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2/13 10:55
‘귀순 北병사, 초코파이 평생 무료’라는 제목의 기사가 여러 매체에 실렸다. 그만들 해도 좋지 않을까. 한 인간의 기생충이 끓는 내장을 다함께 공유하고도 여전히 부족한가. 동물을 진열장에 넣고 구경거리로 삼는 것도 비판받는 세상이다. 한국은 인간이 인간에 대하여 조금 더 품위있게 행동할 책무를 부정하기로 합의한 사회라도 되는가.
2017/12/13 10:55 2017/12/13 10:55
2017/12/03 11:44
필립 글래스 자서전이 나오자 바로 사지 않은 건 일 때문에 읽어야 할 책이 밀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문제는 절대 해결되지 않는 법이고 결국 읽고 있다. 우리가 듣는 음악의 대부분은 사라진다. 그래서 ‘진행 중인 클래식’과 관련한 이야기와 진술은 흥미롭고 종종 교훈적이기까지 하다. 책에 등장하는 음악가들의 음악을 새삼스럽게 틀어보며 읽는 것도 재미다. 딱 한 사람은 예외다. 스티브 라이히. 실은 책을 열어 가장 먼저 한 일이 (점잖지 못하게도) 맨 뒤 인명색인에 그의 이름이 있는지 확인하는 거였다. 예상대로 없었고 ‘하여튼 영감들 참’ 하며 웃었고 어떤 균형을 위해 그의 음악을 추가했다.
2017/12/03 11:44 2017/12/03 11:44
2017/12/02 10:00
근래 시민들이 소셜미디어 공간에서 보이는 모습은 대체로 ‘나와 의견이 같은 사람을 찾아다니며 집단 이루기’ 혹은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을 배제하고 적대하기’인 듯하다. 토론이나 배움은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과만 가능하다. 나와 같은 의견에서 얻을 수 있는 건 위로뿐이다. 외롭고 고단한 세상이고 누구나 위로는 필요하다. 그러나 수백수천만의 성인이 위로만 받으려는, 종일 틈만 나면 징징거리며 몰려다니는 풍경은 우습고 기괴하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 바치는 시간의 일부를 혼자 조용히 생각하는 시간으로 바꿔보면 어떨까. 외로움을 이기는 궁극적인 방법은 위로가 아니라 고독이다.
2017/12/02 10:00 2017/12/02 10:00
2017/11/22 21:20
초인적 헌신성을 보이는 의사가 인권 의식은 일부 낮을 수 있다. 인권 의식은 초인적 헌신성에 자동으로 따라오는 게 아니라 엄연히 공부해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인권 의식이 일부 낮은 게 확인되었다고 해서 그의 초인적 헌신성이 철회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둘은 다른 고유한 가치를 갖는다. 이국종 선생은 이번 기회를 통해 의사로서 매우 의미있는 인권 공부를 한 셈이다. 좋은 일 아닌가. 모욕감을 느낄 이유는 없다. 본인이 느낄 이유가 없는 모욕감을 다른 사람이 대신 느낄 이유 역시 없다.
2017/11/22 21:20 2017/11/22 21:20
2017/11/22 11:41
아침에 친구와 통화하다 둘의 또 다른 친구와 매우 불편한 관계에 있는 사람 이야기가 나왔다. “가까운가 가깝지 않은가를 떠나서 생각해야, 그가 가진 나름의 가치가 제대로 보이는 것 같아.” 말은 쉽게 했지만 살다보면 사실 이게 참 어렵다. 가까운 사람이라면 이해하고 넘어갔을 일도 가깝지 않은 사람이라면 부정적 판단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 일과 관련한 그의 상황이나 사정을 얼마나 아는가가 판단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또한 가까운 사람이라면 그 일에 대한 판단에 머물렀을 경우도 가깝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 사람에 대한 판단으로 확대되기 십상이다. 사람의 사람에 대한 판단은 가치 기준보다는 관계의 거리와 큰 관련이 있다. 가까운 사람을 더 많이 이해하는 건 인간적이다. 다만 가깝지 않은 사람은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걸 기억하는 게 좋다.
2017/11/22 11:41 2017/11/22 11: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