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11/10 10:42
(지난달 초에 했던 인터뷰 두 개.)


‘B급 좌파’ 김규항. 그의 글이 대중들의 호응을 얻어온 것은 무엇보다 쉽고 간결하기 때문이다. 화려한 기교나 교묘한 풍자를 동원하지 않지만, 가장 간결한 동작만으로 상대의 급소를 꿰뚫는다. 이런 저런 부연설명을 하지 않는 그의 특성상, 상대와의 갈등은 어찌보면 필연적이다. 여성주의 진영과의 ‘주류페미니즘 논쟁’도 그랬다.
그런 그가, 어느 순간부터 제도권 지면에서의 사회적 발언을 삼가며 소위 ‘잠행’에 들어갔다. 물론 ‘뜨고 지는’ 지식인들이야 한둘이 아니다. 그러나 민감한 사안을 에두르지 않던 ‘자객’ 김규항의 침묵은 사람들의 궁금증을 자아냈다.
그런데 최근 그가 ‘예수’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는 소문이 들린다. 예수라고? 조금 의외다. 그렇다면 만나서 직접 들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일산의 한 오피스텔에서 김규항을 만났다. 그는 나직한 저음의, 그러나 언뜻언뜻 결기가 비치는 목소리를 갖고 있었다. 참고삼아 밝혀두지만, 이건 월간 『말』과 ‘B급좌파’의 첫 만남이다.

교회는 중3때, 예수는 한신대에서

-한동안 잠행아닌 잠행을 하시다가 ‘나의 예수전’이라는 주제의 강의을 시작하셨습니다. 물론 어린이 잡지 『고래가 그랬어』의 발행인으로서 바쁘셨겠지만, 예전에 비해 사회적 발언의 강도가 좀 약해진 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근황부터 듣고 싶습니다.
“『고래가 그랬어』 때문에 바쁘기도 했지만, ‘지식인 활동’에 대해서 힘이 많이 빠진 측면이 있죠. 제가 어떤 이유에선지 사회적 발언을 하는 사람으로 인식이 되곤 했는데 제도 시스템 안에서 진보주의자 노릇을 하는 것에 대한 자괴감이 생겼죠. 자기의 남은 사회의식을 머리로만 배설하는 사람들한테 제 글이 소비되는 것도 답답하고…. 그리고 월드컵이나 탄핵사태 경과할 때마다 아주 힘이 쭉쭉 빠졌죠. 존중할만한 생각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던 분들이 당시 그렇게 말하는 걸 보면서 특히 그랬죠.”

김규항은 잘 알려진 대로 좌파다. 그러나 기독교인이기도 하다. 즉 그가 ‘예수’와 무관한 건 아닌 셈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중3때부터 교회를 나갔지만 집회나 부흥회를 하면 ‘눈이 말똥말똥 떠지는’, 한국기독교식 표현으로 ‘은혜를 입지 못하는’ 사람이었단다. 그런 그에게 한신대 입학은 새롭게 눈을 뜨는 계기가 됐다. 당시 한신대학교는 시쳇말로 ‘빨갱이학교’였고, 다니던 교회의 분위기에만 익숙했던 김규항은 “혼란에 빠졌다.”
“한신대 학풍이나 예수에 대한 역동성, 당시 해직된 상태였긴 하지만 민중신학자들의 이론들, 이 모든 것에 저는 완전히 매료됐죠. 나는 기독교에 대해서 왜 뜨겁지 않은가 자책만 하던 청소년기를 보내다가, 그것이 내 세계관에 깊고 결정적으로 작용하는 어떤 근거를 발견한 겁니다, 저로서는 교회는 중3때부터 다녔고, 예수는 한신대에서 처음 만난 거죠.”
굳이 연결짓자면 김규항은 청년시절 ‘예수’를 만났고, 그런 문제의식들이 좌파로서 살아온 지난 세월 발효하면서 ‘나의 예수전’을 강의하고 책으로 내게 된 셈이다. 그의 문제의식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는 한국교회의 문제점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은폐된 거대권력, 교회

