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09/19 17:16
지성이란 그저 기억력의 축적일수도 있고 평범과 분리되는 통찰일 수도 있는데 고종석의 경우 전자는 압도적이고 후자는 상당하다. 나는 그런 고종석과의 대화가 즐겁다. B급 좌파와 지성적 자유주의자의 대화는 언제나 은근한 긴장을 낳는다. 그는 나의 유토피아 지향을 조롱하고 나는 그의 패배적인 세계관을 경멸한다. 그런 긴장 속에서 그와 내가 최소한의 우애를 잃지 않는 건 전적으로 극우 조선일보 덕이다. 서로의 세계관에 대한 조롱과 경멸은 대개 "조선일보는 악이다"는 식의 말로, 조선일보에 대한 적개심으로 행복하게 수습된다.

초창기 한겨레 문학담당 기자 노릇을 할 때부터 집단(이른바 창비네 문지네 하는)보다는 문학 내재적인 판단을 견지했던 아웃사이더적 인간 고종석은 현재 더욱 완전한 아웃사이더가 되었다. 그는 조선일보에 반대하는 그의 입장 덕에 한국 지식인 사회에서 아웃사이더가 되었고, 어떤 조직에도 끼지 않는 그의 선택 덕에 아웃사이더 속의 아웃사이더가 되었다. (아웃사이더 아웃사이더 하는 김에 내가 관여하는 <아웃사이더>에 대해. 단지 책이름일 뿐이기도 하지만, 나를 포함해서 <아웃사이더>를 만드는 사람들은 아웃사이더가 아니다. 특히 '아웃사이더 편집주간'이라는 그럴싸한 직함을 달고 다니는 나는 <아웃사이더> 덕에 이른바 지식인으로서 허명과 상품성을 높이는 이득을 보았다. 나보다는 정도가 덜하지만 이런 면은 현재 안티 조선 계열의 일군의 지식인들에 대체로 해당된다. 그들은 한국 지식인 사회에서, 아웃사이더라기보다는 아웃사이더적 세력이다.)

고종석의 독특한 입지는 그를 아웃사이더 속의 아웃사이더로 만들었지만 이른바 그의 자유주의적 세계관과는 강고한 일관성을 이룬다. 이를테면 복거일, 혹은 영어공용화론과 그의 관련이다. 그는 복거일을 제 스승이라 말했고 복거일이 제기한 영어공용화론에 '진지하게 논의'하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얼핏 모호해 보이는 그 입장 덕에 그는 늘상 곤경에 처하곤 한다.(한 예로, 얼마 전 고종석은 <한겨레21> 지면에서 정과리와 조선일보 문제를 두고 논쟁을 벌였다. 그 논쟁은 내용 여부를 떠나 그런 논쟁이 제대로 벌어진 일이 거의 없었다는 이유만으로도 유익했다. 그러나 며칠 후 그는 이제 인터넷은 들어가지 않을 생각이라 말했다. 안티조선 계열의 어느 웹사이트 게시판에 적힌 "그 대담에 고종석이가 무슨 자격으로 나갔느냐." "고종석은 영어공용화론자"라는 식의 홍위병적 의견에 낙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금만 유심히 보면 고종석은 복거일에서 어떤 복거일을 분리하고 영어공용화론에서 어떤 영어공용화론을 끊임없이 분리한다. 고종석은 다만 국가주의 파시즘으로 가득 찬 한국 사회에서 개인의 의미를 '상대적'으로 주장하고, 민족주의라는 전가의 보도로 우민 시스템을 유지해온 한국 사회에서 보편적 인간의 의미를 '상대적'으로 주장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가 어떤 집단에도 끼지 않으려는, 못하는 일은 당연한 귀결이다.)

가장 올바른 노선을 좇는 건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모든 진보적 노력(혹은 운동)의 본능이다. 그러나 그 가장 올바른 노선은 언제나 그 노선에 기본적으로 합의하는 작은 이견들의 도움으로 완성된다. 문제는 그런 작은 이견은 필연적으로 밖에서 느끼기에 회색이고 안에서 느끼기에 위험하다는 사실이다. 현실 사회주의의 경과가 보여주듯, 그런 작은 이견들이 묵살될 때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모든 진보적 노력(혹은 운동)은 찬란한 대의에 담긴 졸렬한 내용으로 남을 뿐이다. 집단주의의 악령에 사로잡힌 우리에겐 더 많은 아웃사이더, 더 많은 고종석이 필요하다. | 씨네21 2000년_9월
2000/09/19 17:16 2000/09/19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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