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5/26 08:46
대개 아빠들은 엄마들보다 도량이 넓은 인간이라 알려져 있다. 엄마들이 아이에게 연신 잔소리를 해대며 이런저런 자질구레한 참견을 할 때 아빠들은 그저 점잖은 얼굴로 “그만해 둬. 애가 그럴 수도 있는 거지.” 하는 것이다. 그런 모습은 자연스레 남자가 여자보다 도량이 넓은 인간이라는 흉악한 편견과 연결되곤 한다.

그게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드러낼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이 있다. 더도 말고 일주일만 엄마질과 아빠질을 바꿔보는 것이다. 아빠는 종일 아이와 지지고 볶으며 아이의 변화무쌍한 일상과 구체적으로 결합하고 엄마는 아침에 나가선 “나 오늘 늦어.” 하며 늘 술에 취해 밤늦게 들어오는 생활을 일주일만 해보는 것이다.
단언컨대, 그 모든 아빠들이 제 인격의 하한선을 뼈아프게 확인할 것이며, 꽤 많은 아빠들이 신경쇠약 증상을 나타낼 것이며, 어쩌면 그 가운데 두셋은 제 아이의 목을 조르고 싶은 충동에 시달릴 것이다. 아빠들이 엄마들보다 아이에 대해 도량이 넓어 보이는 이유는 ‘도량이 넓은 인간인 남자’라서가 아니라 단지 아이와 접촉 시간이 적기 때문에, 아이의 삶에 덜 구체적이기 때문이다. 아빠의 ‘도량’이란 실은 ‘안이하고 무책임한 태도’에 불과하다.
이른바 아이들 ‘교육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다. 엄마들이 아이가 뒤쳐질 새라 조바심을 내며 어떻게든 아이 성적과 경쟁력을 유지하려고 안달을 할 때 아빠들은 “어차피 될 놈은 되고 안 될 놈은 안 되는 거지.” 하며 대범한 모습을 보인다.
그 역시 아빠들이 단 일주일만 엄마질을 해보면 영판 태도가 달라진다. 알다시피 남자들이란 아이일 때나 어른이 되어서나 참으로 졸렬한 가치(이를테면 아이일 적엔 장난감, 어른이 되어서는 페니스 사이즈 따위)로 나와 남을 견주어 허세를 부리거나 열등감에 시달리는 인간들이다. 그런 인간들이 제 새끼가 처한 이 살벌한 경쟁체제를 비로소 실감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빤하다.
어쨌거나 그러저러한 상투적인 과정을 거쳐 엄마들은 아빠들의 도량이나 대범함에, 늘 악에 받친 한마디로 대꾸하게 된다. “당신이 잘 몰라서 그래!” 결국 아이들 ‘교육 문제’는 거의 전적으로 엄마들의 판단과 선택으로 가게 된다. 현실을 부대끼고 실감하는 사람이 현실에 안이하고 무책임한 그러면서 잘난 체나 하는 사람의 의견을 거스르는 건 당연한 귀결이다.
남는 문제는, 현실에 부대끼고 실감한다고 해서 반드시 현실을 제대로 보고 있거나 정당하게 대처하고 있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아빠들이 교육문제라는 현실에 안이하고 무책임한 태도를 보인다면, 엄마들은 그에 대한 반동으로 현실에 맥없이 휘둘리는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엄마들은 아이 교육의 유일한 담당자로서, 현실에 휘둘리기 십상인 처지에 놓인 사람으로서, 제 나름의 교육론이 꼭 필요하다. 교육론이라 해서 어려운 개념어로 범벅이 된 어떤 학술적인 이론을 말하는 게 아니다. 진정한 교육론은 말이나 글로 표현되든 안 되든 상관없이, ‘아이를 어떤 인간으로 키울 것인가’에 관한 일관되고 굳센 태도다.
나는 내가 아는 존중할 만한 사람들에게 그 어머니의 교육론을 묻곤 한다. 대답은 조금씩 다르지만, 흥미롭게도 두 가지는 어김없이 포함되어 있더라. “비굴하게 살아선 안된다.” “나보다 못한 사람을 생각해야 사람이다.”
2006/05/26 08:46 2006/05/26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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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엄마질 아빠질, 교육론

    Tracked from 느끼고 생각하고 글쓰고 읽고 2006/05/26 10:33  삭제

    전적으로 동감.

  2. Subject: 엄마질 아빠질, 교육론 - http://gyuhang.net에서 스크랩

    Tracked from Am & Pm 2006/05/26 13:36  삭제

    엄마질 아빠질, 교육론대개 아빠들은 엄마들보다 도량이 넓은 인간이라 알려져 있다. 엄마들이 아이에게 연신 잔소리를 해대며 이런저런 자질구레한 참견을 할 때 아빠들은 그저 점잖은 얼굴?

  3. Subject: 길든 사람

    Tracked from Whisper Not 2006/05/29 13:57  삭제

    김규항의 글 <A target='_blank' class='con_link' href="http://gyuhang.net/mt/mt-tb.cgi/867.1387612340

  4. Subject: 신비

    Tracked from JAEYOUN.Tistory.com 2006/06/01 17:17  삭제

    아내와 함께 산부인과에 다녀 왔다. 임신 5주째. 그동안 아내가 이전과 다르게 피곤하다는 말을 자주했는데 그것이 징후였던 것이다. 경이로움과 기쁨을 느낀 뒤에 든 생각은 좋은 아버지가 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