대형교회를 한번 건드리면 소규모언론의 경우, 생존을 위협받을 정도로 견제가 들어온다. 심리적 압박이 아니라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타격도. 권위주의 정부가 물러나면서 어느샌가 교회가 ‘언터쳐블’이 된 것이다. 김규항은 “그것은 교회문제가 아니라 이미 사회문제”라고 말한다. 그는 이 문제가 “강준만 이후 진행되어온 언론, 정치, 지역문제 등의 개혁과제 속에 포함돼지 않은 게 굉장히 안타까운 일”이라 밝혔다. 그는 한국교회가 박정희 개발독재시기 사상유례 없는 팽창을 거듭했고, 교회가 그 속에서 “홍위병 역할”을 했다고 지적했다. “하면 된다”는 개발독재논리가 “믿으면 받는다”는 보수교회논리와 등치되면서 대중들에게 깊이 각인됐다는 것. 한국교회의 ‘기본사항’인 반공주의는 말할 것도 없다. 그는 박정희 시대 교회가 팽창한 또 하나의 이유로, 교회라는 공간이 대중들 사회의식의 효과적 배출구가 됐다는 데서 찾는다.
“제가 고3때 박정희가 죽었으니까 박정희의 아주 ‘오롯한 자식’입니다. 어떤 분은 그 시절이 좋다고 하는데, 그 시절로 다시 돌려보내면 다들 자살할 거예요(웃음). 지금 우리의 이 상황이 얼마나 편한 것인지 잘 모르는 거죠. 민주주의나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말입니다. 어쨌든 당시는 사람들이 모여서 얘기만 해도 의심받는 시대였지만, 당시에 인민들이 유일하게 마음껏 소리지르고 교제하고 떠들 수 있던 장소가 하나 있죠. 바로 교회입니다. 동네마다 다 있죠, 그때만 하더라도 여자들이 함부로 떠들지도 못하던 전근대적 분위기인데, 특히 여성들에겐 교회가 정말 대단한 카타르시스를 배설하는 곳이죠. 거기가면 한복 곱게 차려입고 가서 안내도 하고, 찬송도 크게 부르고, 부흥회할 때는 몽환상태에서 발광을 해도 누가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고. 교회는 파시즘 시절에 대중들의 사회의식이 자생적으로 생겨나는 것을 자연스럽게, 효과적으로 배설하게 하는 강력한 장치였다고 생각합니다.”
김규항은 이렇게 ‘권력과의 상보관계’ 속에서 성장을 거듭한 한국교회 자신이 이제 권력이 되었다고 말한다. 기독교 신자가 1천만 명이 넘고, 불교에 비해 상류계급의 비중이 높은, 다시 말해 한국사회에 어느 곳에나 가지를 뻗은, ‘은폐된 권력’이 된 것이다.

-전에 보면 이라크 파병 때나 중요한 사건이 있을 때 유명한 목사들이 신도들 이끌고 집회를 여는데요. 성조기와 태극기를 같이 흔들면서 수많은 신도들이 모였는데, 솔직히 저는 무서웠습니다(웃음)
“(웃음)그러나 사실은 보수교회에 속하는 수많은 신도들이 신앙과 사회적 양심 사이에서 심한 혼란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교회에서 ”미국은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축복을 받았다“고 하거든요. 상당히 고대적인 상상력인데요(웃음). 옛날에는 제정일치의 씨족 단위니까 그렇다하더라도, 근대 이후에는 우리가 수용할 수 없는 사고방식이죠. 무슨 민족단위로 멸하고 흥하고 그런 게 어딨습니까. 여기는 기독교인이 70%가 넘으니까 하나님이 상을 주고 저기는 50% 미만이니까 벌을 내리고… 그런 하나님이라면 없애버려야죠. 근데 보수적인 교회라고 굳이 말할 것도 없이 대부분의 한국교회 논리가 그런 것이거든요. 구약성서에 보면 그런 식이예요. 구약성서의 하나님은 아주 엄한 아버지같은 가부장적 하나님이죠.”

