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2/10 22:45
블로그를 공개한다. 만족스럽진 않지만, 모자라는 건 계속 고쳐나갈 생각이다. 누구에게나 편안하고 담백한 느낌을 주는 블로그가 되었으면 좋겠다. 가능하다면 아이들에게도..

('김규항의 블로그'를 권유한 김명준 형과, 블로그 틀을 짜주고 종이 편집만 아는 나에게 웹 편집의 기초를 만들어 준 최호찬 형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2004/02/10 22:45 2004/02/10 22:45
2004/02/09 20:11
출근길에 한강을 바라보다 아이들이 읽을 수 있는 '예수전'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청년들을 위한 예수전은 전부터 생각했지만 아이들을 위한 건 처음이다. 왜 진작에 생각하지 못했을까. 아이들이 읽을 수 있다는 건 모든 사람이 읽을 수 있다는 것인데.. 예수는 모든 사람이 읽을 수 있게 써야 한다.

아이들이 읽는 예수전이라 해도 '예수의 껍데기'는 벗겨내야 한다. 아니, 아이들이 읽기에 더더욱 그래야 한다. 모든 어른과 모든 교회가 아이들에게 예수의 껍데기를 가르친다. 아이들은 일생 동안 예수를 ‘머리 뒤에 광채를 두른 채 모든 사람에게 가르치듯 말하는 섬약하게 생긴 백인 남성’으로 기억하게 된다. 그리고 단지 그를 ‘믿으면’ 현세와 내세가 보장되는 되는 것으로 안다. 그게 한국인들과 예수의 거의 유일한 조우다.

예수전은 처음부터 차근차근 되짚는 게 좋겠다. 동정녀 탄생 이야기는 예수의 신령함이나 순정함을 주장하는 전근대적인 상상력이다. 그걸 생물학적으로 반박하는 건 의미가 없다. 그 이야기는 생물학을 말하려고 하는 게 아니므로. 가령 그 이야기는 이렇게 보충된다. "예수님이 동정녀에게서 낳든 창녀에게서 낳든 다를 게 없어. 사람의 가치가 엄마가 누구냐 아빠가 누구냐에 따라 정해지는 건 아니야."

오늘부터 구상에 들어가자. 가만, 그림을 누구에게 맡길까..
2004/02/09 20:11 2004/02/09 20:11
2004/02/05 03:12
블로그 준비를 위해 여기 저기 폴더에 흩어져 있는 지난 글들을 정리 하다 나도 모르게 얼굴이 화끈해졌다. 나는 사는 꼴에 걸맞지 않게 소리 높이거나, 그 소리에 걸맞지 않게 한가롭게 살고 있다. 훨씬 더 정열적으로 살거나, 훨씬 더 검소하게 써야 한다..
2004/02/05 03:12 2004/02/05 03:12
2004/02/03 15:28
"저는.. 충주에 사는.." 전화 너머로 낮고 느린 목소리가 들린다. 나는 그가 이오덕 선생의 아들이라는 걸 알아차린다. "연락한다 한다 하다가 바쁘실 텐데 괜한 짓을 하나 싶어..""아닙니다 잘 하셨습니다. 제가 오히려 고맙습니다."

오래 만나지 못했지만 선생은 나를 언제나 넘치게 대하셨다. 선생은 말년에 자신을 존경하는 후배들 일로 많이 마음 고생하셨다. 자신을 존경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실은 자신을 잘 모른다는 사실처럼 고통스러운 일은 없다. 그러나 그건 제 신념을 제 삶에 일치시키는 사람들이 겪는 숙명적인 절대 고독이다.

이오덕 선생이 있었기에 세상이 달랐다. 그러나 내가 선생을 존경한 이유는 그가 나보다 젊기 때문이었다. 선생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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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월. 작업실
2004/02/03 15:28 2004/02/03 15:28
2004/02/02 10:23
나는 녹색평론의 책들이 좋다. ‘이 책이 무슨 책인가’를 정직하게 드러내는 차원을 넘어서지 않는 소박한 디자인에 재생지를 사용하여 두툼하지만 가벼운 그 책들을 집어들 때 나는 중얼거린다. ‘다들 책을 이렇게 만들면 좋으련만.’ 그러나 그보다 더 좋은 건 그 책들이 ‘다른 가치관’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그 책들은 매우 초라하고 불편한 삶의 방식을 제시하지만, 그 ‘다른 가치관’에 동의할 때 그 초라함과 불편은 기쁨과 자부가 된다.

