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02/07 16:53
“만날 똑같은 소리... 강준만은 이제 지겨워.” 주변에서 이 말이 나오기 시작한 지도 꽤 오래다. 온 나라가 만날 한 가지 이슈에 휩쓸리고 또 그 이슈는 만날 변하는 사회에서 몇 년째 같은 소리를 하고 있는 강준만이 지겹게 느껴지는 게 당연하달 수도 있겠다. 그러나 강준만이 몇 년째 거듭하고 있는 바로 그 소리, 이른바 <조선일보> 문제는 별반 달라진 게 없다. <조선일보>는 여전히 건재하며 모든 형태의 사회 개혁에 '할말은 함'으로써 수구세력의 돈궤를 지키는 본연의 임무를 다하고 있다. 지겨운 건 강준만이 아니다.

강준만이 지겹다는 말은 강준만의 방법을 향한 것이기도 하다. 이른바 '조선일보 제몫 찾아주기 운동'을 둘러싼 그의 방법은 어딘가 저잣거리의 시비 같은 데가 있어 그의 공식적인 적대자들은 물론 그의 주장을 대놓고 적대하기 어려운 좌파 혹은 자유주의를 표방하는 비공식적인 적대자들의 심기를 거스른다. 강준만이 이른바 <조선일보>에 협조적인 지식인들의 명단을 <월간 인물과 사상>에 게시하자 그의 비공식적인 적대자들은 강준만이라는 불한당을 향해 동병상련의 정으로 단결한다. 21세기의 목전에 대대적인 빨갱이사냥을 당하고도 <조선일보>가 극우신문이라는 최소한의 합의조차 이루지 못한 그 못난이들이 말이다.

그들이 공동으로 개발한 논리가 “<조선일보>를 <조선일보>와 같은 방법으로 대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말이다. 강준만의 말은 옳지만 방법은 틀렸다는 얘기로, 강준만의 주장과 실천을 분리해 강준만을 무력화하려는 노회한 논리다. 내 기억에 그런 말을 처음 사용한 건 이른바 강단좌파들이다. 재미있지 않은가. 자본주의 이후를 모색하는 사람들이 <조선일보>라는 봉건적 신문에 보이는 무색무취한 태도와 강준만에 보이는 단호한 태도가 말이다
.
동병상련의 논리를 애용하는 또 다른 경우가 메이저 시민운동단체의 인사들이다. 최장집 사건 당시 시민운동권에서는 <조선일보> 취재 거부운동이 벌어졌지만 공교롭게도 이른바 3대 메이저 단체인 참여연대, 경실련, 환경운동연합은 빠졌다. 그 일을 두고 강준만이 그들을 강하게 비판하자 그들은 “<조선일보>를 <조선일보>와 같은 방법으로...”를 사용했다. 강준만은 그들이 언론플레이에 미쳤기 때문에 그러는 거라 했다. 그들이 <조선일보>와 어떤 내통을 하는지 알 수 없으나 강준만의 주장이 객관적인 정황인 건 분명하다.

알다시피 그들은 요즘 낙선운동에 열심이다. 나는 내가 강준만의 방법을 최선이라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지지하듯 낙선운동의 방법을 최선이라 생각하지 않지만 지지한다. 민주주의란 본디 작고 많은 비합법성을 모아 큰 변화를 이루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강준만은 <조선일보>에 기고하는 지식인들을 부역자처럼 게시하는 덜 합리적인 방법으로라도 지식인들을 <조선일보>에서 분리해내려 한다. 시민운동단체들은 낙천, 낙선되어야 할 후보들의 명단을 게시하는 덜 민주적인 방법으로라도 정치권의 인적 청산을 이루려 한다.

