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6/25 13:26
내가 황우석 빠라 불리는 사람들을 혐오한 이유는 단지 그들이 광적이거나 황우석이 사기꾼이어서가 아니었다. '과학=돈=국가'로 표현되는 그들의 저급하고 반동적인 사고 체계 때문이었다. 내가 환빠라 불리는 사람들을 혐오하는 이유도 비슷하다. 그들이 상고시대에 광적으로 집착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사고 체계가 상고시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영토를 위대한 나라의 기준으로 삼는 사람을 혐오하지 않을 방법을 난 알지 못한다.
2017/06/25 13:26 2017/06/25 13:26
2017/06/19 19:30
제법 오래전부터 기획되었고, 교정 작업에 참여하면서는 굳이 내야 하나 싶다가 그런대로 나쁘지 않네 싶다가 했는데, 결국 나왔다. 시집 크기에 하드커버 북디자인이 미려하다. 친구에게 부탁한 프로필이 마음을 읽는다. 특히 '저마다의 쓸모없는 짓들에 골몰하는 세계'. 그거지.

"글은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는 도구가 아니라, 불편함을 수반하더라도 좀더 사유함으로써 세계의 본질에 함께 다가가는 도구다. 모든 아름다움이 그러하듯 문장은 군더더기가 적을수록 아름답다. 사람들이 정치나 사회 문제를 벗어나 저마다의 쓸모없는 짓들에 골몰하는 세계를 소망한다."


2017/06/19 19:30 2017/06/19 19:30
2017/06/17 09:51
새 정부 고위공직자 후보를 옹호하는 이야기들은 대체로 '내로남불'의 졸렬함을 벗어나지 않은 듯하다. 민주화 30년은 민주화운동 세력이 기득권화한 지 30년이라는 뜻이기도 하니, 그들이 극우세력과 '생활 양식'면에서 그리 다르지 않은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 사실을 재확인한 것, 즉 나와 그들이 전혀 다른 세상을 살고 있음을 재확인한 것이야말로 청문회의 중요한 사회적 소득일 것이다. 새 정권과 관련하여 여전히 말을 아끼고는 있지만, 이 풍경이 나를 도리없이 비위 상한 게 해준 건 내로남불이 아니라 후보와의 옛 인연을 들먹이는 추억담들이었다. 순수, 열정, 온화, 소탈 따위 상투어들이 난무하는, 그 후보나 옹호자나 그런 것들을 잃은 지 매우 오래임을 강조하는 걸 유일한 소임으로 하는, 닳고닳은 민주 아재들의 추억담.
2017/06/17 09:51 2017/06/17 09:51
2017/06/11 17:33
사람이 옛 이야기를 할 때 자칫 추해지기 쉬운 건 현재의 삶에 비추어지기 때문이다. 현재 기득권을 누리는 사람들의 옛 저항 투쟁담이 특히 그렇다. 86은 과연 민주화의 주역인가. 그렇다고 치자. 그러나 더 중요하게 86은 군사독재를 자본독재로 만든 주역이고 그 덕에 축조된 10:90의 헬조선에서 10의 양반 계급으로 살고있다.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지만, 한국 사회 돌아가는 꼴을 보면 86은 젊어 한때 헌신으로 3대가 흥할 조짐이다.

86의 투쟁담은 사실 교묘하게 편집되어 있다. 80년대 후반 즈음 86은 늙은 재야인사들처럼 단지 반독재 민주화투쟁을 한 게 아니었다. 부르주아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공장에 들어가고 노동자와 연대한 건 아니었다는 말이다. 86은 변혁운동을 했고 대개의 86은 6월 항쟁의 의미보다 같은해 7~9월 노동자 대투쟁의 의미가 오히려 더 컸다. 이제 86은 그런 사실들은 쏙 빼고는 줄창 6월 이야기만 한다. 비정규직으로 대변되는 오늘의 노동자들에게서 자신을 분리하며, 다시 만개한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주인공 행세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득권을 무작정 죄악시한다고 볼맨 소리 할 건 없다.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기득권 자체가 아니라 기득권이 현실을 바라보는 시선과 방향이며, 적어도 86의 주류는 그게 글러먹었다는 것이다. 6월항쟁 30주년. 소중한 추억은 가슴 한켠에 두고 현재 시점에서 민주주의, 인민이 지배하는 사회의 의미를 조용히 되새기는 게 86의 도리다.
2017/06/11 17:33 2017/06/11 17:33
2017/05/22 09:33
1980년 광주의 마지막 날, 고3인 강용주는 어머니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도청 사수파의 전사가 된다. 살아남은 그는 항쟁 당시 헌신적으로 부상자를 치료하던 의료인들을 기억하며 의대에 입학한다. 민주화운동에도 열중하던 그는 2학년 때 전두환 정권이 조작한 ‘구미유학생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투옥된다. 그는 전향서(준법서약서) 쓰기를 거부함으로써 '최연소 비전향 장기수’가 된다. 간첩이어서가 아니라, 인간의 양심을 포기하라는 폭력에 굴복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1999년 14년 만에 출소한 그는 복학했고 2008년 전문의 자격을 얻는다. 조작간첩사건 희생자들의 재심 소송에 연대하며 국가 폭력과 고문 피해자들의 치유를 돕는 광주 트라우마센터의 첫 원장을 맡는다.

그를 만난 사람들은 그가 오랜 투옥 생활을 통해 얻은 깊은 사유와 성찰은 물론 여느 사람들보다 오히려 더 자유롭고 낭만적인 인간이라는 데 놀란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이마에 낙인이 찍힌 채 사실상 투옥 중이다. 그는 이른바 '보안관찰 처분' 상태다. 3개월에 한번씩, 누구를 만났고 어디를 갔고 생활비는 어디서 벌었는지 신고해야 한다. 10일 이상 주거지를 떠나거나 외국여행을 하게 되면 동행을 포함 낱낱이 신고해야 한다. 그밖에도 관할경찰서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모든 내용을 신고해야 한다. 강용주는 그에 응하지 않았고 기소되어 재판 중이다.

현재 지구상에서 최소한의 민주주의 절차가 작동하는 나라 가운데 형을 마친 정치범이나 사상범에게 이런 족쇄를 채우는 나라는 없다. 나는 그 족쇄를 푸는 일이 최초의 제대로 된 우파 정부로서 문재인 정부가 꼭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가 '대통령의 시혜'로 자유로워지는 건 그에 대한 우리의 무례일 수 있다 생각한다. 우리는 극한의 폭력과 배제 속에서 끝내 인간의 위엄을 포기하지 않은 한 인간에게 표시하는 마땅한 존경으로 그에게 자유를 선사해야 한다. 그것은 또한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비로소 야만의 시대에서 구해내는 방법이기도 하다.

#강용주에게_자유를
2017/05/22 09:33 2017/05/22 09: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