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1/03 17:20
신년 티브이 토론에서 유시민의 활약에 대한 이야기가 많기에 조금 훑어봤다. 토론은 오늘 한국 사회가 갇힌 프레임의 전형을 보여준다. 얼마 전 적었듯, 한국 사회는 보수/진보 기득권 연합(10%)과 다수 인민(90%)으로 나뉘어 있다. 전통적으로 기득권은 보수 엘리트(극우 독재 계열)의 것이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진보 엘리트(민주화 운동 계열)가 주류 사회에 진출하면서 기득권을 분점 하기 시작했고,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는 보수 엘리트와 대등한 수준의 기득권 세력이 되었다.(예를 들어,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 관료들 평균 재산은 동일하다.) 한국 사회가 한치도 나아가지 못하는 이유는 모든 의미 있는 사회 비판과 사회 변화의 에너지가 보수 엘리트와 진보 엘리트의 기득권 싸움에 소모되기 때문이다. 진보 엘리트가 갖는 결정적 약점이 있다. 기득권 연합의 일원이면서 다수 인민을 대변하는 것처럼 구는 기만적 상태다. 그들에게 가장 두려운 일은 인민의 상당수가 그에 항의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근래 그럴 만한 상황들이 끊임없이 펼쳐졌음에도 기만적 상태를 유지하는 데 성공해왔다. 그에 가장 기여한 게 ‘미디어 전략’이다. 나꼼수를 필두로 한 정치 팟캐스트, 오연호 등의 프레임 짜기(진보 집권 플랜), 그리고 손석희와 유시민으로 대변되는 티브이 토론 쇼 등이다. 이 모든 것들의 목적은 하나다. 한국 사회가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있다는 프레임을 공고히 하며, 진보 엘리트의 승리가 다수 인민의 삶에 기여한다는 관념을 주입하는 것이다. 이번 토론에서 유시민은 초입부터 현재의 경제 위기론이 ‘보수 기득권 세력의 이권 동맹’이라고 규정함으로써 그 목적에 신속히 접근한다. 토론이 실제 현실을 반영하는 장면을 상상해보라. 출연한 양 패널이 한 편이 되고 다수 인민을 대변하는 패널이 다른 한편이 되어서, 유시민에게 '보수 기득권이 아니라, 보수/진보 기득권 연합이다' 공격하는 장면을. 물론 현재의 프레임에선 절대 불가능한 일이며, 그거야말로 ‘신뢰받는 언론인’ 손석희의 진정한 소임이다. 프레임을 벗어나지 않는 한 현실 변화를 기대하긴 어렵다.

