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01/27 22:11
한달 전 나는 아내와 아이들을 처가인 전주로 내려보내고 사무실을 겸하는 방을 구해 살게 되었다. 한국춤을 하는 아내는 늘 창작춤에 열중하다 서른 다섯이 되어서야 전통춤의 깊은 맛을 알게 되었다. 창작춤에서 전통춤으로 관심을 바꾸는 일은 적어도 아내의 경우 절대적인 정신적 안식을 가져다 주었다. 아내의 관심은 춤계에서 춤 자체로 바뀌었다. 어떤 경우든 욕심을 버리면 사람은 평화를 얻는다.

몇 달 전 나는 아내에게 1, 2년 예정으로 전주에 내려가 살면서 전라도의 전통춤들을 공부할 것을 권유했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한 건 아내가 가질 유익 외에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가게 된 김단(8살, 지난번 나온 김건의 누나) 때문이기도 했다. 나는 지방이 서울의 보조품일 뿐인 세상에서 아이가 일생을 지방에서 살기 어렵다면 어린 시절 한 때라도 지방에서 살기를 바랬다. 그것은 아이의 삶에 분명한 유익을 줄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혼자 살게 되었는데 희한한 일은 이제 나는 애초 계획에 없던 살림을 하게까지 되었다. 나는 밥을 지어 먹고 빨래를 하며 살고 있다. 애초 살림을 할 생각을 하지 않았던 건 표면적으론 시간적 효율성 때문이지만 보다 근본적인 또 하나의 이유는 내가 남자라서일 것이다. 알다시피 남자의 경우 살림은 전적으로 여자의 도움을 받는다.

내가 내 살림을 직접 챙기게 된 건 주로 인근에 사는 한 선배 덕이다. 그는 15년 가량 혼자 살고 있는데 내가 한달 전 근처로 이사하자 나를 앉혀놓고 살림의 중요성을 몇시간 동안 피력했다. 그의 말의 골자는 살림이라는 게 효율성으로 따질 수 없는 사람의 근본이라는 것이었다. 혼자 사는 그의 큰 냉장고 두 대엔 온갖 음식 재료들이 알뜰하게 들어 차 있었다.

나는 당시 그의 말을 혼자 사는 요령이나 지혜 쯤으로 받아들였지만 손수 밥을 짓고 빨래하는 일을 거듭하면서 나는 내가 놀랄 만큼 안정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지난 몇해 동안 늘 일에 치어 정신을 추스르지 못하고 살아온 나는 급기야 감당할 수 없을만치 고단해져서 몇가지 일들을 어거지로 정리하기까지 이르렀는데, 안 그래도 부족한 시간을 밥짓고 빨래하는 일에 할애함으로써 외려 편안해진 사실은 참으로 의외였다.

현명한 사람들은 늘 밥이 하늘이고 살림은 사람의 기본이라 말해왔다. 그러나 그런 멋들어진 주장을 하는 건 대개 현명한 남성들이었지만, 손수 밥을 짓고 살림을 하는 일은 어떤 경우든 여성들(현명하든 그렇지 않든)의 몫이었다. 일반적으로 살림은 여성의 일이고, 일반적으로 여성에 비해 남성들의 정신이 허풍선이 같은 주요한 이유 또한 거기 있는 것 같다.

