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10/09 00:01
딱딱한 정치경제학 용어들을 접고 말하자면, 자본주의란 자본가가 노동자에게서 100원어치 노동력을 70원에 사서 30원을 공으로 먹는 착취 체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는 개미처럼 일해도 베짱이 같은 자본가보다 한없이 가난해진다.(이를테면 1980년 무렵 미국 경영진은 사무직 노동자보다 40배 많은 봉급을 받았는데 현재는 120배 많이 받는다.) 게다가 자본주의에서는 연탄 집게나 화장실 똥 막대기처럼 하찮은 것부터 사랑이나 구원처럼 고귀한 것까지, 인간의 삶과 관련한 모든 것이 상품의 형태로 교환되기에 두 계급의 삶의 질은 하늘과 땅처럼 벌어져 만 간다. 자본가나 노동자나 다를 게 없는 사람인데 한쪽은 착취하고 다른 한쪽은 착취 당하니 두 계급의 갈등은 당연하다.

아무런 대책 없이 착취에만 전념했던 초기 자본주의는 언제나 심각한 갈등 상태에 있곤 했다. 자본은 그 갈등을 공적 폭력(군대와 경찰)과 사적 폭력(청부 폭력배)으로 해결했다. 그러나 그런 방법이 갈등의 뿌리를 제거할 순 없었다. 노동자들의 연대는 갈수록 강해지고 세상은 점점 붉게 물들어갔다. 칼 맑스가 그 붉은 물결에 과학을 부여하자 물결은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 20세기에 들어서자 아예 빨갱이들에게 넘어가는 나라가 생겨나자, 자본은 폭력 이외의 대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자본주의에 얼마간의 사회주의적 요소들을 가미하여 혁명의 가능성을 흡수하는 수법이었다. 프랑스니 독일이니, 제도 정치에 좌파정당이 존재하고 국가가 노동자들에게 교육, 의료 같은 최소한의 삶의 문제를 지원하는 이른바 서유럽 복지 국가들은 그 최선의 결과라 불린다.

자본이 마련한 보다 최근의 대책은 더욱 세련되고 문화적인 것이다. 그것은 아무것도 가질 수 없는 사람들로 하여금 뭐든 가질 수 있다는 환상을 갖게 만듦으로써 자본주의에 호감을 갖게 만드는 수법이다. 그런 수법에 사용되는 광대들이 자본과 노동자 계급이라는 양대 계급 사이에 기생하는 지식인이니 문화 예술인이니 하는 '자유로운 정신들'이다. 그들은 대개 많이 배운 사람들이고, 자신의 의지 외엔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멋스러운 사람들이며, 먹고 사는 일 따위에 집착하는 속물이 아니다.

그들은 그들의 그런 삶이 그들의 격조 있는 정신과 관련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의 그런 삶은 그들의 격조 있는 정신이 아니라 그런 삶에 필요한 돈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그 돈은 그들의 충실한 광대 짓의 대가로 자본이 주는 부스러기다.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삶이란 단지 선택하기 나름이라, 먹고 사는 문제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그런 속물근성만 버리면 삶은 얼마든 자유로운 것이라, 제 '라이프 스타일'로 선전하는 광대 짓의 대가로 말이다.

광대 짓의 스펙트럼은 매우 넓다. 끊임없이 다른 성교 대상을 찾는 프리섹스주의는 '감정의 자율성을 존중한 결과'라 선전된다. 물론 그건 개소리다. 생각해보라. 못 생기고 돈도 없어 장가도 못 가는 노총각 노동자가 백날 프리섹스주의를 표방한들 프리섹스주의가 되겠는가. 광대 짓은 짐짓 자본주의에 대한 경멸에 이르기까지 한다. 물론 그 경멸의 목적은 제 격조 있는 정신을 유세하려는 것일 뿐, 그들에겐 세상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는 분명한 신념이 있다.

