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8/31 12:38
물론 갈수록 비싼 물건은 아름답고 아름다운 물건은 비싸지는 경향이 있다. 가격과 심미성의 상관관계, 즉 평민들과 다른 것을 갖고 싶어 하는 부자들과 그 욕구에 봉사하는 장사꾼들의 오랜 상관관계 덕이다. 그러나 여전히 가장 아름다운 물건은 아름다움을 나눌 수 있는 물건이다. 미술작품이 미술관에 소장되어 영원히 그 아름다움을 나누듯, 어떤 물건은 누구나 구입할 수 있어 그 아름다움을 나눈다. 내가 가진 아름다운 물건 몇 개.

일수공책
늘 갖고 다니면서 메모할 수 있는 가장 편리한 수첩. 프랭클린 다이어리만 빼곤(쓰면 ‘성공’한다기에) 수첩 종류는 거의 다 써봤는데 이 단순함의 마력을 따라갈 물건은 없다. 중철(게다가 실묶음) 제본이라 좍좍 벌어져서 쓰기 편하고, 고전적인 디자인은 언제 봐도 푸근하다. 교보나 알파 같은 큰 문구점에서 구하기 어려운데 나는 디자이너 안상수 선생이 자기 동네 문방구에서 판다며 세권씩 부쳐준다.(없는 게 없는 대형 문구점에는 없고 오래된 동네 문방구에만 있는 이상한 물건.) 떨어질 만하면 세권씩 배달된다. 메이커는 불확실하고 한권에 삼백원 쯤 한다. 문구 구경이 취미라 이따금 잠시 물리치기도 하지만 얼마 못가 “역시 일수공책이제일이야” 한다. 이를테면 얼마 전에 나는 몰스킨 수첩(고흐와 헤밍웨이가 썼다고 선전하는)을 하나 샀는데 모양새 하나는 정말 내 취향에 완벽하게 맞아떨어진다. 그러나 ‘이만원 가까이 하는 쬐끄만 수첩’은 삼백원짜리 일수공책을 도무지 이길 수 없다. 일수공책엔 아무 거나 생각나는 대로 끼적거릴 수 있지만 몰스킨엔 뭔가 정리해서 적어야 할 것 만 같은 불편함이 있다. 알다시피 메모란 정선한 끼적거림이 아니라 정선하기 위한 끼적거림인 법.

액토 독서대
지난 몇해 동안 몇몇 독서대들을 전전한 끝에 만난 독서대. 액토라는 회사는 컴퓨터 악세서리를 만드는 곳으로 아직은 팰로우나 엘레콤 따위 외국 회사에 비해 (특히 디자인 면에서) 많이 떨어지는데 이건 참 물건이다. ‘카피가 아니라면’ 이라면 전제가 붙어야겠지만. 모든 독서대(관광 토산품 가게에서 파는 나무에 인두로 그림을 새긴 것부터 시스맥스 류의 뺀질뺀질한 것까지)의 문제는 ‘독서대가 책을 압도한다’는 것이다. 독서대란 제 존재를 가능한 한 드러내지 않으면서 책과 사람의 만남을 거드는 게 사명인데 독서대가 책을 압도한다면 말이 안 되는 이야기다. 오로지 ‘철사’와 최소한의 플라스틱으로 이루어진 이 물건은 철저하게 책을 모시려는 태도가 되어 있다. 앞에서 보면 구부러진 철사만 살짝 보이는 게 두꺼운 책을 올려놓으면 벌렁 자빠질 것 같지만 실은 뒤에선 자못 역학적인 구조로 열심히 책을 받치고 있어서 천 페이지가 넘는 큰 책도 너끈히 모신다. 오천원 쯤 한다.

삼나무 수성펜
5년 째 쓰고 있는 수성펜. 정식 이름은 ‘파버카스텔 베이직 삼나무 롤러볼’. 딱히 이유는 댈 수 없으면서도 유성볼펜을 끔찍이도 싫어해서 만년필 아니면 수성펜인데 만년필은 마음에 든다 싶으면 고가품이라 데리고 살기가 영 불편하다. 이 펜은 만원 쯤 한다. 파버카스텔은 가장 오래된 독일 필기구 회사다. 검정 플라스틱 재질의 뚜껑엔 파버카스텔의 중후한 로고가 ‘since 1761'과 함께 음각되어 있다. 이 펜의 가장 큰 매력은 몸체의 절반이 삼나무(삼나무 무늬의 플라스틱이 아니라 삼나무)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내가 알기로 ‘비싸지 않은’ 모든 펜 가운데 가장 품위 있게 생긴 펜이다. 물론 삼나무 덕에. 파버카스텔엔 단풍나무, 배나무, 삼나무를 댄 시리즈들이 죽 있는데 이건 그것들 가운데서도 가장 기본형 모델이다. 만원 남짓 하는 수성펜에 원목이라니 얼마나 흐뭇한 상상력인가. 요즘엔 구하기가 쉬워졌지만 전엔 파는 데가 드물었고, 이 펜에 호감을 표시하는 사람에게 선뜻 준 적도 여러 번 있다. “파는 델 알아. 하나 또 사지 뭐.” 하면서. 아름다움을 나누기 위해서. 그런데 이게 몽블랑이었다면, 아니 이삼만원 쯤만 했어도 그게 어디 쉬었겠는가. 삼나무라서, 그러나 비싸지 않아서 더욱 아름다운 펜.

비알레티 다마
시각과 청각은 남 못지 않게 예민한 편인데 어찌된 일인지 미각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사람들은 내 미각에 대해 매우 의외라거나 실망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곤 한다. 그들이 무슨 근거로 내가 뭔가 범상치 않은 미각을 가진 사람일거라고 단정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혀가 그렇게 생겨먹은 건지 어떤 사회적인 불편함(굶는 사람이 8억인 지구에서 먹을 걸 갖고 우아를 떠는 일에 대한)이 작동하는지 분명치는 않지만 하여튼 나는 그렇다. 하여튼 나는 “머슴의 미각을 가진 사람”(인권운동가 서준식 선생의 표현)이고 자연히 기호품에도 별 취향이라는 게 없다. 오래 전 문학평론 하던 이성욱 형은 나에게 다도를 가르치려다 사흘 만에 다기를 집어던지며 포기한 일도 있다. “실망했다 자식아!” 하면서. 그래도 어쩌다 커피 전문점에 가면 반드시 에스프레소를 시킨다. 언젠가 노르망디 해변에서 에스프레소를 처음 먹고선 ‘이거군’ 한 후로 줄곧 그렇다. 다마를 처음 만났을 때 난 그 아름다움에 감탄했다. 고전미가 물씬한 알루미늄 몸통에 현대적이기 짝이 없는 선홍색 플라스틱 손잡이라니. 손님이 오면 물어보지도 않고 다마를 불에 올린다. 다마는 아름답다. 손님이 반가운건지 다마를 사용하게 되어 반가운 건지 헷갈릴 만큼.
2005/08/31 12:38 2005/08/31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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