-그래서 질투하는 하나님이라고도 표현하잖습니까?(웃음)
“그렇죠. 엄청나게 권위적이면서 속으로는 아주아주 쫀쫀한(웃음). 자기한테 듣기 좋은 말하는 걸 좋아하고. 충성하지 않으면 벌을 내리고. 나쁜 짓을 해도 자기한테 충성하면 용서해주고. 그런 하나님은 예수가 2천 년 전에 벌써 없애버렸어요. 하나님이 그런 분이 아니라고 재해석을 했단 말입니다. 근데 2천 년 후에 한국교회는 수천 수만 년전의 유대 하나님을 끌고 오는 거죠. 이것이 우리나라 전체사람들의 의식에 엄청난 악영향을 미친다는 거죠. 진보주의자들은 “이건희와 당신이 어떻게 같은 나라 사람입니까?”라고 물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파들은 사회를 ‘국민’이니 ‘민족’으로 싸잡아 묶으려고 합니다. 독도 얘기 나오면 비정규 노동자건 뭐건 다 사라지는 거죠. 지금 천만이 넘는 기독교신자와 그 사람이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보세요. 우리사회의 사회진보를 가로막는, 정말 은폐되어있지만 가공할 정도로 힘을 가진 의식이 바로 기독교신앙 형태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말씀 듣고 보니까 한국교회가 반공주의는 물론이고 배타적 민족주의, 가부장주의 등 한국사회의 보수가 가진 가치들을 총체적으로 안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수구의 총결산입니다. 이를테면 『조선일보』에도 젊은 기자들은 조갑제씨 창피해하고, 정말 ‘쪽팔리지 않는 우파’가 되고 싶어 하는데. 지금의 한국교회는 그런 것조차 없습니다.”

“‘안티조선’같은 교회개혁운동 필요하다”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까지 언론권력에 대한 시민사회의 한시적 연대감 같은 게 형성됐습니다. 종교권력에 대항해서도 그런 식의 좌우합작이 이루어질 수 있을지, 혹은 그런 식으로 외부에서 압력을 가하는 형태의 운동이 필요한 것인지요?
“정말 필요합니다. ‘안티조선’은 우리가 여기서 더 치열하게 한다고 해서 조선일보가 갑자기 망한다거나 하는 그런 일은 없습니다. 우리가 부러워하는 유럽의 사회민주주의 사회에도 극우세력, 극우언론이 존재하죠.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에는 지금 다들 냉소와 반감, 많이 형성된 것 같아요. 요즘 교회들이 하는 말 들어보면 이제 더 이상 전도가 잘안되다고 하거든요. 위기라고 그러거든요.”

-아니, 인구 4천만 중에 1천만 명한테 전도했으면 많이 한 거 아닌가요?
“우리나라 교회는 작은 건 가게고 큰 건 기업입니다. 이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요즘 젊은 목회자들이 애써 공부하는 것들이 교회경영학입니다. 신자유주의 이후에는 모든 것이 사이즈나 규모로 가치가 결정되잖습니까. 교회가 크고 신자수가 많으면 그게 하나님 축복을 받은 것이지, 과거처럼 작더라도 예수의 정신을 실천하는 교회? 그런 식의 얘기는 이제 없어요. 그러니까 당연히 기업정신을 가질 수밖에 없죠. 기업이란 게 뭡니까. 기업은 영구적으로 팽창하는 것이 아닙니까. ”

-예전 김선일 씨 사망 직전 그 어수선한 이라크에 선교하러 갔던 사람들도 있었죠
“그렇죠. 정부에서 위험하니까 가지 말라고 하는데도 가잖습니까. 죽으면 순교니까. 우리가 상식적으로 말하면 그건 기업정신입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신앙고백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는다는 거죠. 거꾸로 말씀드리면 ‘목숨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철저한 수구정신’이라는 겁니다.”

