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4/01 10:51
암이라는 병의 끔찍함은 암 자체보다는 암을 대하는 방식에서 나온다. 서양의학, 즉 주류의학은 암을 군사 작전하듯 대한다. 그래서 수많은 암 환자들이 온몸이 독극물로 찌들고 난도질당한 채 비참하게 죽어간다. 그러나 주류의학을 제외한 거의 모든 의학들은 암을 ‘몸의 조화를 되새겨야 할 신호’라 본다. 몸의 조화를 되살림으로써 암을 물러나게 하는 것이다.

또 한 사람이 암으로 가서 해본 생각인데, 그렇다면 ‘사회적 암을 대하는 내 방식은?’
2004/04/01 10:51 2004/04/01 10:51
2004/03/31 08:41
고래가 관이 지원하는(살다 보니 별 일이 다 있다) 인텔리젠트 빌딩에 입주했다. 바닥에 전기나 랜선 구멍이 있고 중앙 냉난방에 청소까지 해주는 건물이다. 그런 편의 장치들이 꼭 좋은 건 아니지만 인력이 부족한 고래에겐 큰 도움이 된다. 이곳에서 2년 동안 머물게 된다. 짐 정리도 남았고 칸막이도 해야 하고 어수선하지만 이사는 언제나 심기일전의 계기다.
2004/03/31 08:41 2004/03/31 08:41
2004/03/30 00:39
참담하고 혼란스럽던 며칠이 지나면서
여전히 아이들과 공연을 준비하고 일상을 해나가면서
김규항씨의 글을 보는게 도움이 됐습니다.

블로그(사실 저희 식구들은 여길 보면서 블로그란 걸 처음 알았습니다.)를 보니까
난리가 나 있어서 이렇게 메일을 보냅니다.
여러 가지 생각이 나고 마음도 들지만
생각도 짧고 잘 정리할 능력도 없어서 보고만 있다가
단지 '연대'의 의미를 전하고 싶은 마음에
이렇게 편지를 써 봅니다.

이 혼란 속에서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이 있지요.
누구 편에 설것인가. 어디에 서 있을것인가의 물음 말입니다.
제가 아는 한 '진보'는
그것입니다.
제가 아는 한 '혁명'은
하느님 나라를 이땅에 이루는 것입니다.
가난하고 힘없는 존재를 통해서 말입니다.

김규항씨의 글에서 제가 발견하고
힘을 얻는 것은
바로 '누구의' 편에 서 있는가입니다.

며칠전 아웃사이더에 하워드 진 교수가 이야기한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인간의 품위가 지켜지는 조그만 영역들을 창조해 나가는 것이다.'
글로만 만나기에도 벅차고 멀고 대단해 보이던 노교수의 입에서 나온 그 말은
우리가 하루하루 해 나가고 싶은 그 꿈이었습니다.
우리가 4월 17일날 공연을 할 수 있을까?
지금 우리 공연을 홍보하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
며칠 그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다시 아이들과 지지고 볶는 일상을 이어갑니다.

이곳에서 '아직' 오지 않은 하느님나라에 대해 언제나 깨어있고 명확해야 함을 다시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시
'이미'와 있는 그것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이 자리라는 것도 생각합니다.

좁고 안전한 이곳 만석동에서 매일 변하는 것 없는 아이들과
여기서 함께있는 식구들을 바라보면서 '아직과 이미'사이에
깨어있는 다는 것이 사실 쉽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힘내십시오.
삶을 이어가는
모든 '선한 사람들'과 함께
우리도 힘을 내겠습니다.


(지난 15일, 기차길옆작은학교 선생님에게서 받은 편지.)
2004/03/30 00:39 2004/03/30 00:39
2004/03/29 19:18
한대수는 참 유명한 음악가다. 그러나 그 유명함은 대개 ‘물 좀 주소’나 ‘행복의 나라로’ 같은 그의 30여년 전 음악에 한정된다. 그걸 빼고 말한다면, 한대수는 유명한 음악가지만 음악은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음악가다. 한대수의 그런 묘한 유명함은 사람들이 한대수의 (유명하지 않은) 음악에 접근하는 걸 훼방한다. ‘물 좀 주소’나 ‘행복의 나라로’ 말고도 한대수의 명곡은 많다. 그러나 사람들은 한대수, 하면 떠오르는 몇몇 곡들 때문에 한대수 음악에 접근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한대수의 곡은 ‘하루아침’이다. 한대수의 가장 훌륭한 곡이 뭐라 생각하는가 묻는다면 다른 걸 댈 수도 있다. 그러나 가장 좋아하는 곡은 언제나 ‘하루아침’이다. 세상에 대한 애정도 얼마 남지 않은 주제에, 세상을 상대로 글도 쓰고 잡지도 만들면서 휘청휘청 살아가는 나는 ‘하루아침’을 들을 때 마음이 편안하다. 실실 웃기까지 한다. 들어보시라. ‘코맹맹이 소리로 주류 질서를 조롱하는 어느 노마드의 기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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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3/29 19:18 2004/03/29 19:18
2004/03/28 00:46
에콜로지, 이를테면 김종철 선생의 이야기에 늘 관심을 갖게 된다. 나는 아무래도 경제 문제를 위주로 하는 진보주의자 체질은 아닌 모양이다. 물론 경제 문제, 즉 사회적 불공정의 문제를 소홀히 여기는 온갖 생태, 생명론들은 우파의 장식물일 뿐이다.(내가 김지하 선생을 존경할 수 없는 이유도 그것이다.)

내가 “좌파는 현재 체제를 위협하는 사람”이라 말할 때 ‘현재 체제’는 자본주의를, ‘위협’은 사회주의적 기획을 말한다. 문제는 사회주의적 기획이 문명, 산업, 개발, 성장 같은 반 생태적 개념들을 충분히 해명하진 못한 상태라는 것이다. 그러나 ‘경제 문제를 위주로 하도록 강제된 사람’(극단적인 예로, 분신을 고려하는 비정규노동자)의 처지에서 경제 문제는 우주와 같다.

사회주의적 기획의 결핍을 인정하는 일과, 현재성을 뛰어넘는 진리는 없다는 믿음은 늘 공존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후자에 좀더 방점을 둔다. 아무 것도 위협하지 않는 현자보다는 시시한 것 하나라도 위협하는 활동가가 백배 낫다고 생각한다. 위협하지 않는 건 의미 없는 것이다.
2004/03/28 00:46 2004/03/28 00: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