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5/03 12:53
평화에 대한 흔한 오해 중 하나는 평화가 신념이나 태도로 결정된다는 생각이다. 그런 생각은 세상이 평화를 염원하는 선한 세력과 평화를 파괴하려는 악한 세력으로 나뉘어져 있다고 가정한다. 그러나 평화를 파괴하려는 악한 세력 같은 건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가 가능한 한 평화를 원한다. 평화가 파괴되는 유일한 경로는, 지배계급의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다. 이해관계의 충돌없이 평화를 깨트리는 지배계급은 없고, 이해 관계가 충돌할 때조차 신념과 태도로 평화를 고수하는 지배계급도 없다. 소수의 지배계급이 존재하는 한 제아무리 평화에 대한 염원이 넘쳐흘러도 평화는 결국 파괴되기 마련이다. 평화를 얻는 유일한 방법은 염원이 아니라 투쟁, 다수 인민이 지배하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투쟁이다.
2018/05/03 12:53 2018/05/03 12:53
2018/05/03 09:40
종교개혁을 타락한 카톨릭 교회에 대한 개혁운동으로만 기억하면, 부르주아 계급이 귀족의 세상을 접수해가는 장구한 전쟁의 신호탄이자 첫 승리라는 역사를 잊게 된다. 종교개혁은 신분은 신의 뜻임을 가르치던 교회에 사유재산과 경쟁이라는 자본주의 교리를 심었다. 미국 남북전쟁을 링컨의 위대한 휴머니즘으로만 기억하면, 상공업 위주 청교도가 중심이던 북부와 노예 농장을 하던 귀족 출신 남부의 이해 충돌이라는 역사를 잊게 된다. 노예 해방, 즉 자유로운 노동자의 공급은 미국 자본주의의 필연적 요구였다. 남북 정상회담에서 감동을 느끼는 건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이 상황을 민족과 평화 회복의 의미로만 본다면, 극우에서 리버럴로 정치 개편에 이은 남한 지배계급의 경제 재편 전략이라는 역사를 잊게 된다.

역사는 지난 시사이며 시사는 진행 중인 역사다. 역사는 시사의 눈으로 시사는 역사의 눈으로 봐야 한다.
2018/05/03 09:40 2018/05/03 09:40
2018/05/02 11:58
얼마 전 이북기계를 바꾸었다. 작동도 부드럽고 화면이 커서 pdf 문서 읽기가 편해졌다. 문제는 슬립화면이 영 눈에 거슬렸다는 것. 웹에서 이것저것 찾아보다가(이런 것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편이다) 새로 만들었다. De omnibus dubitandum. 모든 것을 의심하라. 맑스의 좌우명이던 데카르트의 말. 서체는 깔끔하게 팔라티노로.
2018/05/02 11:58 2018/05/02 11:58
2018/05/02 11:18
내일은 <혁명노트, 메타노이아> 세미나의 마지막 회다. 노예, 물신, 반공에 이어 이행을 주제로 한다. 해방이 아니라 이행(transition)인 이유는 해방이란 선언되는 순간부터 소멸되는 속성을 갖기 때문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해방은 '이행의 지속'이다. 돕과 스위지, 브레너 이행논쟁 등을 통해 생산양식의 변화가 진행되는 과정을 살펴보고, ’자본 : 노동’(잉여가치론), ‘자본 : (전체)인간’(물신숭배론)으로 구축된 이중 억압의 시스템을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짚어본다. 물론 단일한 결론보다는 이후 각자의 삶에서 지속될 사유의 단초를 만들어보는 게 목표다.

부산 복순도가에서 보내온 맛있는 손막걸리도 함께 나누며 편안히 진행할 생각이다. 내일 저녁 7시 대안공간 루프.

문의 gallery.loop.seoul@gmail.com
2018/05/02 11:18 2018/05/02 11:18
2018/04/28 08:55
어릴 적 어른들은 ‘그림 좋다’라는 말을 즐겨 쓰곤 했다. 눈앞의 현실을 그림으로 비유하는, 비현실적일 만큼 보기 좋은 상황을 두고 하는 감탄의 말이었다. 감탄이 클수록 ‘좋’이 길어졌다. 살면서 어제처럼 그 말에 부합하는 장면도 드물었던 것 같다. 상황 자체도 강렬했지만 모든 시각적인 부분들이 매우 치밀했다. 그저께 저녁 세미나를 마칠 즈음 웃으며 ‘내일은 사상 초유의 정치극장이 열리는군요’ 했는데, 나 역시 여러 번 뭉클했다. 물론 극장에 가려진 여러 기만적 현실들이 있고, 마치 봉건 왕끼리 만남 같은 연출도 거슬릴 만했다. 그러나 ‘좋은 그림’을 한껏 즐기는 것 또한 우리의 권리다. 우리가 단지 정치극장의 관객이 아니라 정치의 주인이라는 전제에서 말이다.


약간의 논평
-극우세력의 붕괴는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극우 비판으로 기생하는 유사 자유주의 세력 역시 기반을 잃게 되었다.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정상성 진전으로 좌파도 남 핑계대기 어렵게 되었다.
-고래 보는 아이들의 병역 문제에 변화가 생길 것같다.
2018/04/28 08:55 2018/04/28 08: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