그 신념이야말로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일 법한 그들이 이 냉혹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호기롭게 살 수있는 재능이다. 세상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는 그들의 신념은 세상은 절대로 변해서 안 된다는 자본의 욕망과 행복하게 교미한다. 자본가들은 흔쾌히 그들의 격조있는 정신 앞에 정중함을 표시하고 그들은 제 광대 짓을 알아차릴 만한 자의식을 완전히 잃는다. 그들은 완벽한 광대가 된다. "삶이란 결국 선택하기 나름 아닌가? 진보니 혁명이니 대학 시절에나 하는 것 아닌가? 인생이 그렇게 단순한 것인가? 세상이 과연 변할까?"

그들은 이제 그들의 말과 그들의 글과 그들의 책과 그들의 작품과 그들의 모든 문화적 영향력을 통해 광대 짓을 지속한다. 그들은 자본가의 천박함과 혁명가의 촌스러움마저 비웃으며 참으로 자유롭게 살아간다. 그 광대들, 정말 자유롭지 않은가?(씨네21 2002/10/09)
2002/10/09 00:01 2002/10/09 00:01
2002/09/12 00:00
객기로 책을 내며 '때론 객기가 고전을 사수하는 유일한 방법이 된다'고 주장하는 출판사, 야간비행의 회의 시간. 식구들의 말 끝에 이른바 사장인 내가 말한다. "한국에서 조선일보에 책을 안 보내는 출판사가 세 곳인데, 강준만 선생 책을 내는 두 곳을 빼면 우리 밖에 없지." 조금은 과장일(부디 그렇기를) 내 말에 식구들의 잔잔한 웃음이 번진다. 그 웃음 속에도 객기가 들어있고 그 객기 속엔 소박한 자부가 들어있다. '우리는 조선일보에 책을 보내지 않는다.' 대체 한 출판사의 식구들이 오랜 시간과 땀을 들여 만든 책을 조선일보에 '어여삐 여겨주소서' 보내는 일이 어떻게 가능한가. 조선일보라는 신문이 정직하게 일하며 사는 사람들에게 어떤 고통을 주어 왔는가를 눈곱만큼이라도 생각한다면 말이다.

그러나 한국의 거의 모든 출판사가 조선일보에 책을 보낸다. 조선일보가 일부 여론 영역에서 수세에 몰렸다는 오늘도 그들은 여전히 책을 보낸다. 달라진 건 그들이 조선일보를 옹호하며 책을 보내지 않고, 짐짓 조선일보를 비난하며 책을 보낸다는 것이다. 그들이 짐짓 조선일보를 비난하는 건 제 양식을 과시하기 위해서고, 그러면서 책을 보내는 것은 제 욕망을 지키기 위해서다. 조선일보의 책 기사가 다른 신문을 모조리 합한 만큼 효험이 있음을 아는 그들은 제 책을 팔아먹기 위해 조선일보에 책을 보낸다. 책도 아닌 허섭스레기나 찍어대는 출판사에서부터 내는 족족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출판사는 물론, 진보 지성의 총본산을 자처하는 저명한 출판사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거의 모든 출판사가 그렇게 한다. 한국의 거의 모든 출판사가 그렇게 하고, 조선일보와 끈이 닿는 한국의 거의 모든 저자가 그렇게 한다.

이오덕 선생과 세 번째 인터뷰를 했다. 두 번의 인터뷰에 어리석은 질문이 많았기에 오늘은 주로 말씀을 듣자 했으나, 그는 근래 무리한 집필로 적이 고단해 보였다. 염려의 말에 그는 손사래를 치며, 며칠 전에 나온 두 권의 책을 내게 건넸다. '신문 기사를 제대로 쓴 데가 없어요. 내가 서울 나가기가 어렵다고 했더니 전화로 몇 마디 물어보고 쓰고' '찾아오겠다는 데는 없었습니까.' '한군데 있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조선일보에서 인터뷰하고 싶어한다고 하길래 내가 조선일보하고는 안 한다고 했더니 그럼 편찮으셔서 안 한다고 하겠다고 해요.' '싱거운 사람들이군요.' '그냥 그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조선일보 기자가 전화를 했어요. 전부터 선생님 책을 많이 읽고 존경하고 그러면서 찾아오고 싶다고, 그래 난 조선일보와는 인터뷰 안 한다고 했지요. 그랬더니 정치 이야기는 안 할 테니 걱정 말라고 하면서' '그 친구들 집요하지요.' '예, 그러면서 도무지 전화를 끊지 않길래 안되겠다 싶어 그 얘길 했습니다.'