가상현실게임 동호인들(이른바 강단좌파들)이 그러는 거야 학술영역의 문제라 치더라도, 낙선운동을 하는 시민운동가들이 강준만의 방법을 “<조선일보>를 <조선일보>와 같은 방법으로 대하는” 것이라 폄하하는 일은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앞서 말했듯 강준만의 운동과 낙선운동은 최선이 아니라 차선의 방법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같고, 20세기의 막판까지 빨갱이사냥을 일삼은 극우신문에서 지식인들을 분리해내는 일과 감옥에나 앉아 있어야 할 사람들을 국회의사당에서 쓸어내는 일은 차선의 선택을 감수할 만큼 유익하다. 강준만의 운동은 우리 사회의 전근대성을 청소하는 일이고 낙선운동은 우리 사회의 근대성을 고양하는 일이다. 전근대와 근대가 뒤섞여 돌아가는 우리 사회에서 좃선운동과 낙선운동은 서로 존경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상식이다. | 씨네21 2000년_1월
2000/02/07 16:53 2000/02/07 16:53
2000/01/08 16:52
밀레니엄의 의미를 적어 달라는 몇몇 원고 청탁에 밀레니엄이란 밀레니엄 밀레니엄 하는 말로 한몫 잡으려는 장사꾼들이나 밀레니엄 밀레니엄 하는 말로 현실의 문제를 덮으려는 정치꾼들에게나 필요할 거라는 독설을 채워 보냈다. 21세기가 된다고 파시스트의 뇌가 갑자기 민주주의적으로 바뀌는 게 아니고 21세기가 된다고 결식아동에게 갑자기 밥이 생기는 게 아니며 21세기가 된다고 갑자기 예술에 대한 검열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라면 우리가 밀레니엄이니 21세기니 하는 것에 별다른 의미를 둘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러나 나 역시 21세기의 도입부는 쉽게 잊지 못할 것 같다. 지난 세기말 내 몸에 침입한 독감균은 여전히 내 몸을 지배하고 있다.

기억의 범주 안에서 몸이 아파 병원에 가본 일이 한번도 없는 나로선 지난 해 독감이 두 번씩이나 내 몸을 점령했다는 사실이 영 개운치 않다. 이불을 뒤집어쓴 채 식은땀을 흘리며 나는 이제는 사라진 어린 시절의 질병 공포를 떠올린다. 그 시절 나는 아주 오랫동안 내가 필시 무슨 큰 병에 걸려있다는, 나는 이제 곧 죽고 말 거라는 공포에 시달리곤 했다. 그런 공포가 처음 생긴 건 병약했던 어머니 덕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무렵까지 어머니는 늘 위독했다. 다른 조무래기들은 들로 산으로 몰려다니며 그저 무럭무럭 자라기만 하면 되던 시절을 나는 위독한 어머니 옆에서 꼬박 보내야 했다. 동네 아주머니들은 늘 나를 바라보며 항이 불쌍해서 어쩌나 니 엄마 얼마 못산다, 하곤 했다. 나는 서서히 질병과 죽음에 대한 공포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막연한 공포가 더욱 구체화된 건 4학년 때 옆자리에 앉았던 녀석이 죽고나서부터다. 한동안 자리를 비우던 녀석은 결국 죽었다는 소식으로 돌아왔으며 담임선생은 빈 책상 위에 국화 한 송이를 얹어놓고 디프테리아라는 병을 설명해주었다. 가장 뚜렷한 증세는 목구멍에 하얀 막이 생긴다는 얘기였고 그날부터 나는 틈만 나면 거울 앞에서 입을 벌려 내 목구멍의 이상을 확인하곤 했다. 매일 그 일을 거듭하던 나는 결국 대체 죽음이란 뭔가라는 의문에 빠져들었다. 죽으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내가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따위의 의문은 초등학교 4학년 짜리에게 벅찼지만 해가 바뀌도록 계속되었다.

독감에 점령당한 오늘, 나는 어린 시절의 질병 공포를 떠올리며 과연 내가 암 같은 병에 걸리더라도 현재의 정신세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이를테면 민주주의니 파시즘이니 사회주의니 혁명이니 하는 사회 개념들은 죽음에 직면한 내 머리 속에서도 여전히 긴장감을 유지할 것인가. 내 경험으론 그럴 가능성은 많지 않아 보인다. 고교 시절에 노장을 읽기 시작했다는 선배 O는 내가 아는 이들을 통틀어 독보적인 정신 세계를 가진 사람이지만 몇 년 전 교통사고로 크게 다쳤을 때 그의 지성은 대폭 생략되거나 매우 단순해졌다. 그가 끼고 살던 노장 철학은 그 기간에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한국에서 발간되는 인문분야의 교양서를 모조리 챙겨 읽는 습관 때문에 교양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후배 S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두 번째 항암 치료를 받으러 들어가던 날 녀석은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다 부질없어 형. 아이하고나 많이 놀아 줘."

