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07/09 21:34
B급 좌파 머리말


지금 가진 정신으로 세상을 해석하는 일, 그게 우리의 삶이다. 우리의 정신은 늘 변화하고 세상은 그 변화한 정신으로 늘 달리 해석된다. 정신의 변화는 고갈이나 폭발에 이르기도 한다. 이를테면, 97년 <랜드 앤 프리덤>을 처음 봤을 때 나는 그 영화가 낡은 이야기라 생각했다. 한때는 저런 걸 보면서 피가 끓었었지, 하며 쓰게 웃었는지도 모르겠다. 99년 그 영화를 다시 봤을 때 나는 피가 끓었다.
97년과 99년 사이에 내 정신이 변화했고 그 변화의 중심에 98년 시작한 글쓰기가 있다. 내 삶에 글쓰기라는 불의의 습격이 없었다면 나는 <랜드 앤 프리덤> 따위 신념에 가득 찬 영화는 아예 거들떠보려 들지 않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90년대는 80년대의 자식들을 대개 그렇게 만들었다. 90년대는 그 시간 속에 끼어 산 우리에게 결정적인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 그 10년의 세월 또한 (모든 역사가 그렇듯) 매우 간명하게 기록될 것이다. “이른바 현실사회주의의 붕괴로 인한 전세계적인 우경화와 한국 사회에서 절차적 민주주의의 진전은 진보세력의 대대적인 청산으로 이어졌다. 한국인들은 자본의 신에게 모든 인간적 위엄과 존경을 내주는 대신 핸드폰과 자동차를 얻었다. 10년 후 ….”
이 책은 바로 그 ‘10년 후’에 관한 것이다.(독자들은 3년 동안 쓴 이 책에서 80년대의 한 졸렬한 성원이 10년 후, 놓았던 정신을 추스르고 ‘B급 좌파’로 거듭나는 과정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누구도 역사를 내다볼 순 없지만, 역사의 파도는 이미 최저점을 통과했다. 승리감에 도취한 자본주의는 이제 자신의 위기를 향해 달리고 있다. 글을 쓴다는 것,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세상에 제출한다는 것은 운동이다. 내 글이 자본의 신과 싸우는 일에, 사람들의 위엄과 존경을 되찾는 일에 개입하는 한 운동이길 바란다.
(그러나 내 딸 김단이 제 아비가 쓴 글을 읽고 토론을 요구해올 순간을 기대하는 일만으로도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독자들께 고개 숙인다.


2001년 6월 일산 작은 거처에서
2001/07/09 21:34 2001/07/09 21:34
2001/06/22 22:52
나는 마초다. 졸렬하나마 진보주의자 노릇을 하고 사는 내가 마초인 게 자랑일 순 없겠으나 문제는 내 현실적 처지다. 나는 10대 후반 한 시절을 ‘남자의 세계’에 사로잡혀 보냈고 그 체험은 오늘 여전히 내 정신의 말단을 지배하고 있다. 나는 도리 없는 마초다. 다만 나는 내가 ‘남자의 세계’를 좇는 일이 ‘여성의 세계’를 억압하는 일이 되지 않도록 늘 긴장한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긴장을 유지한다면 좋은 마초란 좋은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게 내 생각이다.

긴장을 생략한 마초란 그저 쓰레기와 같다. 우울하게도 한국은 그런 쓰레기들, 악성 마초들로 그득하다. 악성 마초들은 얼핏 마초보다 더욱 마초답지만(거칠고 뚝뚝한, ‘의리’를 남발하는 말투 따위) 나보다 강한 사람 앞에서 한없이 당당하고 나보다 약한 사람 앞에서 한없이 부드럽다는 마초의 기본을 전적으로 거스른다. 악성 마초들은 저보다 약한 사람 앞에서 한없이 당당하고 저보다 강한 사람 앞에서 한없이 부드럽다. 요컨대 악성 마초들은 여성, 아이, 후배, 부하 앞에서 강해지며, 대개 폭력적이다. 가정폭력을 포함, 가장 야비한 유형의 이런저런 폭력들이 악성 마초들의 전유물인 건 그래서다.