그 얘기란 이런 것이다. 지난해 말 이오덕 선생은 오랫동안 함께 어린이 문학과 우리말 운동을 해 온 동료인 한 중견 출판사 사장에게 '앞으론 같이 일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그 출판사 사장이 조선일보에 글을 썼다는 이유였다. 단지 조선일보에 글을 썼다는 이유로 절교를 선언한다는 건 매우 편협하다 여겨질 만하다. 편협한 것은 대개 좋은 게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삶 속에서 때론 편협만이 바른 선택인 지점을 만나기도 한다. 이를테면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죄 없이 폭행하는 사람을 발견했을 때, 편협하다. 조선일보가 바로 그렇다. 조선일보엔 편협만이 바른 선택이다. 조선일보에 책을 보내는 모든 출판사는 나쁘며, 조선일보에 책을 보내는 모든 저자는 나쁘다. 조선일보에 책을 보내며 책에 대해 인간에 대해 말하지 마라. 인간이 만들어내는 것 가운데 조선일보에 보낼 건 단 하나, 구토뿐이다.

(조선일보를 욕하는 사람은 노무현 지지자거나 한겨레신문 소속이라 여기는 이들을 위해 굳이 덧붙인다. 나는 노무현 지지자들과 긴장을 이루며, 한겨레신문에 칼럼을 쓰다 내용 문제로 잘린 바 있는, 나름의 급진주의자다.)(씨네21 2002/09/12)
2002/09/12 00:00 2002/09/12 00:00
2002/08/24 23:57
지난해 가을, 9.11 사건과 관련한 어떤 이의 발언을 격렬하게 비판한 며칠 후, 이오덕 선생이 내 글을 읽었다며 전화 메모를 남겼다. 화가 나신 건가 싶었지만, 설사 야단을 맞더라도 이분이라면 할 수 없는 일이지 싶어(그는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의 아이들과 한국의 말을 위해 가장 비타협적으로 싸워온 전사다.) 다음 날 일찌감치 전화를 드렸다. 그는 내 글을 잘 읽었다며 말했다. "사람이 몸을 움직여 일도 하고 해야 바른 정신을 가질 수 있는데, 늘 앉아 책만 읽고 생각만 하다 보니 그렇게 되지 싶습니다." 그는 그 일의 본질을 검소한 한마디로 꿰뚫었다. 나는 안도했다. 그가 나를 야단치지 않아서, 논란에 빠진 내 글을 옹호해서가 아니라, 그의 정신이 건재함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존경할 만한 정신들은 대개 90년대를 통과하면서 '아무것도 분명히 판단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총체성을 늘어놓는' 걸레가 되었다. 나는 그도 그렇게 되었을까 내심 두려웠던 것이다.

겨울이 시작할 무렵 나는 그의 거처를 찾았다. 동그란 산들과 동그란 물들. 충북(의 풍경은 곧 한국의 풍경이다) 음성에서 충주로 넘어가는 길목, 산 구비를 비껴 돌로 지은 집에 그가 살았다. 그는 세 해 전 건강이 나빠져 아들이 살고 있는 이곳으로 내려왔다. 어림잡기 힘들 만치 많은 책들이 밀림을 이룬 그의 서재 한켠에 놓인 낡은 소파에 그와 마주앉았다. "제가 말도 잘 못하고 아이구, 인터뷰 그거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선생의 생각이 사람들에게, 특히 젊은 사람들에게 좀더 친절하게 전달되어야 한다는 말로 간신히 그를 설득하고, 녹음기를 켰다. 그가 내놓은 차를 마시며, 나는 서사시를 읽듯 천천히 그의 곧고 광활한 정신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그는 머리와 글로 사는 적은 사람들이 몸과 말로 사는 많은 사람들을 지배하는 세상을 반대한다. 말하자면 그의 생각은 매우 계급적이며 급진적이다.(그는 '계급'이나 '급진' 같은 개념어를 좀처럼 사용하지 않는다. 하긴, 계급이나 급진이라는 말은 계급과 급진을 표현하는 한 방법일 뿐이다.) 그가 아이들의 문제에 일생을 다 바친 이유 역시, 아이들의 바른 정신이 세상을 바르게 만드는 가장 근본적인 힘이기 때문이다. 모든 타협하지 않는 정신이 그렇듯 그는 늘상 오해에 휩싸여 산다. 그는 완고한 우리말 전용론자라 오해 받곤 한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이젠 사용하지 않는 생경한 옛말들을 우리말이랍시고 사용하는 일은 오만한 엘리트주의라 여긴다. 그는 모든 우리말에 완고한 게 아니라, 땀흘려 일하는 사람들의 정신이 담긴 우리말에 완고하다.