(여성신문)
2001/01/27 22:11 2001/01/27 22:11
2001/01/07 22:09
며칠 전 설거지를 하고 있는 나를 김건이 올려다보며 물었다. "아빠 뭐해요?" "설거지." "왜 남자가 설거지를 해요?" "남자는 설거지 하면 안 돼?" "설거지는 여자가 하는 건데." "설거지는 남자가 할 수도 있고 여자가 할 수 도 있는거야." "아닌데 여자가 하는 건데..."
김건의 볼을 감싸쥐며 "어휴, 이 마초 자식."하고 웃는데, 보고 있던 아내가 "아빠 닮아 그렇지."하며 또 웃는다. 아내가 나를 마초라 하는 건 그리 나쁜 뜻만은 아니라 믿지만(적어도 내 생각엔) 내가 내 또래의 한국남성 일반보다 좀더 마초 경향을 가진 건 부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특히 남자 후배들과의 관계에서 그런 경향이 지배적인데 녀석들과 대할 때 나는 보통때의 나보다 약간 불량해진다. 녀석들은 나를 "형님"이라 부르곤 한다.
반장난이긴 하지만 책상에 붙어 앉아 어줍잖은 글쪼가리로나 세상과 대화하는 나는 한편으로 그런 유치한 장난을 즐기는 게 틀림없다. 10대의 한 시절을 마초 정신(이른바 사나이 정신)을 숭상하며 보냈고 그 체험은 오늘 내 정신속에 거부할 수 없이 뿌리내려 있다. 여러 말이 필요하지 않은, 모든 복잡한 가치들이 한마디로 판가름하던, 이른바 의리를 목숨처럼 소중하게 여기던 그 시절과 그 시절의 인간들을 나는 가슴아프게 추억하는 모양이다.
이른바 지식인 노릇을 하고 사는 현재에도 내 그런 경향은 발견되곤 하는 모양이다. 강준만 선생은 얼마 전 나를 다룬 글에서 "김규항은 좋은 말로 사나이다운 의리와 정이 있는데 바로 그 점이 냉철한 판단을 그르치기도 한다"는 지적을 했고, 딴지의 김어준은 어디서든 기회만 있으면 "규항이 형은 실은 마초이며 보통 마초들과 다른 점이라면 조금 섬세하다는 정도"라고 놀리곤 한다.
나는 그런 지적들을 흔쾌히 인정하고 내 정신 속에서 근절하려 노력하는 중이다. 문제는 내 그런 노력이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점이다. 몸이 말을 안 듣는다고 할까. 머리속의 정리는 그럭저럭 되었지만 내 속 깊이 스며든 정서적 흔적들을 정리하는 일은 정말 어렵다. 고백하자면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좋은 마초' 이상을 달성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하기도 한다. 그래서 내 설거지와 관련한 김건과의 대화는 좀더 이어진다.
"김건, 설거지를 남자가 하는 건 이상한 게 아냐." "그림책에도 설거지는 다 여자들만 하는데..." "김건, 어제 엄마가 피곤하셔서 김건이 장난감 다 치웠다며." (자랑스런 얼굴로)"히히." "그래, 엄마가 피곤한데 설거지는 여자가 하는 일이라고 아빠가 안 하면 김건은 좋아?" (주먹을 흔들며)"내가 아빠 때려줄 거요." "어휴, 이 마초 자식."하며 나는 김건을 안고 볼을 비비고 김건은 자지러지며 아내와 김단(김건의 누나)은 두 마초를 바라보며 웃는다.

(여성신문)
2001/01/07 22:09 2001/01/07 22:09
2000/12/30 17:27
이장호의 <바람불어 좋은 날>과 장이모의 <인생>을 비디오 테이프로 떠놓고 수시로 보는 건달이 올해 본 영화들에 적어 본 건달의 2백자평. 건달은 자발적으로 극장에 가는 일이 거의 없고(늘 뒤늦게 비디오로 보고) 꼭 봐야 할 영화를 빠트리기 일쑤(올해의 예로는 JSA)이나, 영화는 물론 모든 예술 작품 평가에 객관성이나 권위 따위는 처음부터 인정하지 않는 나름의 고집도 있다.

