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8/08 00:06
노무현 정부가 보수적 행보를 이어가자 실망한 많은 사람들이 '노대통령의 개혁 의지가 쇠퇴했다'고 말했다. 뒤집힌 말이었다. 이게 바로 노무현식 개혁이라고 말했어야 했다. 문재인 정부의 인사가 급기야 '황금박쥐' 박기영에 이르자 사람들은 문재인 정부답지 않은 인사라고 말한다. 아마 뒤집힌 말일 것이다. 그 인사야말로 문재인 정부를 말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내가 만든 상을 보기보다 사실을 보는 게 언제나 낫다.
2017/08/08 00:06 2017/08/08 00:06
2017/08/07 14:22
“아이를 주어진 여건 속에서 최선을 다해 양육하고 교육하는 건 부모의 당연한 의무다. 그러나 그 아이가 결국 어떤 일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는가는 전적으로 그의 권리다. 내 딸, 내 아들이라고 부르긴 하지만 자식은 ‘나와 귀한 인연을 맺은 남’이라는 걸 잊어선 안 된다. 그걸 잊는 순간 자식도 나도 불행해진다.”

부모 강연에서 꼭 하는 말이다. 한국 부모들은 교육열은 어느 사회보다 높지만, 자식과 인격적 분리 능력은 여전히 기이할 만큼 낮다. 그 부조화가 너무나 많은 상처와 고통을 만들어낸다. “아들 같아서 그랬다"는 박찬주 부인의 말은 틀렸다. 아들한테도 그래선 안 되니까. 그러나 그를 비난할 때, 내 아들 내 딸과는 어떤지 내 어머니 내 아버지와는 어떤지 한번쯤 다시 생각해보는 게 어떨까.
2017/08/07 14:22 2017/08/07 14:22
2017/08/06 11:06
최저 임금제 이야기를 하면서, 마르크스주의 운운하는 주류 경제학자들을 보면 실소가 나온다. 오늘 자본주의에서 이른바 시장원리에 내맡겨지지 않는 경제 정책들 가운데 마르크스주의와 무관한 게 있던가. 최저임금제는 애초부터 시장 원리와 주류경제학에 위배되는 개념이다. 주류경제학의 노동에 ‘인간의 존엄’ 같은 건 들어있지 않다. 주류경제학에서 노동은 시장에서 유통되는 상품일 뿐이다. 노동의 가치는 오로지 노동시장의 수요와 공급 상황에 맞춰 결정되는 임금으로 측정된다. 빈곤선 이하의 임금이든 대기업 CEO의 천문학적 연봉이든 부당하거나 비윤리적 임금이란 없다. 그러니 마르크스주의 운운할 거면 최저임금제 자체부터 반대하는 게 맞다. 최저임금제는 수용하면서 그 인상 폭이나 실행 방식을 따지며 마르크스주의 운운하는 건 자기모순이며 무지한 짓이다. 주류경제학자들이 늘 강조하듯, 마르크스주의를 표방한 현실 사회주의 나라들이 실패한 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적어도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마르크스주의적 수정,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견제는 순기능이 압도적이었다. 자본주의 체제를 보위하려는 방향이든(진보적 자유주의) 극복하려는 방향이든(사민주의), 자본주의는 마르크스주의에 기대고서야 체제의 안정을 얻을 수 있었다. 사실 주류경제학은 주기적인 불황과 공황을 비롯하여 자본주의의 주요한 속성과 모순 가운데 뭐 하나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그런 무능함에도 불구하고 주류일 수 있는 비결은 부자에게 봉사하는 경제학이기 때문이다. 오늘이 부자들의 세상이기 때문이다.
2017/08/06 11:06 2017/08/06 11:06
2017/08/03 14:55
우리가 사회적으로 나쁜 놈들에게 늘 당하는 이유는, 모든 나쁜 놈은 ‘활동 중’엔 좋은 놈이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나쁜 놈으로 여겨진다면 나쁜 놈에게 당할 이유도 없다. 또한 그건 나쁜 놈이 나쁜 놈일 수 있는 근거이기도 하다. 심지어 히틀러 같은 인류 최악의 괴물도 한창일 때는 구세주로 여겨졌으며, 바로 그 덕에 히틀러는 히틀러일 수 있었다. 나쁜 놈을 만드는 건 우리이며 나쁜 놈에 당하는 것도 우리다. 우리는 늘 나쁜 놈을 만들고 나쁜 놈에 당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미 나쁜 놈보다는 지금 활동 중인 나쁜 놈, 즉 좋은 놈으로 여겨지는 나쁜 놈에 좀더 집중해야 한다.
2017/08/03 14:55 2017/08/03 14:55
2017/08/01 17:39
근대적 자유주의는 모든 인간의 권리와 평등을 내세웠지만 실제로 구현한 건 인간의 권리와 평등이 (백인) 부르주아 남성만에게만 주어지는 세상이었다는 것. 나머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인간의 권리와 평등을 진전시킨 건 급진적 노동운동과 여성운동의 자유주의에 대한 오랜 투쟁이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기억할 것은 자유주의의 그런 기만성이 자유주의의 변함없는 속성이라는 것, 자유주의가 내세우는 이상은 자유주의에 대한 투쟁으로만 실현된다는 점이다. 자유주의가 본디 자본주의 체제의 이념, 즉 부르주아 남성의 지배에 봉사하는 이념인 이상 그 속성을 근본적으로 벗어날 순 없다. 유럽 사민주의와 곧잘 비견되는, 루즈벨트 이후 형성된 미국의 진보적 자유주의도 마찬가지다. 촛불이 만든 한국의 진보적 자유주의 정권도 물론 마찬가지다. 급진적 투쟁과 견제가 없다면, 그저 믿고 맡기기만 한다면  오로지 제 속성대로 나아갈 것이다. 며칠 전 청와대에서 대통령과 여유로운 얼굴로 맥주 파티를 한, 그 얼마 전엔 청문회장에 곤혹스러운 얼굴로 떼지어 앉아있던 바로 그 부르주아 남성들의 지배에 봉사하기 위해 말이다.
2017/08/01 17:39 2017/08/01 17: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