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12/28 19:31
80년대 진보운동이 갖는 급진성은 당연히 진보운동의 주체적인 힘이지만, 군사파시즘의 폭압과 책상물림 이론가들의 관념성에 크게 힘입은 것이기도 했다. 인정하고 싶든 않든 그건 이미 확인된 사실이다. 90년대 들어 군사 파시즘의 폭압이 수그러지고, 현존사회주의가 무너져 책상물림들의 관념성이 정처 없어지자 진보운동은 급진성도 참으로 맥없이 사그라졌다. 거품이었다.

그 거품 속에서 최소한의 진보적인 소양(이론적이고 관념적인 차원의 진보적 소양을 갖추는 건 ‘학습’으로 해결할 수 있지만 인간적이고 실천적인 차원의 진보적 소양은 ‘삶’으로만 갖출 수 있다. 물론 ‘삶’은 책으로 하는 게 아니다.)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조차 진보주의자 노릇을 할 수 있었다. 80년대에는 그 거품도 진보운동의 대열에 속했지만 80년대의 급진성이 무너지자 그 거품은 이내 진보운동에 비수로 돌아왔다.

그런 사람들은 90년대 이후 파시즘의 폭압과 이론적 관념성이라는 받침대가 사라지자 보수주의자로서의 이기심과 탐욕을 스스럼없이 드러내며 살아간다. 문제는 그들이 보수주의자로 살면서도 제 젊은 시절의 ‘진보운동의 이력’을 계속 내세운다는 것이다. ‘진보운동의 이력을 내세우는 보수주의자들’은 오늘 한국에서 무시할 수 없는 규모로 존재한다. 그들은 사회문화 전반에서 가장 유력한 엘리트 집단을 이루고 있다.

그들은 대개 그들이 자랑스러워마지 않는 이력에 걸맞은, 혹은 그 이력보다 훨씬 더 많은 사회적 대우를 받는다. 이따금 그들의 끝없는 탐욕이 그들의 천박함을 드러내기도 하지만(이를테면 저자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신을 책으로 펴냈다가 회수 소동을 벌인 아무개 출판사 사장이나 송두율씨를 초청했다가 국가보안법의 굴레가 다가오자 “그런 사람인지 나는 몰랐다. 처벌이 필요하다.”고 떠들어대는 아무개 기념회 회장처럼) 대체적으로 그들은 먹고 살만 한데다 사회적 존경까지 받는다.

그들은 제 안락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 매우 단순하고 명쾌한 논리를 구사한다. 1. 나는 세상을 바꾸는 일에 투신했다. 2. 이제 세상은 바뀌었다. 이 명쾌한 논리는 다시 ‘오늘 세상을 바꾸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과 ‘아직 세상이 바뀌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언급할 가치조차 없는 비현실적인 사람들’이라는 것을 명쾌하게 논증한다.

우리는 그들이 그런대로 양식을 갖춘 시민들이라 착각하는 편이다. 그러나 실제적인 차원에서 그들은 오늘 진보운동에 가장 큰 해악을 주는 사람들이다. 애시당초 진보운동을 적대하게 되어 있는 우익들의 공격과 그들의 공격은 사회적 공신력에서 비교할 수 없는 차이가 있다. 대중들에게 그들은 여전히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이룬 사람들’인 것이다.

그들이 진보운동에 갖는 좀더 치명적인 해악은 청년들이 진보운동에 접근하는 것을 차단하는 것이다. 요컨대 그들은 그들의 주장과 행태를 통해 90년대 이후 청년들이 진보운동에 대해 두 가지 편견에 빠지게 했다. 하나는 진보운동이 ‘이제 끝났거나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둘째는 ‘진보운동에 투신하는 사람들은 결국 그것을 제 일신의 안위를 위해 사용한다.’