<박하사탕>. 초록물고기를 보며 눈물을 훔쳤던 건달은 이 저명한 영화에 적잖이 실망. 모범생 출신들에게 벅찬 감동을 줄 만한 지점이 세상의 쓴맛을 조금이나마 보아 온 건달에겐 피할 수 없는 거북함으로 다가왔다. 건달 생각에 이창동은 열등한 예술 장르 한국영화를 적어도 한국소설의 수준으로 끌어올린 감독이지만 <박하사탕>을 세상의 상찬만큼은 인정할 순 없다. 이창동의 다음 영화를 기다리게 하는 영화.
<오 수정>. 건달 생각에 홍상수적 리얼리즘은 리얼리즘 너머의 리얼리즘. 홍상수적 리얼리즘이 포획하는 현실은 현실 속의 전형적인 지점을 취해 보다 전형적인 현실로 제시하는 리얼리즘 방법론으로 포획 불가능한 자디잔 현실들이다. 홍상수가 제 영화에 사회를 담지 않으려 하지 않는 건 사회적 손실이고 건달을 약오르게 하지만 <오 수정>은 어떤 사회파 영화보다 건달을 사회적으로 번민하게 한다. 영화에 지고도 즐거운 영화.

<주유소습격사건>. 어떤 자식이 이 영화에 현실성이 없다고 했던가. <주유소습격사건>이라는 우화는 온통 가슴 저린 현실성을 기반으로 한다. 어떤 자식이 그 청년들이 '그냥' 주유소를 습격한다고 비난했던가. 주유소는 한국의 은유이며 그 청년들이 '그냥' 주유소를 습격하는 유일한 이유는 한국이 '그냥' 습격 당할 만한 곳이라서다. 고개를 숙여 한국의 하반신을 보라, 과연 그러하지 않은가. 어른을 위한 정치 동화의 가능성을 지닌 영화.

<반칙왕>. 한국제 예술작품의 최대 결점은 문명비판적 통찰. 김지운은 언젠가 채플린의 페이소스를 한국화하는 데 성공할 지도 모른다. 마스크를 쓴 한 사무직 노동자 청년의 프로레슬링 에피소드를 통해 유례없는 천민 자본주의와 유례없는 전근대 정신에 사로잡힌 한국 사회를 조롱한다. 장항선이라는 최고의 캐릭터 배우와 왕정이었다면 작위를 받았을 신구라는 장인 배우를 한꺼번에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건달을 행복하게 하는 영화.

<하면 된다> 종로에서 만난 후배 건달의 영화나 보자는 제안에 나쁘지 않은 코미디라는 <씨네21> 기사의 기억으로 화답했다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남긴 영화. 이 영화에 지뢰 표지를 붙이지 않은 걸 보면 <씨네21>은 바야흐로 영화판의 조선일보로 가고 있는지도. 건달 생각에 영화는 90분이 필요한 영화와 90분이 필요하지 않은 영화로 나뉘는 바 이 영화는 후자의 모범이다. 몇몇 배우들의 분투와 선배가 고른 영화에 비위를 맞추려는 후배 건달의 분투만이 눈물겨웠던 용서할 수 없는 졸작 영화.

<다찌마와 리> 건달은 건달을 알아보는 법. 가방끈이 짧다는 류승완의 신분적 장점은 대중의 감성으로 대중에게 다가가는 류승완의 작가적 강점과 직렬한다. 건달 정신은 모범생의 머리통을 통과할 때 키치라 불리는 박제가 되고 건달 청년의 몸을 통과할 때 살아 숨쉬는 예술이 된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에 대한 모범생들의 주제넘은 극성에 쑥떡을 먹이는 류승완의 흐뭇한 소품. 이름하여 한국 근대 건달 박물관 영화.

2백자평 후기. 자발적으로 극장에 가는 일이 거의 없는 건달이 애니메이션들만큼은 모조리 극장에서 본 이유는 건달의 딸이 그 애니메이션들의 비디오 출시를 기다릴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기 때문이다. <벅스 라이프> 정도면 비디오로 보긴 아까운 데가 있기도 했거니와, 내년부턴 애니메이션이 아니어도 극장에 자주 나가리라 건달은 결심했다. | 씨네21 2000년_12월
2000/12/30 17:27 2000/12/30 17:27
2000/12/07 17:26
한국을 대체 불가능한 낙원이라 여기는 한줌의 지배계급을 빼고라면, 한국은 절망적인 나라다.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어떤 부분도 한국인이 한국에서 일생을 보내야 할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대개의 한국인들이 한국에서 일생을 보내는 일을 달리 생각하지 않는 유일한 이유는 그들이 한국에서 일생을 보내는 방법 외의 다른 선택을 고려하지 않는 습성 때문이다.

