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4/25 12:27
김어준을 비판하는 진중권 인터뷰가 많이 읽히는 걸 보니 김어준의 음모론에 대한 거부감이 꽤 확산된 모양이다. 그의 단순한 사회 인식과 망상적 상상력이 유효한 지점도 있지만, 수구세력에 대한 거부감과 결합하면서 지나치게 미화/과포장되어온 것도 사실이다. 음모론과 함께 여론 지형을 망가트린 건 이른바 댓글 문화다. 기원은 2천년초, 인간의 소통 예의가 인터넷 세계에서 전면 재구성되는 희한한 상황이고 진중권은 그와 깊은 관련이 있다. 댓글문화의 원조가 음모론의 원조를 비판하는 셈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모든 일의 책임을 묻긴 어렵다. 그들은 제 나름의 방식으로 ‘물질세계에서 생존’을 추구해왔을 뿐이다. 사람들이 좋아라 하고 제 명성과 수입도 오르고 그 대상이 나쁜놈 추한놈이 맞는데, 사회에 미치는 장기적 해악을 고려하여 거부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걸 비판할 만큼 지적이거나 성찰적인 사회에 살고 있지 않다. 근본적인 책임은 자칭 진보시민들에게 있다. 그들은 지난 20여년 동안 사회 비판을 사회에 대한 냉정하고 깊은 사유로 진전시키길 회피하고, 카타르시스의 도구로 사용해왔다. 김어준과 진중권의 나쁜놈 추한놈 까기에 대한 카타르시스든, 지금 김어준을 까는 진중권에 대한 카타르시스든 그들은 늘 정치의 주인이 아니라 정치극장의 관객이다. 그들에게 자본주의가 그리 우스운가, 정말 김어준 진중권이 하듯 눈앞에 보이는 나쁜놈 추한놈만 욕하고 솎아내면 해결되는 단순한 시스템이라 믿는가, 질문한다면 그들 중 단 한사람도 그렇다고 대답하진 않을 것이다. 바로 그 지점이다. 완전한 자멸을 목표로 하는 게 아니라면 정치극장을 빠져나갈 때도 되었다. 20년이다.
2018/04/25 12:27 2018/04/25 12:27
2018/04/18 18:06
내일은 <혁명노트, 메타노이아> 세미나 두번째 시간이다. '자본주의교의 3위 일체'라는 제목으로, 자본주의 물신숭배에 대해 논의한다. 계급 사회는 저마다 시스템에 순종을 위한 절대 의식을 구비한다. 물신숭배는 스스로 인간임을 부인하는 노예의 의식, 모든 게 신의 뜻이라는 농노의 의식의 자유 시민 버전이다. 발터 벤야민의 '종교로서 자본주의' 노트를 텍스트로 상품 소비 사회의 종교성과 우리 삶 속 사례들을 훑어본 다음, 맑스의 논의를 살펴볼 계획이다. 물신숭배는 단지 허위의식의 차원에서 작동하는 게 아니라 자본주의 경제 구조와 한몸이며 중력의 법칙처럼 작동한다. 맑스의 물신숭배론은 그놈의 '경제 결정론' 오해와 함께 오랫동안 그 중요성이 무시되어 왔다. 초기와 후기 사이에 단절이 존재한다는 견해도 있다. 논쟁과 토론은 계속되어야겠지만 분명한 건 우리가 그의 물신숭배론에 어느 때보다 부합하는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문의: gallery.loop.seoul@gmail.com
2018/04/18 18:06 2018/04/18 18:06
2018/04/18 15:34
김기식의 사퇴로 금융개혁은 물 건너갔다는 논평들이 있다. 먼저 분명히 해둘 것은 이번 사태의 책임은 시민이 아니라 청와대에, 특히 최소한의 판단력을 상실한 민정수석 조국에게 있다. 제 정치적 이해관계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차라리 좀더 교활하기라도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김기식이니 조국이니 운동권 출신  386의 정치 놀음이 아니라 금융개혁 자체일 것이다. 김기식은 장하성 김상조와 함께 참여연대의 경제민주화 운동의 주역으로 알려져 있다. 그에 대한 기대는 3인 조합의 ‘제도화’에 대한 기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두가지 중요한 문제가 빠져 있다. 그들이 벌여온 경제민주화 운동의 실제 성과에 대한 평가, 그리고 그에 앞서 경제민주화가 무엇인가라는 사회적 토론이다. 알다시피 그들의 경제 민주화론은 ‘재벌개혁’으로 대변되며, 해결책은 이른바 영미식 주주자본주의의 작동이다. 주식 시장이 국적 없는 투기 시장 이상도 이하도 아닌 현실에서 황당한 견해이긴 하지만, 경제민주화론의 이론과 노선에서 가장 우파 버전이라고는 할 수 있다. 재벌 등 주요한 생산수단의 사회화, 노동자 공동 결정 등을 뼈대로 하는 경제민주화론의 좌파 버전까지 가지 않더라도 경제민주화론이라기보다는 ‘경제 자유화론(혹은 시장화론)’이라는 이름이 좀더 어울린다. 여하튼 그 모든 평가와 토론은 감쪽같이 생략되어 있다. 김기식의 사퇴를 둘러싼 이런저런 논란과 소동은 바로 그 평가와 토론을 은폐하는 ‘정치 극장’이다. 극장에 중요한 게 관객의 영화에 대한 호오가 아니라 흥행이듯, 이번 정치극장에서 중요한 것도 사퇴 찬성(은 물론 당연하나)인가 반대인가가 아니라 사퇴 찬성과 반대를 둘러싼 논란과 소동 자체다. 한국 정치는 갈수록 정치 극장화하고 있다.
2018/04/18 15:34 2018/04/18 15:34
2018/04/16 14:57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말은 단지 추억하겠다는 말이 아니다. 부러 차갑게 식힌 분노, 뜨거움을 내 이성과 사유에 새긴 차가운 분노만이 독하게 지속된다. 세월호 침몰, 보름 후에 썼던 글.


분노는 차갑게 지속된다

2018/04/16 14:57 2018/04/16 14:57
2018/04/15 19:47
김기식의 말도 안 되는 행태에 대한 비판을 반개혁 기득권세력의 의도에 봉사하는 거라 단정하고 개탄하는 글이 타임라인에 눈에 띈다. 전체 공개로만 글을 쓰고 있어서 음모론이나 기계적 진영 논리에 매몰된 경우는 페친을 해지하는 편인데도 그런 글이 종종 보이는 걸 보면 상황이 가볍지 않다. 음모론이나 기계적 진영 논리는 결코 비합리적 사고에 기인하는 단순한 사회 현상이 아니다. 그걸 통해 제 사회적 경제적 기득권을 축적하는, 정치 브로커들의 계획적이고 치밀한 비지니스 모델이다. 시민이 정치에 관심을 갖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스스로 주권자의 지위를 포기하고 정치 브로커의 고객 노릇을 할 이유가 있는가.
2018/04/15 19:47 2018/04/15 19: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