지성이란 대체 우리에게 무엇일까. 우리가 말하는 지성이란 안온한 시절에는 사고의 축이다가 절박함 속에선 온데간데없이 사라지는 그런 것인 것 같다. 그 지성 속엔 분명 죽음을 포함한 모든 절박함이 포함되어 있는데도 말이다. 대개의 사람들, 특히 배운 사람들은 아마도 실제 필요한 양보다 터무니없이 많은 지성을 갖고 있거나 꼭 필요하지 않는 종류의 지성을 갖고 있는 게 틀림없다. 배운 사람들은 언제나 제 머리통 속에 수집해놓은 동서고금의 온갖 지성의 부스러기들을 조금씩 내비치면서 배우지 못한 사람들에게서 자신을 구별짓곤 하지만 절박함 속에서 그들은 그들의 지성과 별 관련이 없어 보인다. 우리가 말하는 지성이란 대개 우리의 안온함을 장식하는 액세서리에 불과하며, 현명한 사람이라면 죽음에 직면해서도 유지할 수 있도록 자신의 지성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 씨네21 2000년_1월
2000/01/08 16:52 2000/01/08 16:52
1999/12/21 16:51
사회주의는 이론이나 사상에서 태어난 게 아니라 "인간 영혼의 가장 고귀한 감정의 항거에서 태어난다. 사회주의는 비참함, 실업, 추위, 배고픔과 같은 견딜 수 없는 광경이 성실한 가슴에 타오르는 연민과 분노와 만나 태어난다. 한쪽엔 호화, 사치가 있는가 하면 다른 쪽엔 궁핍이, 또 한쪽엔 견딜 수 없는 노동이 있는가 하면 다른 쪽엔 거만한 게으름이 있는, 이 터무니없고도 서글픈 대비에서 사회주의는 태어난다."(레옹 블룸) 연민은 자선을 낳고 분노는 싸움을 낳으며 다시 그 둘은 시스템을 바꾸지 않고는 자선도 싸움도 별 소용이 없다는 깨우침을 통해 과학적 사회주의가 된다. 말하자면 사회주의란 '정서를 재료로 한 과학'이다.

현실 사회주의의 문제는 정서가 생략된 과학의 문제이기도 했다. 연민이나 분노가 사라진 이론과 사상은 강퍅하고 차갑다. 사회주의는 그 최대 수혜자여야 할 인민에게 무섭고 살벌한 얼굴로 다가가곤 했다. 이른바 사회주의 리얼리즘 예술론의 역사는 과학이 정서를 지배할 때 어떤 끔찍한 일이 벌어지는가를 보여준다. 얼마나 많은 예술가와 얼마나 소중한 창의성들이 그 앙상한 과학적 예술론의 손에 목졸려 죽어갔던가를 생각한다면 말이다.

80년대 중후반 한국의 인텔리들은 사회주의에 열광했다. 그것은 부르주아 인권운동이라는 정서적 재료가 민중민주 혁명운동이라는 과학으로 변화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인텔리들은 본 회퍼를 덮고 그람시를 읽었으며 이내 레닌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국의 인텔리들이 80년대 중후반의 불과 몇 년 동안 마치 펄펄 뛰는 연어처럼 네오맑시즘에서 맑시즘으로 사회주의 이론사를 거슬러 오를 수 있었던 건 대개 군사파시즘이라는 절대적인 억압상황 덕이었다. 군사파시즘이 완화되고 동구가 무너지자 그들의 열정은 구멍난 풍선에서 바람 빠지듯 사라져갔다. 사회주의의 길에 인생을 걸겠노라 맹세하던 수많은 한국의 인텔리들은 일제히 청산을 선택했다.