오랫동안 담아두었던 질문을 했다. "선생이 말하는 말의 혁명은 결국 정치 혁명입니까." 그가 대답했다. "결국 그런 셈입니다." 조용히 미소 짓는 그의 주름진 얼굴 왼편으로 충북의 동그란 햇살이 들었다. 나는 그가 청년임을 최종적으로 확인했다. 늙는 게 숙명이라는 말은 거짓말이거나 절반만 맞다. 몸이 늙는 건 숙명이지만 정신이 늙는 건 (온갖 요사스런 핑계와 그럴싸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선택이다. 일흔의 몸에 스물의 정신을 가진 청년이 있고 스물의 몸에 일흔의 정신을 가진 노인이 있다. 그것은 전적으로 제 선택이다. 대개의 사람들이 조금씩 하루도 빠짐없이 신념과 용기와 꿈이 있던 자리를 회의와 비굴과 협잡으로 채워갈 때, 그런 순수한 오염의 과정을 철이 들고 성숙해가는 과정이라 거대하게 담합할 때, 여전히 신념과 용기와 꿈을 좇으며 살아가는 청년들이 있다.

그 청년들 역시 계급적이며 급진적이다. 전북 변산의 윤구병 청년은 종일 논과 밭을 메며 가르치는 게 다인 듯한 변산공동체를 이끌지만, 9.11 사건을 초국적 금융독점자본에 대한 제3세계인민의 전쟁이라 해석하는 급진주의자다. 서울 혜화동의 서준식 청년은 억울한 사람의 호소를 들어주는 일에 전념하는 듯한 인권운동사랑방을 이끌지만, 인권을 모티브로 세상의 근본적인 변혁을 꿈꾸는 급진주의자다. 그 청년들이, 그 철없는 비타협의 정신들이, 청년의 몸에 노인의 정신을 가진 수많은 우리가 망가트린 세상을 복구하는 중이다.(씨네21 2002. 8.24)
2002/08/24 23:57 2002/08/24 23:57
2002/07/31 10:17
(참세상 게시판 답변으로 쓴 것입니다.)