‘여자의 도리’에 관한 남성일반의 ‘공감대’는 악성 마초의 여성에 대한 폭력을 더욱 공공연하게 만든다. 후배 여성을 성추행한 남성 시인 P씨가 그 일을 비판한 여성시인 K씨를 한 저명한 문학지 홈페이지에서 갖은 추악한 언어로 보복한 일은 그 예다. 한 낯 대로에서 성폭력과 다름없는 그 일이 진행되는 몇 날 동안 모든 남성문인들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P씨는 줄곧 K씨의 확인되지 않은 사생활을 들먹였고 ‘여자의 도리’(여자는 절대 정숙해야 한다는)에 관한 남성일반의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그 음험하고 강력한 공감대에, K씨의 사생활은 P씨의 성추행 사건과 전혀 관련지을 수 없는 문제라는 상식이 끼어들 틈은 없었다. 그 사건은 이른바 한국 남성문인들(보수적인, 심지어 진보적인)이 하나같이 악성마초이거나 악성마초를 옹호하는 자들이라는 혐의를 갖게 했다.

악성마초들은 야비하기에, 집단을 이룰 때 더욱 폭력적이다. 부산대 페미니즘 웹진 ‘월장’의 이른바 ‘대학 내 예비역(한국 군대에서 막 빠져나온 청년들. 나 역시 예비역 육군 병장이지만, 독립군이 아닌 일제부역자들을 중심으로 출발한 한국 군대는 지난 반세기 동안 악성마초의 국가적 양성소 노릇을 해왔다.) 비판’으로 시작된 ‘월장 사태’는 그 예다. 악성 마초들은 월장 회원들의 전화번호를 인터넷 성인사이트에 올려 폰섹스 요구 전화에 시달리게 했고 강간하겠다 협박했다. 무기가 있었다면 양민학살이라도 재현되었을까. 악성 마초들은 줄곧 월장의 처음 비판 글에 나타난 부분적인 실수를 들먹였고 예의 ‘여자의 도리’(여자는 절대 실수해선 안 된다는)에 대한 남성일반의 음험하고 강력한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그런 부분적인 실수가 그 사안 전체의 진실을 덮을 순 없다는 상식은 역시 끼어들 틈이 없었다. ‘여성 100인위원회’ 이후, 아직은 그런 상황의 반복이다.

추신: 그람시가 감옥에서 아들에게 보낸 편지엔 “계집애처럼 칭얼거리지 말고...”라는 구절이 있다. 나는 그 구절에 거부감을 느끼는 내가 적이 대견했다. 나는 인류가 낳은 가장 완전한 인간 가운데 하나인 그람시보다 (단지 수십년 늦게 난 덕에) 좀더 개선된 마초인 것이다. 역사 진보의 엄연한 한 줄기로(혹은, 거의 별개의 줄기로) 여성해방의 역사가 쉼 없이 흐르고 있다. 내 딸과 아들은 여자다운 여자나 남자다운 남자를 넘어 인간다운 인간에 좀더 접근할 것이다. 도리 없는 마초의 ‘과도적 꿈’이다.(한겨레 2001.6.22)
2001/06/22 22:52 2001/06/22 22:52
2001/06/20 17:37
“어떤 이유에서인지, 빤질빤질하고 좌충우돌하는, 거의 만능에 가까운 조숙한 ‘아이-어른/어른-아이’들이 90년대 소설의 전형적인 주인공상이 되었다. 그런 허장성세형의 인물들이 90년대 초입에 대거 등장한 까닭을 나름으로 풀이하자면 이런 것이 될 것이다: ‘기존의 가치는 폐기되었고, 새로운 질서는 도래하지 않았다.’ 신세대 소설에 등장하는 만능인은, 베를린 장벽과 크레믈린이 일시에 녹아버린 어느날 갑자기 태어났다. 8•15를 예견하지 못했던 일제시대의 지식인과 비유될 수 있을 정도로 그들은 자기 시대의 맹인들이었으나, 그들을 관통한 세월은 그들로 하여금 그들이 실제 경험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아는 체하게 해주었다. 문화형성이니 모조현실과 같은 거품의 사유가 아니라 진지하게 실존에 대해 사고할 절호의 기회가 90년대 신세대에게 주어졌으나, 한번도 실존의 삶을 교습받아 본 적이 없는 신세대식 실존주의는 치기어린 ‘육백만불의 사나이’들을 그들이 쓴 소설나부랭이 곳곳에 게워 내 놓았다.”(장정일, 독서일기 3)

장정일(소설가지만, 나는 그의 산문에서 문학이 정신세계의 꼭대기에 있던 시절에나 볼 수 있던 통찰을 발견하곤 한다)의 의견에 공감한다. 덧붙이자면 바로 그 90년대 이후 한국에서 영화가 유례없이 번창하게 된 사연 또한 별반 다르지 않다. “베를린 장벽과 크레믈린이 일시에 녹아버린 어느날 갑자기” 한국 청년들은 대거 현실을 떠나 영화로 도망했다.