그런 어이없고 질서정연한 청산은 그들이 변명으로 삼는 상황의 변화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앙상한 사회주의 때문이었다. 믿기 힘든 일이지만 80년대 후반 한국의 과학적 사회주의는 몇몇 영재아들의 경제학 리포트의 지배하에 있었다. 80년대의 한국을 19세기말의 러시아와 같다고 보는 정도의 앙상한 과학이 세상의 변화와 그 변화에 관련한 정서의 무게를 감당할 방법은 없었다. 카드섹션의 카드들처럼 일제히 사회주의자가 되었던 인텔리들은 다시 카드가 뒤집히듯 일제히 사회주의에 침을 뱉었다. 오늘 그들은 자신들이 관여한 사회주의 편향의 문제를 사회주의 자체의 문제로, 자신들이 관여한 사회주의 실험의 실패를 사회주의 자체의 실패라고 강변하며 살아간다. 그들은 시민운동단체에 얼마간 돈을 내고 <한겨레>를 구독하며 홍세화의 강연에 귀를 기울이고 노래방에서 <아침이슬>을 부르며 한편으론 신문에 팔짱을 끼고 돼먹지 못한 얼굴로 대문짝처럼 서있는 펀드매니저들에게 정신을 판다. 그들은 지울 수 없는 그들의 사회의식의 흔적을 마스테베이션하며 삶을 위무한다.

"터무니없고도 서글픈 대비"의 전적인 생산자이자 그것을 자정할 아무런 능력이 없는 자본주의가 인류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체제라면 인류는 이쯤 해서 지구를 (자연의 자정능력을 가진) 동물들에게 돌려주는 게 낫다. 자본주의는 그 자체로 인간의 존엄과 지성에 대한 모욕이며, 오늘 인류가 미래를 희망하는 일이란 바로 자본주의라는 괴물을 어떻게 극복하는가의 문제다. 지난 10여 년 동안 지리멸렬해온 한국의 인텔리들은 이제 그 동안 온갖 수모를 무릅쓰고 사회주의의 비전을 모색해온 옛 동료들을 다시 찾을 때가 되었다. 동구를 말할 필요는 없다. 대체 우리가 새로운 사회주의를 처음 시작할 자격을 갖지 않아야 할 어떤 이유라도 있는가. 과거의 실패가 짐스럽다면 사회주의가 '정서를 재료로 한 과학'임을 잊지 말고 느리게 안단테로 가면 된다. 안단테라면, 우리가 혁명을 회피할 이유는 정말 적어진다. 안 그런가. | 씨네21 1999년_12월
1999/12/21 16:51 1999/12/21 16:51
1999/10/26 16:48
"...그 사람에 대한 제 생각은 간단합니다. 불신감. 이 한 단어로 족할 것 같습니다... 그의 변명은 간단하겠죠. 우리는 너무 조급했다, 내 그릇이 작았다. (항상 개운치 않은 건 그는 항상 '나는 감옥에서 엄청난 도를 깨우치고 더 큰 사람이 되었다'는 분위기를 여기저기서 풍기고 다닌다는 거죠.) 다른 건 모르겠지만 최근의 그의 신작 시를 읽을 때, 저는 예전의 그의 글과 마찬가지로 그 특유의 '가쁜 호흡', 어떤 '집요한 욕망'을 느낍니다... 그가 연예인이 되기로 작정했다면, 좀 덜 짜증나는 연예인이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올해 초, 모스크바 유학 중인 옛 사노맹 조직원이 내 글을 읽고 보내 온 편지다. 나는 글에서 박노해(출소 이후의)를 두 번 언급했고 그 글들은 박노해에 대한 분명한 경멸을 담고 있었다. 준법서약서를 쓰고 나오는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준법서약서를 거부하고 남기로 한 동료들을 "유연하지 못하다" 하고, 진보의 기본을 저버린 자신의 '새로운 진보론'을 강변하기 위해 여전히 진보의 기본만은 놓지 않으려는 옛 동료들을 "낡았다" 하는 인간에 대한 경멸 말이다. 그러나 정작 그 글들이 책이 되어 나오자 나는 도리 없는 불편을 안았다. 어쨌거나 사회적 이유로 오랜 고생을 한 사람을 공격하는 일이었던 것이다. 편지는 그런 내 불편을 얼마간 덜어주었다.

