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5/21 20:06
사회 문제를 윤리나 인격의 차원으로 가져가면 그 구조와 본질을 벗어나기 쉽다. 우리가 ‘자본주의는 비인간적인 시스템이다’라고 말할 때, 그건 ‘탐욕스러운’ ‘갑질 폭력’ 따위로 표현되는 자본주의의 룰조차 지키지 않는 부류뿐 아니라, 자본주의 자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자본가가 다 탐욕스럽고 난폭한 사람은 아니다. 노동자가 다 선량하고 인간적인 사람은 아니 듯 말이다. 그러나 자본가는 제 인격과 무관하게 무한 이윤과 성장 추구라는 자본의 속성을 따를 수밖에 없다. 만일 그렇지 않을 때 경쟁에서 뒤처지고 파산 위협에 직면한다. 자본가는 ‘인격화한 자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과도한 이윤 추구는 자본가의 지극히 정상적 행동이며, 그 주요한 기반은 노동자로부터 잉여가치 착취다.(여기에서 ‘착취’는 감정적인 단어가 아니다. 노동자가 자본가로부터 착취당한다는 말은 노동자가 임금을 받고 자신을 위해서뿐 아니라 자본가를 위해서도 노동하는 것을 말한다. 그렇지 않다면 자본가는 뭐하러 노동자를 고용하겠는가?) 주류 미디어는 종종 이윤과 성장을 추구하면서도 인간미를 가진 자본가를 내세운다. 그는 착취에 감정까지 동원하는 좀더 교활한 자본가라 할 수 있다. 앞서 말한 자본주의의 룰조차 지키지 않는 부류는 착취를 넘어 약탈을 자행하는 자본가다. 약탈에 분노하는 건 당연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착취, 즉 자본주의의 정상성에 있음을 잊을 필요는 없다.
2018/05/21 20:06 2018/05/21 20:06
2018/05/19 12:47
예수나 간디, 킹 같은 비폭력주의자들이 하나같이 폭력에 희생당한 첫번째 이유는 그들이 폭력의 현장에 있었기 때문이다. 비폭력주의는 오로지 폭력의 현장에서만 성립되며 구현된다. 두번째 이유는 그들의 비폭력이 지배체제와 기성질서를 위협했기 때문이다. 비폭력주의의 목적은 비폭력이 아니다. 비폭력주의는 비폭력이 폭력보다 더 강력한 투쟁 수단이라 믿는 운동이다.
2018/05/19 12:47 2018/05/19 12:47
2018/05/19 11:12
평화는 평화로운 상태와 다르다. 평화를 좇는 행동은 오히려 나의 평화로운 상태를 포기하는 일에서 시작된다. 평화가 파괴된, 폭력이 난무하는 현장에 다가서는 일이기 때문이다. 지적이고 위엄 있는 행동이지만 두렵고 위험한 일이다. 요컨대 평화는 일년 내내 안전한 토론회장이나 예배당 같은 곳에 둘러앉아 ‘모든 폭력은 나쁘다’ 논평하는 평화주의자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2018/05/19 11:12 2018/05/19 11:12
2018/05/18 14:26
다시 5.18. 저녁에 할 종교청년 평화학교 강의를 위해 전에 쓴 것들을 뒤적이다 불현듯 고정희가 생각났다. 고정희, 고정희 시인, 고정희 선배. 그의 '밥과 자본주의' 연작에서 한편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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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시대 주기도문

권력의 꼭대기에 앉아 계신 우리 자본님
가진자의 힘을 악랄하게 하옵시매
지상에서 자본이 힘있는 것같이
개인의 삶에서도 막강해지이다
나날에 필요한 먹이사슬을 주옵시매
나보다 힘없는 자가 내 먹이가 되고
내가 나보다 힘있는 자의 먹이가 된 것같이
보다 강한 나라의 축재를 복돋으사
다만 정의나 평화에서 멀어지게 하소서
지배와 권력과 행복의 근본이 영원히 자본의 식민통치에 있사옵니다(상향~)

고정희(1948~1991)
2018/05/18 14:26 2018/05/18 14:26
2018/05/16 17:28
몇달 전 고래가그랬어에 연재된 <여성 혐오가 뭐예요?> 시리즈를 pdf로 만들어 나누었는데 유용하게 사용했다는 분들이 많았다. 최근 연재한 <미투 운동이 뭐예요?> 시리즈도 pdf로 만들었다. 아이와 함께 읽고 토론도 하시길 빈다. 페미니즘엔 여러 경향과 노선들이 있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런 경향과 노선을 불문한 페미니즘의 보편적이고 기본적인 개념들부터 익힐 필요가 있다는 게 고래의 생각이다. 기본 개념조차 갖추지 못한 채 성인이 되어버린 사람들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를 만들어내는지, 근래 우리는 생생하게 목격하고 체험하고 있다.



2018/05/16 17:28 2018/05/16 1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