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5/18 14:26
다시 5.18. 저녁에 할 종교청년 평화학교 강의를 위해 전에 쓴 것들을 뒤적이다 불현듯 고정희가 생각났다. 고정희, 고정희 시인, 고정희 선배. 그의 '밥과 자본주의' 연작에서 한편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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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시대 주기도문

권력의 꼭대기에 앉아 계신 우리 자본님
가진자의 힘을 악랄하게 하옵시매
지상에서 자본이 힘있는 것같이
개인의 삶에서도 막강해지이다
나날에 필요한 먹이사슬을 주옵시매
나보다 힘없는 자가 내 먹이가 되고
내가 나보다 힘있는 자의 먹이가 된 것같이
보다 강한 나라의 축재를 복돋으사
다만 정의나 평화에서 멀어지게 하소서
지배와 권력과 행복의 근본이 영원히 자본의 식민통치에 있사옵니다(상향~)

고정희(1948~1991)
2018/05/18 14:26 2018/05/18 14:26
2018/05/16 17:28
몇달 전 고래가그랬어에 연재된 <여성 혐오가 뭐예요?> 시리즈를 pdf로 만들어 나누었는데 유용하게 사용했다는 분들이 많았다. 최근 연재한 <미투 운동이 뭐예요?> 시리즈도 pdf로 만들었다. 아이와 함께 읽고 토론도 하시길 빈다. 페미니즘엔 여러 경향과 노선들이 있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런 경향과 노선을 불문한 페미니즘의 보편적이고 기본적인 개념들부터 익힐 필요가 있다는 게 고래의 생각이다. 기본 개념조차 갖추지 못한 채 성인이 되어버린 사람들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를 만들어내는지, 근래 우리는 생생하게 목격하고 체험하고 있다.



2018/05/16 17:28 2018/05/16 17:28
2018/05/09 16:32
4개의 기둥에 노동은 없다. 실제로 노동 현실은 그대로이거나 이전 속도대로 나빠지고 있다. 노동 현실이 중요한 건 협의의 의미에서 노동 현실을 넘어, 임금 받고 살아가는 다수의 삶으로 본 경제 현실이기 때문이다.(통상 ‘경제 현실’은 자본과 지배계급의 삶으로 본 경제 현실을 말한다.) 그런데 지지율이 이른바 자유 민주주의 정치의 정상 범주를 훌쩍 넘어서는 현상은 뭘 말하는 걸까. 오늘 대개의 한국인들이 실제 세계가 아니라 정치 극장의 관객으로 살아간다는 뜻이다. 이번 영화는 지난 영화들보다 훨씬 더 잘 만든 작품이라는 뜻이다. 누구도 비난할 순 없다. 현실이 막막하면 영화를 살아갈 수도 있지 않은가. 다만 영화가 현실을 대체할 수 없을 뿐.

2018/05/09 16:32 2018/05/09 16:32
2018/05/08 16:23
혁명이 불가능한 이유는 사람들이 모이는 능력을 잃어서가 아니라 혼자 생각하는 능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혁명은 집단의 함성이 아니라 고독의 고요에 기인한다. 혁명은 삶의 사상가들이 짓는 다른 세계다.
2018/05/08 16:23 2018/05/08 16:23
2018/05/05 21:02
맑스 탄생 200주년. 이미 한달 동안 세미나에서 맑스에 대해 정색하고 말한 터라, 다만 한담 거리 하나.

한국 자유주의자들의 특징은 대다수가 한때 좌파였다는 건데, 관련한 코믹한 모습들이 많다. 그중 하나가 맑스를 말할 때 어김없이 드러나는 자격지심과 치기다. 그들이 맑스의 이론이나 사상을 구체적 논거를 갖고 비판하거나 평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들은 그저 '내가 해봐서 아는데'만 반복한다. 그러니까 그들은 자신이 예전에 맑스를 신봉했지만 이젠 부정한다는 사실을 근거로, 맑스의 오류와 비현실성을 완벽히 논증한다. 사연 없는 인생이 있겠냐만, 적어도 인류의 역사와 사회 문화 전분야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한 사상가를 제 사적 행적을 근거로 재단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을 제정신이라고 보긴 어렵다. 결국 그들이 알려주는 유일한 사실은 그들 자신에 대한 것이다. 맑스를 신봉하던 예전이나 부정하는 지금이나 맑스를 잘 모른다는 것. 모르는 건 모른다고 말하는 게 가장 좋다.
2018/05/05 21:02 2018/05/05 2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