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3/11 21:09
그날 오후 3시, 예수가 십자가 위에서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숨을 거두는 순간 성전의 휘장이 아래위로 찢어졌다. 모든 인간은 하느님과 직접 소통하게 된 것이다. 성전은 ‘하느님이 기거하는 집’이라 여겨졌다. 모든 인간은 제사장을 통해서만, 성전이 정한 제물과 절차를 통해서만 하느님과 소통할 수 있었다. 인간과 하느님의 소통을 독점한 성전의 지배층은 엄청난 영화를 누렸다. 성전이 정한 제물과 절차를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버림을 받은 죄인이었다. 이방인의 뜰에서 성전과 결탁한 장사꾼들을 불같은 분노로 내쫓은 예수는, 성전의 휘황함을 찬탄하는 제자에게 말한다. “돌 한 개도 남기지 않고 무너질 것이다.” 오늘 교회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할 일은 성전에 대한 예수의 태도를 되새기는 것이다. 오늘 교회는 예수 앞의 성전처럼 인간과 하느님의 소통을 독점한 채 온갖 세속적인 욕망을 좇는다. 그렇다면 그 교회들은 “벽돌 한 개도 남기지 않고 무너질 것”이다. 십자가가 솟은 건물에 강대상이 있고 성가대의 노래가 울려 퍼진다고 해서 그곳을 성스러운 공간으로 여기는 건 그저 우상숭배다. 교회에는 하느님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교회엔 하느님이 있다. 그러나 교회에 하느님이 있는 건 하느님이 세상의 모든 곳에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 교회에선 목회자를 사역자, 주의 사자, 주의 종이라 부르며 인간과 하느님의 소통을 대리하는 사람, 혹은 여느 인간보다 하느님과 좀 더 가까운 인간처럼 여기곤(주장하곤) 한다. 그러나 종교개혁 이후 목회자는 성직이 아니라 하고많은 직업 가운데 하나, 노동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모든 사람은 목회자나 성직자를 통하지 않고 하느님과 직접 소통할 수 있다. 그런데도 목회자를 뭔가 성스럽고 특별한 인간으로 여기거나(주장하거나), 괜스레 어려워하는 건 역시 우상숭배라 할 수 있다. 한국교회에서 그런 우상숭배가 횡행하는 건 교회의 영업이익을 차지하려는 욕망과 관련이 있다. 예수 당시의 성전이 그랬듯이 말이다. 거듭 말하지만, 하느님은 우상을 통해 존재하지 않는다. 하느님은 교회에 갇혀 있지도 목회자를 통해 있지도 않다. 하느님은 그를 찾는 모든 곳에, 그를 찾는 모든 사람 앞에 있다.
2006/03/11 21:09 2006/03/11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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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인간이 버림받은 시대

    Tracked from iam1969.com 2006/05/03 14:58  삭제

    Brothers and sisters: Jews demand signs and Greeks look for wisdom, but we proclaim Christ crucified, a stumbling block to Jews and foolishness to Gentiles, but to those who are called, Jews and Greeks alike, Christ the power of God...

  2. Subject: 개신교 비판

    Tracked from ozzyz review 2006/11/12 14:14  삭제

    나는 한국의 주류 개신교에 찬성하지 않는다. 사랑을 전파한다는 허명 뿐인 담론 아래 “남을 증오하고 미워할 것을 신의 이름으로 권장하는 분노의 이데올로기"를 강요하기 때문이다. 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