이쯤 되면 출생 전에 무슨 신령한 진보의 은총이라도 입은 게 아닌 이상 어떤 청년도 진보운동에 관심을 갖기 어렵다. 오늘 청년들이 진보운동을 잘 모르고 진보운동에 관심이 없는 건 자연스러운 일인 셈이다. 오늘 우리가 참으로 심란스럽게 바라보는 청년들은 바로 그런 처지에 있다. 우리는 그 청년들에게 연민을 느낄 만하다.

(노동자의힘 기관지)
2003/12/28 19:31 2003/12/28 19:31
2003/12/15 00:19
80년대에 청년이던 사람들이 만나 대화하면 심심찮게 등장하는 안주가 ‘요즘 애들’이다. “요즘 애들은 책을 안 읽어.” “요즘 애들은 이기적이야. 도무지 사회 현실에 관심이 없어.” “요즘 학생운동이 그게 운동이야.” 등등.

더 이상 책을 안 읽고, 저와 제 식구 외엔 아무런 관심이 없으며, 운동은커녕 운동의 장애물에 가까운 그들이 그렇게 떠들어대는 풍경은 기괴하지만, 어쨌거나 80년대의 청년들과 오늘 청년들이 많이 다른 건 사실이다. 대학 학생회장 선거에서 갈수록 비운동권이 우위를 보이는 건 그런 현실의 한 단면이다.

그런 현실은 좌파운동의 미래를 어둡게 만든다. 좌파 청년들이 줄어든다는 것은 곧 좌파 운동이 고령화하고 또 고립되어 머지않아 영향력을 잃게 된다는 얘기가 된다. ‘청년들을 어찌할 것인가’는 좌파운동의 가장 중요한 숙제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한국에서 청년학생운동은 수십여년 동안 운동의 주력이자 메마르지 않는 우물이었고 80년대는 그 정점이었다. 80년대에 좌파청년들은 차고 넘쳤다. 그러나 그런 ‘풍요’는 좌파운동의 노력이나 역량보다는 현실의 엄혹함에서 온 것이었다. 온 나라가 병영화하여 청년들의 정신을 가두었고 군인들이 대낮에 양민을 도륙하고 어제 만난 친구가 사라져 얼마 후 주검으로 떠오르는 현실은 평범한 청년의 가슴에도 쉽게 불을 지를 수 있었다.

이제 군인들은 더 이상 대낮에 양민을 도륙하지 않으며 한국 청년들은 세계에서 가장 쿨한 영화광들이다. 빨갱이라 불리던 사람들이 잇따라 대통령을 맡고 있으며 평범한 청년들의 가슴에 불을 지를 만한 현실은 눈에 띄게 적어졌다. 이쯤 되면 오늘 청년들 가운데 적게라도 좌파들이 재생산된다는 사실은 신기하고 감사한 일이다.

오늘 청년들이 사회현실에 관심이 없다는 개탄은 사실과 다르다. 청년들은 언론개혁이니 정치개혁이니 하는 이런저런 개혁운동에 무시할 수 없는 규모로 투신하고 있다. 그 투신이 제 연애와 영화감상과 취업시험 준비를 하고 남는 시간에 ‘모니터 앞에서’ 혹은 ‘촛불을 들고’ 이루어진다 해도 그들은 나름대로 사회현실에 투신하고 있다.

우리는 그 청년들에게 희망을 둘만 하다. 우리가 ‘모니터 앞에서’ ‘촛불을 들고’ 사회현실에 투신하는 청년들에게 희망을 둘 근거는 그 청년들이 ‘진보’ 가 뭔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 청년들은 극우가 보수를 자처하고 개혁이 진보를 자처하는 현실에 그대로 사로잡혀 있다. 말하자면 그들은 개혁운동이 세상을 바꾸는 운동이라 여기고 ‘진보적 열정’으로 개혁운동에 투신하고 있다.

