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5/04 14:48
15년 전 쓴 글. 만일 우리가 그 즈음부터라도 비판적지지나 사표론을 넘어서는 용기를 가졌다면 지금은 전혀 다른 현실을 맞았을 것이다. 물론 다 지난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난 일에서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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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념대로 찍어라

10여년 전, 재야 출신 국회의원의 보좌관 노릇을 하던 선배는"나중에 노무현이 대통령 선거에 나가면 발 벗고 뛸 거"라 말했다. 노무현은 처음부터 보기 좋았던 모양이다. 세월이 흘러 노무현은 대통령 선거에 나왔고, 이변이라 불릴 만큼 약진하고 있다. 노무현의 개혁 이미지는 대개 인정할 만한 사실이다. 그는 조선일보와 국가보안법에 공개 반대하고 지역주의에 당당히 맞선 유일한 정치인이다. 이른바 '비판적 지지'(어차피 당선 가능성이 없는 진보 후보를 찍어 죽은 표를 만드느니 좀더 나은 보수후보에게 표를 몰아주어 진보의 미래를 도모한다는)의 두번째 대상으로 그가 거론되는 건 그런 점에서 당연해 보인다.

'비판적 지지'의 첫번째 대상은 김대중이었다. 밝히자면, 나도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그렇게 했다. 비판적 지지론이 아닌 진보 독자 후보론을 주장하던 진영에 더 가까웠지만, 그래서 다들 내가 그렇게 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지만, 나는 망설임 끝에 그렇게 했다. 진보진영의 적지 않은 사람들이 조직적으로 혹은 개인적으로 그렇게 했다. 드디어 김대중은 대통령이 되었고 그에게 표를 몰아준 진보주의자들은 그의 개혁성에, 그의 개혁성을 통해 도모될 진보의 미래에 기대했다.

기대가 의구심으로 의구심이 다시 지루한 실망으로 바뀌는 데는 단지 몇 달이 필요했다. 나는 그 즈음 내가 어리석었음을 깨달았다. 김대중에 대한 실망의 원인은 김대중에게 있는 게 아니라 그에게 실망하는 진보주의자들에게 있었다. 어리석게도 진보주의자들은 보수주의자인 김대중이 진보적이기를 기대했다. 실망에 찬 그들은 말하기를 김대중이 변했다고 했다. 그러나 변한 건 아무 것도 없었다. 김대중은 예나 지금이나 보수주의자이며 그의 정치는 예나 지금이나 그의 이념에 충실하다. 김대중에 대한 진보주의자들의 기대는 그가 한국사회 보수영역의 마이너로서 한국사회 보수영역의 메이저인 파시스트들에게서 오랫동안 견제 받는 모습을 통해 생긴 판타지였다.

김대중에 대한 실망을 노무현으로 보상하려는 심정이야 인간적으로 이해 안가는 바 아니나, 정치적으로 가련하기만 하다. 노무현이 김대중보다 인격적으로 신뢰가 가는가. 나 역시 그래 보이지만, 개인의 인격이 정치를 좌우할 수 있다는 가설은 텔레비전 궁중사극에서나 가능할 것이다. 노무현의 판타지에 젖은 사람들은 오늘 김대중을 잠시 접고 옛 김대중을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 그는 한 때 오늘 노무현과는 비교가 안될 판타지를 가진, '선생'이라 불리는 정치인이었다. 노무현에게 남은 질문은 하나다. 노무현은 (개혁적) 보수주의자인가 진보주의자인가. 지역주의에 당당히 맞선 노무현은 신자유주의에도 당당히 맞서는가, 노무현은 하층계급의 싸움에 연대하는가.

김대중의 정치는 바보가 아닌 사람들로 하여금 이른바 나쁜 보수와좋은 보수의 차이가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것(특히 오늘처럼 극단적 파시즘이 이면으로 물러난 상황에선 더욱 더)을 충분히 깨닫게 할 만했다. 좋은 보수후보에 표를 몰아주어 진보의 미래를 도모한다는 노회한 전략은 한국 정치에서 진보의 지분(득표율, 혹은 국회의원 수로 계량할 수 있는)이 하다못해 '김종필의 당' 만큼이 되어, 캐스팅보트 노릇이라도 가능해진 다음에나 생각할 일이다. 진보주의자, 혹은 진보정당의 국회의원이 단 한명도 없는 세계 유일의 나라에서 진보주의자가 할 일은 오로지 '털끝 만큼이라도 진보의 지분을 늘이는 것'이다.

