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05/12 16:08
대학로에 춤 공연을 보러 나갔다. 초대권으로였지만 영화고 연극이고 이른바 예술 감상을 못한 지가 1년이 넘는 나로서는 오랜만의 즐거운 외출이었다. 올해로 다섯 번째인 '민족춤 제전'은 출품작들의 수준이 비약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주제 의식에 대한 강박이 없어졌다는 점이 춤 언어를 세련되게 만들었고 보는 사람을 안심하게 했다. 행사를 꾸린 김채현 선생에게 "민족춤 같지 않네요."라는 농을 던지며 유쾌하게 웃을 수 있었다. 공연이 끝나고 자못 문화적 포만감에 젖어 극장 밖으로 빠져 나오는 순간 가까운 곳에서 굉장한 음량의 음악과 환호 소리가 들려왔다.

예정에도 없던 공짜 라이브를 건지는구나 하는 생각에 다가가 보니 수백 명의 교복들이 겹겹이 둘러싼 가운데 머리를 가지각색으로 물들이고 헐렁한 옷을 입은 10대들이 댄스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또 하나의 춤공연이 열리고 있었던 것이다. 제대로 된 조명도 없이 민족춤 제전이 열리는 문예회관 대극장의 외등에 의지하는 소박한 공연이었지만 그 열기는 대단했다. 대략 열 명쯤인 댄서들이 군무를 하다가 한 명씩 앞으로 나와 묘기에 가까운 애드립을 할라치면 수백 명의 교복들이 일제히 환호했다. 댄서들 가운데는 그쪽에서 꽤 알려진 친구들도 있는지 "삼식이 오빠 짱이야!" 하는 실명이 들어간 고함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들의 공연은 용감하고 당당해 보였으며 그들의 댄스는 건강하고 아름다웠다. 그들을 가르치는 어른들이 같은 곳에서 판을 벌인다면 어떤 모습일까. 그 썰렁함과 퇴폐에 생각이 미치자 가슴이 서늘해졌다. 공연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은 자꾸만 헤벌쭉 벌어지는 입을 내내 주체할 수 없었다. 그러다 나는 문득 긴장했다. "댄스음악을 다시 봐야겠다. 저 친구들한텐 그게 록이었구나."

대중문화를 말하는 사람들은 댄스음악이 판치는 현실, 10대들이 댄스음악에 경도 되어 있는 현실에 대해 우려한다. 거기에는 장르의 편향성에 대한 우려 말고도 댄스음악이라는 장르의 뒤편에 숨겨진 음험한 상업성에 대한 비판도 들어 있을 것이다. 나만해도 웬만하면 한 주에 한번쯤은 가요 프로그램을 보고 싶지만 양파 까듯이 반복되는 댄스음악을 견뎌내지 못하고 번번이 포기하고 마는 처지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 댄스음악에 대해 새로운 생각을 해야겠다. 1. 댄스음악은 누구의 것인가? 10대들이다. 2. 그들이 댄스 음악을 선택한 이유는? 춤추기 위해서이다. 3. 그들은 왜 춤을 추는가? 그냥, 좋아서. 4. 굳이 복잡하게, <시네21> 독자들 수준으로 얘기하면? 그들이 처한 비참한 현실로부터 '탈출'하고 그들을 억압하는 기성세대와 주류사회에 '저항'하기 위해서...

댄스음악은 록이 아니다. 그러나 록을 진정한 록일 수 있게 하는 이유가 이른바 록정신에 있다면, 다름 아닌 탈출과 저항의 정신에 있다면 98년 한국의 틴에이저들은 댄스음악으로 록을 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들이 원전(미국 대중음악사)을 따르지 않고 그들만의 록으로 댄스음악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한국의 10대들의 정서가 많이 서구화되었다곤 하지만 여전히 록까지는 아니어서일 수도 있고 그들의 사회적 처지가 60년대 미국 노동계급의 10대들과 달라서 일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 대중음악사가 이 나라에서 똑같이 반복되어야 할 어떤 이유라도 있는가.