우리는 그 청년들에게 진실을 알려주어야 한다. 개혁과 진보는 전혀 다른 것이라는 것, 개혁운동은 세상을 바꾸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오늘 세상을 강화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어야 한다. 물론 그건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개혁이 진보를 거의 완전하게 대체하는 데는 참여연대에서 강준만과 노사모를 거쳐 네티즌운동에 이르는 10여년의 과정이 있었다. 그 10여 년 동안 개혁운동은 좌파운동을 ‘낡고 어리석으며 실현가능성이 없는 미망에 빠진 무리들’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젠 우리 차례다. 우리는 청년들에게 개혁운동의 주장들이야말로 얼마나 ‘낡고 어리석은’ 것이며 개혁운동이라는 것이 얼마나 ‘실현가능성이 없는 미망’인지를 알려주어야 한다. 개혁정권의 침략전쟁에 대한 태도나 더러운 정치자금을 둘러싼 진흙탕 싸움은, 청년들로 하여금 극우와 개혁이 어떤 차이를 갖는지 과연 개혁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지 되새기게 하는 생생한 자료들이다. 바로 지금 우리는 청년들에게 유례없이 친절하고 부드럽게 다가가야 한다. (노동자의힘 기관지)
2003/12/15 00:19 2003/12/15 00:19
2003/11/15 18:01
홍기선을 만났다. 놀랍게도 그는 그대로다. 수더분한 외모에서 어눌하지만 지적 결기가 느껴지는 말씨까지. 그를 10년 전에 한번 만났다. 이효인, 이정하들과 함께였을 것이다. 나는 간간히 그를 떠올리며 그의 근황을 궁금해 했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과연 그도 변했을까’ 궁금해 했다. 10년 동안 홍기선의 동료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모두 변했다. 영화와 현실을 함께 고민하던 그들은 자본과 제휴하다 스스로 자본에 꿇어갔다.

그 10년 동안 재벌자본과 투기자본과 유통자본이 차례로 한국영화판을 쓸고 지나갔다. 한국영화는 양적으로 팽창했고 매출도 늘어났다. 사람들은 흔히 그걸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라 말한다. 그러나 르네상스란 한 예술장르가 얼마나 양적으로 팽창하고 얼마나 많은 매출을 올리는가를 말하는 게 아니다. 르네상스란 온갖 꽃들이 만개한 봄 들판처럼 온갖 예술적 시도들이 공존하는 것을 말한다. 모든 영화가 마케팅의 율법을 경배하며, 독립영화가 제도 상업영화의 예비 인력시장으로 투항한 한국영화판은 해질녁 기지촌의 요사스런 풍경을 닮았다.

홍기선의 동료들이 보인 변화는 그들의 의식이나 내면적 변화를 넘어서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10년 동안 한국은 정치적으로 민주화했고 사회적으로 천민자본주의화했다. 군사 파시즘에 녹아나던 한국인들은 민주화의 수혜자인 시민과 천민자본주의의 수혜자인 노동자민중으로 분화했다. 시민에게 세상은 참으로 살 만한 곳이 되었다. 그들은 상식을 모욕하던 군사 파시즘도 물러갔다. 그러나 노동자 민중에게 세상은 더욱 나빠졌다. 그들은 오늘 33년 전 제 몸을 불사르며 죽어간 전태일과 똑같은 유서를 남긴 채 죽어가고 있다.

그 10년 동안 한국영화의 가장 큰 사회적 기여는 현실에 대한 청년들의 관심을 앗아간 것이다. 오늘 한국 청년들에게 영화란 취미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현실의 온전한 대체물’이다. 그들은 영화 속의 현실에서 그들이 가진 모든 인간적 분노와 정의와 낭만과 이상주의를 완전하게 카타르시스한다. 그들은 실제 현실에서 사용할 인간적 분노와 정의와 낭만과 이상주의의 여분이 없다. 그들에게 오늘 죽어가는 사람들의 현실은 영화보다 먼 현실이다. 영화는 그들에게 열심히 현실의 대체물을 판매하고 그들은 열심히 그 현실의 대체물을 구매한다. 그게 오늘 한국영화산업의 뼈대다.

