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2/24 09:46
활동가에게 ‘화를 내면 교감하기 어렵다’ ‘폭력은 거부감을 준다’ 같은 충고를 하는 ‘의식있는’ 인사들을 보면 딱하다. 활동가 중에 그걸 모르는 사람이 있겠는가. 화내지 않으면 안되는, 점잖고 온화한 얼굴로만은 어려운 범주의 문제가 있을 뿐이다. 인사들은 자신이 점잖고 온화한 얼굴로 말해도 세상이 귀를 기울이는 범주의 이야기만, 즉 체제가 그어준 안전선 안에서만 행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들은 리버럴 중산층과 미디어의 각광이 안전선을 넘은 자들에 대한 혐오 확산으로 받은 체제의 보상이라는 사실 역시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닥친 위협에 점잖고 온화한 태도만 유지하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선을 넘어선 상황을 염두에 둔다. 사회운동도 마찬가지다. 선 안에 머무는 사람이 선을 넘어 어렵게 싸우는 사람에게 나처럼 하라 충고하는 건 염치없는 일이다.
2017/12/24 09:46 2017/12/24 09:46
2017/12/23 09:27
진지하게 생각해볼 문제는 강용주에게 실형을 구형한 검찰이 아니라, 이런 상황을 수치스러워하지 않는 하고많은 민주 시민들이 아닐까. 그들은 강용주에게 무관심한 게 아니다. 그들은 강용주를 짐짓 두려워한다. 강용주는 ‘간첩’이기 때문이다. 만일 강용주가 ‘민주화운동가’(체제의 정상화를 위해 헌신한)였다면 이미 온 나라가 소란스러웠다. 오래전 강용주는 극우 파쇼체제에 의해 묶였었다. 이제 그는 이 고매한 민주 체제와 민주 시민의 침묵에 의해 묶여 있다.
2017/12/23 09:27 2017/12/23 09:27
2017/12/22 14:46
부유하고 화려한 삶을 영위하는 연예인이 상식적인 말 한 마디를 하면 몇날 며칠을 환호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 상식을 우리 삶에 구현해내느라 싸워왔고 다시 상식 이상의 것을(미래의 상식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척박한 환경 속에서 싸우고 있는 활동가들에겐 놀랄 만큼 무관심하다는 사실은, 우리 시대의 정신적 경박함을 보여주는 주요한 사례다.
2017/12/22 14:46 2017/12/22 14:46
2017/12/22 14:01
현자들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고 그게 진정한 행복을 찾는 길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해왔다. 그러나 그 말을 실천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단지 심리적 전향이 아니라 삶의 전향이기 때문이다. 즉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는 말은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있도록 삶의 방향을 바꾸라’는 말이다. 인간의 가치가 교환가치로 일원화하고, 내 욕망이 아닌 것을 욕망하게 하는 자본주의 하에서 삶의 방향을 바꾸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자본주의 하에서 개인이 진정한 행복을 찾는 일과 혁명이 분리될 수 없는 이유다. 메타노이아(삶의 근본적 전향, 한국어 성서에 ‘회개’라 번역되어 있는)가 곧 혁명이다.
2017/12/22 14:01 2017/12/22 14:01
2017/12/20 10:46
주로 노빠를 대상으로 쓴 글이지만 오늘 문빠는 훨씬 더 심각해 보인다. 노빠가 피해자 정서를 보였다면 문빠는 완장을 찬 토벌대다. 이 글에서 ‘생계형 범죄’라는 말을 한 사람이 바로 조기숙이다. 김어준은 조기숙의 마초 버전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들보다 훨씬 더 교활한 방식으로 순진한 사람들의 마음을 흐트러트려온 건(빠의 양산에 기여해온 건) 유시민이다. 점잖고 지각있어 보이는 사람들 중엔 문빠를 혐오하면서 유시민에 호의적인 사람들이 많다. 시스템에 놀아나지 않는 교양을 가지기가 쉽지 않은 시절이다.

2017/12/20 10:46 2017/12/20 10: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