‘다른 세상’을 꿈꾸는 일의 출발은 ‘다른 가치관’을 갖는 것이다. ‘네놈들이 잘 먹고 잘 살았으니 우리도 한번 잘 먹고 잘 살아 보자’라는 생각은 고통스런 삶을 사는 피억압자에게 정당한 것이지만 그게 혁명의 전부는 아니다. 혁명은 단지 ‘급격한 역할 교환’이 아니다. ‘한줌의 지배계급이 잘 먹고 잘사는 세상’에 대한 혁명은 ‘한줌의 지배계급이 차지하던 것을 공정하게 분배하는 세상’이 아니라 ‘남보다 잘 먹고 잘사는 일 자체를 부끄러워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혁명의 최종 목표는 ‘가치관’을 바꾸는 것이다.

제 아무리 이상적인 분배 시스템이 만들어진다 해도 ‘남보다 잘 먹고 잘 사는 걸 자랑스러워 하는 가치관’이 살아있다면 그 사회는 여전히 원래 상태로 돌아갈 가능성이 남은 셈이다. ‘다른 가치관’은 오늘처럼 혁명이 요원해 보이는 시절부터 이미 마련되어야 한다. ‘적의 가치관’에 사로잡혀 있는 한 혁명은 불가능하다. 혁명을 노래하는 좌파 인텔리들이 ‘혁명을 두려워하는’ 행태를 보이는 것도 그들이 ‘적의 가치관’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제 자식이 ‘진보적인 엘리트’가 되길 바랄지언정 고등학교나 마친 노동자가 되길 바라는 좌파 인텔리를 본적이 있는가? 제 자식이 이른바 일류대학에 들어가는 걸 꺼리거나 적어도 진지하게 부끄러워하는 좌파 인텔리를 본 적이 있는가? ‘적의 가치관’, 즉 ‘혁명의 대상과 같은 가치관’을 가진 상태에서 진행하는 모든 혁명 운동은 그저 ‘혁명 게임’일 뿐이다.

개인적으로도 존경해 마땅한 좌파 인텔리들 가운데 제 자식 문제에까지 연결되는 ‘다른 가치관’을 갖는 이는 거의 보지 못했다. 오늘 우리가 얼마나 천박한 세상을 살아내고 있는가를 생각한다면 ‘단 한명도 보지 못한 건 아니라는 사실’에 위안을 받아야 하는 것일까. 그 한 예는 다큐멘터리 감독 김동원이다. 그의 몸은 이 천박한 세상에 묶여 있지만, 그의 정신은 이미 ‘다른 세상’을 살고 있다.

“무엇보다 가난해야 한다. 강요된 가난은 죄악이고 극복해야 하는 것이지만 자발적으로 선택한 가난은 바로 예수의 모습이다. 그것에 의심이 없다. 이젠 버리는 게 어렵지 않고 갖지 않는 게 편안하다는 걸 몸으로 알고 있다.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버틸 수 있다고 믿고 웬만한 건 걱정을 안 한다. 아이들 과외도 못 시키지만 과외를 시키는 게 비정상인 거고 설사 아이들이 대학을 못 가고 가난한 기층 민중으로 살더라도 전혀 걔들한테 불행한 게 아니라고 믿는다. 도시빈민이나 농민 노동자의 삶 속에는 지식인들이나 중산층들의 삶이 가질 수 없는 게 있다.”

“당신에게 가난은 자기 절제인가.”

“편안한 거다. 그러나 무작정 편안한 게 아니라, 가난해야만 가난의 가치를 가질 때만 세상의 여러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고 나는 그걸 따라가는 거다. 가난은 이제 내 가치관이고 다른 생각은 하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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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3월. 봉천동


(노동자의힘 기관지)
2004/02/02 10:23 2004/02/02 1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