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2/02 10:23
나는 녹색평론의 책들이 좋다. ‘이 책이 무슨 책인가’를 정직하게 드러내는 차원을 넘어서지 않는 소박한 디자인에 재생지를 사용하여 두툼하지만 가벼운 그 책들을 집어들 때 나는 중얼거린다. ‘다들 책을 이렇게 만들면 좋으련만.’ 그러나 그보다 더 좋은 건 그 책들이 ‘다른 가치관’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그 책들은 매우 초라하고 불편한 삶의 방식을 제시하지만, 그 ‘다른 가치관’에 동의할 때 그 초라함과 불편은 기쁨과 자부가 된다.

‘다른 세상’을 꿈꾸는 일의 출발은 ‘다른 가치관’을 갖는 것이다. ‘네놈들이 잘 먹고 잘 살았으니 우리도 한번 잘 먹고 잘 살아 보자’라는 생각은 고통스런 삶을 사는 피억압자에게 정당한 것이지만 그게 혁명의 전부는 아니다. 혁명은 단지 ‘급격한 역할 교환’이 아니다. ‘한줌의 지배계급이 잘 먹고 잘사는 세상’에 대한 혁명은 ‘한줌의 지배계급이 차지하던 것을 공정하게 분배하는 세상’이 아니라 ‘남보다 잘 먹고 잘사는 일 자체를 부끄러워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혁명의 최종 목표는 ‘가치관’을 바꾸는 것이다.

제 아무리 이상적인 분배 시스템이 만들어진다 해도 ‘남보다 잘 먹고 잘 사는 걸 자랑스러워 하는 가치관’이 살아있다면 그 사회는 여전히 원래 상태로 돌아갈 가능성이 남은 셈이다. ‘다른 가치관’은 오늘처럼 혁명이 요원해 보이는 시절부터 이미 마련되어야 한다. ‘적의 가치관’에 사로잡혀 있는 한 혁명은 불가능하다. 혁명을 노래하는 좌파 인텔리들이 ‘혁명을 두려워하는’ 행태를 보이는 것도 그들이 ‘적의 가치관’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제 자식이 ‘진보적인 엘리트’가 되길 바랄지언정 고등학교나 마친 노동자가 되길 바라는 좌파 인텔리를 본적이 있는가? 제 자식이 이른바 일류대학에 들어가는 걸 꺼리거나 적어도 진지하게 부끄러워하는 좌파 인텔리를 본 적이 있는가? ‘적의 가치관’, 즉 ‘혁명의 대상과 같은 가치관’을 가진 상태에서 진행하는 모든 혁명 운동은 그저 ‘혁명 게임’일 뿐이다.

개인적으로도 존경해 마땅한 좌파 인텔리들 가운데 제 자식 문제에까지 연결되는 ‘다른 가치관’을 갖는 이는 거의 보지 못했다. 오늘 우리가 얼마나 천박한 세상을 살아내고 있는가를 생각한다면 ‘단 한명도 보지 못한 건 아니라는 사실’에 위안을 받아야 하는 것일까. 그 한 예는 다큐멘터리 감독 김동원이다. 그의 몸은 이 천박한 세상에 묶여 있지만, 그의 정신은 이미 ‘다른 세상’을 살고 있다.

“무엇보다 가난해야 한다. 강요된 가난은 죄악이고 극복해야 하는 것이지만 자발적으로 선택한 가난은 바로 예수의 모습이다. 그것에 의심이 없다. 이젠 버리는 게 어렵지 않고 갖지 않는 게 편안하다는 걸 몸으로 알고 있다.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버틸 수 있다고 믿고 웬만한 건 걱정을 안 한다. 아이들 과외도 못 시키지만 과외를 시키는 게 비정상인 거고 설사 아이들이 대학을 못 가고 가난한 기층 민중으로 살더라도 전혀 걔들한테 불행한 게 아니라고 믿는다. 도시빈민이나 농민 노동자의 삶 속에는 지식인들이나 중산층들의 삶이 가질 수 없는 게 있다.”

“당신에게 가난은 자기 절제인가.”

“편안한 거다. 그러나 무작정 편안한 게 아니라, 가난해야만 가난의 가치를 가질 때만 세상의 여러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고 나는 그걸 따라가는 거다. 가난은 이제 내 가치관이고 다른 생각은 하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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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3월. 봉천동


(노동자의힘 기관지)
2004/02/02 10:23 2004/02/02 10:23
2004/01/21 10:26
정리되지 않은 10대의 반항의식으로만 가득하던(머리 속에 든 거라곤 록음악과 오토바이와 여자뿐이던) 내가 대학에 들어가 운동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전적으로 운동하는 선배들에 대한 호감 때문이었다. 그들은 적어도 당시 대학생들 가운데 가장 진지하고 지적이면서 가장 인간적인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매료되었으며 그들과 동아리가 되기를 서슴지 않았다.

