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07/25 17:14
"40도에 육박하는 고열에 시달린 두 살배기 우리 아가를 가슴에 품고도, 분명히 의사들 나름대로의 정당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애써 눈물을 참고 있던 저를 드디어는 서럽게 눈물을 터뜨리게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한없이 여린 존재 앞에서는, 더 고귀한 그 무엇도 있을 수 없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독자 편지에서)

의사들에 대한 단상, <돌팔이>에 많은 의사들이 항의했다. 의사들(정확하게, 항의편지를 보낸 의사들)은 하나 같이 나더러 의사들이 처한 현실을 아느냐고 했다. 밝히자면, 나는 의사와 관련한 한국 의료제도의 구조적 모순에 대해 기본적인 분별을 할 수 있을 만큼은 안다. 의사폐업을 주제로 한 어느 대담에선 의사들의 입장을 옹호한 일도 있을 만큼 말이다. <돌팔이>는 의사들이 처한 현실에 대한 내 논리적 견해가 아니라, 한국 의사들에 대한 한국 사람들의 정서적 견해였다.

의사들은 <돌팔이>가 정부와 관제 언론의 여론몰이 만큼 악의적이라 했다. 의사들이 악의적인 여론몰이와 여론을 분별하지 못하는 건 딱한 일이다. 이를테면 지하철 파업 노동자들을 '시민의 발을 볼모로'라는 수사로 여론몰이한 세력이 의사 폐업을 '환자의 생명을 볼모로'라고 비난하는 일과 지하철파업 노동자들의 권리 주장에 연대하여 기꺼이 불편을 감수한 사람들이 의사폐업을 그렇게 말하는 일을 전혀 다르다.

사회적 억압은 누구에게나(논설위원 김대중이나 국회의원 정형근 같은 막돼먹은 인간들에게도) 있지만 그저 나름의 것일 수도 사회적 연대를 얻을 만한 것일 수도 있다. 근대사회의 성원이라면 특별한 사회적 억압에 처한 다른 성원의 정당한 권리 주장에 사회적 연대를 보낸다. 우리가 지하철 파업 노동자들을 '시민의 발을 볼모로'라 비난하는 일에 반대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그러나 지하철 파업과 의사들의 폐업은 경우가 다르다. 의사들의 폐업이 사회 성원들로부터 어떤 연대도 얻지 못한 이유는 그들이 처한 사회적 억압에 비해 그들이 선택한 해결 방법이 터무니없었기 때문이다.

지하철 노동자들이 다른 사회 성원들에게 부탁한 건 불편이었지만 의사들이 다른 사회 성원들에게 부탁한 건 목숨이었다.(의사들은 사람이 죽었다는 얘긴 악의적인 과장일 뿐이라 주장한다. 그게 사실이라 해도 사람이 죽을 수도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예상할 수 있었다는 것 또한 사실 아닌가) 의사들의 비극은 자신들에 대한 사회성원들의 정서적 견해를 여전히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점이다. 사회성원들의 의사들에 대한 반감은 의사들이 생각하듯 폐업 사태와 관련한 악의적인 여론몰이로 새롭게 만들어진 게 아니라 이미 오랜 시간 동안 체험으로 쌓여온 것이다.

폐업에 나선 의사들은 "이럴 바에는 개업할 돈으로 차라리 카페나 당구장을 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개업하지 말고 카페나 당구장을 하면 될 것이다. 카페나 당구장을 하는 인간은 의사보다 하등하단 건가. 자신들이 더 이상 특권층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도 여전히 특권 의식을 버리지 못하는 의사들의 이중의식은 그들의 권리주장의 공정성을 손상한다.

간호사들이 교대 근무하며 파업할 때 '환자를 볼모로'라 비난했던 의사들은 폐업을 승리로 끝내고도 목숨을 부탁했던 다른 사회 성원들에게 사과하지 않았고 자신들 대신 국민의 정부로부터 분풀이 당한 롯데호텔 노동자들에게도 사과하지 않았다. 90퍼센트가 넘는 의사들이 재파업에 찬성했다.

추신 : 의사들의 항의 속에 '당신 공산주의자냐'라는 말이 적지 않았다는 사실은 나를 낙심케 했다. 의대에선 사회 교양을 가르치지 않는 건진 모르겠으나 이젠 <조선일보>조차도 주저하는 그런 메카시즘적 발언을 서슴지 않는 그들을 다른 사회 성원들이 '선생님'이라 부르는 건 기괴한 코미디다. 의사들의 초라한 사회 교양과 의사들에게 주어진 근거 없는 사회적 권위의 부조화는 "40도에 육박하는 고열에 시달린 두 살배기 우리 아가를 가슴에 품"은 어머니의 가슴을 서럽게 찢는다. | 씨네21 2000년_7월
2000/07/25 17:14 2000/07/25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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