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11/03 16:44
추석날 만난 아버지가 당신의 고등학교 시절 사진을 건네주었다. 한참 몸이 불어나는데 교복은 그에 못 미쳐서 터질 듯한, 사진이다. 사진은 누렇게 색이 바래고 금이 쭉쭉 가 있다. 아버지는 컴퓨터로 보정을 부탁했다. 아버지는 전주공고를 3학년 때 중퇴했다. 휴학도 하고 노점상도 하면서 졸업을 해보려 애썼지만 가난한 전라도의 소년에겐 어려운 일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공군에 정비사로 입대했다. 기술자라면 무시당하지 않는 시절이었고 아버지는 그렇게 기술자가 되어 기술자로 일생을 보냈다.
예나 지금이나 아버지는 못 고치는 게 없고 못 만지는 게 없다. 어릴 적 단칸셋방 우리집의 난방도 아버지의 자작 보일러가 맡았다. 보일러는 링거병처럼 매달린 기름통에서 투명 호스를 따라 기름이 한 방울씩 흐르면 마치 제트엔진처럼 강한 불꽃이 구들을 가열하는 구조였다. 구조는 간단하고 엉성해보였지만 성능은 대단해서 없는 살림이지만 한번도 추위에 떠는 법이 없었다. 아버지는 그런 걸 만들 때 볼트 한개도 돈을 주고 사는 법은 없었다. 집엔 늘 여기저기서 모아둔 못쓰게 된 기계 부품들이 굴러다녔는데 필요한 기계가 생기면 그 부품들은 신기하게도 바로 그 기계의 키트가 되는 거였다.
기계류야 복잡한 전투기를 정비하는 분이니 그럴 만하다 해도 아버지는 참으로 막히는 게 없는 기술자였다. 초등학교 2학년 때던가. 어느 날 선생님이 “지휘봉 만들어 올 수 있는 사람!”하고 말했을 때 나는 무심코 손을 들었다. 아버지는 반색을 했다. 교사를 잘 모시셔야 하던 시절이었다. 형편도 그렇고 어머니는 늘 건강이 안 좋아서 학교에 인사도 한번 못가고 하니 아버지는 마음이 안 좋았던 모양이다. 이틀 후 아버지가 신문지에 싸준 지휘봉을 펴 본 선생님은 눈이 동그래졌다. “사왔나?”
돌아가신 지 한참인 할머니는 나에게 늘 말하곤 했다. “니 애비는 겨우 걸아다닐 적부터 부억 바닥에 못을 박고 놀았는데 그 못대가리가 얼마나 줄이 똑바로인지 어른들이 다 놀라곤 했지.” 그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은 나도 이릴 적부터 기계를 좋아했다. 지금도 나무나 꽃 이름은 부러 외우려 해도 잘 안되는데 기계는 한번만 봐도 머리에 쏙쏙 들어온다. 집에 돌아다니는 온갖 부품들을 이리저리 꿰맞추어보는 일은 어릴 적 나의 주요한 놀이였다.
폭탄을 만든답시고 혼자 며칠을 낑낑거리다 폭발해버린 일도 있었다. 명절이라 할머니 집에서였는데 온몸이 화약연기로 덮인 내가 마당으로 뛰어나오자 집안이 발칵 뒤집혔다. 두부를 가져오라고 소리치는 사람, 된장이 낫다고 소리치는 사람, 찬물을 부어야 한다는 사람, 오히려 따뜻한 물을 부어야 한다고 반박하는 사람... 지금도 내 손에 그 날 흉터가 남아있다. 어린 기술자의 훈장이.
결혼을 하고 아버지와 떨어져 산 후로도 뭐든 고장이 나면 기술자를 부르는 일은 별로 없다. 신기한 건 그 기계의 구조에 대해 아는 게 없으면서도 뜯어서 뚝딱뚝딱 만지다보면 해결되는 것이다. 아내는 늘 “어떻게 고쳤어?” 묻지만 나는 그저 “나도 잘 몰라.”할 뿐이다. 구조를 모르니 왜 해결이 되었는지도 잘 모르지만 어쨌거나 백이면 백 문제는 해결된다. 기계는 합리성과 인과관계의 결정체라지만 나는 오래된 기계엔 어떤 감성 같은 게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말하자면 나와 기계는 어떤 감성적 소통을 하는 것이다. 아버지가 기계와 그랬듯이 말이다.
추석날 밤 아버지 등에 부항을 떠드렸다. 어깨는 작아지고 주름살과 검버섯은 몰라보게 많아진 등을 만지며 나는 조용히 탄식했다. ‘아, 위대한 기술자가 늙어버렸구나!’
2005/11/03 16:44 2005/11/03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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