알다시피 오늘 대학 신입생들은 운동하는 선배들에게 호감을 갖지 않는다. 신입생들에게 그 선배들은 아무데서나 ‘운동권 사투리’를 남발하며 설득과 공감의 과정 없이 ‘삭발하고 구호나 외쳐대는’ 썰렁한 사람들이다. 텔레비전 연예 프로그램에서 최수종씨의 20년 전 CF화면에 폭소를 터트리는 관객들처럼, 신입생들은 그들에게 실소를 보낸다.

그런 반응은 대개 오늘 청년들이 사회 현실보다는 제 안락에만 관심을 갖기 때문이라 설명된다. 오늘 청년들이 20년 전 청년들보다 개인주의적인 건 사실이지만, 그런 설명은 일부만 옳다. 그런 설명이 전적으로 옳다면 왜 오늘 청년들은 언론개혁이니 정치개혁이니 하는 개혁운동에 그렇게 관심이 많으며, 인터넷을 무리지어 오가며 사회적 여론을 만들고 심지어 말도 안 되는 인물을 대통령으로 변신시키기까지 하는가.

그런데 그들은 진보운동엔 무관심하다. 개혁운동에 그토록 열심인 그들은 진보운동엔 왜 그토록 무관심한가. 지난 10년 동안 ‘넥타이 멘 운동가들’이 시민 혁명가로 떠오르고 개혁운동이 청년들의 가슴에 불을 지피는 동안 진보운동은 청년들의 시야에서 벗어났다. 청년들에게 진보운동은 지난 시절의 박제가 되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진보운동에 내용이 부족해서라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개혁운동에는 무슨 대단하고 체계적인 내용이 있는가. 지난 10년 동안 승승장구해온 개혁운동의 내용은 단 한번도 “나쁜 놈들을 몰아내자” 수준을 넘은 적이 없다. ‘나쁜 신문 몰아내자’ ‘나쁜 정치인 몰아내자’... 진보운동은 언제나 그보다 훨씬 더 정확한 현실 분석과 내용을 가져 왔다.

그럼 왜일까. 이유는 실은 간단하다. 진보운동은 지난 10년 동안 청년들과 소통 자체를 거부해왔다. 이런 말에 갸우뚱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언제 소통을 거부했단 말인가. 그러나 소통이란 일방적으로 말하는 게 아니라 서로 말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진보운동은 소통을 거부해왔다. 진보운동에서 대중을 상대로 만든 문건 몇 개만 살펴보면, 그 문건들을 강준만이나 유시민이나 노사모나 참여연대 같은 데서 만든 문건들과 비교해 보면 금새 알 수 있는 일이다.

가슴 아픈 일이지만, 오늘 청년들에게 진보운동은 ‘거부감을 주는 언어로 듣든 말든 지들끼리 떠들어 대는 사람들’이다. 학생운동의 쇠락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다. 학생운동의 쇠락이 진보운동의 쇠락을 뜻하는 것도 아니다. 학생운동, 즉 대학 시절과 대학 공간이라는 일시적 유한함을 기반으로 한 지사적 운동은 반독재 민주화 운동에서나 적절했다. 진보운동, 자본주의를 넘어서려는 운동은 자본주의 체제에 노출된 상태에서 일생을 거쳐 유지되는 운동이어야 한다. 학생운동은 그 효용성을 다했고 쇠락은 필연적이다.

중요한 건 진보운동과 청년들과의 관계다. 소통을 시작하자. 쉬운 언어와 친절한 말씨로. 청년들과 소통하지 않는 한, 청년들의 가슴에 불을 지피지 않는 한 진보운동에 미래는 없다.

(노동자의힘 기관지)
2004/01/21 10:26 2004/01/21 10:26
2003/12/28 19:31
80년대 진보운동이 갖는 급진성은 당연히 진보운동의 주체적인 힘이지만, 군사파시즘의 폭압과 책상물림 이론가들의 관념성에 크게 힘입은 것이기도 했다. 인정하고 싶든 않든 그건 이미 확인된 사실이다. 90년대 들어 군사 파시즘의 폭압이 수그러지고, 현존사회주의가 무너져 책상물림들의 관념성이 정처 없어지자 진보운동은 급진성도 참으로 맥없이 사그라졌다. 거품이었다.