그가 예수전을 쓰는 이유

한국의 언론들은 ‘잊을만하면 한번씩’ 대형교회를 건드린다. 한바탕 소란이 일고 또 잠잠해진다. 대형교회의 문제점은 개선될 여지도 보이지 않은 채 말이다. 김규항의 ‘나의 예수전’은 소위 이런 식의 대형교회비판, 아니면 교회개혁운동의 일환인가? 김규항은 고개를 젓는다. 그는 “『뉴스앤조이』같은 곳에서 하는 교회개혁운동을 전적으로 지지하고 연대할 터”이지만, 따지고 보면 교회개혁운동은 상식적으로 당연히 일어나지 말았어할 야만적인 일을 비판하는데 그칠 뿐이다. 기독교신자에 국한하지 않고 사회영역에서 예수가 어떤 사람인가를 대중적으로 풀어내는 것이야말로 사회를 진보시킬 촉매가 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저는 교회내부에서 개혁운동하는 분들을 존경하고 지지합니다. 그런데 언론의 경우는, 때가 되면 한번씩 교회를 때려주는 것이, 저는 이따금씩 냉소적으로 보일 때가 많습니다. 이 사회의 엘리트그룹들끼리 견제구를 날리는 듯한 그런 모습으로 보여요. 정말 진정한 안타까움을 갖는 게 아니라, 자신의 파워를 서로간에 확인하는 견제, 이런 느낌을 많이 받죠.”
김규항은 먼저 예수의 생애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무지한가를 짚는다. 신구교를 막론한 기독교인의 신앙고백이라 할 ‘사도신경’에 정작 예수의 생애가 빠져있다는 것이다. “동정녀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히 죽으시고”로 끝이다. 예수가 당시 어떻게 살았는지 전혀 없다. 김규항은 한국교회의 천박성을 떠나서, 예수가 종교체제화 됐을 때부터 근본적인 문제가 생겼다고 말한다. 사람이 만든 종교체제 속에 예수의 역동성과 메시지가 갇혔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교회의 문제점들은 애초부터 그런 잘못된 기반 위에 덧붙여진 셈이라는 말이다.
김규항이 생각하는 예수는 어떤 모습일까. 체제변혁가로서의 예수인가, 아니면 생태주의자이자 여성주의자로서의 예수? 인권운동가로서의 예수? 그는 “놀랍게도 예수는 그 모든 것”이다. 그는 예수를 “역사상 가장 신에 가까이 간 인간”이라 규정한다. 그리고 “우리 세대야말로 인류에서 예수를 이해하는 첫 세대”라고 말했다. 예수의 정신이 그간 이해받기에는 너무나 현대적이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예수의 밀접한 제자들은 상당수가 여성이었다. 여성이 사람취급을 못받던 고대 팔레스타인 사회에서 그는 이미 여성주의를 실천했던 셈이다. 김규항의 말에 따르면 “동서고금을 통틀어서 여성제자들을 데리고 다닌 사람은 없다. 데리고 ‘살았던’ 사람은 많았어도.”

-제가 너무 건조하게 이해하는 것일지 모르겠는데요. 예수가 그 시대에 근대 이후의 가치틀인 평등이나 여성주의 생태주의 등을 발견하는 것이, 혹시 예수가 당시에 이미 지동설을 알고 있었다는 것만큼이나 시대착오적 오류는 아닐까요. 68 혁명 당시 일부 저항적 지식인이 자신의 이념을 예수에게 투사한 것처럼 말입니다
“아니,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예수가 그런 사상을 설명했다는 게 아니라 행동을 그렇게 했다는 것이죠. 예수의 특징은 여성을 무시해선 안된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스스로 여성을 존중하죠. 아동인권도 그래요. 사람들이 아이들을 무시할 때 그는 아이들을 존중한 것이죠. 문제는 예수는 여성주의자다라고 거꾸로 규정하는 것이죠. 예수는 하층계급, 소외된 사람들과 똑같이 어울려서 놀았거든요.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예수를 거꾸로 대입시켜서 예수를 아주 일반적인 계급적인 사회운동가로 둔갑시키는 건 안되겠죠.”

“예수전에 수반되는 ‘책임’, 피하지 않을 것”

-부러 무례한 질문을 하나 던지겠습니다. 과거의 급진적 지식인이 나이가 들면서 크게 두종류의 변신을 한다고 합니다. 철저한 시장주의자가 되거나 아니면 도를 찾는 구도자가 되거나…
“제가 과거에 그 문제에 대해서 가장 민감하게 반응했는데(웃음). 김지하 선생이 바로 옆 건물에 계시는데. 가끔 식당에서 마주칩니다.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는 관계지만, 아주 괴롭습니다.”

