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1/25 22:35
그런데.. 예술가라는 사람들이 이미 누구나 대놓고 욕하는 대상을 거듭 욕하고선 저항 예술이니 현실 풍자니 말하면 보기 딱하지 않은가. 그것은 예술적 우둔함을 스스로 폭로하는 일이거나 기껏해야 얄팍한 장삿속의 발현 외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대개의 사람들이 보지 못하거나 놓치는 세계의 구멍들을 논리 이전에 직감으로 먼저 알아차리고 예민하게 반응할 수 없다면, 굳이 예술을 할 이유가 있는가.
2017/01/25 22:35 2017/01/25 22:35
2017/01/25 19:41
파시즘은 여론의 힘으로 작동한다. 강력한 파시즘 체제란 결국 여론 장악에 성공적인 파시즘 체제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 역시 여론을 기반으로 집행된다. 흔히 다수 대중은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고 파시스트가 억압한(했)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에서 그런 일은 없다. 표현의 자유는 급진 이념, 성, 폭력 등에 대한 다수 대중의 반감에 힘입어 억압된다. 그 반감이 상당 부분 조작되거나 선동된 것이라는 반론은 근거있는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것, '조작되거나 선동되는 대중'이야말로 문제의 본질이다.

대중의 의식이 진전될수록 표현의 자유 역시 진전되는 경향이 있지만, 여론을 통한 표현의 자유 억압이 완전히 종식되는 일은 없다. 표현의 자유가 어지간해진 상태에서 흔히 사용되는 억압 수법은 '비평'의 문제와 '허용(금지)'의 문제를 정서적으로 뒤섞는 것이다. '더러운 잠'에 대한 여론을 보면 그런 현상이 심하다는 걸 알 수 있다. 물론 나는 이 작품이 비평의 대상이 되기엔 지나치게 조야하다고 본다. 그러나 '예술적 가치가 없다'는 말과 '허용되어선 안된다'는 말은 차원이 다르다. 후자는 파시스트의 주문을 외우는 일이며, 이미 확보된 표현의 자유의 수준과 범위를 전반적으로 축소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그렇다, 이미 확보된. 지금 당연하다고 믿는 표현의 자유들은 실은 상당한 시간 동안 허용 한계선을 넘나드는 싸움을 벌인 소수의 작가/예술가들이 쟁취해낸(준) 것이다. 그리고 그 싸움은 앞서 말했듯 파시스트와의 싸움이자 다수 대중 혹은 여론과의 싸움이기도 하다. 싸움은 이 순간에도 진행된다. 나를 대중과 분리하는 태도, 나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충분한 양식을 갖고 있다는 자부는 의심되어야만 한다. 자유주의가 진전될수록 파시즘은 모든 곳에 편재(ubiquitous)하기 때문이다. 내 안의, 우리 안의 파시즘이 괜한 말은 아니다.
2017/01/25 19:41 2017/01/25 19:41
2017/01/20 10:43
"평소 매끄러운 재판 진행과 명쾌한 결론으로 정평이 나 있다"는 이야기가 있는 걸 보면, 판사 조의연은 아마도 내놓은 수구 꼴통이거나 악질적 정치판사 쪽은 아닌 듯하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그는 철학이 없는 법관이다. 즉 그는 법 기술자일 뿐이다. 대개의 기술자는 사회에 이롭다. 그러나 단지 기술자이기만 해서는 안 되는,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철학을 갖지 않으면 사회에 심각한 해악을 일으키는 직업들이 있다. 법관은 그 중 하나다. 철학이 없는 법관은 의도하든 않든, 이재용이나 신동빈처럼 최고 수준의 법적 방어력을 구매할 수 있는 부자보다 법 앞에 완전히 발가벗겨진 가난뱅이에게 오히려 더 날카로운 칼을 휘두른다. 게다가 제 판단이 법적으로 적확하다는 확신에 가득 참으로써 최악의 흉기가 된다.
2017/01/20 10:43 2017/01/20 10:43
2017/01/17 02:56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광장을 만들었다. 광장의 힘이 특검을 만들었고 특검이 최소한의 구실을 하는가 여부는 단적으로 박근혜와 이재용을 구속시켜내는가에 달려있다. 특검은 이재용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함으로써 그 첫 걸음을 뗐다. '이재용 구속 촉구 탄원서'는 18일 오전 영장 실질심사가 열리기 직전 재판부에 제출된다고 한다. 정치적 견해와 이념은 조금씩 다르더라도 공화국의 성원이라면 당연히.

2017/01/17 02:56 2017/01/17 02:56
2017/01/13 17:41
문재인 지지 명단이 들어가 있는 블랙리스트란 블랙리스트라기보다 정치적 경쟁 세력 리스트에 가깝다. 물론 극우의 색안경을 쓴 박근혜 패거리가 보기엔 문재인 지지조차 충분히 좌익이자 체제 저항의 징표일 수 있다. 그러나 문화 예술인이라면 그런 파시스트의 관점을 누구보다 예민하게 거부해야 할까, 제 정체성의 인증으로 사용해야 할까. 이명박 시절엔 이명박만 욕하면 진보가 되었는데 박근혜 시절엔 박근혜만 욕하면 좌익도 되고 저항 세력도 된다. 사상의 하향 평준화는 오늘 진보의 가장 큰 재앙이다. 분노가 쉬워질 때 우리는 어김없이 몰락한다.
2017/01/13 17:41 2017/01/13 17: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