그 거품 속에서 최소한의 진보적인 소양(이론적이고 관념적인 차원의 진보적 소양을 갖추는 건 ‘학습’으로 해결할 수 있지만 인간적이고 실천적인 차원의 진보적 소양은 ‘삶’으로만 갖출 수 있다. 물론 ‘삶’은 책으로 하는 게 아니다.)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조차 진보주의자 노릇을 할 수 있었다. 80년대에는 그 거품도 진보운동의 대열에 속했지만 80년대의 급진성이 무너지자 그 거품은 이내 진보운동에 비수로 돌아왔다.

그런 사람들은 90년대 이후 파시즘의 폭압과 이론적 관념성이라는 받침대가 사라지자 보수주의자로서의 이기심과 탐욕을 스스럼없이 드러내며 살아간다. 문제는 그들이 보수주의자로 살면서도 제 젊은 시절의 ‘진보운동의 이력’을 계속 내세운다는 것이다. ‘진보운동의 이력을 내세우는 보수주의자들’은 오늘 한국에서 무시할 수 없는 규모로 존재한다. 그들은 사회문화 전반에서 가장 유력한 엘리트 집단을 이루고 있다.

그들은 대개 그들이 자랑스러워마지 않는 이력에 걸맞은, 혹은 그 이력보다 훨씬 더 많은 사회적 대우를 받는다. 이따금 그들의 끝없는 탐욕이 그들의 천박함을 드러내기도 하지만(이를테면 저자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신을 책으로 펴냈다가 회수 소동을 벌인 아무개 출판사 사장이나 송두율씨를 초청했다가 국가보안법의 굴레가 다가오자 “그런 사람인지 나는 몰랐다. 처벌이 필요하다.”고 떠들어대는 아무개 기념회 회장처럼) 대체적으로 그들은 먹고 살만 한데다 사회적 존경까지 받는다.

그들은 제 안락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 매우 단순하고 명쾌한 논리를 구사한다. 1. 나는 세상을 바꾸는 일에 투신했다. 2. 이제 세상은 바뀌었다. 이 명쾌한 논리는 다시 ‘오늘 세상을 바꾸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과 ‘아직 세상이 바뀌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언급할 가치조차 없는 비현실적인 사람들’이라는 것을 명쾌하게 논증한다.

우리는 그들이 그런대로 양식을 갖춘 시민들이라 착각하는 편이다. 그러나 실제적인 차원에서 그들은 오늘 진보운동에 가장 큰 해악을 주는 사람들이다. 애시당초 진보운동을 적대하게 되어 있는 우익들의 공격과 그들의 공격은 사회적 공신력에서 비교할 수 없는 차이가 있다. 대중들에게 그들은 여전히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이룬 사람들’인 것이다.

그들이 진보운동에 갖는 좀더 치명적인 해악은 청년들이 진보운동에 접근하는 것을 차단하는 것이다. 요컨대 그들은 그들의 주장과 행태를 통해 90년대 이후 청년들이 진보운동에 대해 두 가지 편견에 빠지게 했다. 하나는 진보운동이 ‘이제 끝났거나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둘째는 ‘진보운동에 투신하는 사람들은 결국 그것을 제 일신의 안위를 위해 사용한다.’

이쯤 되면 출생 전에 무슨 신령한 진보의 은총이라도 입은 게 아닌 이상 어떤 청년도 진보운동에 관심을 갖기 어렵다. 오늘 청년들이 진보운동을 잘 모르고 진보운동에 관심이 없는 건 자연스러운 일인 셈이다. 오늘 우리가 참으로 심란스럽게 바라보는 청년들은 바로 그런 처지에 있다. 우리는 그 청년들에게 연민을 느낄 만하다.

(노동자의힘 기관지)
2003/12/28 19:31 2003/12/28 19:31
2003/12/15 00:19
80년대에 청년이던 사람들이 만나 대화하면 심심찮게 등장하는 안주가 ‘요즘 애들’이다. “요즘 애들은 책을 안 읽어.” “요즘 애들은 이기적이야. 도무지 사회 현실에 관심이 없어.” “요즘 학생운동이 그게 운동이야.” 등등.

