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1/09 09:49
김단이 들어갈 중학교에서 학교설명회가 열렸다. 강당으로 가는 길목엔 아이들이 둘씩 서서 안내를 했다. 거북선 만들기 대회에서 상을 받았다는 종이 거북선들, 이런저런 상장 복사본들, 신문 기사, 방송출연 사진 따위들이 복도 벽에 죽 진열되어 있었다. 오카리나, 바이올린, 플롯, 사물놀이, 댄스, 록밴드반 아이들이 차례로 나와 잠깐씩 공연을 했다. 구경하며 나누어준 자료집을 훑어보는데 재학생 분석이 적혀있다. “공부는 잘 못하지만 시골 아이들답게 인성이나 생활습관은 좋다.” 빙그레 웃음이 나왔다. 중년남성의 기름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교장(은 알다시피 참 드물다)은 학교에 대해 두서없이, 그러나 매우 진솔하게 말을 이어갔다.

“농촌학교가 다 그렇지만 5년 전에 저희 학교도 학생 수가 부족해서 혼이 났습니다. 안되겠가 싶어 ‘돌아오는 농촌학교’로 지정을 받고 학교를 살리기 위해 여러 모로 노력해왔습니다. 이젠 작지만 도시 어느 학교와 비교해도 내실 있는 학교가 되었다고 자부합니다.”

“우리나라 현실상 고등학교에 가면 하루 종일 공부만 해야 합니다. 그래서 아까 아이들 공연 보셨지만 중학교 때만이라도 공부도 공부지만 자기 취미나 특기를 계발하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한다는 생각에서 특기적성 교육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불미스러운 일이 나서 저희 학교 보내면 큰일 나는 것처럼 소문이 났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중학교는 의무교육이라 퇴학이라는 게 없다보니까 다른 학교에서 도저히 손을 댈 수 없는 아이들 대여섯명을 전학을 받았는데 그놈들이 벌인 일입니다. 그러나 대여섯명 때문에 이백팔십명 전부가 매도될 순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놈들도 우리 아이들입니다. 이 학교에서 다시 쫓아낸다고 해서 다른 학교에서 해결될 수 있는 아이들도 아닙니다. 집에서도 책임질 형편들이 아닙니다. 강원도에 가서 노동하는 부형님도 있고 다 먹고사느라 정신이 없는 부형님들입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우리가 사람 한번 만들어보자, 하고 저와 선생님들이 온 힘을 다하고 있습니다.”

“불미스러운 일”이란 얼마 전 그 학교에서 여학생들끼리 패싸움이 나서 여럿이 구급차에 실려간 사건이다. 돌아와서 김단에게 설명회를 설명했다. 김단은 안 그래도 그 학교를 피해 일산이나, 교하 쪽 학교로 간다는 동무들도 있고 해서 심란해하는 중이다.
“교장 선생님이 먼저 그런 이야기를 솔직하게 하고 책임지겠다고 하니 아빤 일단 안심이 돼. 그런데 그런 문제는 어느 학교에나 있어. 그렇다고 모든 아이들이 그런 일에 섞이거나 피해를 당하는 건 아니야. 네가 그런 일을 무작정 피하려 하기보단 그런 일을 겪으면서도 현명하게 잘 행동하는 힘을 기르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해. 하지만 만일 네 힘으론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온다면 그땐 아빠가 꼭 도와줄게.”
김단은 일단 수긍하는 얼굴이다. 그나저나 내가 곧 교복 입은 중학생의 아버지가 되다니, 어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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