-‘앵벌이 상이용사’라는 말을 하셨죠.
“예, 그런 말을 했는데, 제가 그때 잘못했지요. 그렇게 해선 안 됩니다.”

-예, 제가 무슨 말을 할지 눈치채신 것 같은데요.(웃음) 진보적 청년들이 봤을 때 김규항 선생이 예수를 찾는 것이 도사, 구도자의 모습으로 비치지 않을까 하는 거죠
“(웃음) 아니 박형이 잘 아시면서 자꾸 그러시는데, 이미 저는 ‘규정이 돼 있는’ 사람입니다. 저는 ‘도사’가 된다고 해도 제가 써놓은 게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가 없어요. 사람이 변해가는 단계가 보이잖습니까. 급진적이고 유물론적인 사람이 점점 변하면서 표정도 변하고, 패러다임변화 이야기하다가 생명, 우주 이야기하고 구체적 야합으로 이어지는. 저는 하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제 구체적 삶의 조건을 봐도 그렇구요. 아니 근데 제가 왜 이렇게 변명을 해야 하는지.(웃음)”

-사실 이번 인터뷰는 전반전입니다. 나머지는 예수전이 출간되면 꼭 해주십시오.(웃음) 무척 기대가 됩니다. 마지막으로 각오나 전망을 말씀해주십시오.
“제가 아무리 예수가 누구인가를 근본적으로 천착하더라도 수반되는 문제들이 있을 겁니다. 현실적으로 한국교회 이야기가 들어갈 수 있겠죠. 제 스타일을 알건대 그에 대해 두루뭉실하게 표현 않을 겁니다. 그게 문제가 될 수 있는데 그때 책임 있는 태도를 보일 것이라는 점만 말씀드리겠습니다. ”

슈바이처 박사는 너무나 유명하지만, 실은 그가 ‘역사적 예수’ 연구의 개척자였다는 사실은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신화로만 존재해온 예수를 역사적으로 탐구하기 시작했다는 의미에서 그의 공로는 적지 않다. 그런 슈바이처는 이런 말을 했다. “예수전을 쓰는 것처럼 그 사람의 참된 자신을 드러내는 방법은 없다.”
좌파 김규항의 ‘나의 예수전’은 결국 자신이 어떻게 사회를 바라보는지를 드러내는 훌륭한 방식이 될 것이다. 그의 의미있는 작업을 응원한다.

(말지 박권일)




한동안 당신의 글을 접하지 못했다. 그래서 당신의 신간 소식이 더 기뻤다

나는 그저 제도권 언론의 지면을 기반으로 한 활동만 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지금은 어린이 교양만화지 <고래가 그랬어> 발행과 예수에 관한 책을 쓰고 있다.

책의 부제는 ‘B급 좌파 김규항이 진보의 거처를 묻다’ 라고 되어있다. 무슨 뜻인가, 진보가 어디에 있는가를 물음인가, 어디에 있어야 할지를 물음인가?

일상적으로 잘 쓰지는 않지만 거처라는 말이 나는 좋다. 두 가지 뜻이 다 들어가 있다. 진보주의자들이 낡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로 취급되어 장외로 밀려나있으니까.

칼럼집인데 뒤에는 일기를 묶어놓았다. 사적인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서인가, 아니면 시인들의 시작노트처럼 칼럼의 의미를 부연하고자 함인가?

블로그에 쓴 글들을 모은 것이다. 그것도 내 글쓰기의 새로운 한 형태이다. 작년 봄부터 시작한 블로그에 짧은 글을 쓰는 게 재미 있다. 지면에 쓴 글처럼 다 잘 정리된 건 아니지만, 하고 싶은 말을 분량에 관계없이 좀 더 함축적으로 하는 재미가 있다.

공적인 글이란 얘긴가?

