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12/30 16:31
슬플 때 듣는 음악, 최유준의 목록. 역시 가을에 받은 걸 이제 올린다. 최유준은 나에게 말러를 권한 후배다.


고3때 꽤 오래 앓은 적이 있습니다.
제 병이 흉부외과에서 다루어졌던 터라
심장병 환자를 많이 겪었습니다.
옆 병실 환자가 심장 수술을 받고나면
한동안 멀쩡하다가도
이내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오곤 하더군요.
퇴원하고 얼마 후 검진하러 병원을 찾았을 때
대기실에서 제 나이 또래의 여자 아이를 봤습니다.
핏기 없는 얼굴에,
피가 잘 안통해서 오그라든 손을
그녀의 어머니가 주물러주고 있더군요.
그런데 그녀는 내내 해맑게 웃고 있었습니다.
뭐가 그리 좋을까 싶을 만큼 내내 웃기만 했습니다.
그리 곱지 않은 얼굴이었지만
저는 아직껏 그보다 아름다운 웃음을 본 기억이 없습니다.
그보다 더 슬픈 웃음도...
오디오로 듣기보다는 직접 기타를 퉁기며 많이 불렀던 노랩니다.
아마도 임지훈보다 제가 더 많이 불렀을 겁니다.

임지훈, '영아의 이야기'


록음악의 소음을 듣지 않고는
단 하루도 견딜 수 없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때,
왜소한 체격에 소아마비 장애를 가졌고
천사 같은 눈망울로,
악마를 자처하던 오지 오스본의 노래를 반주하다가
25세의 이른 나이에 요절해버린
랜디 로즈라는 이름의 기타리스트가 있었다는 사실은
제게 눈물나는 위안이었습니다.

오지 오스본, 'Goodbye to Romance'


오래 전에
김민기가 어느 텥레비전 프로그램에 나와서
<아침이슬>을 자신의 보잘것없는 습작이라 말했을 때,
분노 비슷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10여년 뒤에 그의 <상록수>가
골프채를 든 박세리의 배경음악이 되는 걸 보았을 때도
폐기처분되는 역사의 슬픈 뒷모습을 보는 듯했습니다.
슬퍼해야 할지 기뻐해야 할지 알 수 없는 것은
그래도 김민기의 선율들은 제 감성의 역사에서 지워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최근에 전인권도 이 노래를 부르더군요.

김민기, '봉우리'


조금 늦은 나이에 겪은 첫사랑이 실패로 끝났을 때,
비오던 어느 날 대학로 학전에서
그녀와 함께 보고 들었던 김광석의 노래 한 곡이
수개월 동안 환청처럼 반복되어 들렸습니다.
지금은 그때처럼 잃어버린 사랑 때문이 아니라
그 노래의 주인공이 이 세상에 머물러 있을 때 느꼈을
어떤 상실감이 떠올라서
슬프게 들립니다.

김광석, '그날들'


19세기말, 20세기 초의 교향곡이란
오늘날의 거대담론처럼
더 이상 대중의 공감을 일으킬 수 없는,
멸종직전의 공룡처럼 대책없이 몸집만 커져버린 음악양식이었습니다.
그때 그런 교향곡을 가지고
연애편지를 쓴 작곡가가 구스타프 말러입니다.
이 연애편지는 '사랑한다'는 말만 잘라서 읽으면 안 됩니다.
'이 야만의 시대에'라는 말도 같이 읽어야 합니다.
교향곡 전체를 들으며 느린 악장을 들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아도르노와 말러를 탐구하던 시절
전율하며, 슬퍼하며, 환희를 느끼던 음악입니다.

구스타프 말러, '교향곡 5번'
2005/12/30 16:31 2005/12/30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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