1
모든 극우 이념과 파시즘의 기초이기도 한 민족주의는 남한에서 진보적인 함의를 가져왔다. 그것은 직접적으로 일본제국주의에 의해 36년 동안 지배되었던 경험과, 지난 50여년 동안의 분단 상황과 관련한 것이다. 일제에 대한 독립은 당시 진보 세력에게도 가장 중요한 과제였고 수많은 진보주의자들은 보다 실천적인 방법으로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해방이 곧 분단으로 귀결된 후, 적어도 남한에서 민족주의는 분단 체제 자체를 부인하는 불온한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남한 지배계급은 민족이니 통일이라는 말을 지배체제 내에서만 독점적으로 사용했다. 다른 말로 하면, 민간 영역에서 자주적인 의미로 사용하는 민족이나 통일은 지배계급과 충돌하는 매우 진보적인 의미를 갖게 되었다. 남한에서 민족주의가 미국과 관련을 맺게 된 건, 80년 광주민중항쟁 이후다. 광주항쟁 무렵까지 남한의 사회운동이란 진보적 변혁운동이 아니라 극단적인 군사파시즘을 반대하고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절차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남한의 사회운동 세력은 반미를 포함하지 않았고, 미국은 여전히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자로 남았다. 광주항쟁이 참혹하게 진압된 후 비로소 남한의 사회운동세력은 광주에서 미국의 역할을 파악했다. 반미 구호가 없는 세계 유일의 나라이던 남한에서 반미 구호가 터지기 시작했다. 반미는 미국을 반대한다는 의미와 함께, 남한 사회운동세력의 성역이 사라졌다는 의미를 가졌다. 남한 사회운동세력은 급속히 진보적 변혁운동으로 발전했다. 이런 변혁운동의 흐름은 적어도 90년대 초반 동구 스탈린주의 국가들이 무너질 때까지 활발했다. 오늘 남한에서 반미 의식은 보편적인 것으로 변화하고 있다. 물론 그런 변화는 단지 쇼트트랙 경기 사건이나 여중생 압사사건에서 비롯한 게 아니라(그런 일은 지난
50여년 동안 수없이 반복되어 왔고, 철저히 외면되어 왔다) 광주항쟁의 경험에서 시작한 반미의식이 결국 대중영역으로 확산되는 현상이다. 오늘 남한에서 반미의식은 정당한 것이고 진보적인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계급이라는 체로 걸러질 때만 그렇다. 반미의 대상은 미국인 전체가 아니라 미국의 지배계급,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끝없는 전쟁을 통해 제3세계 민중의 피를 빠는 미제국주의자들이다. 부시와 미국 노동자들은 전혀 하나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정주영과 남한 노동자들은 전혀 하나가 아니다. 정주영이 사망하자, 민족통일 문제에 집중한다는 일부 진보운동 세력은 그의 통일 업적을 칭송했다. 정주영은 통일 업적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통일운동의 업적마저 돈으로 구입한 사람이다. 계급이라는 체로 걸러지지 않을 때, 민족은 짐짓 반동적이다.

2
알다시피, 8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한국의 진보운동 세력은 계급 문제에 집중하는 민중민주(PD) 세력과 민족/통일 문제에 집중하는 민족해방(NL) 세력으로 크게 나뉘어진다. 두 세력은 ‘노선이 다른 동료’로서 존재하지만, 일부에선 ‘적보다 노선이 다른 동료를 더 적대하는’ 현상을 보이기도 했다. 어쨌거나 90년대 초반에 이르러 동구 스탈린주의 국가들이 무너지자, 스탈린주의의 자정 능력을 갖지 못한 민중민주 세력은 급속히 세를 잃었고, 전반적인 우경화 바람은 민족해방 세력에게도 큰 타격을 주었다. 10여년이 지나, 오늘 시점에서 민족과 통일을 말하는 것은 여전히 정당한 것이지만, 무조건적으로 북한정권을 좇는 일부 경향은 그 자체로 반동적이다. 나는 북한 체제가 일제 부역자 처리 문제를 비롯하여 그 출발부터 적어도 남한 체제보다는 정당했다고 생각하고, 이른바 주체 사상 역시 미제국주의와 적대적 긴장을 유지해 온 북한의 특별한 상황과
관련해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현재 북한에 대한 평가도 신중해야 한다고 보는데, 그 이유는 우리가 북한에 대해 극히 제한된 정보만을 가지고 있다는 점과, 북한의 문제를 북한과 다른 체제의 잣대(흔히들 북한의 인권을 말하지만, 거주 이동의 자유나 사적 소유의 자유 따위 자유권들은 실은 매우 자본주의적인 개념이다)로 평가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한의 진보운동 세력이 북한 정권(은 사회주의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현실 정치인들이다.)의 입장을 무원칙하게 좇는 일은 어떤 의미에서도 존중하기 어렵다. 그런 종북적 태도의 기본적인 모순은, 신념과 원칙을 기반으로 행동해야 하는 진보활동가가, 때로는 당연히 신념과 원칙을 벗어나서 행동해야 하는 현실 정치인들을 무작정 따르는 데 있다. 그런 종북적인 경향은 민족 해방 세력에 대한 무분별한 폄하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계급에 집중하는 사람들과 민족에 집중하는 사람들이 진지한 고민없이 서로 반목하는 것은 진보주의자의 태도가 아니다. 민족이나 통일 얘기를 하면 저거 주사파군 한다거나, 계급 이야기를 하면 저거 피디군 하는 식은 전혀 진보운동과 관계가 없는 인간적 경박함이다. 제 아무리 잘못된 편향이 실재하고 또 서로 비판하더라도, 남한의 진보 운동이 계급과 민족을 동시에 고민해야 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우리의 선배/어른들에게서 피디니 엔엘이니 하는 구분을 무색케 하는 차원을 가진 분들을 볼 수 있다. 언뜻 떠오르는 대로 말하자면, 백기완 선생이나 홍근수 목사, 또 서준식, 채만수 선생 같은 분들이다. 그들은 피디의 입장에서나 엔엘의 입장에서나 기꺼이 존경할 만한 분들이고, 우리에게 성숙한 진보주의자의 차원을 몸소 보여주는 분들이다. 경박한 반목에 대한 우리의 고민은 그런 실재하는 인간들에게서 배우는 일로 풀 수 있다. 경박함은 사상이나 이념과는 상관없는 것이다.