모든 한국인이 박정희의 병사이던 시절 한때 미국 이민이 유행이었다. 박정희의 어린 병사인 나는 그런 이민자들에 반감이 컸는데, 그들이 한국을 떠나는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한국(당시엔 다들 그렇게 생각했다)을 탈출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박정희의 어린 병사답게 공산군과 싸우지 않고 도망하는 그들의 비겁함이 싫었던 건지까진 기억할 수 없지만 어쨌거나 그 후 내게 이민이란 늘 언짢은 일이었고 한국에서 일생을 보내는 일은 내게 늘 당연했다.

내가 생각을 달리하게 된 건 올 들어 내 딸 김단이 일곱 살이 되면서, 나를 아비로 둔 두 아이 가운데 하나가 한국의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일이 불과 일년 앞으로 박두하면서다. 한국에서 한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다는 건 그 아이가 본격적으로 한국인의 삶에 접어든다는, 그 아이의 일생이 급기야 기나긴 절망 속으로 빠져든다는 뜻이다. 정말이지 한 아이를 한국의 학교에 들여보내는 일은 아무래도 사람이 할 만한 짓이 아니다.

물론 다른 선택도 존재한다. 사립초등학교는 아무래도 공립초등학교보다 덜 야만적일 거고 열린교육을 하는 중고등학교는 대개의 한국 아이들이 들어가는 중고등학교들보다 분명히 낫다. 쌓아 놓은 돈이 더 있다면 아이를 일찌감치 외국으로 보내는 방법도 있다.(이 방법은 더할 나위 없이 분명하다. 돈과 학벌이 신분을 결정하는 한국에서 그 아이는 출국심사대에 서는 순간 낙원의 문턱에 이른다.)

문제는 내가 그런 선택을 할 수 없다는 데 있다. 그런 선택을 감당할 수 없는 내 형편은 물론이려니와, 설사 그럴 형편이 된다 해도 나는 졸렬하나마 진보주의자 노릇을 하며 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진보주의자란 세상을 뜯어고치자는 의견을 갖는 사람이고 세상을 뜯어고치는 일이란 현재 세상에서 억압받는 사람들 편에 서는 일을 출발점으로 한다. 그 출발점에 제 삶의 조건을 억압받는 사람들의 삶의 조건으로 제한하는 진보주의자의 숙명적인 도덕률이 있다. 단적으로 말해서 진보주의자(혹은 진보주의자 노릇을 하는 자)는 제 아이를 제 사는 동네의 대개의 아이들이 들어가는 학교에 들여보낼 수밖에 없다.

내 일생을 보내는 한 방법으로 이민이 등장한 건 지난여름 어느 날 후배 녀석에게서 캐나다 벤쿠버의 무색무취한 삶 이야기를 듣고서다. 주 5일 노동으로 먹고사는 일을 걱정하지 않는다는, 집을 마련하는 데 반생을 바칠 필요가 없다는, 교육과 의료가 무료이며 도무지 세상을 갈아엎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다른 이의 삶에 대해 간섭하지 않고 오염되지 않은 광활한 자연 곁에서 조용히 살아간다는, 벤쿠버의 무색무취한 삶은 이민에 대해서라면 어린 시절의 반감만 존재하던 나를 뒤흔들었다.

나는 생각했다. 그곳이 녀석의 말만큼은 아니더라도 그 비슷한 곳이라도 된다면 그곳에 가서 내 아이를 그곳의 학교에 보내고 조용히 일생을 보내는 것도 방법이겠구나. 내가 써내는 졸렬한 글쪼가리들이 세상에 주는 유익이 실재하는진 분명치 않지만 그곳에 가면 내 두 아이의 삶에 주는 유익은 분명히 실재하는구나. 그 두 아이를 희생시키며 졸렬한 진보주의자 노릇을 하며 사느니 한국을 깨끗이 포기하는 게 나을 수도 있겠구나.

