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4/17 14:23
언제부턴가 교감능력이 가장 중요한 인간적, 사회적 덕목으로 부각되고 관련한 말들도 넘쳐난다. 꽤 많은 사람에게 세계는 마치 교감능력이 있는 선인과 교감능력이 없는 악인의 대결장처럼 여겨지는 듯하다. 물론 인간은 교감능력 없이 살 수 없다. 교감능력은 인간과 인간의 정서적 차원뿐 아니라 현실에 대한 냉정한 대면과 실천적 연대를 만들어낸다. 교감능력은 변혁의 동인이다. 그러나 또한 인간에게 교감능력처럼 상투화하기 쉬운 것도 없다. 교감능력은 종종 입에 발린 말, 좋은 사람 행세, 감상적 태도 등으로 대체되며 변혁의 '선한' 방어막으로 돌변한다.
2017/04/17 14:23 2017/04/17 14:23
2017/04/16 11:17
예수의 부활이 단지 육체의 부활이라면 예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인류 최고의 마술사일 뿐이다. 우리는 마술사에 감탄하지만 존경하거나 신앙하진 않는다. 복음서에는 예수가 제자들에게 함께 십자가를 질 것을 요청하면서, 즉 수난과 육체적 죽음까지 불사할 것을  요청하면서, 동시에 온세상을 얻어도 목숨을 잃는다면 무슨 소용인가 말하는 장면이 있다. 예수는 진정한 목숨이란 무엇인가 질문한다. 예수의 질문은 사회가 요구하는 자아상으로 내 자아를 교체하여 살아가고, 그 성공적 교체를 인생의 성공이라 여기는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더욱 유의미하다. 부활절이 그 질문을 묵상하고 스스로에게 되묻는 날이면 좋을 것이다. '나는 정말 살아 있는가?'
2017/04/16 11:17 2017/04/16 11:17
2017/04/13 09:00
“잘될 거라는 막연한 낙관도, 그깟 취직 좀 늦어지면 어떠냐는 무책임한 위로도, 왜 이 정도 스펙밖에 갖지 못했냐는 흔한 질타도 하지 않았다. 준비 과정을 묵묵히 지켜보고,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돕고, 안 좋은 결과가 나오면 술을 사주었다.”

아무래도 읽어야 할 것 같아서,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 문학성 논란이 있던데 이 소설은 굳이 그러지 않아도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용한 구절은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주인공에게 당시 남자친구가 하는 행동을 묘사한 것이다. ’어려움을 겪는 가까운 사람에게 해야 할 행동’을 잘 정리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첫 문장에 열거된 세가지 행동(막연한 낙관, 무책임한 위로, 흔한 질타)이 이런저런 방식으로 미화되거나 권장되는 이상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2017/04/13 09:00 2017/04/13 09:00
2017/04/12 13:15
오랫동안 한국 극우는 생사람 잡을 때 '빨갱이'라는 딱지를 붙이곤 했는데, 이제 리버럴이 '적폐'라는 딱지를 예사롭게 붙이는 걸 본다. 극우가 지지하는 후보는 결국 극우 후보라는 논리도 그렇다. 옛 극우가 북한이 민주화운동 지지하니 민주화운동은 북한앞잡이라 하던 것과 뭐가 다른가. 말그대로 싸우면서 닮은 건가. 한국 정치의 가장 큰 적폐가 뭔지 진지하게 생각해보자. 극우와 리버럴이 멀쩡한 우파와 좌파 행세로 공생하며 다수 인민의 삶을 아작내온 것보다 더 심각한 적폐가 있는가. 적폐를 청산하자면야 새누리뿐 아니라 민주도 함께 청산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문재인이 되든 안철수가 되든 크게 다를 거라 확신할 근거는 없다는 것 정도는 안다. 확신할 수 있는 건 오히려 누가 되든 상당히 나쁜 정치가 펼쳐질 거라는 것이다. 그러니 현시점에서 할 일은 그 정치꾼들의 이전투구에 더는 동원되거나 이용당하지 않는, 단단한 견제력을 키울 궁리를 하는 것이다. 그게 바로 주권자의 책무다.
2017/04/12 13:15 2017/04/12 13:15
2017/04/10 09:14
박근혜가 구속된 날 친구가 '문재인이 사면하는 시나리오로 가는군' 하기에 '안철수가 사면하게 될지도' 라고 대꾸했다. 다 떠나서 문재인과 그 지지자들 하는 걸 보면 그리 되기 십상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예상보다 빨리 달라진 상황에 보이는 그들의 모습은 역시 한심하기만 하다. 현재 상황에 대한 냉정하고 성찰적인 분석은 없고 오로지 남의 탓에 음모론이다. 이를테면 그쪽에선 비교적 멀쩡한 사람으로 여겨지는 황교익 같은 이조차 그렇다. 전적으로 언론의 작품이고 심지어 한겨레가 안철수 편이라니. 리버럴 신문 한겨레에 매우 비판적인 내가 들어도 황당한 이야기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는 대중이 아무런 자기 판단 능력 없다는 폭언이다. 실제로 황 씨는 '국민 수준'이라는 언사까지 사용하는데, 촛불을 든 국민과 대선에 임하는 국민은 다른 국민인가. 사람이란 어려울 때 바닥이 드러나는 법이긴 하지만, 그런 식의 논리가 여론에 도움이 될지 부정적일지 계산조차 못한다는 것은 깊은 실망을 준다. 최악의 선거운동은 지지자들끼리 카타르시스를 선거운동이라 믿는 것이다. 선거운동은 아직 지지자를 정하지 않은 사람, 심지어 다른 후보 지지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다.
2017/04/10 09:14 2017/04/10 0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