댄스 하는 그들, 대한민국의 10대들은 어떤 처지에 놓여 있나. 이른바 기성세대와 주류사회는 그들을 위해 어떤 세상을 준비해 놓았나. 모든 갓난아이들이 20년 동안 오로지 대학입시라는 이름의 '계급 결정시험'만을 위해 살도록 정해진 대인국에서 바로 그 '계급 결정시험'을 목전에 둔 10대라는 소인들이 춤을 춘다. 그들의 적은 그들을 뺀 전부이며 그들은 댄스로 록을 한다. 끝없이 탈출하고 무작정 저항한다. 그들은 예술의 사회성을 모르며 역사적 전망을 모르며 어떤 종류의 전략도 가지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은 록정신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록정신으로 충만하다. 그들의 댄스를 막지 마라. | 씨네21 1998년_5월
1998/05/12 16:08 1998/05/12 16:08
1998/04/28 16:07
나는 하드록이 좋다. 레인보우의 8분 27초 짜리 <스타게이저>를 틀고 눈을 감으면 심장 근처로 고압전류가 흐르고, 드럼을 두들겨 살아있음을 확인하던 20여 년 전으로 돌아간다. 그 시간만큼은 개점휴업 중인 출판사의 알량한 발행인이 아니고 한달 내내 이자 챙기기에 녹아나는 불량거래 직전의 채무자도 아니다. 그 시간만큼은 나도 한 록 하는 로커이고 국가와 사회가 감당 못할 날라리이다.

1985년의 청년은 하드록을 들을 수 없었다. 식민지에는 민족적인 문화와 매판문화가 존재할 뿐이었다. 나는 하드록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나의 오염된 육체와 정서가 부끄러웠다. 어느 날 밤, 나는 책상 옆에 놓여져 있던 스네어 드럼을 치우고 분연히 일어나 민족음악을 찾아 나섰다. 맨 먼저 한 일은 마샬 앰프의 살인적인 출력에 늘어나 버린 나의 귓구멍을 대나무와 오동나무 그리고 쇠가죽 따위에서 내는 단출한 소리에 맞춰 다시 뚫는 것이었다. 휴학생이었고 시간은 많았다. 매일 밤 FM의 국악 프로그램을 듣고 또 그걸 녹음해선 온종일 듣기를 여러 달, 내 귀는 드디어 새로운 음악을 즐겁게 수용하기 시작했다.

내 귀는 민속악보다는 정악을 좇았다. 김성진의 정악 대금은 나를 사로잡았다. 몇십 년을 주인의 침에 삭은 쌍골대가 어떤 관념적인 틈새도 없는 윤기로 <상령산>을 울리자 나는 전율했다. 얼마간의 미장 데모도 노릇으로 나는 대금을 살 수 있었다. 단단하고 묵직한 몸에 삼현육각이 새겨진 놋쇠 덮개가 덮인 대금을 손에 넣고는 감격의 눈물을 찔끔거렸다. 입대가 한달 앞으로 다가오자 나는 최선을 다했다. 국악원에 출근하다시피 열심히 강습을 받고 밤새 혼자 연습하고 대금의 조카뻘인 단소를 수십 개씩 만들어 친구들에게 나눠주고 도서관을 뒤져 대금에 관한 온갖 문헌을 찾아내기를 계속했다.

군대 내무반에서 대금 연습을 하리라는 내 계획은 대한민국 육군을 졸로 보는 꿈이었음이 입대하던 날 밤 밝혀졌다. 무슨 운명인지 대금 연습을 포기한 건 저 산밑의 일이고 나는 다시 드럼을 치게 되었다. 사병들의 춤을 위해선 <젊은 그대>, <아파트>, <배드 케이스 오브 러빙 유> 따위를 연주하고 이따금 지원되는 스트립걸을 위해선 <모나코>를 깔았으며 장교놈들 회식을 위해서는 <노란 샤쓰 입은 사나이>로 봉사했다. 군부정권하의 군대를 위해 문선대 노릇을 하는 일에 대한 거리낌은 없었다. 나 또한 군바리였고 나는 나의 드럼에 맞춰 미치게 몸을 경련하는 불쌍한 전우들을 위해 기꺼이 팔다리에 쥐가 나도록 드럼을 두들기고 또 밟았다.

3년을 총 대신 드럼스틱으로 때우고 나와선 이른바 노동자 문화운동 하는 조직에 들어가 보니 음악팀에선 놀랍게도 전기기타 신디사이저 드럼을 사용하고 있었다. 몇 차례 공연을 따라다니며 드럼을 치기도 했지만 내 생애에 가장 불편한 드럼이었다. 나의 음악정신은 몽롱해지기 시작했다. 얼마 후에 거길 그만두고 다시 한 해를 놀 때는 또 대금을 만지작거렸다. 90년대로 넘어와 이른바 진보적 영화도서 출판을 시작하고부터는 맥없이 여러 음악을 전전했다. 퓨전재즈, 다음에 블루스, 다음에 서양 고전음악, 그 다음에 재즈 하는 식이었다. 그리고 1998년, 나는 다시 하드록을 듣는다.

