면, 오늘 한국의 개혁 바람을 상징하는 노무현은 지역감정과 조선일보를 거스르되,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당연한 귀결인 노동자 민중의 고통이나 제국주의 침략전쟁은 거스르지 않을 것을 분명히 한 정치인이다. 그것이 개혁정치인 노무현의 진실이다.

개혁은 수구보다 좋은 것이다. 개혁은 최소한의 경제적 안정과 교양을 가진 사람들의 삶에서 파시스트의 악취를 가시게 한다. 그러나 개혁은 그런 최소한의 안정조차 얻지 못한 사람들, 파시스트의 악취가 가시는 것으로는 그다지 달라질 게 없는 노동자 민중의 삶을 능욕한다. 개혁 바람 속에서, 우리에게 남은 선택은 단순하다. 개혁이 생략하는 진실을 외면할 것인가, 외면하지 않을 것인가.(씨네21 2003/05/15)
2003/05/14 00:05 2003/05/14 00:05
2003/04/27 17:57
메신저 창에 ‘조폭소녀’가 접속을 해왔다. 김단(열살 먹은 내 딸)이다. ‘이 녀석은 제 별명을 만족해하는군.’ 나는 혼자 조용히 웃었다. 몇 달 전 나는 김단이 제 동무들, 특히 남자 동무들 사이에서 ‘조폭소녀’라 불린다는 걸 알았다. 겉모습에서부터 하고 노는 짓까지 여느 여자아이들과 다를 게 없는 김단은 유독 ‘남자의 폭력’ 앞에선 자못 전사로 변한다고 했다. ‘잘 가고 있군.’ 나는 그때도 혼자 조용히 웃었었다.

여자가 남자에게 물리적으로 당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저런 전문가들이 이런저런 장황한 분석을 내놓곤 하지만, 이유는 실은 단순하다. 물리적으로 약하기 때문이다. 대개의 여자는 남자보다 물리적으로 약하며, 여자와 남자 사이에서 물리적 폭력은 대개 남자의 선택 사항이다. 여자는 물리적으로 당하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침묵하고 살 건지 제 자존을 되찾기 위해 싸울 것인지 선택하게 된다. 물론 싸워야 하고 싸우는 건 침묵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나은 건 처음부터 물리적으로 당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모든 우리가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여기는 ‘약한 인간인 여자’가 적어도 10년 이상의 철저하고 조직적인 교육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이다. 한 여자 아이는 그의 유년기와 소년기 동안 ‘여자다움’이라 설명되는 철저하고 조직적인 교육을 통해 ‘약한 인간인 여자’로 완성된다. 그리고 그 약함은 모든 사회적 억압과 차별의 공식적인 근거가 된다. 강한 인간(남자)은 약한 인간(여자)을 당연히 다스리며 고작해야 ‘보호’하는 것이다.

변화는 ‘여자답게 키우는 일’과 ‘약한 인간인 여자, 남자에게 물리적으로 당하는 여자로 키우는 일’이 전혀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서 시작한다. 나는 그런 생각을 지난 10년 동안 나름대로 실천해왔다. 그 실천이란 그저 소박한 것이다. 김단이 말귀를 알아먹을 무렵부터 ‘남자들의 세상’에 대해 토론식의 대화를 한 것(이젠 그런 토론을 한 기억이 가물가물 하다.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김단에게 몇 가지 무술을 맛보게 했고 제가 고른 태권도를 꾸준히 하게 한 것(끼니는 건너도 태권도는 빠지지 않으려 들만치 김단은 열심이다. 몸에서 밀리면 모든 것에서 밀린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어쩌다 김단이 대수롭지 않은 일로 눈물이라도 보이면 “여자라서 우는 거냐?” 야비하게 빈정거리는 것(모든 눈물을 빈정거리는 건 아니다. <레미제라블>에서 판틴이 죽을 때, 나는 내 눈물을 감추며 김단의 눈물을 슬쩍 확인하는 것이다.) 따위다.

그런 소박한 실천들은 내 일상에 어떤 부담도 주지 않는다. 앞으로 10년 더 하는 것 역시 별 부담이 없다. 그러나 오늘 김단이 ‘조폭소녀’라 불리고 자신이 ‘조폭소녀’라 불린다는 사실에 만족하는 것, 그리고 내가 김단이 ‘약한 인간’ 아니 아니라 ‘대등한 인간’으로 살아갈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그 분명한 성과인 셈이다. 이런 얘기를 듣던 어떤 이가 참으로 근심스러운 얼굴로 내게 물었다. “김단이 남성적인가요.” 내가 웃으며 대답했다. “김단은 인간적입니다.” (그것이야말로 내 진정한 바람이다. 김단이 남자에게 당하고 사는 것도 심란하지만, 김단이 남자놈들이 하던 못된 짓을 해보는 게 유일한 목표인 ‘치마 두른 마초’가 되거나 세상을 성기로만 구분하는 ‘파시스트 여성주의자’가 된다는 건 또 얼마나 심란한가.)

오랜 만에 한가로이 소파에 늘어져 있는 내게 김단이 다가왔다. “아빠.” “응.” “물어볼 게 있는데.” “뭔데.” “응, 나 나중에 결혼 해 안 해.” “그걸 지금 결정해야 해.” “그냥, 생각나서.” “김단의 결혼이야 김단이 알아서 할 일이지.” “맞아.” 조폭소녀. 나를 아빠라 부르는 긴 머리의 여자가 씩 웃으며 돌아섰다. (씨네21)
2003/04/27 17:57 2003/04/27 17: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