생태니 공동체니 일상성이니 서태지니 여기저기서 짜깁기한 박노해의 '새로운 진보론'은 과거의 박노해(혹은 과거의 진보)가 갖는 정치적 강퍅함보다 달콤해 보이고 어떤 사람들에겐 호감을 주는 모양이다. 그러나 그 새로운 진보론은 조금만 살펴보면 이미 진보의 테두리를 멀찌감치 벗어난 것임을 알 수 있다. 어처구니없게도, 그 새로운 진보론엔 정치성이 송두리째 빠져 있다. 이 영리한 전직 혁명가는 '과거의 정치 편향을 철저히 반성'한다는 핑계로 슬그머니 정치성을 빼버린다.(과거의 문제는 정치편향이었는가, 정치성 자체였는가.) 대체 정치성이 빠진, 현실에 대해 정치적 긴장을 일으키지 않는 진보가 이룰 수 있는 미래는 어떤 것인가.

나는 박노해가 다시 고난에 찬 혁명가가 되라는 게 아니다. 우리 중의 누가 그에게 그런 걸 요구할 수 있겠는가. 박노해는 할만큼 했다. 우리는 그의 과거만으로도 그에게 존경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제 (이미 그가 그러고 있듯) 그가 안락하길 바란다. 그러나 박노해가 자신이 선택한 안락이 마치 새로운 진보의 방식인 양, 진보의 미래 비전이라도 되는 양 떠들어댐으로써, 여전히 그에게 호의를 갖는 순진한 사람들을 미혹하고 여전히 진지하게 진보의 갈 길을 모색하는 사람들에게 아픔을 주는 일은 용서받을 수 없는 악행이다.

거짓 선지자가 된 전직 혁명가는 피할 수 없는 자기 혼돈에 빠지고 그 혼돈은 더욱 깊어만 간다. 출소 직후 넘쳐나는 핸드폰을 개탄하던 그는 이제 자신의 신간 표지를 'TTL' 풍으로 만들어 달라 요구하고(이 경박한 미감), 출소 직후 하루 다섯 시간 노동하며 사는 농촌공동체를 만들겠다 약속하던 그는 이제 '세상을 배우기 위해' 주식투자를 해보겠다 말한다(이 가련한 현실감). 박노해 말마따나 세상은 변했고 진보도 변하건만, 변하지 않은 그 '가쁜 호흡'은 여전히 자신을 시대를 앞서가는 혁명가라 불리고 싶게 하고, 변하지 않은 그 '집요한 욕망'은 여전히 자신을 최고의 상품으로 만들고 싶게 한다.

추신 : <한겨레>에 실린 박노해의 신간('오늘은 다르게'라는 경쾌한 제목이 붙은) 광고엔 오늘 이 나라를 대표하는 부르주아 지성들의 주례사가 도열했다. 조혜정, 박원순, 유홍준... 박노해와 그 지성들의 계급 본능(교수나 변호사의 기득권만은 결코 포기하지 않을)은 예술처럼 교감한다. 그 지성들에게 박노해는 달콤함(분명한 현재인)에 쌉쌀함(더 이상 위험하지 않은 과거인)까지 곁들인, 달콤 쌉쌀한 초콜릿이다. 그 지성들은 천천히 그 초콜릿을 씹으며 시민계급에 의한 노동계급의 인수합병을 자축한다. 하지만 내 귀엔 벌써 그들의 새로운 대사가 들리는 듯 하다. "무슨 초콜릿이 이리 달기만 해. 싸구려란..." | 씨네21 1999년_10월
1999/10/26 16:48 1999/10/26 16:48
1999/10/05 16:47
연대 총학생회에서 마련한 '저자와의 대화'에 불려 갔다. 학생들끼리 만나고 싶은 저자를 투표했고 진중권과 내가 결과라 했다. 매일 붙어 다니는 사이인 데다 <아웃사이더>라는 잡지도 함께 준비하고 있는 둘을 불렀다는 우연도 희한했지만 아직 저자가 아닌(한 권의 책도 내지 않은) 내가 거기 낀 일은 더욱 희한했다. 얼마간의 민망함과 비슷한 양의 흐뭇함을 안고 나는 거기에 갔고 다행스럽게도 '대화'는 유쾌했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생각했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더라...