대금을 꺼내는 일은 드물어졌고 <영산회상>도 일주일에 한번 들을까 말까다. 대금을 꺼내고 <영산회상> 시디를 넣고 하는 일이 피곤하기 그지없고 그 이유를 생각하면 더욱 피곤해질 뿐이다. 하여간 당분간 '우리 것'은 그다지 듣고 싶지 않다. <서편제>가 뜨고 이른바 국악붐이 일면 명절날 방문객을 맞는 고아가 된 것 같고 쇠락한 고향을 밝히기를 부끄러워하는 잡놈이 된 것 같다. 나의 음악유전이 이 나라의 역사와 조금이라도 관련을 맺어왔을 거라는 공상을 하면서, 파시즘이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이 염병할 나라에서 정악처럼 사람을 정갈하게 만드는 음악을 듣는 일은 코미디이고 잔혹극이라는 생각도 든다.

나에게 아직도 한줌의 음악 정신이 남아 있다면 얼마간 어질러진 채로 놔두고 싶고 그래서 거듭하는 게 하드록이다. 한없이 몽롱해 하면서도 머리와 입으로 록에 붙어먹으려는 놈들에 대한 살의를 풀지 않는 걸 보면 아무래도 나의 음악유전은 몹시 피곤했고 음악에 관한 한 나는 임포 증세를 보이는 것 같다. | 씨네21 1998년_4월
1998/04/28 16:07 1998/04/28 16:07
1998/04/14 16:06
권 장로가 성경 갈피에 미리 넣어 둔 자루 없는 커터 칼날로 배를 세 번 긋고 변기 뚜껑을 깬 것은 새벽닭이 울기 전이었다. 칼날은 5센티미터 깊이까지 들어갔으나 권 장로의 피하지방(비계)이 그보다 더 두꺼웠기 때문에 내장은 상하지 않았다. '자살기도'냐 '자해공갈'이냐 하는 정치평론보다는 "국산 칼날 문제 있다" 따위의 조크가 더 어울리는 사건이었다. 어쨌든 나라를 콩가루로 만든 김 장로에 이어 또 한번 교회 장로가 사고를 침으로서 기독교인들은 민망하게 되었다. 유토피아 디스토피아(이하 유토피아)는 이 사건을 주제로 두 목회자의 대담을 마련했다. 참석자는 응답교회 은혜만 목사와 낮은교회 지하로 목사이다. 은 목사는 유신 무렵, '영도자를 위한 조찬기도회'를 창안하여 급부상한 이래 공격적인 교회경영으로 고속성장을 거듭해 온 유력한 목회자다. 지 목사는 악명 높은 철거깡패 출신으로 뒤늦게 목사가 되어 빈민선교에 전념하고 있는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생생함을 살리기 위해 지면에 옮기기 거북한 부분도 그대로 두었음을 밝혀 둔다.

