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6/22 11:06
이따금 아이들이 묻는다. “아빠는 몇 살까지 살고 싶어?” “뭐, 60살? 더 오래 살면 뭘 해.” 그럼 아이들은 짐짓 안타까운 얼굴로 “안 돼. 더 살아야지!”하고 나는 싱겁게, 속으론 적이 흐뭇해져서 웃곤 한다. 그런데 만일 그 자리에 일흔을 넘긴 내 어머니나 아버지가 있었다면 어떻게 될까? 말이란 그런 것이다. 말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실은 말의 ‘외부’에 있다. 똑같은 말도 상황과 맥락에 따라 전혀 다른 뜻이 된다.
반어법은 그런 점에서 매우 불리한 표현방식이다. 나도 몇 해 전에 “나는 노력하는 마초”라는 자괴심 어린 말을 했다가 “스스로 마초임을 인정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지만, 반어법과 관련해서 가장 오해가 심한 사람은 역시 예수다. 부러 오해하는 예수 장사꾼들뿐 아니라, 자못 진지한 사람들 가운데서도 오해는 여전하다.

트로츠키주의자 크리스 하먼의 ‘민중의 세계사’는 꽤 잘 쓴 역사책이다. 관점에서나 팩트의 기술에서나 별 모자람이 없어서 통사로 읽기에 가장 적절한 책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수의 부분만은 예외다. 이 책의 6장 ‘기독교의 등장’에서 하먼은 예수의 말(혹은 예수의 말이라 여겨지는 말)이 “도무지 일관성이 없다”고 주장하며 몇 가지 근거를 든다. 그 중 하나.

그리고 기존의 지배자들에게 저항하라고 설교하는 듯한 구절이 있는가 하면 복종을 종용하는 구절도 있다. 예컨대 예수는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돌리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 돌려라” 하고 말함으로써 로마인들에게 세금을 바치라고 설교한다.


이 에피소드는 마가복음(12장 13~17절)에 나온다.

그들은 예수의 말씀을 트집 잡아 올가미를 씌우려고 바리사이파와 헤로데 당원 몇 사람을 예수께 보냈다. 그 사람들은 예수께 와서 이렇게 물었다. "선생님, 선생님은 진실하시며 사람을 겉모양으로 판단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아무도 꺼리시지 않고 하느님의 진리를 참되게 가르치시는 줄 압니다. 그런데 카이사르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 바쳐야 합니까? 바치지 말아야 합니까?" 예수께서 그들의 교활한 속셈을 알아채시고 "왜 나의 속을 떠보는 거냐? 데나리온 한 닢을 가져다 보여 다오" 하셨다. 그들이 돈을 가져 오자 "이 초상과 글자가 누구의 것이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카이사르의 것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그러면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돌리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예수의 말씀을 듣고 경탄해마지 않았다.


상황과 맥락을 살펴 읽어보면 예수는 하먼의 말처럼 “로마인들에게 세금을 바치라고 설교한” 게 아니라, 자신에게 올가미를 씌우려는 자들을 보기 좋게 엿을 먹이는 것이다. 번번이 예수에게 당해온 바리사이와 헤롯 똘마니들은 이미 연대하여 예수를 죽일 기회만 노리는 중이다. 그들은 예수에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질문을 (속으로 쾌재를 부르면서) 던진다. 만일 카이사르(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다고 하면 예수는 유대인의 배신자가 되고 그르다고 하면 예수는 로마의 반역자가 된다.
어지간한 사람 같으면 얼버무리거나 얼굴이 벌개져서 지사적 무모함이나 보일 상황이지만 예수는 참으로 천연덕스럽게 엿을 먹인다. 엿 먹이는 절차는 두 단계다. 첫단계는 황제의 얼굴이 새겨진 데나리온 한 닢을 냉큼 가져오게 함으로써 그들이 실은 로마 화폐를 소지하고 다니는 속물(혹은 위선자)들임을 드러낸다. 그리고 예수는 제 말에 걸려든 그들에게 다음 단계로 비아냥으로 마무리한다. 예수는 말하는 것이다. “황제 거라고 했나? 그럼 황제한테 바치면 되겠구먼. 하느님 건 하느님에게 바치고.”

반어법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란, 반어법이 통하지 않는 사회란, 얼마나 삭만한가..
2006/06/22 11:06 2006/06/22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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