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4/18 18:06
내일은 <혁명노트, 메타노이아> 세미나 두번째 시간이다. '자본주의교의 3위 일체'라는 제목으로, 자본주의 물신숭배에 대해 논의한다. 계급 사회는 저마다 시스템에 순종을 위한 절대 의식을 구비한다. 물신숭배는 스스로 인간임을 부인하는 노예의 의식, 모든 게 신의 뜻이라는 농노의 의식의 자유 시민 버전이다. 발터 벤야민의 '종교로서 자본주의' 노트를 텍스트로 상품 소비 사회의 종교성과 우리 삶 속 사례들을 훑어본 다음, 맑스의 논의를 살펴볼 계획이다. 물신숭배는 단지 허위의식의 차원에서 작동하는 게 아니라 자본주의 경제 구조와 한몸이며 중력의 법칙처럼 작동한다. 맑스의 물신숭배론은 그놈의 '경제 결정론' 오해와 함께 오랫동안 그 중요성이 무시되어 왔다. 초기와 후기 사이에 단절이 존재한다는 견해도 있다. 논쟁과 토론은 계속되어야겠지만 분명한 건 우리가 그의 물신숭배론에 어느 때보다 부합하는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문의: gallery.loop.seoul@gmail.com
2018/04/18 18:06 2018/04/18 18:06
2018/04/18 15:34
김기식의 사퇴로 금융개혁은 물 건너갔다는 논평들이 있다. 먼저 분명히 해둘 것은 이번 사태의 책임은 시민이 아니라 청와대에, 특히 최소한의 판단력을 상실한 민정수석 조국에게 있다. 제 정치적 이해관계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차라리 좀더 교활하기라도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김기식이니 조국이니 운동권 출신  386의 정치 놀음이 아니라 금융개혁 자체일 것이다. 김기식은 장하성 김상조와 함께 참여연대의 경제민주화 운동의 주역으로 알려져 있다. 그에 대한 기대는 3인 조합의 ‘제도화’에 대한 기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두가지 중요한 문제가 빠져 있다. 그들이 벌여온 경제민주화 운동의 실제 성과에 대한 평가, 그리고 그에 앞서 경제민주화가 무엇인가라는 사회적 토론이다. 알다시피 그들의 경제 민주화론은 ‘재벌개혁’으로 대변되며, 해결책은 이른바 영미식 주주자본주의의 작동이다. 주식 시장이 국적 없는 투기 시장 이상도 이하도 아닌 현실에서 황당한 견해이긴 하지만, 경제민주화론의 이론과 노선에서 가장 우파 버전이라고는 할 수 있다. 재벌 등 주요한 생산수단의 사회화, 노동자 공동 결정 등을 뼈대로 하는 경제민주화론의 좌파 버전까지 가지 않더라도 경제민주화론이라기보다는 ‘경제 자유화론(혹은 시장화론)’이라는 이름이 좀더 어울린다. 여하튼 그 모든 평가와 토론은 감쪽같이 생략되어 있다. 김기식의 사퇴를 둘러싼 이런저런 논란과 소동은 바로 그 평가와 토론을 은폐하는 ‘정치 극장’이다. 극장에 중요한 게 관객의 영화에 대한 호오가 아니라 흥행이듯, 이번 정치극장에서 중요한 것도 사퇴 찬성(은 물론 당연하나)인가 반대인가가 아니라 사퇴 찬성과 반대를 둘러싼 논란과 소동 자체다. 한국 정치는 갈수록 정치 극장화하고 있다.
2018/04/18 15:34 2018/04/18 15:34
2018/04/16 14:57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말은 단지 추억하겠다는 말이 아니다. 부러 차갑게 식힌 분노, 뜨거움을 내 이성과 사유에 새긴 차가운 분노만이 독하게 지속된다. 세월호 침몰, 보름 후에 썼던 글.


분노는 차갑게 지속된다

2018/04/16 14:57 2018/04/16 14:57
2018/04/15 19:47
김기식의 말도 안 되는 행태에 대한 비판을 반개혁 기득권세력의 의도에 봉사하는 거라 단정하고 개탄하는 글이 타임라인에 눈에 띈다. 전체 공개로만 글을 쓰고 있어서 음모론이나 기계적 진영 논리에 매몰된 경우는 페친을 해지하는 편인데도 그런 글이 종종 보이는 걸 보면 상황이 가볍지 않다. 음모론이나 기계적 진영 논리는 결코 비합리적 사고에 기인하는 단순한 사회 현상이 아니다. 그걸 통해 제 사회적 경제적 기득권을 축적하는, 정치 브로커들의 계획적이고 치밀한 비지니스 모델이다. 시민이 정치에 관심을 갖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스스로 주권자의 지위를 포기하고 정치 브로커의 고객 노릇을 할 이유가 있는가.
2018/04/15 19:47 2018/04/15 19:47
2018/04/10 08:47
몇해 전 친구가 생협에 노조도 없고 비정규 노동이 만연한 걸 알고는 놀라서 모 생협 경영진에게 물었더니 ‘생협은 특정 개인에게 사유화되어 있지 않으니 일반 기업과는 경우가 다르다’고 하더란다. 우리가 종종 하는 오해는 기업의 형태나 소유 방식이 기업의 정체성을 다르게 만든다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기업이 이윤 혹은 성장을 목표로 하는 한, 협동조합이든 사회적 기업이든 자본가가 한명이든 천명이든 근본적으로 달라질 건 없다. 자본가는 ‘인격화한 자본’이 되기 때문이다. 자본가의 인격이 자본을 지배하는 게 아니라 자본의 고유한 운동방식이 자본가의 인격을 지배한다. 그런 자본가에게 노동자는 존엄한 인간이 아닌 ‘인격화한 노동 시간’일 뿐이다. 구례자연드림파크 노조 탄압 사태는 아이쿱이 성장 위주 경영을 선도하면서 한살림을 추월하고 ‘경쟁 상대는 이마트’라 공언할 때 이미 예견된 일이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되었는데도 대개의 조합원들이 침묵한다는 건 그들이 협동조합 조합원이 아니라 회원제 소비자일 뿐임을 드러낸다. 물론 이건 아이쿱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자본주의적 기업을 넘어선 기업을 표방한 생협은 자본주의적 기업의 괴상한 형태로 귀결하고 있다.
2018/04/10 08:47 2018/04/10 08: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