유토피아: 이번 권 장로 일로 교회와 기독교인들을 지탄하는 소리가 높습니다.
지하로: 교회가 국민들과 하나님 앞에 엎드려 회개하는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아까 테레비에서 보니까 그 양반 오늘 구속이라는데 예배를 보고 있더라구요. 열 받아서 테레비를 뽀개버릴 뻔했어. 사실 전부터 대공이니 공안이니 오바하는 존만 새끼들 중에 집사가 많았거든. 여대생을 취조한다고 잠지를 까고 지랄한 문귀동이라든가... 존만 새끼들.
은혜만: (잠시 묵상하고) 우리 성도들은 아무래도 좀 뜨겁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많아 보이는 거지, 실제론 불교신도가 많을 걸요. 권 장로님 일은 저도 유감입니다만, 여론이 안 좋다고 같은 성도끼리 돌을 던진다면 종교탄압을 자초할 수도 있다는 걸 알아야 해요.
유토피아: 북풍사건은 특정 대통령 후보를 빨갱이로 몰기 위해 북쪽과 내통을 했다는 게 충격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은혜만: 그게 말이죠, 제가 정치탄압 받을 각오하고 하는 말인데요, 지금 교회 욕하는 사람들 전부 그 후보 찍은 사람들이에요. 전라도가 원래 좀 그렇잖아요. 서울만 해도 강남은 분위기가 다르다고 봐요. 그리고 빨갱이 하나 잡는 게 열 명 전도하는 거보다 은혜예요. 나도 실향민이지만 적화통일 돼봐요. 교회가 어딨나.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수호돼야 신앙의 자유도 있는 거예요.
지하로: 그래서 북한하고 내통했어요?
은혜만: 제가 국제적으로 활동하다 보니까 정보력이 좀 돼요. 이거 정보망 무너지는 거 각오하고 하는 말인데, 권 장로가 북쪽하고 접촉한 건 선교 목적일 가능성이 높아요. 권 장로님이 워낙에 뜨거워요.
지하로: 북한선교라. 완존 예술이구만. 권 장로가 자기를 패장이라고 했다는데 그렇다면 지가 성전(聖戰)을 치루고 있다는 건데, 완존 또라이야. 그럼 누가 얘를 또라이로 만들었냐, 권 장로고 문 집사고 교회가 목사가 그렇게 만들었다 이기야.
은혜만: 뭔가 오해를 하신 것 같은데, 그 두 사람은 저희 교회 교인이 아녜요.
지하로: 돌아버리겠구만. 오늘 고명하신 은 목사님 만난 김에 하나만 물어 봅시다. 기독교가 모세를 믿는 거요, 예수를 믿는 거요?
은혜만: 허허허, 그거야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거지. 무슨 그런 싱거운 말씀을.
지하로: 싱거? 그런데 은 목사님 설교를 들어보면 예수가 말한 거하고 반대가 많거든. 은 목사님은 열심히 믿으면 물질축복 받는다고 하는데, 예수는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건 낙타가 바늘구멍 지나가기보다 어렵다고 했단 말야. 나는 이 생각만 하면 돌아버려. 이거 이해시키시면 내 쓰바 오늘 당장 낮은교회 엎어버리고 응답교회 나가겠시다.
은혜만: 성경 말씀은 영적인 차원에서 봐야 합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자식입니다. 효도하면 당연히 효행상 받아야죠. 제가 안기부 특강도 하고 그럽니다만 성도가 가난해야 된다고 하는 그런 게 다 뒤에 불온한 게 있는 거예요. 퍼런 수박 쪼개 봐요. 빨갛잖아요. 그건 그렇고 저는 내일 아침 청와대 조찬기도회 준비 땜에 일어나야겠습니다만, 솔직히 이번 권 장로 일이야 석 달만 지나면 누가 기억이나 합니까. 미국 보세요. 기독교니까 반공하니까 축복 받은 거고, 소련은 망했잖아요. 이번 일이 종교탄압으로 흐르지 않도록 성도들이 뜨겁게 기도해야 합니다.
유토피아: 저도 오늘 유명 영상지 원고 마감이라서요. 아쉽지만 지 목사님 간단하게 정리 말씀하시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지하로: 먼저, 제가 오늘 욕하고 그런 거 미안합니다. 어제 철거반 새끼들 땜에 밤을 샜더니... (잠시 묵상 후) 교회가 그리스도의 정신, 십자가 정신을 살려야겠습니다. 그게 없으면 교회는 죽는 겁니다. 예수는 "니꺼 남 주는 게 사랑이다, 너도 십자가를 지고 따라와라" 그랬는데 교회는 "믿으면 잘 살 수 있다, 남에 꺼 먹을 수 있다"고 가르치니 이게 다 죽은 교회란 말이에요. 만날 교회만 나가면 뭐해요. 다 헛지랄인데. 예수가 알면 통곡을 할 일이죠. 점잖은 양반들이 나 같은 깡패새끼도 아는 이치를 모르다니 말이 됩니까. 이번 일이 정말로 교회가 십자가 정신을 살리는 계기가 되어야겠습니다.
유토피아: 두분 목사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마치겠습니다.
은 목사는 대기 중이던 승용차로 바삐 떠났고, 원고 마감이라던 유토피아는 소주 한잔 걸치자는 지 목사를 따라 골목으로 들어섰다. 서울의 밤은 여느 날과 다름없이 네온사인 십자가로 가득 차 있었다. 그렇게 밤은 깊어만 갔다. | 씨네21 1998년_4월
1998/04/14 16:06 1998/04/14 16:06
1998/04/06 16:30
전세계 영화인들의 저주와 전세계 영화팬들의 찬미를 먹고사는 20세기의 에덴 동산, 할리우드의 연례 재롱잔치. 오스카 수상식은 보는 사람의 오감을 사로잡는 마력이 있다. 그것은 그 자체로 모든 할리우드 장르 영화의 온갖 컨벤션들을 화사하게 배열한 최고급 종합선물이다. 오스카 수상식은 서너 시간 넘어 하기 때문에 텔레비전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는 버릇을 가진 나는 챙겨보지 않아도 해마다 보게 된다. 그리고 매번 쇼가 무르익을수록 볼거리가 쌓여갈수록 불편함도 같이 쌓여 간다. 자본주의를 거부하기로 한 내가 자본주의의 꽃을 감상하고 있기 때문이며, 전세계 피압박 영화를 지지하기로 한 내가 가해 영화의 자축연에 참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스카는 자족적인 불편함에 기대어 구경을 지속하는 나 같은 사람을 위한 메뉴까지 준비한다. 올해의 메뉴는 엘리아 카잔의 공로상 수상.