손석희나 김어준이나 유시민을 윤리적으로 비난하는 건 별 소용없는 일이다. 아무렴 그들이 ‘우리는 기득권 연합의 유지를 목표로 합니다!’라고 말하겠는가. 그들은 알면서 기만하고 있다기보다는, 제 ‘단순하고 소박한’ 세계관에 진심으로 빠져 있다고 보는 게 좀 더 정확할 것이다. 하루하루 먹고사는 일에 전력을 다하는 처지의 인민이 먼저 프레임을 빠져나가긴 어렵다. 그나마 책이라도 읽고 토론도 할 수 있는 여건과 상황이 되는 인텔리들이 ‘기여’ 해야 한다. 보수 정권 10여 년 동안 그들은 이명박 박근혜 욕만 하면 충분했고, 그 덕에 지적으로 현격히 퇴행했고 한없이 나태해졌다. 그래서 그들은 이 악랄한 프레임을 직시하거나 비판하긴커녕 ‘역시 유시민!’ 따위 즉자적 감탄사나 늘어놓는다. 고작 그런 소리나 하려고 그리 많이 배웠고, 여전히 책을 읽고 인문학적 사유를 말하는가. 그들이 스스로에게 절망하길 권한다.
2019/01/03 17:20 2019/01/03 17:20
2019/01/01 00:23
예수와 맑스는 의외로 비슷한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그중 하나는 새로운 사회는 없던 게 생겨나는 게 아니라
지금 사회가 그 씨앗을 품고 있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삶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내 안의 씨앗이 드러나는 새해가 되길 기원합니다.
2019/01/01 00:23 2019/01/01 00:23
2018/12/27 11:33
만일 아래의 이야기 - 개혁은 혁명적 지향으로만 이루어진다 - 가 썩 와닿지 않거나 거부감이 든다면, 상황을 국가나 거대 사회가 아니라 개인적 관계로 바꾸어 생각해보길 권한다. 다르지 않다. 심각한 수준에서 폭력적이고 이기적인 행동을 지속하는 배우자나 친구가 개혁(사과와 용서를 통한)으로 바뀌던가? 절대 바뀌지 않는다. 그는 개혁에 기생한다. 오로지 혁명(절연과 절교를 감수하는)으로만 바뀐다. 정말 관계가 끝날까 두려울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을 존중한다면 그런 관계는 되도록 빨리 끝내야 한다. 국가나 사회에서든 개인 관계에서든, 인간의 고통과 억압을 지속하는 힘은 언제나 ‘혁명에 대한 두려움’이다.
2018/12/27 11:33 2018/12/27 11:33
2018/12/27 10:25
흔히 개혁은 ‘혁명보다 현실적이고 현명한 사회변화‘ 쯤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역사를 조금만 살펴보면 알 수 있듯, 개혁이 이루어지는 유일한 경로는 ‘혁명적 지향에 대한 지배계급의 타협’이다. 지배계급은 구체적 위기의식 없인 절대 먼저 양보하거나 타협하지 않는다. 예컨대 오늘 한국인들이 선망하는 사민주의 복지사회는 젠체하는 사민주의자들이 말하듯 ‘사민주의 아이디어에 대한 전 사회적 양보와 타협’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다. ‘혁명적 사회주의 운동의 공세에 대한 지배계급의 도리 없는 타협’(그래서 ‘계급 타협’이라 부른다)으로 만들어졌다. ‘개혁은 혁명보다 어렵다’는 말은 개혁이 혁명적 지향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은폐한다는 점에서 교활하며, 개혁으로는 개혁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점에서 어리석다. 진심으로 개혁을 원한다면 혁명을 시작하라. 혁명이 싫다면 개혁도 꿈꾸지 마라.
2018/12/27 10:25 2018/12/27 10:25
2018/12/19 15:39
요 며칠 고래가그랬어엔 출판사들로부터 김은성 작가 연락처를 묻는 전화가 많았다. 김영하 씨가 TV에서 그의 책 <내 어머니 이야기>에 대해 언급해서 책을 찾는 사람이 많은데 정작 책은 절판 상태라고 했다. <내 어머니 이야기>는 4부로 되어 있는데 2, 3, 4부를 고그 69호부터 110호까지 연재했다. 처음 연재 이야기가 나왔을 때 40대인 작가가 그리는 제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3대에 걸친 여성사라 ‘어린이 잡지’에 맞는가 논의가 있었다. 그러나 오히려 그래서 좋다는 결론이 나왔고, 특히 예술성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고래가그랬어는 작가를 선정할 때 어린이 독자의 ‘미적 체험’을 중시하는 편이라, 예술적이고 작가적인 만화가 많이 실린다.) 단행본은 모두 새만화책에서 발간했다.

좋은 책이 늦게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읽히는 건 물론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애석한 건 이렇게 좋은 책을 제 힘으로 알아보는 사람이 적었다는 사실이다. 전에 <느낌표>라는 TV 프로그램의 책을 소개하는 코너를 기억할 것이다. 거기에 책이 소개되면 순식간에 수십만부가 팔려서 출판사와 작가들의 관심이 많았다. 책이 선정되었는데 거절된 경우가 딱 한 번 있다. 권정생의 <우리들의 하느님>이다. 그 책은 참 좋은 책이고, 나도 몇 권 사서 선물한 일이 있다. 그 책이 <느낌표>에 소개되어 더 많은 사람들이 읽을 때 생기는 분명한 유익이 있다. 그러나 선생은 해악이 더 많다고 판단한 것 같다. “책은 서점에서 한 권 한 권 짚어가며 고르는 것이고, 특히 아이들은 책을 고르는 일이 얼마나 행복한지 깨쳐야 하는데, 왜 TV에서 ‘이것 보십시오, 저것 보십시오’ 해서 그걸 막는가?”

선생이 우려한 문제는 더욱 심화되어 오늘 한국엔 제 취향과 안목으로 책을 고를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사라졌다. 이건 책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라 지식과 교양 전반에 관한 일이다. TV의 ‘예능 교양’을 즐겨보고 거기 소개된 책을 사고 출연한 유명인의 말을 곱씹는 일과, 나의 지적 주체성을 가꾸는 일이 어떤 관련을 갖는지 살펴본다면 좋을 것이다. 서점에 나가 천천히 내 힘으로 책을 고르는 일을 시작해본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처음엔 고른 결과가 좋지 않아 실망할 수도 있지만 그 실망들이 책을 고르는 능력을 키운다. 고그를 구독하고 있다면 아이와 함께 '진행 중인 명작’을 골라보는 것도 좋겠다.
2018/12/19 15:39 2018/12/19 15: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