그렇다. 블로그를 보면 일상적이고 사적인 내용도 많지만 내 경우엔 지면에 기고하는 칼럼도 마찬가지다. 내 글을 두고 일상을 소재로 해서 사회적인 글을 쓴다는 평이 있었는데 의도적으로 한 건 아니다. 내 일상은 내 정치적 입장과 전혀 구별되지 않는다. 나는 원래 그렇게 생겨먹었다. 그게 거꾸로 내게 뒤집어 씌워지기도 한다. 일상의 얘기를 많이 하니까 말과 글이 조금이라도 차이를 보이면 금세 주위에서 알아차릴 게 아닌가? 딸아이도 12살이니까 곧 내 글을 읽을 거다. 결국 내 올무에 내가 걸린 셈이다.

스트레스도 많겠다.

없다. 내가 나를 알지만 글 스타일에 변화는 어려울 테고, 딱 그만두던지, 아니면 계속 일관되게 하던지. 오래할 생각도 없다. 며칠 전, 딸에게 이야기했다. 난 오십 되면 시골로 내려가서 놀 거라고.

그 때까지 열심히 일해야겠다.

사실 먹고 사는 것만 따지면 돈이 별로 들지 않는다. <강아지 똥>, <몽실 언니>를 쓴 권정생 선생은 누구보다 많은 인세수입이 들어오지만 한 달에 쓰는 돈은 20만원이라던가, 그렇게 산다. 공정한 분배를 위해서 노력해야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그런 생활 태도가 가장 훌륭한 것이라는 생각을 보편화 시키는 노력도 필요하다. 남보다 호사를누리는 게 자랑이 아니라 머리를 긁적이게 하는, 거의 모든 인간이 그 정도의 양식을 갖춘다면 그게 바로 천국이 아닐까. 사회체제의 진전을 통한 유토피아는 없다. 인간은 너무 복잡하니까. 대개의 사람들은 내가 그런 걸 꿈꾼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정말로 회의적이다. 내가 사회체제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어떻게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더 나은 세상은 억압과 고통에 있는 사람들의 삶이 개선되는 것이지 이미 안락한 사람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런 당연한 얘기가 불온하게 받아들여지는 상황 자체가 답답하다.

그래서 ‘나는 불온하다’가 아니라 ‘나는 왜 불온한가?’ 인가?

‘내가 불온한 건 당신들 때문이다’ 라는 뜻이다. 나는 그냥 지극히 평범한데 세상이 상대적으로 나를 특별하게, 불온하게 만든다. 내 생각엔 특별한 게 아무것도 없다. 게다가 나는 성격적으로 튀는 걸 싫어한다. 사람들은 내가 부러 이슈를 찾는다고도 하지만, 사실 나는 그런 걸 극도로 피하는 쪽이다.

세상을 움직이기 위한 글을 쓰는 사람의 얘기답지 않다.

내가 계속 말하는 건 반드시 해야 하는 이야기인데 다들 하지 않는 얘기, 하기 불편해하는 이야기 들일 뿐이다.

당신의 글을 보다 칠레 소설가 루이스 세풀베다가 생각났다. 등장인물의 선과 악은 모두 계급에 따라 결정된다. 원주민 과 노동자들은 현자이거나 맑고 천진하며, 유럽 이주민과 관리인 층은 모두 인격파탄자였다. 당신의 글에도 그런 면이 있다.

자유주의자 들에게는 용납되지 않는 태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격은 실은 매우 사회적인 이다. 낮은 계급 사람들의 인격적 결함은 더 쉽게 드러난다. 품위를 유지하기 어려운 거다. 그런데 경제적 정신적 안락을 확보한 사람들은 얼마든 자신의 인격적 결함을 드러내지 않고살 수 있다. 둘의 인격을 한 가지 잣대로 볼 수 있는가? 나는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사회적 글쓰기엔 그런 고려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본다. 물론 내가 언제나 추한 이들의 껍질을 뚫고 선한 본성을 볼 수 있다는 건 아니다. 추한 건 추한 거다.

당신의 글은 유난히 논쟁을 많이 일으켰다.