그런 점에서 <선택>은 특이한 영화다. <선택>은 현실을 카타르시스하게 하는 게 아니라 현실을 반추하게 하는 힘이 있다. 45년을 감옥에서 보낸 비전향 좌익수를 다룬 비장한 영화라서가 아니다. <선택>은 오히려 상쾌하다. 아둔한 사람이 아니라면 스치듯 지나가는 감옥 풍경과 담백한 국악풍 음악이 부드럽게 녹아드는 타이틀에서 이 영화가 관객을 계몽하려는 게 아니라 관객과 속삭이려 한다는 걸 알아차린다. 카메라는 그 세월 동안 단 한번도 감옥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관객은 그 유별난 사람들의 현실에 은근히끼어든다.

허문영은 <선택>을 ‘이념이 아니라 명예를 그린 영화’라고 했다. 물론 그건 대단한 찬사다. 그러나 그 찬사엔 이념이라는 게 뭔가 비인간적이고 차가운 것이라는 상투적 편견이 깔려있다. 이념은 이념이 생겨나던 날부터 그렇게 공격받아왔다. 우리는 이념이 휴머니즘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다.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를 모른 체 하지 않는 것, 그 지극히 인간적인 행동이 바로 이념이다. 이념은 다름 아닌 인간의 명예다.

지나간 역사, 다른 나라의 현실에 명예를 선택하긴 쉽다. 게바라와 마르코스가 애호되는 건 그래서다. 그러나 오늘 현실, 오늘 진행하는 역사에 명예를 선택하긴 쉽지 않다. 그 선택이 제 밥그릇과 안락을 위협하거나 위협할 수 있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33년 전 전태일에 서슴없이 명예를 선택하는 우리는 오늘의 전태일에 명예를 선택하지 않는다. 우리는 배달호(1월 9일), 박동준(9월 27일), 김주익(10월 17일), 이해남(10월 23일), 이용석(10월 26일), 곽재규(10월 29일)에 명예를 선택하지 않는다. 우리의 선택은 과연 무엇인가.(씨네21)
2003/11/15 18:01 2003/11/15 18:01
2003/11/06 00:18
“멸공!” <고래가그랬어> 창간호 나오고 어느 날 자정 넘어 조중사가 전화를 했다. ‘멸공’은 얼치기 빨갱이인 나에 대한 그의 장난 섞인 지지고 ‘중사’는 그가 스스로 달아준 계급이다. 그는 내가 ‘브로커’라고 놀릴 만큼 출판이나 회사 경영에 경험이 많다. 그는 내 나름의 원칙과 명분을 주식회사라는 현실적 틀 속에서 실현해나가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나는 노련하고 듬직한 중사를 둔 셈이다. 조중사는 이따금 자정이 넘어 전화한다. 대개 나에 대한 염려를 주정이라는 형식으로 드러내곤 한다. “힘들면 힘들다고 해요, 씨바.” “솔직히 무슨 일 있는 거 모를 줄 알아요.” 하는 것이다. “일은 무슨 일, 씨발놈아.” 그럴 때면 나도 편안해져 욕을 한마디 한다. “왜 애들처럼 욕을 하고 그래요.” 내가 웃음을 터트리고 자정 넘어 싱거운 통화는 끝나는 것이다.

그러나 이날은 목소리가 유난히 쾌활하다. “씨바, 기분 좋네요. 정말.” “넌 술 먹으면 기분 좋잖아.” “씨바, 그게 아니라니까요.” “아니긴 뭐가 아닌데.” “지난번에 설문조사 한다고 ㅎ초등학교에 창간호 보냈잖아요.” “그랬지.” “6학년 한 반 아이들 전부가 책을 읽었거든요. 그런데 오늘 한 아이 엄마가 그 반 행사 때 아이들 먹으라고 빅맥 세트를 숫자대로 가져왔나 봐요.” “그런데.” “한명도 안 먹어버렸대요.” “정말이야.” “정말이니까 이 시간에 전화한 거 아닙니까. 한 아이가 벌떡 일어나서 ‘맥도날드 먹으면 안돼’라고 외치니까 모든 아이들이 ‘뚱보 된다’, ‘맥도날드는 나쁘다’ 등등 저마다 한마디씩 하며 동조했답니다.” “저런.” “교사가 햄버거 사온 아이 엄마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해 주니까 민망해하면서 몽땅 싸들고 돌아갔대요.” “그것 봐라, 애들은 된다니까.” “그러게 말에요. 기분 좋네요. 정말.”

