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5/20 22:02
반갑습니다.
수업 비는 시간에 김규항씨의 블로그에 놀러왔다 '광주의 정신, 민주주의의 정신'이라는 글을 읽고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이렇게 메일을 보냅니다.

저는 부산에 사는 사람입니다.
남들 앞에서 직업을 밝히길 꺼려하는 편인데, 뒷 이야기를 계속 하려면 말씀드려야겠군요
직업은 교사입니다. 역사교사이지요.

요즘 아이들과 5.18 광주민중항쟁에 대한 이야기를 수업시간에 합니다.
처음 교사가 되고 계기 교육을 시작했을 땐 광주학살의 참혹함을 아이들에게 강조했습니다.
죽어간 시체들의 사진을 보여주면서요.
잔혹한 만큼 아이들이 분노하면서 5.18을 기억하길 바랬기 때문이었지요.
실은 교사인 제가 분노에서 헤쳐 나올 수 없는 까닭이기도 했지요.

올해로 4번째 광주 5.18수업을 합니다. 매번 할 때마다 생각이 달라지는 것을 느낍니다.
과연 광주에서 죽어간 사람들이 진정 바라던 것은 무엇인가?
아이들에게 나는 5.18의 어떤 면들을 이야기해주고 싶은 것인가?

언젠가 5.18을 민주화 운동이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한가?에 대해 고민한 적이 있습니다.

그들은 왜 총을 잡았는가?
그 말도 안 되는 끝없는 폭력에 대한 저항,
인간의 존엄을 짓밟아버린 자들에 대한 저항
그 때문이다.
그들이 오늘날 우리가 광주를 바라보는 민주, 인권, 평화 그런 거대(?) 담론들을 위해 죽어간 것은 분명 아니라고 생각했지요.

그리고 80년 5월 18일 광주의 본질적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민주화운동이라는 표현이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사실 그런 거리낌도 있었습니다. 총을 반납하고 합!리!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자고 했던 자들이 지금 광주에서 혹은 한국사회 내에서 나름의 위치를 차지하며, 죽어간 사람들의 피값으로 떵떵거리고 살고 있다는 생각)

'광주 민중 항쟁'이라는 표현이 '광주 민주화운동'이라는 표현보다 훨씬 적절하고 옳은 표현이라고 지금도 생각합니다.
하지만 오늘 '광주의 모습은 진정한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보여주었다'는 김규항씨의 글을 보면서 제가 가진 생각의 오류를 발견했습니다.
제 머리 속의 '민주주의'란 김규항씨 말처럼 부르주아적 민주주의 - 형식적이고 절차적인 그래서 그 알맹이가 빠져버린 그런 것이었습니다.

광주와 민주주의 혹은 민주화를 짝지어 생각하길 거부했던 나의 편견 때문에
저는 역사적 맥락에서 광주가 가지는 민주주의의 정신
해방 광주의 자율적 공동체에서 보이는, 진정한 '민주'를 실현했던 광주의 정신을 생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내가 외치는 '민주주의'라는 말속에서 나는 주체가 아니라 객체로 서 있었던 것입니다...


교사인 저도 광주 정신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이없게도 아이들에게 3가지의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 속에 '5.18정신'이 무엇인가를 묻는 질문도 있었습니다.
물론 수행평가 성적에 반영하겠다는 식의 폭력적인 수단을 동원해서 말이죠

1. <5.18 민중항쟁> 글에서 이야기하는 '자기긍정성'이란 무슨 의미인지 자신의 생각을 쓰시오.
2. 자신이 생각하는 '5.18정신'이란 무엇인지 쓰세요
3. 1980년 일어난 '5.18 민중항쟁'이라는 역사적 사건과 2005년 구덕고를 다니고 있는 학생인 여러분과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각자의 생각을 서술해 보시오.

영상을 보고 책을 읽고 그럼에도
과연 고1인 아이들이 이 어려운 질문에 제대로 답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자신의 인식체계 안에서 이런 나름의 해답을 찾으려고 노력하겠지요.
인터넷이나 책에서 베껴 쓴 - 남의 생각을 가지고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할뿐입니다.

아이들이 숙제를 해오면 정리한 후에 보내드리겠습니다.

제 생각의 오류를 깨닫게 해주신 글 감사드립니다.
항상 건강하십시오.


2005년 5월 20일 강화정



(강화정 님의 허락을 얻어 올립니다.)
2005/05/20 22:02 2005/05/20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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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왜, 실명을 공개할까?

    Tracked from 밑에서 본 세상 2005/05/23 09:35  삭제

    덧글을 다는 기능만 있었어도 이런 글을 내 블로그에 쓰지 않을텐데... 역사 교사의 편지라는 글의 곳곳을 조합하면, 실명과 소속 학교가 모두 확인된다. 사적으로 보낸 메일일텐데, 이렇게 개?

  2. Subject: Brooklyn Dodgers Snapbacks

    Tracked from Brooklyn Dodgers Snapbacks 2014/10/06 15:08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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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Subject: Memphis Grizzlies Snapbacks

    Tracked from Memphis Grizzlies Snapbacks 2014/10/07 21:22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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