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11/06 12:46
기차길옆작은학교 아이들이 평택 대추리에 벽화를 그리러 갔었단다.


“아픈 동네 대추리에 갔다 오다”
초 6 홍연주

미군으로 인해 평화롭던 동네 대추리가 ‘아픈 동네 대추리’로 바뀌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가 힘을 주러 벽화를 그리러 갔다.
하얀 벽에 우리가 하나 둘씩 그리기 시작했다.
모두가 손을 잡고 있는 그림을 그렸다.
우리가 그린 그림에 중학교 언니오빠들이 도와주었다.
그림이 완성되었다.
너무 좋았다.
우리가 그 벽화를 그렸다는 것이 신기했다.
우리가 그 벽화에서 사진도 찍고 노래도 불렀다.
참 재미있었다.
‘대추리’ 동네 사람들이 우리가 그린 그림을 매일 보면서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미군들이 빨리 없어져서 대추리에 좋은 날들만 있었으면 좋겠다.

말풍선: 미군 니네!!
폭력보다 평화가 더~ 세다는 거 아직도 모르니?

"우리들의 벽화"
초 6 유슬기

나는 대추리에 갔다 와서 많은 걸 느꼈다.
우리는 평택에 가서 벽화도 그렸지만 놀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는 가지 말라는 곳도 가고 심하게 놀지 말라고 해도 우리는 심하게 놀았다.
그런데 대추리에 계시는 ‘평화바람’이모 삼촌들은 혼내지 않으시고 웃으시면서 그쪽에 가면 안 된다고 하신 게 끝이었다.
나는 그걸 보면서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다 이유가 있으셨다.
우리가 온 게 좋아서 혼을 내시지 않으신 걸..
그리고 오면서 경찰도 많이 보고 차들도 많이 봤다.
그런데 다 이유가 있었고 그건 평화를 위해서가 아니고 ‘폭력. 전쟁’을 위해서 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늘이 우리를 버리지 않으면 평화가 올꺼라고 생각이 된다.
‘평화바람’ 이모 삼촌들이 12월달에 다시 보자고 하셔서 우리는 다 “네~”라고 했다.
그러니까 12월달에 한 번 더 가 보았으면 좋겠다.


"즐거운 평택"
초 5 이원용

어제 평택으로 ‘평화 그림’을 그리러 갔다.
우리는 먼저 사람을 벽에 대고 그렸다.
그리고 그린 것을 한 개 골라서 얼굴, 바지, 옷 등을 그렸다.
나는 문정현 신부님을 그렸다.
나는 그림을 정성껏 그렸다.
그런데 이모들이 뒤에서 너무 열심히 한다고 칭찬을 해 주었다.
그래서 난 더욱 더 열심히 하였다.
우리는 밑그림을 다 그린 다음 김밥이랑 라면을 먹고 에너지 보충을 하고 다시 벽화를 그리러 갔다.
밑그림을 다 그린 사람은 색칠을 했다.
색칠을 한 다음 정희 이모한테 다 했다고 그러니까 지팡이를 안 칠해서 지팡이를 칠하고 놀았다.
벽화를 그리는 것은 참 재밌다.
그리고 평택이 미군기지가 된다는 것에 대하여 판에 글씨도 썼다.
평택이 미군 기지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즐거운 대추리"
초 5 조수미

어제 아침 일찍 일어나서 공부방에서 평택에 갔다.
가자마자 먼저 인사를 했다.
그리고 먼저 조를 나누었다.
하얀벽에 밑그림을 그리고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김밥을 먹었다.
그리고 우리가 먼저 가서 그림을 그리고 색칠을 했다.
나는 병민이랑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중등부가 마무리를 했다.
멋있었다.
그리고 자유시간이었다.
난 중1언니들과 ‘사과나무’를 하면서 놀았다.
그리고 ‘오렌지 뽕’을 했다.
가기 전에는 호박죽을 ‘평화바람’이모가 해 주셨다.
그래서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우리는 벽화를 다 그린 것을 보러 갔다.
아, 그리고 말풍선도 만들었다.
거기에서 아주 귀한 선물도 주셨다.
너무 귀한 것이었다.
그런데 난 논 것 밖엔 없는 거 같다.
거기에 미군 기지가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힘을 냈으면 좋겠다.