알다시피, 엘리아 카잔은 빨갱이 사냥이 극에 달한 1952년, 이른바 하원 반미행동조사위원회에 나가 자신이 좌파임을 시인하고 동료 8명을 밀고했다. 카잔은 54년 <워터프론트>로 오스카 감독상을 받는 등, 영화와 연극을 넘나들며 활동을 계속했지만 '밀고자'로 손가락질 받아왔다. 그를 불리한 처지로 몰아넣은 건 그 자신이었다. 카잔은 52년 하원 증언을 마친 직후 '공산주의는 위험천만한 적들의 음모'라는 광고를 <뉴욕타임스>에 싣는가 하면, 88년 발간한 회고록에선 "그런 기회가 또 다시 오더라도 똑같이 명예로운 행동을 하겠다"고 밝히는 배 째라 식의 행태를 보여왔다.

72년, 좌파라는 이유로 미국에서 쫓겨나 20년 동안 망명생활을 해오던 찰리 채플린이 '영화를 20세기의 예술이게 한 공적'으로 오스카 공로상을 받았다. 채플린의 공적은 분명한 사실이었지만, 그 상은 할리우드가 매카시즘의 피해자에게 정중하게 용서를 구하는 절차이기도 했다. 영화 <채플린>에 묘사된 대로, 채플린이 83세의 노구를 끌고 입장하자 할리우드 영화인들은 열광적인 기립 박수를 보냈고 채플린은 눈물을 흘렸다.

오스카가 FBI에 의뢰해서 좌석 배분을 한 걸까. 카잔이 입장했을 때, 객석의 오른쪽은 거개가 기립했지만 왼쪽은 팔짱을 끼고 있거나 박수치지 않았다. 머리가 비었을 거라 여겨지던 할리우드 영화인들의 만만치 않은 사회의식을 여지없이 드러내는 일이었고, 역사 속에서 '이미 확보된 이성'이 '우상이 남긴 상처'를 지우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여주는 일이었다. 카잔은 "아카데미의 용기와 관용에 감사한다"는 짤막한 인사말을 하고 서둘러 퇴장했다.

<조선일보>는 그 일을 두 번 언급했다. "엊그제 열린 71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엘리아 카잔 감독이 특별공로상을 받았다. 매카시 광풍에 의해 채플린이 추방된 1952년, 카잔 감독은 자신의 동료였던 공산당원들의 이름을 의회 청문회에 밝혀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혔다." "카잔의 원죄는 '마녀 (공산주의자) 사냥'이 극에 달했던 52년, 한때 공산주의자였던 동료 영화인 8명을 밀고한 것."

도무지 <한겨레>와 구분할 수 없는 이 공평무사한 표현은 <조선일보>와 그들의 보수 사상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준다. 그들은 왜 52년 미국의 메카시즘을 '광풍'이며 '마녀사냥'이라고 하면서, 오늘 한국의 '광풍'과 '마녀사상'을 요구하는 걸까. 그것은 그들의 보수 사상이 세상을 판단하는 신념체계가 아니라, 가진 것을 내놓지 않으려는 혹은 더 많이 가지려는 동물적인 욕망 체계이기 때문이다. 52년 미국의 메카시즘은 내 돈궤하고 아무 상관이 없지만, 오늘 한국의 메카시즘은 내 돈궤를 보존하거나 늘리는 일인 것이다. 새삼스런 얘기지만, 보수 사상이 진보 사상과 대립한다 해서 보수 사상을 진보 사상과 같은 층위에 놓는 일은 터무니없다. 그것은 순수한, 매우 순수한 욕망이다. | 씨네21 1999년_3월
1998/04/06 16:30 1998/04/06 16:30
1998/03/30 16:05
"이걸 읽으면, 이 양반이 뭔가..." 10년쯤 된 일이다. 선배한테 빌린 <태백산맥> 열 권을 아버지께 내밀었다. 읽을거리를 구해 오라는 아버지의 부탁을 이용하여 아버지의 소시민적인 의식에 파문을 일으켜 보려는 수작이었다. 그런데 웬걸. 다음날 아침 그 책들은 모두 내 책상 위에 쌓여져 있었다.