대부분 만화로 이루어진 <고래가그랬어>엔 짧은 글로 된 막간 꼭지가 몇 개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아이들이 환호하는 거대 기업들의 속을 얼핏 보여주는 ‘나쁜 장사꾼들’이다. 그 첫 번째는 맥도날드였고 아이들은 그걸 읽었던 것이다. 설문조사는 계층과 지역으로 나누어 선정한 몇몇 학교에서 진행했다. ㅎ초등학교는 그 가운데 ‘부잣집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의 경우였다. 말하자면 부자 아비를 둔, 매우 보수적인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그 학교에 책을 보낸 다음 날엔 한 아이 어머니가 선생에게 항의를 해왔다. “이런 걸 읽고 아이들이 미국에 대해 나쁜 생각을 가지면 책임질 거에요?”

설문 결과는 나와 조중사를 비롯한 동료들에게 많은 깨달음을 주었다. 전태일의 일생을 그린 ‘태일이’가 가장 재미있는 만화로 꼽힌 건 작가인 최호철조차 믿지 않을 만큼 뜻밖의 일이었다. 반면에 내용을 떠나 재미와 즐거움을 목적으로 집어넣은 다른 꼭지는 ‘어른식 키취’로 판명났다. 무엇보다 가장 인상적인 성과는 설문 결과가 계층이나 지역 따위로 구분되는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부잣집 아이들이 좋아하는 만화와 가난한집 아이들이 좋아하는 만화가 별다르지 않고 도시 아이들이 싫어하는 꼭지와 시골 아이들이 싫어하는 꼭지가 별다르지 않았다. 아이들은 제 아비의 계급이나 지역 따위에 아직은 제 정신을 앗기지 않은 상태에 있다.

그리고 빅맥 세트를 거부한 부잣집 아이들처럼 아이들은 제가 스스로 깨달은 것은 삶에 반영한다. 아이라 불리는 인간들이 어른이라 불리는 인간들과 가장 다른 점은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혹은 “세상이 다 그런 거지”라는 말을 할줄 모른다는 것이다.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혹은 “세상이 다 그런 거지”라는 말이야말로 진보와 보수를 넘어서는 한국인들의 절대적 이념이다. 지성이나 예술 혹은 종교 따위는 그 절대적 이념 아래 무수한 장식물로 존재한다. 한국인들, 한국의 어른들에게 더 이상 희망이 없는 건 그래서다. 한국에서 아이들은 삶의 태도를 바꿀 가능성이 남은 유일한 인간들이다. 아이들이 있다. 그거야말로 한국의 유일한 희망이다.(씨네21 2003/11/06)
2003/11/06 00:18 2003/11/06 00:18
2003/10/23 00:17
국가보안법은 일제 시기 독립운동을 탄압하는 수단이던 치안유지법의 외아들이다. 일제가 물러 간 후 남한 사회는 일제에 붙어 영화를 누리던 부역자 세력이 지배하게 되었다. 이른바 대한민국은 세계사에서 가장 더러운 피를 가진 공화국이다. 아무런 정통성을 가지지 못한 남한의 지배세력은 국가보안법을 통해 남한 사회를 반공주의 파시즘 체제로 만들어갔다.