나는 간결하고 명료하게 쓰려고 노력한다. 문장론이라기보다는 그게 좋고 편하다. 그러나 설명적이지 않아서 오독의 가능성이 높고 부당하게 공격 당한 적도 많다. 하지만 그런 공격에 대응한 적은 없다. 사실 나는 논쟁을 싫어하고 잘 하지도 않는다. 그저 요란하니까, 사람들은 논쟁이라 이른다.

반박하지 않는 이유는?

내 글을 성실하게 읽지 않고 하는 이야기까지 내가 책임질 수는 없다.

그 동안 생산적인 논쟁은 없었다는 말인가?

전혀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한국에 생산적인 논쟁이라는 게 존재 하는지 의문이다. 다들 논쟁의 내용보다는 모두들 논쟁 자체에만 관심이 있다. 사회적인 주제로 논쟁을 하면, 당연히 거기에 해당되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그 사람들은 그저 제 삶을 살아갈 뿐인데 지식인이랍시고 배운 놈들끼리 ‘그 사람들 편을 드니, 안 드니’ 하며 싸우는 것은 차라리 코믹한 일이다. 그럴 시간이면 거기 해당하는 사람들을 옹호하고 위로가 될 수 있는 글을 한편 더 쓰는 것이 낫다

요즘 젊은이들은 어떤가?

좋다.

당신 학생시절보다 훨씬 보수적인데?

개인주의적이다. 그러나 사회문제에 굉장히 관심이 많다. 방향을 제대로 잡아주지 못한 것은 진보진영의 책임이 크다. 오죽하면 나 같은 사람이 대중과의 접점을 가진 진보진영의 거의 유일한 사람이겠나. 답답하다.

“하고 싶은 것이 아무것도 없는 세대”라고도 한다. 9월호 의 20대 백명의 포트레이트에서 한 친구는 자신의 세대를 “우리는 뭘 해도 재미없으니까 무엇이든 합니다.”라고 정의 했다.

지금 젊은 세대는 존중할만한 가치, 자신의 인생을 일관할 만한 가치를 설정하기가 너무 어렵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에 대해서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다. 기성세대 탓이다. 모든 것이 돈으로 환원되고 자본이 가치관을 점령한 상태에서 돈과 사회적 지위가 인간의 등급을 결정하고 품위를 구성하는 사회에서. 그들이 무슨 비전을 갖겠는가? 이런 상황에서 시스템을 거스르면서 개인과 세계를 조응시키며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고래가 그랬어> 를 발행하는 것도 그런 의도인가?

그렇다. 모든 게 이런 세상을 마련한 우리의 잘못이다. 아이들에게 미안함을 가지고 만드는 거다. 어떤 사람은 <고래가 그랬어>가 아이들을 의식화 시킨다고 이야기하는데, 사실 아이들은 24시간 자본으로부터 의식화되고 있지 않나. 균형을 잡기 위해서라도 더 많은 <고래~>가 필요하다. 힘들지만 어른들 상대로 칼럼집 10권 쓰는 것보다 보람 있는 일이다.

그렇게 변화된 당신의 입지에서, 당신의 직함을 다시 정한다면 어떤게 어울리겠는가?

내가 글을 쓰고 책을 만든다는 사실은 여전하다. 비주류매체에는 여러 가지 재미난 직함이 많이 등장했는데 그 중 ‘근대 이후 유일한 비우등생 출신 유명 지식인’은 명예롭게 까지 느껴졌다. ‘그래, 나밖에 없지’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웃음)

당신의 사상은 엄격하지만 취향은 리버럴하다. 예술을 즐기는 데에선 계급의식을 따지지 않나?

난 예술에 대해서는 극단적인 자유주의자다. 예술가는 어떤 것도 구애 받지 않고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 예술가의 사회 의식에 대해서라면 몰라도 예술가의 창작과 작품 자체에는 절대로 간섭해선 안 된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전례를 보라. 예술은 합리성, 의식, 이념 보다 훨씬 위의 개념이다. 신들의 것이다. 인간이 개입할 문제가 아니다.

예술가를 부러워하는 것처럼 보인다.

‘예전에 나도 그런 쪽으로 갈 수 있었는데…’ 하는 생각도 한다. 논리 이상의 부분까지 자아을 표현할 수 있는 건 예술 밖에 없다. 예술가만의 특권이다.