한동안 꿈을 꾸듯 이런저런 생각들을 해나가던 나는 불현듯 오늘 내가 도무지 이민 따윌 꿈꿀 만한 형편이 아니라는 사실과 앞으로도 그럴 형편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적다는 사실을 깨닫고 생각을 접었다. 그리고 이민은 일생을 보내는 한 방법으로 내 머리통 한켠에 남았다. | 씨네21 2000년_12월
2000/12/07 17:26 2000/12/07 17:26
2000/12/01 22:04
며칠 전 김건(네 살 먹은 내 아들)이 다니는 어린이집 선생이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한 여자 아이가 김건을 때리는데 이상하게도 잠자코 맞고만 있다가 울길래 이유를 물었더니 아빠가 남자는 여자를 때리면 안 된다고 했다 그러더라는 것이었다. 선생은 이어서 말하길 김건의 아빠가 왜 그렇게 말했는진 잘 알겠지만 사실 그 또래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는 체구도 엇비슷하고 해서 꼭 그러지 않아도 된다며, 김건이 그렇게 맞고 우는 게 보기 딱하더라고 부연했다.

그날 저녁 아내에게서 그 얘길 전해 들으며 처음엔 웃다가 나중엔 마음이 아파졌다. 또래의 아이들보다 유별나게 큰 체구를 가진, 제 엄마와 모자를 공유할 정도의 머리통을 한 아이가 남자는 여자를 때리면 안된다는 제 아비의 가르침을 지키기 위해 여자아이로부터 잠자코 맞다가 결국 울음을 터트리는 장면이 우스웠고 아비의 관념적인 가르침 덕에 아이가 치룬 고단함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다음날 아침 밥상에서 그 애기를 꺼냈다. “김건, 여자 친구가 때리면 어떡하지?” (고개를 숙이며)“그냥 맞아.” “왜?” “남자는 여자 때리면 안 돼.” “여자친구 중에 건이 만큼 힘센 친구도 있어?” “응.” “그런 친구는 같이 때려도 돼.” (고개를 들며)“여잔데?” “아빠가 여자친구 때리면 안 된다고 한 건 건이보다 약한 친구를 때리면 안 된다는 거거든. 건이 만큼 힘센 친구면 남자든 여자든 먼저 때리면 건이도 같이 때려도 돼.” “정말?” “하지만 친구를 때리는 건 나쁜 거지? 예쁜 말로 해야지?” (익살스런 얼굴로)“응.”

김건이 세상에 나왔을 때 나는 그 마초적 외관에 놀랐고, 적어도 이 마초의 세상에 마초 한놈을 더 늘여선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말하자면 나는 내 아들이 최소한 성차별적인 의식을 갖지 않는 건전한 남자로 성장하길 바랬던 것이다. (그런 의식은 확실히 어릴 때부터 길러질 필요가 있다. 우리는 제 아내나 여성 동료에게 진보적이지 않은 저명한 진보주의자들을 얼마나 많이 보아 왔던가. 그런 위선적인 진보주의자들은 대개 제 위선을 모르는데 그들이 진보를 학습하기 오래 전부터 그런 성차별적인 의식이 자연스레 학습해왔기 때문이다.)

그 일을 겪으며 나는 내가 아들을 성차별적이지 않은 의식을 가진 건전한 남자가 아니라 ‘좋은 마초’로 키우고 있음을 깨달았다. 물론 그 원인은 성차별적이지 않아야 한다는 의지만 있을 뿐 정작 뭐가 성차별적인지에 대해선 제대로 알지 못하는 내 마초적 무지다. 남자는 여자를 때리면 안 된다는 내 말은 여전히 여자를 때리는 극악한 마초가 많은 세상에선 나름대로 유익하겠지만, 그 역시 얼마나 마초적인가. 여자를 때리는 놈이나 여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놈이나 여자를 열등한 존재로 본다는 점에서 같은 마초일 뿐이다. 과연 내가 아들을 제대로 가르칠 수 있는 아비일까.

(여성신문)
2000/12/01 22:04 2000/12/01 2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