반세기 동안 남한은 반공주의의 수용소였다. 학문과 종교와 예술을 포함한 남한의 모든 정신활동은 국가보안법의 울타리 안에서만 존재했다. 반공주의 파시즘을 제외한 모든 의견은 모조리 공산주의적 활동이자 친북 활동으로 규정되었다. 사회주의도 아니고 혁명도 아니고 단지 민주주의와 자유를 생각했다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거나 죽임을 당했다. 국가보안법은 단 한번도 ‘나라를 지키는’ 법이 아니었다.

국가보안법에 대해 공개적으로 질문할 수 있게 된 건 90년대 이후, 반공주의 파시즘의 절대적인 권위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매우 한정된 사람들 끼리나 알고 있던 ‘국가보안법의 비밀’이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다. 90년대 말에 이르러선 최소한의 교양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21세기의 첫 해가 뜨기 전에 국가보안법이 폐지되거나 적어도 개정될 거라 믿었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은 21세기가 된지 3년이나 지난 오늘 여전히 건재하다. 그 배후에 거대한 타협이 있다. 국가 권력은 그 법을 조금은 덜 야만적으로 보이게 사용하는 대신, 국가보안법을 반대한다는 사람들은 그 법의 존재에 잠시 눈을 감는 타협 말이다. 송두율 씨를 둘러싼 이런저런 상황들은 그런 거대한 타협의 실체를 송두리째 드러낸다. 민주화운동 이력과 국가보안법에 의한 상흔을 훈장처럼 달고 행세하는 자들은 말한다. “정말 몰랐다.” “당혹스럽다.” “국민에게 사과한다.”

국가보안법을 일용할 양식으로 삼아 온 극우 세력과 파시스트 언론이 이 맛난 먹이를 놓치려 하지 않는 건 당연하다. 쥐어뜯고 할퀴고 뒤에서 찌르는 일이야말로 그들의 일이다. 문제는 그들이 아니라 그들을 “너무 심하다.”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이다. 그들 가운데 누구도 “국가보안법으로 송두율을 말하지 말라!”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단지 몹시 곤혹스러운 얼굴로 ‘관용’을 말한다. 대체 누가 누구에게 관용을 애걸하는 건가. 파시스트들에게? 반세기 동안 빨갱이의 딱지를 쓰고 광장에 끌려 나온 사람들에게 ‘죽여라!’라고 외쳐 온 잘난 국민들에게?

송두율이 노동당원이면 어떻고 민노당원이면 어떤가. 송두율이 가족을 이끌고 북한으로 들어가면 어떻고 남한으로 들어오면 또 어떤가. 그런 건 분단 덕에 영화를 누려왔기에 분단이 영원하길 바라는 놈들에게나 상관있는 일이다. 분단 조국을 둔 지식인이 남북을 넘어 민족을 생각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더구나 독일이라는 제3국에 거주하는 지식인이 반세기 동안 반공주의 파시즘이 지배해 온 남한을 일방적으로 지지했다면 그는 어떤 의미에서도 지식인이 아니다. 사람들이 의혹에 찬 눈으로 바라보는 송두율의 이런저런 행적들은 분단 조국을 살아가는 지식인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양식을 드러낼 뿐이다.

우리는 “송두율은 어떤 사람인가?”라고 질문하기 전에 “국가보안법은 어떤 법인가?”라고 우리 자신에게 질문해야 한다. 그 질문은 주먹을 쥐고 소리치는 별스런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다. 이미 ‘국가보안법의 비밀’이 밝혀져 있고 그 법에 당하는 사람이 실재하는 이상 그 법에 눈감는 일은 노예의 행동이다. 우리가 국가보안법에 반대한다면 그 법을 무시해야 한다. 그리고 국가보안법을 전제로 한 송두율에 대한 어떤 의견이나 조치도 무시해야 한다. 누가 감히 추방을 말하는가. 누가 감히 관용을 말하는가. 이 더러운 공화국에서.(씨네21 2003/10/23)
2003/10/23 00:17 2003/10/23 0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