더 이상 책을 안 읽고, 저와 제 식구 외엔 아무런 관심이 없으며, 운동은커녕 운동의 장애물에 가까운 그들이 그렇게 떠들어대는 풍경은 기괴하지만, 어쨌거나 80년대의 청년들과 오늘 청년들이 많이 다른 건 사실이다. 대학 학생회장 선거에서 갈수록 비운동권이 우위를 보이는 건 그런 현실의 한 단면이다.

그런 현실은 좌파운동의 미래를 어둡게 만든다. 좌파 청년들이 줄어든다는 것은 곧 좌파 운동이 고령화하고 또 고립되어 머지않아 영향력을 잃게 된다는 얘기가 된다. ‘청년들을 어찌할 것인가’는 좌파운동의 가장 중요한 숙제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한국에서 청년학생운동은 수십여년 동안 운동의 주력이자 메마르지 않는 우물이었고 80년대는 그 정점이었다. 80년대에 좌파청년들은 차고 넘쳤다. 그러나 그런 ‘풍요’는 좌파운동의 노력이나 역량보다는 현실의 엄혹함에서 온 것이었다. 온 나라가 병영화하여 청년들의 정신을 가두었고 군인들이 대낮에 양민을 도륙하고 어제 만난 친구가 사라져 얼마 후 주검으로 떠오르는 현실은 평범한 청년의 가슴에도 쉽게 불을 지를 수 있었다.

이제 군인들은 더 이상 대낮에 양민을 도륙하지 않으며 한국 청년들은 세계에서 가장 쿨한 영화광들이다. 빨갱이라 불리던 사람들이 잇따라 대통령을 맡고 있으며 평범한 청년들의 가슴에 불을 지를 만한 현실은 눈에 띄게 적어졌다. 이쯤 되면 오늘 청년들 가운데 적게라도 좌파들이 재생산된다는 사실은 신기하고 감사한 일이다.

오늘 청년들이 사회현실에 관심이 없다는 개탄은 사실과 다르다. 청년들은 언론개혁이니 정치개혁이니 하는 이런저런 개혁운동에 무시할 수 없는 규모로 투신하고 있다. 그 투신이 제 연애와 영화감상과 취업시험 준비를 하고 남는 시간에 ‘모니터 앞에서’ 혹은 ‘촛불을 들고’ 이루어진다 해도 그들은 나름대로 사회현실에 투신하고 있다.

우리는 그 청년들에게 희망을 둘만 하다. 우리가 ‘모니터 앞에서’ ‘촛불을 들고’ 사회현실에 투신하는 청년들에게 희망을 둘 근거는 그 청년들이 ‘진보’ 가 뭔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 청년들은 극우가 보수를 자처하고 개혁이 진보를 자처하는 현실에 그대로 사로잡혀 있다. 말하자면 그들은 개혁운동이 세상을 바꾸는 운동이라 여기고 ‘진보적 열정’으로 개혁운동에 투신하고 있다.

우리는 그 청년들에게 진실을 알려주어야 한다. 개혁과 진보는 전혀 다른 것이라는 것, 개혁운동은 세상을 바꾸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오늘 세상을 강화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어야 한다. 물론 그건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개혁이 진보를 거의 완전하게 대체하는 데는 참여연대에서 강준만과 노사모를 거쳐 네티즌운동에 이르는 10여년의 과정이 있었다. 그 10여 년 동안 개혁운동은 좌파운동을 ‘낡고 어리석으며 실현가능성이 없는 미망에 빠진 무리들’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젠 우리 차례다. 우리는 청년들에게 개혁운동의 주장들이야말로 얼마나 ‘낡고 어리석은’ 것이며 개혁운동이라는 것이 얼마나 ‘실현가능성이 없는 미망’인지를 알려주어야 한다. 개혁정권의 침략전쟁에 대한 태도나 더러운 정치자금을 둘러싼 진흙탕 싸움은, 청년들로 하여금 극우와 개혁이 어떤 차이를 갖는지 과연 개혁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지 되새기게 하는 생생한 자료들이다. 바로 지금 우리는 청년들에게 유례없이 친절하고 부드럽게 다가가야 한다. (노동자의힘 기관지)
2003/12/15 00:19 2003/12/15 00:19
2003/11/15 18:01
홍기선을 만났다. 놀랍게도 그는 그대로다. 수더분한 외모에서 어눌하지만 지적 결기가 느껴지는 말씨까지. 그를 10년 전에 한번 만났다. 이효인, 이정하들과 함께였을 것이다. 나는 간간히 그를 떠올리며 그의 근황을 궁금해 했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과연 그도 변했을까’ 궁금해 했다. 10년 동안 홍기선의 동료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모두 변했다. 영화와 현실을 함께 고민하던 그들은 자본과 제휴하다 스스로 자본에 꿇어갔다.