"대추리"
초 3 윤병민

평택에 있는 대추리라는 곳에 갔다.
거기에 미군 기지가 들어선다고 해서 그림을 그리러 갔다.
거기에 밑그림을 그리고 색칠을 하고 나서 중학교1,2,3학년과 바꿔서 했다.
그 동안 비닐하우스에서 놀았다.
놀다가 김밥을 먹고 호박죽을 먹었다. 그리고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집으로 갔다.
미군이 빨리 물러갔으면 하는 생각이다.
그리고 힘들었지만 미군들이 물러 간다면 참 뿌듯한 느낌이다.


"군인 가시오"
초 1 신진우

나는 평택에 갔다.
그래서 재밌었다.
그래서 좋았다.
군인 가시오!!!


"아픈 평택, 즐거운 평택"
수연이모

추수가 끝나면 어떻게 될지 모를 동네, 대추리 한 가운데
벽에 아이들이 '평화 그림'을 그려주면 좋겠다는 부탁을 받고 간 길이었지만
우리는 무엇보다 정말 잘 놀고 왔다.
문정현 신부님이 눈물을 삼키며 말씀하신 '아프고, 슬픈 땅' 평택 대추리에 가서.

가을 햇살에 벼가 누렇게 익어가는 논을 뒤로하고 대추 분교 운동장에서 만석동 아이들은 제 집에 온 것처럼 편안해 했다.
학교 바로 길 건너 집 담벼락에 오고 가며 벽화를 그리는 아이들,
운동장 여기저기서 대추리 아이들인지 만석동 아이들인지 분간없이 뒹굴며 노는 아이들.
평화바람 이모 삼촌들이 틀어주신 노래소리.
그리고 서로 나누어 먹는 음식들.
정말 평화로웠다.

내년 농사를 시작하기 전에 쫓겨 날 운명앞에 선
농부 할머니 할어버지들의 땅에서
몇 년 안에 아파트 숲에 밀려 어디로든 쫓겨날 운명을 지닌
만석동 아이들이
그렇게 즐겁고 평화로운 가을 소풍을 하고 왔다.

1년째 대추리를 지키고 있는 두희 언니 말씀처럼
'약하고 힘없는 사람들은 여기저기서 빼앗기고
쫓겨나고 또 쫓겨나고 하는'
엄연한 현실 바로 한 가운데
우리는 서 있다.

“죽음은 단단하고 획일적이고 불변적이다. 그것은 또한 크고 사납고, 시끄럽고, 그리고 매우 거만하다.
탱크와 미사일이 자랑스럽게 과시하며 앞장서고, 훈련된 군복을 입은 군인들이 뒤를 따르는 군사행진은 죽음의 세력의 전형적인 표징이다. 생명은 다르다.
생명은 매우 취약하다.. 그것은 매우 작고, 매우 숨겨져 있고, 매우 부서지기 쉽다..
죽음의 세력에 대항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어디에서나 생명을 찾도록 요구된다. 이 부드럽고 취약한 생명을 찾는 것이 참된 저항자의 표징이다.“
(헨리 나웬 신부님 '평화로 가는 길' 중)

강하고, 단단하고, 불변적이며, 나서며, 시끄러운 세상 속에서
우리가 살려고 하는 '공동체'가
무엇을 선택해서 어떻게 살아가려 하는 것인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평화'도 '폭력'도 머리보다 온 몸으로 받아들이며
즐기고 또 밀어내는 아이들과 함께
우리가 그 현실 앞에
길을 잃지 않고 함께 갈 힘이 생기게 되길
다시 간절히 바래본다.
2005/11/06 12:46 2005/11/06 12:46

트랙백 주소 :: http://gyuhang.net/trackback/639

  1. Subject: “내 마지막 싸움…평택에서 살아나갈 마음 없다”

    Tracked from 안티고네 이야기 2005/11/16 02:11  삭제

    7.10 평택 평화대행진 집회 때에 나는 '그 곳'에 있었다. ============================================================ 안티고네... 처음에는 내 입으로 말하기도 쑥스러웠던 안티고네란 이름이 조금씩 익숙해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