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3/21 23:35
이상한 인간은 어디에나 있는 법이다. 상대적으로 적은 영역과 많은 영역이 있을 순 있지만 결국 인간이 모인 곳이라면 이상한 인간은 반드시 있다. 물론 페미니스트 중에도 이상한 인간은 있고 노동운동가 중에도 이상한 인간이 있다. 그 이야기는 우리가 참으로 재수 없게도 그런 인간(들)을 만나거나 심지어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누구나 그런 상황에 직접 맞닥드리면 충격과 회의에 빠지고 개인적 경험과 그 운동 전체를 분리시키는 데 어려움을 느끼게 된다. 결국 잘 분리시켜 여전히 그 운동 전체와 대의에 대한 존중심을 잃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전혀 분리시키지 못하고 그 운동 전체와 대의에 대한 분노와 원한에 내내 허덕이는 사람도 있다. 그가 할 일은 복수가 아니라 어렵더라도 성인이 되는 것이다.
2018/03/21 23:35 2018/03/21 23:35
2018/03/21 12:54
시안 내보고 협의하고 하는 과정 없이 그냥 알아서 해달라 맡기는 작가들이 있다.(그렇게 해도 충분하다는 의미와 함께 그렇게 하는 게 낫다는 의미다.) 그 중 한 사람인 소복이 작가의 새 연재 ‘엄마 말고, 이모가 해주는 이야기’ 첫 화가 나왔다. 소복이스럽다. 요즘 부모들은 옛 부모들처럼 아이에게 특정 직업을 권위주의적으로 강요하지 않는다. 재능의 발견, 주체의 자기계발이라는 방식으로 압박한다. 요컨대 오늘 한국 부모들은 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의 결합이라는 사회 변화의 정직한 담지자다. 소복이는 특유의 둥글고 무심한 캐릭터들에 그 예민한 이야기를  담아낸다.


2018/03/21 12:54 2018/03/21 12:54
2018/03/21 08:19
나쁜 일들은 대개 무지에 기인하거나 관련이 있다. 무지의 사전적 의미는 '아는 것이나 지식이 없음'이다. 그러나 근대적 교육이 일반화한 지 오래인 사회에서 그런 식의 무지는 찾아보기 어렵다. 무지의 현재적 의미는 '잘 알지 못하면서 안다고 확신하는 것'이다. 세상은 여전히 무지로 넘쳐난다. 이전과 양상이 다른 건 배운 사람들에게서 오히려 더 많이 발견된다는 점이다.
2018/03/21 08:19 2018/03/21 08:19
2018/03/20 11:17
친구가 <그들도 우리처럼>(1990) 이야기를 했다. 그 영화의 한 장면은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싸해진다. 밤 해변에 선 심혜진은 문성근에게 말한다. ‘내가 보이나요?’ 그 대사에 참 많은 것들이 담겨 있다. 많은 상처, 많은 슬픔, 많은 존중, 많은 배려, 많아서 적어져버린 희망... 아마도 당분간 그런 장면과 대사는 누구도 만들어내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마음에 많은 것들을 담을 줄 모르게 된 지 꽤 오래이므로.
2018/03/20 11:17 2018/03/20 11:17
2018/03/19 15:34
‘친일독재 세력 척결’ 앞에선 어떤 사회 문제나 모순도 후순위라는 확신에 가득 찬 한국형 리버럴들(진보라 불리는)이 개인숭배, 집단주의, 언론 탄압 등 이른바 전체주의적 사회주의가 보여준 악덕들을 빠짐없이 구현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의미있는 깨달음을 준다. 정의를 독점하고 개인주의의 미덕을 팽개친 인간은 좌우와 상관없이 끔찍한 단세포 동물이 된다.
2018/03/19 15:34 2018/03/19 15: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