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3/20 11:17
친구가 <그들도 우리처럼>(1990) 이야기를 했다. 그 영화의 한 장면은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싸해진다. 밤 해변에 선 심혜진은 문성근에게 말한다. ‘내가 보이나요?’ 그 대사에 참 많은 것들이 담겨 있다. 많은 상처, 많은 슬픔, 많은 존중, 많은 배려, 많아서 적어져버린 희망... 아마도 당분간 그런 장면과 대사는 누구도 만들어내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마음에 많은 것들을 담을 줄 모르게 된 지 꽤 오래이므로.
2018/03/20 11:17 2018/03/20 11:17
2018/03/19 15:34
‘친일독재 세력 척결’ 앞에선 어떤 사회 문제나 모순도 후순위라는 확신에 가득 찬 한국형 리버럴들(진보라 불리는)이 개인숭배, 집단주의, 언론 탄압 등 이른바 전체주의적 사회주의가 보여준 악덕들을 빠짐없이 구현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의미있는 깨달음을 준다. 정의를 독점하고 개인주의의 미덕을 팽개친 인간은 좌우와 상관없이 끔찍한 단세포 동물이 된다.
2018/03/19 15:34 2018/03/19 15:34
2018/03/16 08:58
굳이 혁명이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들이(혹은 우리가) 노예 상태에 있고,
노예에게 필요한 건 좋은 주인이 아니라 해방이기 때문이다.
2018/03/16 08:58 2018/03/16 08:58
2018/03/11 13:05
출판기념회를 비롯하여 이런저런 얼굴이라도 비쳐야 할 행사가 지나치게 많다는 건, 성공적인 사회 생활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돌이키기 어려울 만큼 진작부터 인생이 겉돌고 있음을 의미한다.
2018/03/11 13:05 2018/03/11 13:05
2018/03/10 09:44
촛불은 거대한 저항운동이었고 일부 급진적인 스펙트럼도 존재했지만, 체제의 최고 법기구인 헌법재판소에서 결론지어졌고 ‘기업의 영업 활동 방해’를 주요한 내용으로 했다. 그리고 기존 정치 체제 안에서 정권 교체로 마무리되었다. 반면에 미투 운동은 기존의 보수/진보, 불의/정의, 독재/민주 등의 구도로 이루어진 체제 자체를 무너트리고 변화시키고 있다. 미투운동은 혁명이다. 그런데 혁명은 기존의 법질서 체계 내에서만 진행되는 게 아닌지라 일정하게 무리한 상황이나 부작용을 수반하게 된다. 그에 대해 우려하거나 고민하는 이들이 있고, 그 자체론 당연하고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혁명적 상황에서 최선의 사유와 판단은 평상시와 다를 수밖에 없다. 현실의 텍스트는 물론 컨텍스트, 현실의 맥락과 배경을 더 애써 고려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때 우리는 본의와 달리 혁명을 훼방하게 된다. 관련하여 우리는’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을 참고할 수 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독재라는 말이 주는 부정적 느낌과 함께 매우 왜곡되어 있다. 현실 사회주의 국가에서 공산당 엘리트의 전제적 지배를 합리화하는 데 악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본디 의미는 혁명적 상황에서 당연히 나타나는 기존 지배 기득권 세력의 저항과 그로 인해 벌어지는 내전 속에서, 혁명의 본디 의미와 목적을 최선을 다해 수행해가는 잠정적 민주주의 체제다. 그 주체는 억압과 착취의 대상이던 프롤레타리아다. 미투 혁명에서 프롤레타리아는 여성들이다. 미투운동은 전국적인 평의회나 의결 기구 같은 걸 공식적으로 만들진 않았지만,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내용을 상당 부분 실제적으로 구현하고 있는 상태라 할 수 있다. 혁명이 성공적으로 수행될 수 있도록 지지하고 연대해야 마땅하다. 일정하게 수반하는 무리한 상황이나 부작용에 눈감지 않는 일 역시 지지와 연대의 일환이다. 다만 그 선후를 구분하고 주요한 것과 그에 수반하는 것을 구분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혁명의 주체가 누구인가를 분별해야 한다. 즉 무리한 상황이나 부작용에 눈감지 않는 일 역시 혁명의 주체들의 몫이 되도록 연대해야 한다.
2018/03/10 09:44 2018/03/10 09: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