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10 09:56
책을 빨리/많이 읽는 건 결코 미덕이 아니었다. 지성사는 오히려 적은 책을 느리게 일생에 걸쳐 거듭 읽는 일과 깊은 관련을 맺어왔다. 물신 세계에서 지식은 사유의 재료가 아니라 각자의 좌판에 늘어놓는 정보로 전락하고, 책을 빨리/많이 읽는 건 매우 중요한 미덕이 된다.(“새로운 지식과 정보는 매일 쏟아지는데 우리는 늘 시간이 부족하다!”는 가련한 헛소리) 사유를 원한다면 ‘난독의 미덕’을 기억할 것.
2019/06/10 09:56 2019/06/10 09:56
2019/06/08 16:24
김제동의 강연료와 출연료 문제에 대해 별 관심이 없는데, 이른바 진보 시민들이 그를 옹호하는 모습에선 우스꽝스러운 자기 모순이 보인다. 우선 그들의 ‘적정 가격’ 운운하는 김제동 옹호는 철저한 시장 논리에 기반한다. 진보시민이라면 ‘노동력 상품’이 아니라 ‘노동의 가치’의 관점에서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또한 그들은 시장 논리에 기반하여 김제동을 옹호하면서도 여전히 그를 사회운동하는 사람처럼 여긴다. 진보 시민이라면 시스템 안에서 상식 장사에 여념이 없는 부자 연예인보다 시스템을 거스르는 활동가에게 관심을 기울여야하지 않을까?
2019/06/08 16:24 2019/06/08 16:24
2019/06/01 10:11
상식적인 것은 늘 변화한다. 오늘 많은 사람에게 몰상식하고 야만적으로 취급되는  것들도 불과 얼마 전엔 당연한 상식이었다. 한국에서 반공주의나 성차별은 그 쉬운 예일 것이다.(또한 각자가 속한 사회 부문에서 그런 예가 있을 것이다.) 사회의 진전은 상식의 파괴와 변화로 나타난다. 물론 파괴와 변화가 모든 사회 성원에게 일제히 나타나진 않는다. 지식인과 예술가가 자연스럽게 선두에 서게 되고, 삶에서 더는 사유도 창조도 없는 사람들이 후미에 서게 된다. ‘상식적인 시민들’로부터 전자는 위험하고 비현실적인 존재로 여겨지고, 후자는 구시대의 쓰레기로 여겨진다. 오늘 한국 사회의 비극은 진보적 지식인이나 예술가라 불리는 사람들이 상식의 맥락에서 위험하고 비현실적인 존재이길 거부한다는 데 있다. 그들은 끊임없이 상식의 후미에 선 구시대의 쓰레기만 부각함으로써 상식적인 시민들로부터 상찬받고 현실에서 안정을 누리는 ‘상식 장사’에 여념이 없다. 지식인이나 예술가에게 ‘최소한의 상식’을 말하는 것보다 더 모욕적인 일은 없다는 점에서, 그들은 끊임없이 스스로 모욕당하는 셈이다.
2019/06/01 10:11 2019/06/01 10:11
2019/05/20 17:22
후기 자본주의라는 완성된 물신 세계에서 인간의 삶은 한없이 작고 하찮아져 간다. 자괴감과 우울은 일상이 된다. 그에 관한 최근 한국에서 해결책 하나는 ‘스스로 더 작고 하찮아짐으로써 버티기’인 듯하다. 덕분에 출판업자들은 작고 하찮은 삶을 미화하는 책을 찍어내느라 여념이 없고, 티브이 예능은 만인의 유일하고 전능한 교양 교사로 군림한다. 스스로 더 작고 하찮아지는 사람들. 시스템은 콧노래를 부른다.
2019/05/20 17:22 2019/05/20 17:22
2019/05/20 12:56
한 페친이 공유해준 덕에, 2년 전 오늘 쓴 글을 읽었다. 한국은 여전히 '좌우 분간'은 요원하고 '진영'은 더욱 강화되었다. 모든 문제의 원인과 책임은 반대 진영의 정치나 언론에 있다. 자칭 진보는 모든 게 수구 정치와 언론 때문이고 자칭 보수는 모든 게 좌파 정치와 언론 때문이다. 정치와 언론의 소임은 두 심리에 발 빠르게 부응하고 또 교활하게 부추기는 데 있다. 그것만 되면 '진정한 정치인' '양심적 언론인'이 된다. 마치 다들 마술에 걸린 듯하다. 물론 여전히 희망은 남아 있다. 두 진영 모두를 거부하면서도 냉소에 빠지지 않고, 고민하며 길을 모색하는 사람들이 있다.

2019/05/20 12:56 2019/05/20 12: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