3
확산되는 반미의식이 두리뭉실한 감정 표출이 아니라 정확한 대상으로 집중되어 진보적인 함의를 확보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은 진보주의자의 당연한 임무일 것이다. 우리는 두리뭉실한 반미감정이 자칫 엉뚱하게 사용될 수도 있음을 ‘반일감정’을 돌이켜 봄으로써 알 수 있다. 알다시피, 반일감정은 일제에 의한 36년 동안의 침략 경험에 의한 것이다. 그러나 그 경험은 일본 민족과 한국 민족 사이의 일이 아니라, 일본 지배세력(제국주의세력)과 한국 민중 사이의 일이었다. 한국의 지배새력은 대개 그 시기에도 안락했으며, 반대로 일본 민중들은 한국 민중들과 다를 바 없이 수탈당하고 전쟁에 끌려나가 죽어야 했다. 분단 이후 남한 체제는 일제 부역자들을 골간으로 출발했고, 박정의 이후 군사독재 정권들은 일본 극우세력(제국주의세력)의 구체적인 지도를 받아왔다. 그러나 남한의 지배세력은 줄곧 일체의 일본 것을 금하는 반일정책을 고수해왔다. 정기적으로 제공되는 독도 망언이나 공중파 뉴스에서 주기적으로 기획되는 ‘젊은이들의 왜색’ 기사 따위들만으로 남한 지배세력은 남한 민중의 두리뭉실한 반일감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지배세력은 매우 효율적으로 민중들의 반일감정을 관리할 수 있었다. 독도에 그렇게도 흥분하는 사람들은 정신대 할머니들에 대해선 어땠는가. 매주 수요일이면 일본대사관 앞에 모여 울부짓는, 이젠 늙고 병들어 몇 남지 않은 그들에겐 말이다. 민족주의는 어떤 계급에게 사용되는가가 문제다. 계급이라는 체로 걸러지지 않을 때, 민족은 짐짓 반동적이다
2002/07/31 10:17 2002/07/31 10:17
2002/07/18 23:56
해미님. 월드컵이 끝나고 히딩크도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여진은 남습니다. 고단한 사람들이 모처럼 맞은 축제의 달콤한 기억을 쉽게 잊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일 겁니다. “히딩크,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에서 “4700만 우리 모두 가슴 벅차게 행복했습니다”로 이어지는 삼성카드의 심령부흥회풍 광고(이 기괴한 광고에 왜 아무도 항의하지 않는 걸까요)나, 월드컵에 돈을 댄 KT와 거저먹은 SK의 싸움질 역시 당연한 일입니다. 장사꾼의 유일한 존재이유는 팔아먹는 것이고 그들에게 ‘대∼한민국의 애국심’은 ‘대한민국의 구매력’일 뿐입니다.

