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4/20 21:42
영화 <더 세션>을 봤고 대사가 남았다.

“사랑을 하면 어떤 일이 생기죠?”
“서로에게 시를 쓰고 섹스를 하죠.”

그래, 우리는 사랑을 하면 서로에게 시를 쓰고 섹스를 한다. 더 이상 섹스하지 않게 될 때 우리는 사랑이 식었음을 안다. 하지만 우리는 시가 섹스보다 훨씬 먼저 사라졌음은 알지 못한다.
2019/04/20 21:42 2019/04/20 21:42
2019/04/19 18:11
같은 맥락에서 또 하나의 착각은 ‘근대적 개인’(자유로운 개인)을 ‘자본주의적 개인’(자유주의적 개인)이라 여기는 것이다. 이런 착각은 개인의 자유가 억압되어 온 사회에서 20세기 후반에 집중적으로 나타났다. 군사 파시즘과 전근대적 습속이 결합한 극단적 집단주의에 시달린 한국인이나, 러시아와 동유럽 등 공산주의를 참칭한 전체주의에 시달린 인민들이 대표적이다. 두 사회의 인민은 오랫동안 ‘자유’와 ‘민주’를 갈구했다. 그러나 예의 두가지 착각의 덫을 극복하진 못했다. 두 사회에서 자유화와 민주화는, 견제 없는 자본화로 귀결했고, 개인들은 집단주의의 억압에서 풀려난 대신 자유주의적 개인으로 흐트러져 각자도생의 바다를 부유한다.
2019/04/19 18:11 2019/04/19 18:11
2019/04/19 08:27
근대와 자본주의가 같다고 보는, 혹은 자본주의가 근대를 실어다 준다고 보는 착각이 만들어낸 대표적 참상이 현재의 한국과 중국이다. 자본주의는 이전 사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생산력을 비약시킴으로써 근대의 물적 토대가 되었다. 그러나 좀더 본질적으로 자본주의는 근대를 ‘경제 환원’하는, 근대성을 잡아먹는 속성을 갖는다. 서구 사회의 근대적 면모는 자본주의가 저절로 실어다 준 게 아니라, 자본주의와 투쟁과 견제로 만들어졌다. 박정희로 본격화한 한국의 근대화 운동과 문화대혁명에 대한 반성으로 본격화한 중국의 근대화 운동은 이 사실에 대한 철저한 몰이해에 기반했다. 결국 두 사회는 소망대로 ‘경제 대국’이 되는 데 성공했지만, 인간의 삶과 관련한 모든 것들이 경제 환원된 끔찍한 사회로 귀결했다. 예컨대 오늘 한국인들이 제 나라를 ‘지옥(헬조선)’이라 부르는 건 예전보다 가난해져서가 아니다.
2019/04/19 08:27 2019/04/19 08:27
2019/04/18 08:29
기억하기란 ’내 삶과 연결하기’다. 참사를 특별한 불행을 당한 사람들과 그에 직접 책임이 있는 사람들로만 기억하는 일은, 참사를 내 삶에서 분리하려는 노력일 수 있다.
2019/04/18 08:29 2019/04/18 08:29
2019/04/13 11:16
근래 한국 시민들은 북유럽 사회들이 한국과 얼마나 다른지 많이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 사회 시민들이 얼마나 다른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왔기에 다른 사회를 만들 수 있었는지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랜 군사독재에 신음하던 국민들’ 같은 수사는 즐겨 사용한다. 그러나 군사독재가 오래 지속된 비결이 제 식구나 챙기며 군사독재에 순응하던 국민이 좀더 많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은 이야기하지 않는다. 사회 성원으로서 책임감을 갖기보다는 책임을 묻고 떠넘길 대상 찾기에 몰두하는, 진영 논리에 따라 윤리적 판단마저 달리하는 시민들이 가질 수 있는 사회는 어떤 것일까? 사회에 관한 불변의 진리를 되새겨볼 때다. ‘모든 사회는 사회 성원의 반영이다.’
2019/04/13 11:16 2019/04/13 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