사는 게 하도 팍팍해서 시작한 일이었다. 이른바 영화전문서 출판을 시작한 이래 맺어 온 염치와 우애가 없는 인간관계를 모두 접으려 두 시간에 한번씩 버스가 들어오는 파주의 어느 마을에 들어간 지 6개월. 인간에 대한 절망감과 남들 한달 월급만큼의 한달 이자를 온갖 노동으로 때워야 하는 삶의 팍팍함을 위무할 길을 찾던 나는 불현듯 글쓰기를 떠올렸다. 글쓰기는 내가 이미 접은 과거의 인간관계를 통하지 않고 세상과 대화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씨네21> 편집장과 알지 못했다면 그나마 어려운 일이었겠지만) 어쨌거나 나는 글쓰기 이력이 전무한 건달에게 글쓰기를 하도록 배려한 세상에 감사했다. 다른 이보다 족히 십 년은 늦게 글쓰기를 시작한 내겐 그 십 년 동안 쌓였어야 할 나름의 '문장'도 이런저런 '지성'도 없었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내 생각을 가감 없이 옮겨 적는 '솔직한' 글쓰기뿐이었고, 언젠가는 그 솔직함이 정직이 되고 그것이 다시 진실이 되길 기대했다.

나는 글쓰기를 용접공이 용접을 하듯 한 사람이 사회로부터 부여받은 한 가지 노동이라 여겼다. 용접공이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건너다닐 다리를 용접하는 것처럼 지식인의 글쓰기는 모든 사회구성원이 사용할 정신의 다리를 용접하는 일이라고 말이다. 그렇게 일년 반. 어느새 글쓰기는 세상과 나의 관계에서 나를 대표하는 일이 되었고 내가 일용할 양식을 마련하는 방편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나는 이제 처음엔 어색하기만 했던 '필자'니 '지식인'이니 하는 호칭으로 불리는 일에 꽤 익숙해졌고, 심지어 내게 남은 약간의 어색함을 "나는 진보지식인입니다" 하는 너스레로 뒤집어 사람을 웃기기도 한다.

그러나 그 너스레가 완전한 농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에겐 분노와 거부감을 안겨줄 만한 말이지만) 나는 오늘 이 나라의 글쓰기가 진보가 아닐 도리가 없다 생각한다. 알다시피 이 나라의 모든 정신적 다리는 무너진 지 오래다. 이 나라에서 사회 정의와 개인의 양심은 강물 속에 흩어진 잔해로만 남아 있다. 이런 현실을 분명히 하고 그 다리를 성실하게 다시 지으려는 당연한 태도가 바로 진보다. 보수라면 다리가 무너진 현실을 인정은 하되 그 다리를 적당히 고쳐 사용하자 할 것이고 극우라면 아예 다리가 무너지지 않았다 생떼를 쓸 것이다. 언제나 그러하듯 보수는 오늘의 안락함을 포기하지 않고 극우는 오늘의 이권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러니 안 쓴다면 모를까 이 나라의 글쓰기가 진보가 아닐 도리가 있는가.

그나저나, 밑도 끝도 없이 삶의 팍팍함을 위무하겠다는 무식한 생각으로 글쓰기에 뛰어든 나 같은 건달도 아는 그런 소박한 이치를 도저한 지식과 장구한 글쓰기 이력을 가지고도 깨치지 못한 사람들은 어찌된 사정일까. 그들이 하나같이 아둔한 걸까, 그저 나 혼자 싸가지가 없는 걸까.

추신 : '저자와의 대화'에서 만난 '그들'(오늘의 대학생들)에 대한 소감. 짐작대로 '그들'은 '우리'(80년대의 대학생들)보다 대체로 탈정치적이었다. 그러나 중요한 건 정치성의 숫자가 아니다. 알다시피 세상은 한순간에 바뀌는 게 아니며 문제는 그 정치성이 서른이 되고 마흔이 되었을 때 어떻게 되는가다. '우리'의 부끄러운 이력을 생각한다면 더욱 그렇다. '그들'과의 대화 속에서 '우리'와는 전혀 다른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그래서 적지만 오래갈 듯한 정치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확신할 순 없지만, 일단 나는 그것을 희망이라 부르고 싶다. | 씨네21 1999년_10월
1999/10/05 16:47 1999/10/05 16: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