인텔리들의 호들갑 역시 여전합니다. 몇달 전 ‘노풍’을 87년 민주화운동과 연결시켜 ‘혁명’이라 부르던 그들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혁명을 갖다 붙입니다. 소싯적에 잠시 혁명에 몰두했으되 이젠 누구보다 혁명을 회의하는 그들이 혁명이라는 말을 그리 즐겨 쓰는 건 희한해 보이지만, 2년 전 낙천낙선운동에 슬그머니 혁명을 갖다 붙인(과연 그 혁명은 무엇을 바꾸었던가요) 다음부터 그들은 무엇에든 기회가 되는 대로 혁명을 갖다 붙입니다. 10여년 전 별다른 자기 설명없이 제 혁명에 침을 뱉은 그들로선 혁명을 일반적이고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만들고 싶을지도 모릅니다.

인텔리들이 그렇게 혁명을 갖다 붙이는 좀더 중요한 이유는 그들이 그걸 진짜 혁명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삶’을 살아가기보다는 ‘책’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세상 속이 아니라 세상의 외곽, 술집이나 세미나실에서 세상에 대한 관찰기를 교환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창백한 눈에 650만이 넘는 붉은 인파가 거리를 메우고 함성을 지르는 광경은 그저 ‘혁명’인 것입니다. 해미님. 우습지 않습니까. 꿈도 희망도 없는 고단한 일상에 찌들 대로 찌든 사람들이 제 나라 축구팀이 세계 16강 진출이라는 목표치를 두번이나 경신했다면 너도나도 광장으로 뛰쳐나오는 일이야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 거기에 무슨 의식성이 있고 혁명이 있다는 겁니까.

인텔리들은 늘 뒤늦게 흥분하고 먼저 절망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늘 ‘대중의 저력’에 뒤늦게 흥분하고 ‘대중의 반동’에 먼저 절망하는 발작과 패닉의 끝없는 반복상태를 보입니다. 대중이 그저 묵묵히 흐르는 강물이라면 그들은 그 강물의 굽이굽이 변화무쌍한 속도에 시시각각 깡총거리는 송사리들입니다. 노풍은 조금만 진중한 사람이라면 전혀 놀랄 만한 일이 아닙니다. 민주당 경선이야 민주당 안에서 하는 건데 한나라당도 아니고 민주당이라면 한국 평균은 되는 사람들일 터, 그런 사람들이 몇년 전 앞머리 이상하게 치켜세우고 박정희 흉내나 내던 사람을 대통령 후보로 뽑는단 말입니까.

월드컵과 관련한 인텔리들의 호들갑을 그저 볼썽사나운 꼴로만 넘길 수 없는 건, 그들이 연신 ‘국민 통합’이니 ‘국운 융성’이니 ‘민족적 환희’니 하는 국가주의적 선동을 해대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매우 급진적이라 알려진 한 문화과학자는 “국민적 열정을 국민적 캠페인으로”라는 언사를 스스럼없이 사용합니다. 해미님. 진보주의의 출발은 세상을 계급으로 구분하는 것입니다. 물론 국가가 있고 국경이 있는 한 국가나 민족의 구분을 무시할 순 없겠지만, 한국 국적을 가졌거나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고 해서 다 내 나라 내 동포는 아닙니다. 일생을 비정규직 노동자로 살아오신 해미님 아버님은 과연 이건희씨와 동포입니까, 켄 로치의 <빵과 장미>에 나오는 3등 미국인들과 동포입니까.

세상엔 응당 하나 되어야 할 것과 갈라져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사회는 자본과 노동자가 적대적 긴장을 이루는 사회이고 우리는 그 분명한 사실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이건 도덕이나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실재하는 현실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정직하게 땀흘리며 살아가는 사람들끼리의 ‘연대’이지 적대하는 계급끼리의 ‘통합’이 아닙니다. 한국의 자본과 노동자가 ‘애국’의 이름으로 하나될 때 노동자에게 돌아올 건 죽음뿐입니다. 해미님. 오늘은 ‘계급’에 대해 차근차근 이야기해드리려 했는데 그렇지 못했군요. 그럼 다음에...(씨네21 2002/07/18)
2002/07/18 23:56 2002/07/18 23: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