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7/02 19:33
예술에서 창작 여건은 창작과 정비례하지 않는다. 물론 지나치게 열악한 창작 여건은 예술가와 창작을 억압하며 그 점이 많이 강조되곤 하지만, 훌륭한 창작 여건 역시 예술가를 억압할 수 있다. 풍찬노숙하던 소설가가 인정받아 꿈꾸던 집필실을 갖는 시점과 작품이 졸렬해지는 시점이 일치하는 건 우연만은 아니다. 국지적 창작 여건에서 작업하던 감독이 인정받아 글로벌한 여건에서 작업하기 시작하면서 평범해지는 것 역시 우연만은 아니다. '옥자'에 기대가 컸는데 매우 실망했다. 특히 의아할 만큼 상투적인 사회적 식견, 도무지 깊이를 발견할 수 없는 연기 연출은 봉준호를 특별한 감독 중 하나로 봐야 할 이유를 재고하게 했다.

추신. 영화평론가들이 옥자에 준 별점과, 말도 안 되는 별점을 합리화하느라 애쓰는 단평을 보는 건 괴로운 일이다. 미의식이 없다면 자의식이라도 가져주길.
2017/07/02 19:33 2017/07/02 19:33
2017/07/01 09:32
사회적 기업은 대개 '기업의 사회화'라 설명된다. 그래서 자본주의 모순을 극복하는 현실적 방안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런 맥락의 사례도 실재한다. 그러나 사회적 기업은 '사회의 기업화'이기도 하다. 사회운동을 시장으로 포섭하는 방편이자, 장사하면서 운동하는 느낌(이나 외관)을 갖고 싶은 사람의 방편이기도 하다는 말.
2017/07/01 09:32 2017/07/01 09:32
2017/06/29 13:57
언젠가 이렇게 썼다. “한국의 오른쪽엔 보수 부모가 있고 왼쪽엔 진보 부모가 있다. 그리고 그들 아래에 가난한 부모가 있다.” 지금 이라면 '가난한 부모'를 '보통 부모'라 쓸지도 모르겠다. 90퍼센트 부모들이니. 교육 문제는 한국 사회가 보수와 진보로 나뉜 사회가 아니라 10:90으로 나뉜 사회임을 매우 생생히 보여준다. 외고 과학고 자사고 국제학교 조기유학, 대안학교에 이르기까지 교육은 10(1+9)퍼센트 양반 계급의 일이 되었다. 90퍼센트의 교육, 이른바 공교육의 괴멸은 자연스럽다. 조선시대 전체 과거급제자의 35퍼센트 가량이 상민 계급 출신이라 하니 한국은 조선시대보다 더 강고한 신분사회가 되고 있는 셈이다. 이런 현실이 어지간한 개혁으로 바뀔 거라 기대하는 건 과연 온당한가.
2017/06/29 13:57 2017/06/29 13:57
2017/06/28 18:11
혁명적 구호를 외치는 노동자보다 나름의 미적 경험을 즐기려 드는 노동자가 더 전복적일 수 있음을 먼저 알아챈 건 철학자들이 아니라 체제다. 체제는 예술 공간과 아티스트를 노동자의 미적 경험으로부터 분리하고 무력화하는 작업을 꾸준히 수행해왔다. 유럽 현대미술 전시 방법론이 현실적 콘텍스트가 제거된 채 복제됨으로써 전시가 미술업계 종사자와 지망생끼리의 나른한 사교장이 되고, 블랙리스트 사태가 본의 아니게 드러냈듯 아티스트들은 각종 지원금 시스템에 거의 완전히 포박되어 있으며, 대안과 사회를 말하던 중견 기획자의 유일한 소망이 계약직 고급공무원 자리가 된 건, 그로 인해 펼쳐진 한국적 풍경들이다.
2017/06/28 18:11 2017/06/28 18:11
2017/06/25 13:26
내가 황우석 빠라 불리는 사람들을 혐오한 이유는 단지 그들이 광적이거나 황우석이 사기꾼이어서가 아니었다. '과학=돈=국가'로 표현되는 그들의 저급하고 반동적인 사고 체계 때문이었다. 내가 환빠라 불리는 사람들을 혐오하는 이유도 비슷하다. 그들이 상고시대에 광적으로 집착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사고 체계가 상고시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영토를 위대한 나라의 기준으로 삼는 사람을 혐오하지 않을 방법을 난 알지 못한다.
2017/06/25 13:26 2017/06/25 1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