그것은 전적으로 80년대 청년들 덕이었다. 한국사회 특유의 현실비판적 청년정신은 80년대에 폭발했다. 80년대 청년들에게 세상을 바꾸는 일은 곧 실존의 확인이었다. 인류가 축적한 현실변혁에 관한 모든 아이디어가 빠짐없이 동원되었고 수많은 청년들이 거침없이 현실 속으로 투신했다. 그러나 그들은 허약했다. 90년대가 되어 동구가 무너지고 절차적 민주주의가 진전되자 그들은 순식간에 청산을 택했다. 거침없이 현실 속으로 투신하던 그들은 자신을 모욕하는 일에도 거침없었다. 80년대 청년들의 졸렬한 청산은 90년대 청년들에게 생생히 목격되었다.

세대간의 존경으로 이어져온 청년정신은 80년대와 90년대 사이에 완전히 단절되었다. 90년대 청년들은 80년대 청년들을 존경하지 않았다.(자신을 존경하지 않는 사람들을 누가 존경할 수 있었겠는가.) 90년대 청년들은 80년대 청년들의 가장 큰 특징이라 여겨진 ‘현실에 대한 관심’을 거부했다. 90년대 청년들은 비정상적일 만치 현실에 무관심한 특징을 갖게 되었다. 그들이 신실한 자본의 신도(이기심을 구현하는 일이 구원의 길이라 믿는)이자 반동의 신도(인간은 본디 이기적이며 세상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다 믿는)로 살게 된 건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비정상적일 만치 현실에 무관심한 90년대 청년들은 ‘현실과 가장 닮은 가상현실’, 영화로 도망했다. 말하자면 90년대 청년들에게 영화는 실종된 현실의 대체물이다. 80년대 청년들이 현실에 정열을 발산했듯 90년대 청년들은 영화 속의 현실에 정열을 발산한다. 현실에 비정상적일 만치 무관심한 그들은 영화 속의 현실엔 더할 나위 없이 구체적이고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그러나 극장을 나서는 순간 그런 개입의 경험은 그들에게서 흔적없이 증발한다. 그들은 다시 신실한 자본의 신도이자 반동의 신도의 삶으로 돌아간다.

이상이 90년대 이후 한국에서 영화가 유례없이 번창하게 된 사연이다. 오늘 한국영화는 번창할 뿐 아니라 진보하고 있다. 알다시피 그런 진보는 거의 전적으로 10여년 전 영화에 대거 투신한 80년대 청년들의 성과다. 그들이 이제라도 그들 손으로 이룬 영화의 진보가 90년대 청년들이 현실에서 도망하는 수단의 진보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되새기길 바란다. 그들이 잃어버린 존경을 되찾을 수 있는 영화를 만들기를 바란다. 그것은 80년대 청년들이 90년대 청년들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유익한 사과가 될 것이다.(씨네21)
2001/06/20 17:37 2001/06/20 17:37
2001/05/30 17:35
영화감독 장선우, 박광수, 여균동은 매우 특별한 사회적 환대 속에 그들의 영화를 시작했다. 그 특별한 사회적 환대란 대개 그들의 출신대학과 약간의(아주 약간의) 80년대 이력을 근거로 했다. 말하자면 그들은 ‘의식있는 엘리트’의 자격으로 영화를 시작했다. 그들의 데뷔작 <성공시대> <칠수와 만수> <세상밖으로>는 그들에 대한 사회적 환대에 신뢰를 심어주었다.

