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9/11 23:07
고래엔 ‘고민있어요’라는 꼭지가 있다. 말 그대로 아이들 고민을 들어주는 꼭지다. 창간호부터 인권운동사랑방 교육실에서 맡다가 그들 사정으로 한동안 싣지 못했다. ‘아동 상담가’야 쌔고쌨지만 고래의 관점에 걸맞은 사람을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내 아쉬워하다가 이번호부터 내가 해보기로 했다. 고민을 들어주느라 내가 고민에 빠져야 했고 여전히 몇군데 찜찜하지만 차오름 형의 말마따나 "고래 발행인의 짐"이려니..


중학교 가기 전에 초등 공부 완전히 익혀야 한다."는 엄마의 성화로 영어와 수학 학원에 다니기로 했어요. 지금까진 태권도와 피아노 학원만 다녔거든요. 8시까지 학원에서 공부해야 해요. 학원은 꼭 다녀야 하는 건가요? 학교에서 배운 걸로 충분하지 않나요? 학원 다니는 친구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함께 놀 친구가 점점 없어져요. 학운 가긴 싫지만 친구들 학원 다니는 거 보면 "이러다 나만 뒤쳐지는 거 아닐까." 불안하기도 하고요.

음, 정말 어려운 문제인 걸. 어려운 문제일수록 차근차근 풀어나가야 한다는 것 잘 알지? 그럼 질문부터. 우리가 공부하는 이유는 뭘까? 사람이 되기 위해서야. 물론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몸은 이미 사람이지만 사람답게 생각하고 행동하기 위해선 배울 게 많은 거지. 그래서 우리는 공부를 해.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가 공부를 하는 이유가 달라졌어. 사람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남보다 앞서기 위해서로. 동무도 "이러다 나만 뒤쳐지는 거 아닐까." 불안하다고 했지?

그걸 경쟁이라고 해. 경쟁은 시험 점수로 결정이 되지. 그래서 사람들은 공부를 하는 이유보다는 시험 점수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 학교에서 선생님과 공부하는 것보다는 시험을 잘 볼 수 있는 요령이 담긴 문제집이나 학원 같은 데가 공부의 주인공이 되었지. 물론 이건 잘못된 거야. 공부는 학교에 다니는 걸로 충분해야 해. 나머진 동무들과 맘껏 뛰어놀고 생각을 키워나가는 시간이어야지. 삼촌 생각엔 그게 더 중요한 공부라는 생각도 들어. 그래야 멋진 어른이 되고 멋진 인생을 살 수 있으니까.

그런데 왜 엄마는 학원에 가라고 하시는 걸까? 엄마는 그런 공부 방법이 좋은 거라고 생각하시는 걸까? 엄마는 그렇게 생각하시지 않아. 하지만 성적이 떨어지면 대학에 가기 어렵고 대학을 안 가면 동무가 살기 힘들어질까봐 걱정하시는 거야. 게다가 세상은 점점 더 경쟁이 심해지고 있거든. 엄마는 정말 동무의 미래를 걱정하시는 거야.

고래 삼촌 생각엔 엄마의 마음을 먼저 이해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 이해한다고 해서 엄마 생각을 무작정 따르라는 건 아니야. 이해한다는 건 대화를 하기 위한 마음의 준비를 한다는 뜻이야. 대화란 서로의 생각을 합쳐서 더 나은 생각을 만들어가는 일이지. 이런 질문들로 시작해보면 어떨까? 엄마가 동무 만할 때는 공부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그 생각이 달라졌다면 언제 어떤 과정을 통해 달라졌는지, 공부를 못하면 꼭 불행하게 사는 건지, 돈이나 좋은 집이나 남이 부러워하는 직업 같은 것 말고 사람의 행복을 결정하는 게 뭔지.

차분하고 공손하게 말씀드려봐. 그럼 동무와 엄마의 생각이 천천히 합쳐지기 시작할 거야. 엄마의 마음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 잊지 말고. 힘내, 고래처럼!

(참고로 하는 이야기)
잘못된 공부가 판치는 현실에 대한 고민 끝에 전혀 다른 선택을 하는 동무나 부모님들도 있어. 아예 깊은 시골로 들어가서 자연과 함께 살거나 학교에 다니지 않고 집에서 공부하는 경우(홈스쿨링이라고 해요)도 있고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작은 학교(대안학교라고 해요)를 만들기도 해.
고래 삼촌은 그런 선택이 언제나 훌륭하다는 건 아니야.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현실에 무릎 꿇거나 포기할 때 정직한 고민과 대화를 통해 그런 작은 선택들을 한다는 건 참 용감하고 소중한 일이지. 사람이란 흔히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는 방법이 가장 옳거나 유일한 선택이라고 착각하는 일이 많거든..^ ^
2006/09/11 23:07 2006/09/11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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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이해 그리고 대화

    Tracked from 기억유예 2006/09/18 15:33  삭제

    김규항의 블로그에서 이해한다는 건 대화를 하기 위한 마음의 준비를 한다는 뜻. 대화란 서로의 생각을 합쳐서 더 나은 생각을 만들어가는 일. 고래가 그랬어를 2년동안 받아오고 있다. 첫 ?

  2. Subject: 고래가 그랬어

    Tracked from G.N.T 2006/09/18 23:10  삭제

    김규항 씨의 글을 좋아하지만, 고개를 끄덕이는 만큼 내젓는 일도 많다. 날이 선 글을 읽을 때는 항상 그렇지만, 그가 세게 말하고, 그 말이 겨냥하는 이들이 있을 때는 또, 그만큼 그 말을 받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