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5/06 20:28
김단이 잠든 후, 나는 교사에게 편지를 썼다. 교사에게 자신이 이미 판단하고 행동한 일이 오류였음을 알린다는 건 물론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자칫하면, 내가 김단에게 꼬치꼬치 캐묻지 않았다면 김단의 진실은 영영 묻힐 뻔했다. 김단에게 그것은 큰 상처가 되었을 것이고 그 아이는 공정함이라는 가치에 대해 조금은 뒤틀린 의식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그것을 피한 것만으로도 이미 많은 것을 얻은 셈이었다. 교사에게 보낸 편지.(지면에 맞추어 줄였다.)

(...) 그러나 아직 사리분별이 모자란 열 살짜리 아이인 만큼 뜻밖의 잘못을 할 수도 있고, 보다 중요한 건 아이가 한 일을 사실 그대로 파악해서 아이가 반성할 건 분명히 반성하게 하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저녁에 단이를 불러놓고 오늘 일을 처음부터 차근차근 짚어 보았습니다. 저는 선생님이 지도한 반성문에서는 제대로 드러나지 않거나 얼마간 다른 부분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1. 단이가 동무에게 말을 건 일: 시험 시간에 대화를 못하게 하는 이유는 부정행위를 막기 위해서일 겁니다. 단이의 행동은 그런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답 한 개의 글씨가 좀 이상하게 적혔다고 생각한 단이는 다시 쓰려고 지우다가 시험지를 찢었습니다. 당황한 단이는 테이프로 시험지를 붙여야겠다 생각했고 동무에게 테이프가 있냐고 물은 것입니다.
2. 선생님께서 답을 안 썼으니 틀린 것이라고 하셨는데도 답을 적고 맞는 것으로 채점하여 내놓은 일: 선생님이 답을 안 적었으니 틀린 것이라고 하셨음에도 답을 적은 건, 선생님을 거역하려 한 게 아니라 자기가 아는 답을 그런 이유로 비워두는 건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고 합니다. 선생님이 지도한 반성문에서 “맞은 것처럼 고쳤다”는 표현은 틀리게 적은 것을 맞게 고치는 부정한 행동의 경우에 할 수 있는 말일 것입니다. 단이의 행동을 요약하면 맞게 쓴 답의 글씨가 좀 이상해서 지우고 다시 쓰려 한 것에 불과합니다.
3. 다시 답을 적은 걸 “덤벙대다 그랬다”고 거짓말 한 일: 선생님께서 화를 낼 거라곤 미처 생각하지 못한 단이는 몹시 겁이 나고 당황했던 모양입니다. 울음이 터지고 선생님께서 거듭 야단을 치시며 머리를 쥐어박고 하자 그렇게 마음에도 없는 말을 둘러댔다고 합니다. 악의로 거짓말을 했다기보다는 겁이 나고 당황한 나머지 그 순간을 모면하고 싶었던 것이지요.
제가 지금 제 아이의 일에 대해 구구절절 되짚는 것 역시 이 불공정한 세상에서 살아가야할 아이에게 ‘공정함’을 가르치기 위해서입니다. 만일 교사와 부모에게서조차 공정함을 배울 수 없다면 과연 아이가 어떻게 사회적 공정함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사람에게 명예를 지키는 일처럼 소중한 일은 없을 겁니다. 저는 아이의 명예라고 해서 어른의 것보다 덜 중요하다거나 작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이가 진실과 양심에 의거해서 제 행동을 되새기거나 반성하게 하는 일은 곧 아이가 진실과 양심에 의거해서 살아가는 인간으로 자라도록 돕는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기회를 어른의 부주의나 잘못된 권위의식 때문에 잃는다면 아이가 받는 상처나 손실은 참으로 클 것입니다. 아이를 좀 더 나은 인간으로 만들고자 하는 마음은 선생님과 제가 다르지 않다고 믿습니다. 반성문을 단이와 함께 고쳐보았습니다. 저는 내일 단이가 선생님의 도움으로 ‘공정함’을 배울 수 있기를 빕니다.
제 의견에 얼마든 선생님의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일러주시면 저 역시 성실하게 대화에 임하겠습니다. (시사저널)
2006/05/06 20:28 2006/05/06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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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딸키우기

    Tracked from 이상한 나라의 폴 2006/05/08 21:57  삭제

    "사람에게 명예를 지키는 일처럼 소중한 일은 없을 겁니다. 저는 아이의 명예라고 해서 어른의 것보다 덜 중요하다거나 작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이가 진실과 양심에 의거해서 제 행동을 ?

  2. Subject: 이쯤에서 말하지 않을 수 없는 내 학교 시절의 이런저런 이야기

    Tracked from Life is so much cleaner on t... 2006/05/11 00:27  삭제

    용기있는 학생과 아들 먼저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능력에 경의, 용기에 박수. 1. 90년대 초반 다시 교복열풍이 불면서, 교복에 긴머리를 그냥 둘 수 없었는지 꽤 많은 학교들이 짧은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