오늘 그들의 필모그래피는 갈수록 그들에 대한 특별한 사회적 환대를 비껴간다. 장선우의 최근작은 섹스로 정치를 말한다는 <거짓말>이다. 그런 해석에 대해 장선우는 모호한 태도를 보이곤 했지만, <거짓말>에 대한 그런 해석 역시 장선우에 대한 특별한 사회적 환대가 관련되어 있다. 장선우가 만든 영화엔 어떤 깊은 뜻이 있는 것이다. 거기에 전문가들(서구 전문가들의 한국어판인)이 협력함으로써 <거짓말>은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나 <감각의 제국> 따위 이른바 섹스로 정치를 말했다 공인된 영화들의 계보에 등재된다.

<거짓말>은 그런 영화들과 같은 계보에 등재될 자격이 있어 보인다. 다만 <거짓말>을 비롯, 섹스로 정치를 말했다 공인된 영화들은 섹스로 정치를 말하는 영화의 계보가 아니라 포르노도 사회물도 아닌 정체불명의 활동사진의 계보에 등재되는 게 좋겠다. 그 영화들은 섹스로 정치를 말하고 있다는 주석이나 해설을 지참하지 않고는 그 영화들 스스로 섹스로 정치를 말하고 있음을 드러낼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 정체불명의 활동사진들은 현실 속의 구체적 변혁 의지를 포기한 일군의 유럽 살롱좌파들이 자신들의 열패감을 마스터베이션하기 위해 마련한 자폐적 이론 집착증(포스트 맑스주의니 문화과학이니 하는)의 영화적 변종이다.

<우묵배미의 사랑> 이후 장선우의 필모그래피에 대해 전문가들은 변화무쌍한 예술적 천착이라고 한다. 상식의 입장에서, 그 필모그래피는 어떤 진지한 예술적 천착이라기보다 하고 싶은 건 뭐든 하고야 말겠다는 변덕무쌍한 욕망에 가깝다. 요컨대 장선우는 자신에게 주어진 사회적 기회를 믿기 어려울 만치 제멋대로 사용하는 참으로 염치 좋은 사람이다. 그런 염치 좋음은 박광수(의 최근작은 역사적 사건의 역동성을 믿기 힘들 만치 정교하게 거세해 보인 <이재수의 난>이다)나 여균동(의 최근작은 관객으로 하여금 시종 이 영화는 왜 만들어졌을까만을 생각게 하는 <미인>이다)에게도 어김없이 해당한다.

내 영화 내 맘대로 만드는 데 무슨 상관이냘 수 있겠지만, 그들이 그들에 대한 특별한 사회적 환대를 사양하긴커녕 적절히 사용해왔다는 점에서 그런 가치중립적 권리는 그들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세상이 변했으니 영화도 변해야 하는 게 아니냐 한다면, 나는 세상은 그다지 변한 게 없다는 내 의견을 주장하기보다 삼십오년째 세상과 변함없는 긴장을 이루는 한 좌파감독의 이름을 떠올리고 싶다. 그는 켄 로치다.

한국영화의 비극은 다름 아닌 켄 로치가 없다는 것이다. 유례없는 천민자본주의의 수렁에 빠진 한국에, 수많은 80년대의 좌파청년들이 영화에 투신했다는 한국에, 자본주의와 긴장을 이루는 한명의 감독이 없다는 것, 그것이 한국영화의 슬픈 비극이다. 장선우 박광수 여균동이 받은 특별한 사회적 환대는 한국의 켄 로치에 대한 기대였다. 사회는 그 ‘의식있는 엘리트들’이 영화라는 무기로 세상과 긴장하리라 기대했었다.

어쩌면, 그들에 대한 그런 기대가 애당초 허황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에 대한 특별한 사회적 환대는 분명히 근거가 부족했고 그 특별한 사회적 환대에 신뢰감을 심어준 그들의 데뷔작들은 그 제작 시점에서 어떤 분투도 아니었다. 어쨌거나 사회가 그들을 포기하든 그들이 사회적 환대를 포기하든 그들과 사회 사이에 지속되어온 이 염치 좋은 코미디는 이만 끝내는 게 좋겠다. 그리고 우리의 켄 로치를 기다리도록 하자.(씨네21)
2001/05/30 17:35 2001/05/30 17:35
2001/05/28 22:51
역사와 관련한 말은 그 역사에 대한 해석과 입장을 담기에(1980년 5월 광주에서의 사건을 광주항쟁이라 하는 경우와 광주사태라 하는 경우가 전혀 다른 해석과 입장을 담 듯) 주의 깊고 명료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친일파’라는 말은 역사에 대한 부주의와 모호함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예다. ‘일본과 친한 무리’라는 이 말을 일본제국주의 부역자라는 정당한 적대 대상을 넘어 일본인(민족)에 대한 뭉뚱그린 민족주의적 적대감을 담고 있다.

