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5/11 23:46
다들 학교나 교사에 대해 말하지만, 그렇다고 학부모들이 일방적인 피해자인 건 아니다. 아이를 인간이 아니라 상품으로 키우는 일에 미쳐있는 신자유주의 시절의 학부모들은 대체로 교사 욕을 할 처지가 못 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교사 앞에서 온갖 알랑방귀를 뀌어대다가 뭔가 수틀리면 교사는 아예 상대 안하고 곧바로 교장이나 교육청으로 달려가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모이면 저마다 열혈지사가 되어 교사와 학교를 성토하지만 남의 아이까지 포함한 문제에 연대하는 일엔 하나같이 꼬리를 빼는 사람들이다.
그런 아수라장 속에서 학과 성적이 아닌 일로 교사와 양식있게 소통한다는 건 도리없이 딱한 일이 되곤 한다. 다행히, 교사는 바로 답장을 보내왔다. 그는 대체로 내 의견에 동의하면서 일부 사실관계에 대해 조심스럽게 이견을 표시했다. 그는 듣던 대로 진지하고 반듯한 사람이었다. 나는 교사가 이견을 표시한 부분을 가지고 다시 김단과 차근차근 대화를 했다. 그리고 다시 답장을 썼다. 각자 세 번씩 쓴, 서로에 대한 감사로 마무리한 편지들은 내 노트북에 보관되어 있다. 김단이 어른이 되면 건네줄 생각이다. 내 답장과 교사의 마지막 편지.

"그러나 저는 그런 사실 관계를 가지고 다시 선생님의 의견을 반박할 생각은 없습니다. 두가지 이유에서 온당하지 못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첫째는, 그런 극도로 정밀한 조사나 규명은 단이 아비인 저에겐 가능하지만 선생님에겐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단이라는 한 아이를 상대하지만 이 선생님은 마흔 명이 넘는 아이들을 공정하게 상대할 책임이 있습니다. 만일 제가 단이의 일에 대해 그런 정밀한 조사나 규명을 요구한다면 그것은 단이에게 특권을 달라고 요구하는 일일 것입니다.
둘째는. 객관적으로 증명해내기 어려운 진실은 결국 진실로 인정받기 어렵다는 걸 단이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비인 저는 그런 진실도 당연히 수용해야겠지만, 선생님은 그런 진실은 수용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좀 더 교육적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야 단이가 제 진실을 지키는 능력을 배울 테니 말입니다.
단이에게 어제 그렇게 말했습니다. "아빠는 단이가 부정 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걸 확인해서 기쁘다. 그러나 결국 너는 부정행위를 한 셈이라고 아빠는 생각한다. 왜냐하면 단이의 진실을 아빠는 알아주지만, 누구에게도 증명하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바로 그런 점에서 네가 부정행위를 했다고 판단하는 것이고, 아빠가 선생님이었더라도 그렇게 했을 거다."
단이는 제 말을 알아듣는 것 같았습니다. 하여튼 이번 일이 단이에게도 크게 약인 될 거라 생각합니다. 단이가 학교 일을 잘 얘긴 안 하지만 선생님의 곧은 교육관은 늘 느끼고 있습니다. 외람된 말씀이나 저는 초중고등학교 내내 단 한번도 좋은 선생님을 만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부럽기도 하고 안심도 되고 그렇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메일을 뒤늦게 확인하고 부랴부랴 답장 메일 보냅니다. 바쁘신 와중에도 이렇듯 저에게 좋은 말씀을 주심에 감사드리며 단이에 대한 사랑과 관심에 존경의 마음을 가집니다. 특히, 단이 아버님의 글에서 풍겨나는 성품은 뵙진 않았지만 곧음이 그대로 느껴지는 것 같더군요. 저 또한 부족하나마 바르려고 항상 노력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노력하며 살려고 합니다. 감사드립니다."
2006/05/11 23:46 2006/05/11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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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별것아닌것

    Tracked from 어떤날의거짓말 2006/05/12 19:45  삭제

    규항님의 홈에서 첫째 딸의 학교에서 시험때 일어난 오해에 대한 과정과 담임 선생님께 글을 써 그 과정에 대한 올바름을 찾아가는 글을 읽으면서 그리고 그 학부모의 글에 선생님의 답장을 짧

  2. Subject: 선생님 선물

    Tracked from 2006/05/15 07:58  삭제

    <p><font size=\"4\"><font size=\"3\">5<font face=\"돋움\">월 첫째 주에 아이들 다니는 학교 학부모회에서 가정통신문이 왔다. 다음 주가 선생님 감사 주간이니까 선물을 보내라는 거였다. 미국에도 이런 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