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2/07 06:23
쉬운 글의 미덕이 있다. 쉬울수록 더 많은 사람이 읽고 소통할 수 있다. 그러나 어려울 수밖에 없는 글, 어려운 이유가 있는 글도 존재한다. 괜스레 어려운 글, 어려울 이유 없이 어려운 글은 그저 못쓴 글일 뿐이다.
2017/02/07 06:23 2017/02/07 06:23
2017/02/01 07:56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만든 세력에 당연히 분노와 혐오가 일지만, 그 반대 세력에도 얼마간 쓴웃음이 나는 게 사실이다.

지난 20여년 간 문화예술 지원 시스템은 보수 자유주의 정권이든 진보 자유주의 정권이든 상대편 배제/우리편 챙기기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 시절에 지원 시스템과 이런저런 이권들이 386의 든든한 보급 창고 구실을 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문서로 만들었든 머리 속에 담았든 블랙리스트는 언제나 존재했던 셈이다.

인상적인 대목은 두 세력이 그런 작태를 매우 진지하게 정당화해왔다는 사실이다. 보수 자유주의 세력이 '종북 좌익세력에게 혈세를 지원할 순 없다'고 생각했다면, 진보 자유주의 세력은 '수구 꼴통에게 혈세를 지원할 순 없다'고 생각했다.

현재 상황에서 둘 다 똑같은 놈들이라는 냉소는 그다지 유익할 게 없다. 중요한 건 현재 한국 정치권은 내편 네편을 넘어서는 사회 윤리의 기본 틀조차 없는 세계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단지 윤리의 문제가 아니라 윤리의 부재가 만들어내는 총체적 파괴성의 문제다.

예컨대 조윤선 씨는 절대 반성하지 않을 터인데, 그의 인격과 무관하게 반성을 할 윤리적 틀이 정치권에 없기 때문이다. 그는 기껏해야 제 불운을 탓하거나 증거를 남긴 걸 깊이 후회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정치권의 누구도 그걸 비난하기 어렵다(그러나 많이들 비난한다, 역시).

정권 교체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그러나 정권교체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정권교체로 무엇을 만들어낼 것인가다. 정권 교체는 단지 바통 터치 수준으로 끝날수도, 작더라도 의미있는 변화로 이어질수도 있다. 전적으로 시민의 비판과 견제 능력에 달려 있다. 유례없이 까칠하고 야무진 시민들을 상상한다.
2017/02/01 07:56 2017/02/01 07:56
2017/01/25 22:35
그런데.. 예술가라는 사람들이 이미 누구나 대놓고 욕하는 대상을 거듭 욕하고선 저항 예술이니 현실 풍자니 말하면 보기 딱하지 않은가. 그것은 예술적 우둔함을 스스로 폭로하는 일이거나 기껏해야 얄팍한 장삿속의 발현 외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대개의 사람들이 보지 못하거나 놓치는 세계의 구멍들을 논리 이전에 직감으로 먼저 알아차리고 예민하게 반응할 수 없다면, 굳이 예술을 할 이유가 있는가.
2017/01/25 22:35 2017/01/25 22:35
2017/01/25 19:41
파시즘은 여론의 힘으로 작동한다. 강력한 파시즘 체제란 결국 여론 장악에 성공적인 파시즘 체제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 역시 여론을 기반으로 집행된다. 흔히 다수 대중은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고 파시스트가 억압한(했)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에서 그런 일은 없다. 표현의 자유는 급진 이념, 성, 폭력 등에 대한 다수 대중의 반감에 힘입어 억압된다. 그 반감이 상당 부분 조작되거나 선동된 것이라는 반론은 근거있는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것, '조작되거나 선동되는 대중'이야말로 문제의 본질이다.

대중의 의식이 진전될수록 표현의 자유 역시 진전되는 경향이 있지만, 여론을 통한 표현의 자유 억압이 완전히 종식되는 일은 없다. 표현의 자유가 어지간해진 상태에서 흔히 사용되는 억압 수법은 '비평'의 문제와 '허용(금지)'의 문제를 정서적으로 뒤섞는 것이다. '더러운 잠'에 대한 여론을 보면 그런 현상이 심하다는 걸 알 수 있다. 물론 나는 이 작품이 비평의 대상이 되기엔 지나치게 조야하다고 본다. 그러나 '예술적 가치가 없다'는 말과 '허용되어선 안된다'는 말은 차원이 다르다. 후자는 파시스트의 주문을 외우는 일이며, 이미 확보된 표현의 자유의 수준과 범위를 전반적으로 축소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그렇다, 이미 확보된. 지금 당연하다고 믿는 표현의 자유들은 실은 상당한 시간 동안 허용 한계선을 넘나드는 싸움을 벌인 소수의 작가/예술가들이 쟁취해낸(준) 것이다. 그리고 그 싸움은 앞서 말했듯 파시스트와의 싸움이자 다수 대중 혹은 여론과의 싸움이기도 하다. 싸움은 이 순간에도 진행된다. 나를 대중과 분리하는 태도, 나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충분한 양식을 갖고 있다는 자부는 의심되어야만 한다. 자유주의가 진전될수록 파시즘은 모든 곳에 편재(omnipresence)하기 때문이다. 내 안의, 우리 안의 파시즘이 괜한 말은 아니다.
2017/01/25 19:41 2017/01/25 19:41
2017/01/20 10:43
"평소 매끄러운 재판 진행과 명쾌한 결론으로 정평이 나 있다"는 이야기가 있는 걸 보면, 판사 조의연은 아마도 내놓은 수구 꼴통이거나 악질적 정치판사 쪽은 아닌 듯하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그는 철학이 없는 법관이다. 즉 그는 법 기술자일 뿐이다. 대개의 기술자는 사회에 이롭다. 그러나 단지 기술자이기만 해서는 안 되는,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철학을 갖지 않으면 사회에 심각한 해악을 일으키는 직업들이 있다. 법관은 그 중 하나다. 철학이 없는 법관은 의도하든 않든, 이재용이나 신동빈처럼 최고 수준의 법적 방어력을 구매할 수 있는 부자보다 법 앞에 완전히 발가벗겨진 가난뱅이에게 오히려 더 날카로운 칼을 휘두른다. 게다가 제 판단이 법적으로 적확하다는 확신에 가득 참으로써 최악의 흉기가 된다.
2017/01/20 10:43 2017/01/20 10: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