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3/16 08:58
굳이 혁명이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들이(혹은 우리가) 노예 상태에 있고,
노예에게 필요한 건 좋은 주인이 아니라 해방이기 때문이다.
2018/03/16 08:58 2018/03/16 08:58
2018/03/11 13:05
출판기념회를 비롯하여 이런저런 얼굴이라도 비쳐야 할 행사가 지나치게 많다는 건, 성공적인 사회 생활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돌이키기 어려울 만큼 진작부터 인생이 겉돌고 있음을 의미한다.
2018/03/11 13:05 2018/03/11 13:05
2018/03/10 09:44
촛불은 거대한 저항운동이었고 일부 급진적인 스펙트럼도 존재했지만, 체제의 최고 법기구인 헌법재판소에서 결론지어졌고 ‘기업의 영업 활동 방해’를 주요한 내용으로 했다. 그리고 기존 정치 체제 안에서 정권 교체로 마무리되었다. 반면에 미투 운동은 기존의 보수/진보, 불의/정의, 독재/민주 등의 구도로 이루어진 체제 자체를 무너트리고 변화시키고 있다. 미투운동은 혁명이다. 그런데 혁명은 기존의 법질서 체계 내에서만 진행되는 게 아닌지라 일정하게 무리한 상황이나 부작용을 수반하게 된다. 그에 대해 우려하거나 고민하는 이들이 있고, 그 자체론 당연하고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혁명적 상황에서 최선의 사유와 판단은 평상시와 다를 수밖에 없다. 현실의 텍스트는 물론 컨텍스트, 현실의 맥락과 배경을 더 애써 고려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때 우리는 본의와 달리 혁명을 훼방하게 된다. 관련하여 우리는’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을 참고할 수 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독재라는 말이 주는 부정적 느낌과 함께 매우 왜곡되어 있다. 현실 사회주의 국가에서 공산당 엘리트의 전제적 지배를 합리화하는 데 악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본디 의미는 혁명적 상황에서 당연히 나타나는 기존 지배 기득권 세력의 저항과 그로 인해 벌어지는 내전 속에서, 혁명의 본디 의미와 목적을 최선을 다해 수행해가는 잠정적 민주주의 체제다. 그 주체는 억압과 착취의 대상이던 프롤레타리아다. 미투 혁명에서 프롤레타리아는 여성들이다. 미투운동은 전국적인 평의회나 의결 기구 같은 걸 공식적으로 만들진 않았지만,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내용을 상당 부분 실제적으로 구현하고 있는 상태라 할 수 있다. 혁명이 성공적으로 수행될 수 있도록 지지하고 연대해야 마땅하다. 일정하게 수반하는 무리한 상황이나 부작용에 눈감지 않는 일 역시 지지와 연대의 일환이다. 다만 그 선후를 구분하고 주요한 것과 그에 수반하는 것을 구분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혁명의 주체가 누구인가를 분별해야 한다. 즉 무리한 상황이나 부작용에 눈감지 않는 일 역시 혁명의 주체들의 몫이 되도록 연대해야 한다.
2018/03/10 09:44 2018/03/10 09:44
2018/03/10 08:05
작년 4월 북한과 미국이 일촉즉발의 태도로 으르렁댈 무렵 바젤에 사는 후배가 물었다. ‘미국인 친구들이 한국에서 곧 전쟁 난다고 부모님을 스위스로 모시라는데 정말 전쟁 날 것 같은가?’ 나는 ‘단정할 순 없지만 너무 걱정 안해도 될 거’라고 했다. 무엇보다 현재 한국 대기업들이 지분의 절반 이상이 외국인 상태이니 한국 내에서 전쟁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는 거였다. 후배는 수긍한 듯했다. 어느 시대나 대체로 그렇지만 특히 이윤이 절대 가치인, ‘인격화한 자본’이 다스리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국제 분쟁의 원인은 하나다. 지배계급의 이해관계. 지배계급은 그에 따라 분쟁도 하고 전쟁도 하며 또 분쟁과 전쟁을 멈추기도 한다. 그들의 선택은 ‘자유 수호’ ‘악의 축 제거’ ‘성전’ ‘국익’ ’평화 추구’ 따위로 동원 대상인 인민의 기호에 맞추어 포장된다. 김정은과 트럼프가 극적으로 태도를 바꾼 건 물론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건 그들의 신념이나 의식이 바뀌어서라기보다 피차 전쟁은 실익이 없다는 판단을 하고 있었음을 뜻한다. 핵심은 평화가 소수 지배계급의 이해에 전적으로 좌우되는 현실 자체다. 북한이든 남한이든 미국이든 인민이 더 주인인 사회라면 애초부터 평화가 흔들릴 이유가 없다. 지배계급의 이해에 따라 우리가 불안해하거나 전쟁에 희생되는 상황도 부당하지만 그들의 이해에 따라 우리가 그들에게 감사하고 감동하는 것 역시 온당친 않다. 오히려 ‘이것들이 사람을 가지고 노는구나’ 부아가 치밀 일 아닌가. 그렇지 않다는 건 그런 현실이 우리의 동의에 의해 작동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동의가 지속되는 한 평화는 영원히 보장되지 않는다. 이른바 자유 민주주의의 허울에 대해 생각해볼 일이다.
2018/03/10 08:05 2018/03/10 08:05
2018/03/08 14:38
그런 인간인 줄 몰랐다고 욕하는 사람들 중에, 그런 인간에게 열광한 제 경솔한 안목과 얕은 식견에 대해 말하는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은 무척 기이하다. 열광과 실망을 마치면 다음 열광으로 이행하는 무한 반복은 민주주의의 주인이 아니라 노예의 태도다.
2018/03/08 14:38 2018/03/08 14: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