예술의 사회적인 역할도 있지 않나?

칠레 시인 파블로 네루다는 연애시의 대가이면서도 어떤 진보주의자보다 앞서가는 전망과 사회의식을 보여주었다. 사회운동가는 현실을 기반으로 하고 시인은 꿈을 기반으로 하니까. 우리 나라 시인들 중엔 진보주의자라고 할 만한 사람이 거의 남지 않았다. 왜 시인이 활동가보다 더 현실주의적일까. 시인이야 말로 가장 급진적인 활동가보다 더 급진적인 사람들 아닌가. 시인이 그려낸 전망을 운동가들이 실행하는 것이 아닌가.

장석남 시인은 ‘내 시를 보고 / 너무 이른 나이에 둥그렇게 되었다는 말도 들어서”라고 썼다. 그건 당신이 글을 쓰며 가장 경계하는 부분 아닌가?

아니, 나는 그런 걸 경계하지 않는다. 둥글어지면 쓰지 않으면 된다. 지금까지 누린 명예에 감사하며 그만 쓰면 될 것을 왜 굳이 똥칠을 해가며 써야 하나. 그 시인의 펜 끝은 아직 날카로운 모양이다. 실제로 둥글어진 사람들은 절대 그런 자의식을 드러내지 않는다.

세상은 정말 나아질까?

계속 나아지고 있다.

정말인가?

노예제로 돌아가고 싶나? 자기가 살고 있는 시대에 특기할 만한 인류사의 변화가 있을 거라는 기대, 강박에서 벗어나야 한다. 중세를 생각해보라. 그런 암흑 속에서 몇 백 년 동안 그 암흑 너머를 꿈꾸며 싸우고 모색하는 사람들 덕에 역사는 결국 바뀌었다. 역사는 계속 발전하고 있다. 적어도 지금은 공식적으로 신분제는 없지 않는가. 실제로는 존재한다 해도.

당신은 “역사는 죽 쒀서 개주는 식”이라고 썼었다.

그런 식으로 발전한다는 얘기다. 소수의 헌신을 통해 열린 과실은 모든 사람들이 다 누린다. 그러나 혜택을 누린 대부분은 그런 사실을 알려고 조차 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박정희 시절이 좋았다는 호사스러운 말까지 한다. 그 시절이 좋다면 대통령 욕도 30년 전처럼 숨어서 욕할 것이지 왜 백주대낮에 큰소리를 치는가? 역사는 그것을 변화시키는 사람과 누리는 사람들이 다른, 죽 쒀서 개주는 방식으로 전진하는 경향이 있다. 원래 그런 것이니 헌신하는 소수여 너무 억울해 하지 말라는, 일종의 위로로 한 말이다.

와의 인터뷰는 불편하지 않나?

편안하다. “왜 나 <보그>같은데 글을 쓰느냐?”는 비판을 받기도 하는데 사실 나는 <한겨레>에 글을 쓰는 것 보다 훨씬 마음이 편하다. 적어도 진보언론이라는 거짓말은 하지 않으니까. 상업지라는 것을 그대로 드러내지 않나. 재미도 있고.

인터뷰집을 준비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좋은 인터뷰는 어떤 거라 생각하나?

솔직히 잘 모르겠다. 나는 기본적으로 내가 싫어하는 사람은 만나지 않는다. 나는 인터뷰이의 생각과 행동이 세상에 더욱 알려져야 하는, 그래서 그 정신이 널리 전파되었으면 하는 사람들만 인터뷰 한다. 그런 사람을 알리기에도 시간이 모자라다.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 안 만나고 불편한 자리에 가지 않을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축복이라 생각한다.

(GQ 정규영)
2005/11/10 10:42 2005/11/10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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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B급 좌파

    Tracked from 보통의 일상 2010/01/21 15:41  삭제

    김규항 선생님의 b급 좌파를 읽었다. 그러니까 지금으로 부터 10년전 이야기들. 어제 책이나 몇 장 읽어야지 하며 들고 침대에 누웠는데, 뒤척거리다가 우연히 너무도 편한 누워서 책읽기 자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