(중립적으로 말하자면) 모든 사람이 제 이념대로 순정하게 찍는 것, 그래서 한국정치의 이념적 스펙트럼을 한국인들의 이념적 스펙트럼과 동기화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것만이 한국인들이 제 처지에 가장 적절한 정치를 맞을 유일한 방법이다. 네 이념대로 찍어라. 한국사회가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럽다면 가장 반동적인 보수후보를 찍어라. 한국사회의 표면적 악취라도 우선 덜고 싶다면 가장 개혁적인 보수 후보를 찍어라. 그러나 한국사회의 보다 근본적인 변화를 진지하게 바란다면 (당선 가능성을 절대 기준으로 한 이런저런 되지 못한 정치평론일랑 걷어치우고) 그저 가장 진보적인 후보를 찍어라. 진보에 외상은 없다, 네 이념대로 찍어라.(씨네21 2002/04/03)





2017/05/04 14:48 2017/05/04 14:48
2017/05/03 08:55
불교 사상의 핵심은 연기론(緣起論), 우주만물이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연기론은 불교의 범주를 넘어 여하한 종교의 신앙에도 기본적 사고틀이 된다. 연기적이지 않은 신앙은 제아무리 크고 휘황해도 해방이나 구원과는 무관한 미신일 뿐이다. 신앙을 갖는다는 건 먼저 나와 온 우주만물이 한 몸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것은 내 존재가 우주만물의 미미한 일부일 뿐이라는 절대 겸손이자, 내 신념에 우주만물의 힘이 개입한다는 절대 용기이다.
2017/05/03 08:55 2017/05/03 08:55
2017/05/03 07:34
예수 믿는다는 사람들이 홍준표를 지지하는 건 말도 안되지만, 그걸 비난하며 문재인을 지지하는 것 역시 말이 안된다. 예수는 로마 제국주의와 헤롯 괴뢰정권 그리고 성전귀족인 사두가이파에게 당연히 적대적이었지만 당시의 개혁세력인 바리사이파엔 좀더 심각하게 적대적이었다. 하느님나라의 구현, 세계의 근본적 변화에 드러난 악보다 은폐된 악인 그들이 오히려 더 결정적 걸림돌이었기 때문이다. 불꽃 튀는 격돌이었다. 예수는 그들에게 '독사의 새끼들'이라는 극언을 서슴치 않고 바리사이들 역시 일찌감치 예수를 제거하기로 결심한다.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예수의 말과 행적이 적힌 복음서를 한번이라도 제대로 읽은 사람이라면 이번 선거의 기만성과 한계에 깊이 낙심할 수밖에 없다. 적어도 그들은 심상정을 찍으면서도 제 신앙적 양심에 가책을 느낄 만큼 급진적이다.
2017/05/03 07:34 2017/05/03 07:34
2017/05/01 15:45
노동해방은 단지 노동 계급의 권력 장악,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뜻하지 않는다. 노동해방은 자본의 가치관으로 장악된 세상을 노동의 가치관으로 바꾸어내는 것이다. 대개의 사람들이 남보다 더 많이 갖고 남보다 앞서는 걸 성공이라 여기는 세상이, 조금 덜 갖더라도 조금 더디 가더라도 함께 가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세상으로 바뀌는 게 노동해방이다. 그게 아니라면 노동 계급의 권력 장악, 생산수단의 사회화는 단지 어제의 피억압 계급의 일부가 새로운 지배계급이 되는, 권력의 교환에 봉사할 뿐이다. 동유럽 사회주의와 북유럽 사민주의의 상반된 결과는 그런 사실들을 보여준다. 전자의 사회는 노동 계급의 권력 장악,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이루었지만 가치관의 변화는 오히려 후자의 사회에서 좀더 진전되었다.
2017/05/01 15:45 2017/05/01 15:45
2017/04/26 09:56
지지자와 빠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지지자는 제 행동이 지지 대상에 미치는 영향을 인식하고 고려하지만 빠는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지지 대상에게 비판 받을 일이 생겼을 때 지지자는 그 비판의 정당한 부분을 일단 인정한다. 지지 대상의 합리적 환경을 드러내보임으로써 지지 대상의 합리성을 환기하고 악화된 여론의 회복에 기여하는 것이다. 빠는 비판의 정당성을 일절 인정하지 않고 무작정 그 대상을 옹호함으로써 악화된 여론을 더욱 악화시킨다. 고 노무현 대통령은 퇴임 후 가족 비리 문제로 여론이 최악의 상태일 때 자신의 홈페이지에 '고맙지만 여러분이 너무 그러면 내 입장이 좀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는 내용의 글을 올린 적이 있다. 빠의 행태에 별다른 변화는 없었고 여론은 더욱 악화되었다. 지지자와 빠의 행태가 그렇게 다른 이유는 지지자는 지지 대상에 애정을 가진 사람이지만, 빠는 자기애를 대상에 투사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빠가 그 대상에 대한 비판에 합리적 태도를 보이지 않는 것도 대상에 대한 비판을 자신에 대한 비난이나 모욕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빠는 내면적 결핍(주로 낮은 자존감)을 사회적 명성을 가진 대상을 통해 채우려는 병증이다. 노빠/문빠와 박빠는 철천지 원수처럼 보이지만, 같은 병을 앓는 환우이며 그들에게 필요한 유일한 조처는 전문가의 치료다.
2017/04/26 09:56 2017/04/26 09: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