알다시피, 한국인들이 그런 민족주의적 적대감을 갖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36년간의 일제 식민지 경험이다. 그 경험은 참혹했으며 그로 인한 적대감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해둘 것은 그 참혹한 경험과 그로 인한 적대감은 한국인(민족)과 일본인(민족) 사이에서가 아닌, 일본 제국주의자들과 한국 민중 사이에서 일이라는 점이다. 대다수 일본 민중들 역시 일본제국주의의 피해자였으며 한국의 지배세력은 일본제국주의 세력과 이해를 같이 했다.

그런 분명한 역사적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 최초의 필요는 해방 후 일제 부역자들이 한국 지배세력의 중심을 차지하면서다. 요컨대 그들은 한국민중의 일본제국주의에 대한 정당한 적대감을 일본인(민족) 전체에 대한 뭉뚱그린 민족주의적 적대감으로 조작함으로써 자신들의 안전을 확보했다. 그 후 50여 년 동안 한국을 장악해 온 그들은 일본 극우세력과 철저히 야합하면서도, 민족주의적 적대감을 대중조작 함으로써 손쉽게 자신들의 안전을 유지해 왔다. 이를테면 종군 위안부 문제 같은 정작 자존과 위엄을 보여야 할 문제엔 비슷한 경험을 한 어떤 나라보다 비굴한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던 그들은, 독도 문제 같은 소재엔 온 나라에 태극기를 휘날리는 민족주의적 선동을 하곤 했다.

자칭 민족언론의 일제 부역 행적(세계사 초유의 코미디라 할)을 폭로 선전하는 등, 일제부역자 청산을 위한 여러 진지한 노력들이 진행되고 있다. 그런 노력들에서 우리가 주의할 것 역시 민족주의의 함정이다. 흔히 좋은 민족주의와 나쁜 민족주의를 구분해야 한다고들 하지만 민족주의란 인간의 모든 선의를 민족 단위로 한정한다는 점에서 본디 위험하다고 보는 게 바람직하다. 모든 파시즘이 민족주의를 기초로 한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다만 우리처럼 식민지 경험을 가진 나라에서 민족주의는 한정된 차원의 진보성을 갖는바, 그 역시 민족을 단위로 한 전면적인 착취와 억압 상태에서 방어적인 의미의 민족주의에만 해당한다. 태극기를 휘날리는, 뭉뚱그린 민족주의는 결국 악용되기 마련이다.

지난 55년의 역사가 그래왔듯 말이다. 그런 역사적 기만의 중심에 친일파라는 말이 있다. 식민지나 피점령의 경험을 가진 나라 가운데 그런 부주의하고 모호한 말을 사용하는 경우는 없다. 프랑스인들이 나치부역자를 표현할 때 사용하는 말은 ‘콜라보’다. 콜라보는 ‘콜라보라퇴르’(협력자)에서 나온 말이지만 보통의 협력자를 표현할 땐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게르마노필리’(친독파)는 단지 독일이나 독일문화를 좋아하는 사람을 뜻하는(독일어의 ‘프랑코필’과 대응하는) 가치중립적인 말이다.

근래 진행되는 일제 부역자 청산을 위한 여러 진지한 노력들은 매우 고무적이지만, 일제에서 해방된 지 55년이나 지난 우리가 어떤 역사적 혼란에 빠져 있는가를 보여주기도 한다. 친일파라는 말은 그 말의 정당한 적대 대상인 일제 부역자들의 안전을 유지하고, 그들을 청산하려는 우리를 도리어 그들의 함정에 빠트리는 데 사용되어 왔다. 친일파라는 말을 좀더 주의 깊고 명료한 말(일제 부역자? 역사전문가가 아닌 나는 자격이 없기에, 남겨둔다.)로 바꿈으로서 역사가 우리에게 좀더 주의 깊고 명료해질 것이다.(한겨레 2001. 5. 28)
2001/05/28 22:51 2001/05/28 2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