그 10년 동안 재벌자본과 투기자본과 유통자본이 차례로 한국영화판을 쓸고 지나갔다. 한국영화는 양적으로 팽창했고 매출도 늘어났다. 사람들은 흔히 그걸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라 말한다. 그러나 르네상스란 한 예술장르가 얼마나 양적으로 팽창하고 얼마나 많은 매출을 올리는가를 말하는 게 아니다. 르네상스란 온갖 꽃들이 만개한 봄 들판처럼 온갖 예술적 시도들이 공존하는 것을 말한다. 모든 영화가 마케팅의 율법을 경배하며, 독립영화가 제도 상업영화의 예비 인력시장으로 투항한 한국영화판은 해질녁 기지촌의 요사스런 풍경을 닮았다.

홍기선의 동료들이 보인 변화는 그들의 의식이나 내면적 변화를 넘어서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10년 동안 한국은 정치적으로 민주화했고 사회적으로 천민자본주의화했다. 군사 파시즘에 녹아나던 한국인들은 민주화의 수혜자인 시민과 천민자본주의의 수혜자인 노동자민중으로 분화했다. 시민에게 세상은 참으로 살 만한 곳이 되었다. 그들은 상식을 모욕하던 군사 파시즘도 물러갔다. 그러나 노동자 민중에게 세상은 더욱 나빠졌다. 그들은 오늘 33년 전 제 몸을 불사르며 죽어간 전태일과 똑같은 유서를 남긴 채 죽어가고 있다.

그 10년 동안 한국영화의 가장 큰 사회적 기여는 현실에 대한 청년들의 관심을 앗아간 것이다. 오늘 한국 청년들에게 영화란 취미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현실의 온전한 대체물’이다. 그들은 영화 속의 현실에서 그들이 가진 모든 인간적 분노와 정의와 낭만과 이상주의를 완전하게 카타르시스한다. 그들은 실제 현실에서 사용할 인간적 분노와 정의와 낭만과 이상주의의 여분이 없다. 그들에게 오늘 죽어가는 사람들의 현실은 영화보다 먼 현실이다. 영화는 그들에게 열심히 현실의 대체물을 판매하고 그들은 열심히 그 현실의 대체물을 구매한다. 그게 오늘 한국영화산업의 뼈대다.

그런 점에서 <선택>은 특이한 영화다. <선택>은 현실을 카타르시스하게 하는 게 아니라 현실을 반추하게 하는 힘이 있다. 45년을 감옥에서 보낸 비전향 좌익수를 다룬 비장한 영화라서가 아니다. <선택>은 오히려 상쾌하다. 아둔한 사람이 아니라면 스치듯 지나가는 감옥 풍경과 담백한 국악풍 음악이 부드럽게 녹아드는 타이틀에서 이 영화가 관객을 계몽하려는 게 아니라 관객과 속삭이려 한다는 걸 알아차린다. 카메라는 그 세월 동안 단 한번도 감옥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관객은 그 유별난 사람들의 현실에 은근히끼어든다.

허문영은 <선택>을 ‘이념이 아니라 명예를 그린 영화’라고 했다. 물론 그건 대단한 찬사다. 그러나 그 찬사엔 이념이라는 게 뭔가 비인간적이고 차가운 것이라는 상투적 편견이 깔려있다. 이념은 이념이 생겨나던 날부터 그렇게 공격받아왔다. 우리는 이념이 휴머니즘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다.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를 모른 체 하지 않는 것, 그 지극히 인간적인 행동이 바로 이념이다. 이념은 다름 아닌 인간의 명예다.

지나간 역사, 다른 나라의 현실에 명예를 선택하긴 쉽다. 게바라와 마르코스가 애호되는 건 그래서다. 그러나 오늘 현실, 오늘 진행하는 역사에 명예를 선택하긴 쉽지 않다. 그 선택이 제 밥그릇과 안락을 위협하거나 위협할 수 있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33년 전 전태일에 서슴없이 명예를 선택하는 우리는 오늘의 전태일에 명예를 선택하지 않는다. 우리는 배달호(1월 9일), 박동준(9월 27일), 김주익(10월 17일), 이해남(10월 23일), 이용석(10월 26일), 곽재규(10월 29일)에 명예를 선택하지 않는다. 우리의 선택은 과연 무엇인가.(씨네21)
2003/11/15 18:01 2003/11/15 1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