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0/27 15:36
논리적 인과관계에 밝은 사람일수록 감정의 인과관계에 약한 경향이 있다. 감정의 인과관계를 ‘감정에 대한 논리적 인과관계’로 치환하려 들기 때문이다. 논리적 인과관계에 밝은 사람은 똑똑하지만, 감정의 인과관계에 밝은 사람은 사랑할 줄 안다.
2018/10/27 15:36 2018/10/27 15:36
2018/10/21 21:32
“거창한 거대담론을 말하는 게 아니라 일상의..”  한국 인텔리들, 특히 좌파 인텔리들이 즐겨 사용하는 설레발이다. 그들은 이런 식의 ‘거대담론 혐오’를 지적이고 세련된 태도의 증빙처럼 여기는 듯하다. 딱한 일이다.

20세기 중반 서유럽 좌파는 난감한 현실에 맞닥트린다. 유토피아적 기대에 부풀었던 러시아혁명은 스탈린주의로 귀결하고, 소련군은 헝가리 혁명을 진압했으며, 노동조합은 조직력을 가질수록 혁명성을 갖는 게 아니라 체제내 중산층화하고, 자본주의는 ‘자동 붕괴’되긴커녕 자기 수정 능력(케인즈주의와 복지 국가)을 보였고, 미국의 대량소비 체제와 인민의 의식과 감각을 장악한 대중문화산업은 그들의 상상을 벗어났다.

그들이 현실 변혁을 원하는 좌파라면 그런 현실 앞에서 그들이 가장 먼저 했어야 할 일은 자신들의 오류를 성찰하고(다음에 적겠지만, 그들이 받은 충격은 대부분 맑스주의에 대한 몰이해에 기인한다.), 치열한 사유와 토론을 통해 현실에 대한 대응력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모든 책임을 ‘맑스주의의 본원적 오류’로 돌리고 대대적인 현실 도피에 들어간다. 그들은 거대담론이나 지배의 거시성, 자본주의 경제적 토대 분석 등을 포기하고 지배의 미시성, 문화와 상부구조만 다루기로 한다. 그들은 그 대가로 제도 학술계와 지식시장에서 안정을 누리게 된다. 즉 그들은 시스템과 거래했다.

지배시스템은 거시성('계급' 같은)과, 미시성(‘정체성’ 등 계급으로 포획되지 않는)을 동시에 갖는다. 지배의 거시성은 미시성과 결부되어 작동하며, 지배의 미시성은 거시성과 결부되어 작동한다. 사실 둘은 지배시스템을 분석하기 위해 만들어진 개념틀일 뿐 분리할 수 없는 한 몸이다. 거대담론과 미시담론은 둘 중 하나를 부정하면 전체가 무너지는 구조라는 뜻이다.

그러나 한국의 좌파 경향 인텔리들이 ‘거대담론 혐오’를 지적이고 세련된 태도의 증빙처럼 여기게 된 건, 오류도 도피도 거래도 아니다. 서유럽의 모범적 지적 식민지인 한국의 좌파 인텔리들에게 중요한 건, 맥락과 역사가 아니라 ‘따라하기’다. 인텔리란, 자신의 사유로 말하고 행동하지 않는 것을 수치스러워할 줄 아는 사람이다.
2018/10/21 21:32 2018/10/21 21:32
2018/10/14 19:52
오늘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유가 모든 사람에게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지만 가난한 사람은 무엇 하나 구현할 수 없는 상황은 ‘경제적 불평등에 의해 자유가 침해된 상태’로 묘사되곤 한다. 그러나 그런 상태야말로 자본주의적 자유의 본 모습이다. 자본주의에서 ‘자유’ 개념은 ‘사적 소유’ 개념과 한몸으로 생겨났다. 존 로크를 비롯한 초기 자유주의 사상가들은 인간이 자유를 누리기 위해선 일정 수준의 재산이 필요하다고 봤다. 그들은 재산이 없는 사람은 자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자본주의에서 자유란 누구나 구입할 권리가 있지만 돈이 없으면 구입할 수 없는 ‘상품’이다. 예컨대 ‘느리고 생태적인 삶’은 돈과 관련없이 세계관과 삶의 철학에 의거하여 누구나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상당한 재산이 있거나 안정적 지대 수입을 가진 사람만이 구현할 수 있다. 부지런히 노동력을 팔지 않으면 안되는 사람이 ‘느리고 생태적인 삶’을 구현하려 들면 생존의 위기에 직면한다. 그것은 시스템의 응징이다. ‘느리고 생태적인 삶’은 자본주의의 승자들을 위한 ‘특별 상품’에 속한다. 승자들은 그 상품들 덕에 ‘교양미’ ‘지성미’ ’존경’ 같은 일반적 소비로 얻기 어려운 특별한 효용을 얻을 수 있다.
2018/10/14 19:52 2018/10/14 19:52
2018/10/01 17:52
근사한 패션 브랜드가 생겼다. ‘워킹클래스히어로’. 존 레논의 노래 제목에서 이름을 따온 이 브랜드는 특별하게도 ‘워크웨어’(작업복)을 주제로 한다. 대표인 곽유진 디자이너는 (사회운동 쪽이 아닌) ‘KUHO’ 등 하이 패션 쪽에서 일해온 사람이다. 얼마간의 인연 덕에 그들이 어떤 철학으로 뭘 하려는 건지 론칭 전부터 들을 수 있었는데, 첫 컬렉션이 매우 인상적이다. 쇼핑몰을 살펴주시길. 모델은 모두 실제 작업자들(바리스타, 목수, 쉐프, 농부, 도예가 등)이다. 단체 주문, 다양한 작업 유형이나 환경에 따른 디자인 협의도 당연히 가능하다.


2018/10/01 17:52 2018/10/01 17:52
2018/09/30 12:34
‘문재인 정부에 기대가 컸는데 실망했다’는 말을 근래 많이 듣는다. 인간이란 도리없이 기대와 실망을 반복하며 살아가는 존재지만, 실망의 원인은 ‘잘못된 기대’인 경우가 많다. 정치의 내용을 규정하는 가장 주요한 요인은 당연히 이념이다. 문재인 정부는 자유주의 정부이며, 자유주의 정부로서 일정한 이념적 계급적 행동 범주를 갖는다. 그 범주 안에서 나타나는 차이들이 있다. 그걸 갖고 기대하거나 실망할 수 있다. 그러나 범주를 넘어서는 것, 좌파 정부에서나 가능할 것을 터무니없이 기대해놓고는 탓을 하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 그런데 이게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 때에도 ‘기대했는데 실망했다’ ‘개혁의지가 후퇴했다’ 심지어 ‘대통령되더니 변했다’ 따위 말들이 무성했다. 그 정도 체험했다면 최소한의 학습효과가 있을 법도 한데 왜 그렇지 않을까? 더는 존중받기 어려운 순진함도 있겠지만 ‘자유주의 정치에 대한 잘못된 기대’의 상당 부분이 386 특유의 너스레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중산층으로서 좌파 정치에 앞장서긴 싫지만, 노동이나 경제 사안들에 대한 진보 행세도 포기하기 싫으니 ‘잘못된 기대’라는 방식으로 자유주의 정부에 씌우고 빠져나간다. 수구 세력은 기득권을 추구하되 정의연 하진 않았다. 386은 이미 그들 만큼 기득권을 갖고도 정의연 한다.
2018/09/30 12:34 2018/09/30 1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