(의아한 표정의 아들)"왜, 재미없으세요?"/(조금 미안한 표정의 아버지)"응"/(의혹에 찬 표정의 아들)"왜요?"/(귀찮은 표정의 아버지)"조금 읽어 봤는데, 너무 뻔해..."/(이 양반이 보수성을 드러내는구나 하는 생각에 열 받은 아들)"뭐가 뻔해요."/(딴 데를 보며 그러나 단호한 목소리의 아버지)"아, 옛날에 다 본 얘기야"/"(아들)..."

아차, 아버지의 고향이 거기였구나. 일단 꼬리를 접긴 했지만 기분은 개운치 않았다. 400만이 넘는 사람들이 읽고 감동했고, 파시스트들의 집요한 공격으로 그 빼어난 '리얼리즘'이 방증되었다는 이 대작품이 뻔하고 재미없었다... 아버지의 반응은 나에게 오랜 의문으로 남았다.

"청년이라면 밤을 새워라/이제 대학생이 되셨다면/조국의 교과서로 불리는/조정래 대하소설/태백산맥과 아리랑을 읽어 주십시오." "끝없는 감동의 물결/독자 400만" "선배들이/인간을 사랑한 순정/태백산맥의 골짜기마다 숨어 있다./선배들의 조국에 대한 고뇌/태백산맥만이 증거 한다."

며칠 전 신문에서 본 <태백산맥>의 광고 덕에 나는 묵은 의문을 풀 수 있었다. 좀더 정확히 말해서 나는 리얼리즘에 대한 한 '편견'을 마련함으로써 내 속을 다스릴 수 있었다. 98년도 대학 새내기들에게 소설책을 팔기 위해 "조국의 교과서"라는 표현을 쓰는 업자들에 대한 언짢음 때문이었을까? '편견'은 빠르게 정리되었다.

리얼리즘은 지식인을 위해 마련된 장치이다. 비록 책상에 앉아 담배나 빨고 있지만 마음만은 칼바람 부는 벌판과 총탄이 빗발치는 계곡을 달리고 싶은 지식인의 당연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가상현실 체험이다.

광고는 계속된다. "98년도 대학 새내기 여러분. 여기에 <미스트>나 <레이븐>을 능가하는 자랑스러운 우리의 리얼리즘, <태백산맥>과 <아리랑>이 있습니다. 누구든 책장만 펼치면 '선배들'과 함께 '태백산맥 골짜기와 만주벌판'을 누비며 그들의 '순정과 고뇌'를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신통한 리얼리즘도 아버지를 흥분시킬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짐작컨대, 열 권의 책을 받아든 아버지는 첫 권을 펼치자 이내 "옛날에 다 본" 이야기임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의 '의식'에 어떤 형태로든 적극적일 수 없는 소시민인 아버지의 유일한 선택은 그 소설을 피하는 것이다. 결국 아버지는 <태백산맥>이 '뻔하고 재미없었던' 것이다. 어제 저녁에 구한 책을 날이 새기 무섭게 돌려 줄 만큼.

그러나 영상시대 지식인의 머리통은 그리 단순하지 않아서 <태백산맥> 같은 유장한 리얼리즘만으론 모자람이 있다. '책상 위의 역사'를 더욱 장엄무비하고 의미심장하게 만들기 위해선 바로 지식인 자신의 '일상의 진실'을 그린 리얼리즘이 곁들여져야 한다.

먼저 책장을 넘겨 태백산맥이나 만주를 달려 가슴에 치밀어 오르는 뭔가를 한껏 느낀 다음, 바로 리모콘을 눌러 힘있는 강원도나 우물에 빠진 돼지에 낄낄거리며 담배연기를 길게 뿜는다. 비로소 지식인은 비분강개에다 나약한 자신을 자조하는 웃음마저 곁들인 완벽한 지성미를 갖추게 된다. 리얼리즘은 리얼하다. | 씨네21 1998년_3월
1998/03/30 16:05 1998/03/30 1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