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3/10 09:40
1980년 어느 날 주한미군사령관 위컴은 지껄였다. "한국인들은 들쥐와 같다. 들쥐의 습성은 한 마리가 맨 앞에서 뛰면 덮어놓고 뒤따라가는 것이다." 물론 그의 발언은 ‘망언’이라 비난받았다. 그는 “레밍(우두머리를 따라 떼 지어 몰려다니는 쥐처럼 생긴 동물. 절벽을 만나 떼죽음을 당해도 절대 멈추지 않는다.)을 들쥐로 오역한 것”이라 해명했지만 들쥐든 레밍이든 그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한국인들이 누구든 맨 앞에서 뛰면 덮어놓고 뒤따라가는 습성을 보여 온 건 사실이었고 그런 습성은 그 후로도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98년에 어느 글에서 이렇게 적었다. “위컴은 '망언'을 사과했지만, '들쥐들'은 18년 동안 덮어놓고 맨 앞에서 뛰는 놈만 따라다녀 왔다.” 이제 7년이 더 지났다. 다시 ‘18’을 ‘25’로 고쳐 적어도 좋을까?
한국인들이 ‘레밍의 습성’을 갖게 된 원인은 물론 그들이 치러야 했던 저 특별한 근현대사 덕이다. 일반적으로 그런 습성은 봉건사회에선 그저 백성의 도리다. 나라의 주인은 왕이며 백성은 그저 왕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봉건사회를 지나 근대사회에 이르러 백성은 비로소 ‘개인’이 된다. 그러나 조선의 백성들은 봉건사회에서 바로 일본제국주의의 신민이 되어야 했다. 36년의 식민지 생활이 어떤 것이었는지 굳이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일제에서 가까스로 해방된 조선의 백성들은 비로소 그들의 나라를 건설할 기회를 맞은 듯했지만 조선은 남북으로 분단이 되고 둘은 다시 잔혹한 전쟁까지 치렀다. 그 후 우리가 살고 있는 남쪽은 강력한 반공파시즘의 지배에 들어갔다. 한국인들은 이승만에서 박정희, 박정희에서 전두환, 노태우 정권에 이르기까지 반세기를 반공파시즘 치하에서 살아야 했다.
‘민주화’가 된 오늘 그 시절은 종종 이렇게 표현된다. “박정희 군사파시즘의 폭압에 신음하던 국민들.” 아픈 상처를 보듬는 아름다운 말이지만 그 말은 과장된 것이다. 그 시절에 “신음하던 국민들”이 몇이나 되었던가? 대개의 한국인들은 그저 초등학교에 다니는 제 자식에게 ‘대통령 이야기하면 큰일 난다’고나 가르치며 조용히 살았다. 그 시절을 겪지 못한 사람이라면 ‘조용히’라는 말에서 어떤 ‘저항’을 추정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대개의 국민들은 신음하는 소수를 ‘세상을 모르는 사람들’이라 여겨가며 오순도순 살았을 뿐이다.
파시즘을 연구하는 어느 학자는 그런 사실을 두고 ‘합의독재’라는 말을 붙이기도 한다. 그 파시즘이 폭력적 강압이 아니라 파시스트와 민중의 합의에 기초한 것이었다는 것이다. 민중이라면 밑도 끝도 없이 미화해놓고 보는 게 진보적이라 여겨지는 풍토 속에서 그 의견은 나름의 신선함을 갖는다. 그러나 그 의견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비범한 의식을 가정하는’ 엉뚱한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이란 무엇인가. 그것을 사회적 지위나 학력 따위를 말하는 게 아니라, 그 사회의 지배적인 가치관 즉 지배계급의 가치관에 순응하는 사람들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관심은 역사나 유토피아가 아니라 제 식구 챙기며 사는 것이다. 그들이 파시즘을 대하는 기본적인 태도는 적극적인 반발도 적극적인 동의도 아닌 순응이다. 강물에 떠내려가는 종이배를 두고 ‘종이배는 바다를 그린다’고 말하는 건 문학적 수사는 되겠지만 합리적이진 않다. 물론 이상적인 사회란 지배계급이나 미디어의 조작에 속아 넘어가지 않는 수준의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사회의 대부분을 차지하여 진정한 민주주의를 이루는 것이겠지만 그건 만들어갈 현실이지 이루어진 현실은 아니다. 그런 기회를 전혀 갖지 못한 사람들에게 그런 기준을 적용하는 건 좋은 뜻에서든 나쁜 뜻에서든 잘못이다.
보다 중요한 건 그 파시즘이 일방적인 것이었느냐 합의에 의한 것이었느냐가 아니라 그 파시즘이 어떤 것이었는가, 이다. 파시즘이 뭔지 알 기회조차 갖지 못한 사람들이 파시즘 치하에서 반발도 동의도 하지 않는 걸 비평할 순 없지만 그런 태도가 결국 파시즘을 보전하는 가장 강력한 힘이라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이제 파시즘이 물러나고 이른바 ‘민주화’가 된 지 20여년이 되어 간다. 한국의 평범한 사람들은 이제 파시즘이 뭔지 알게 되었고 심지어 그 시절이 남긴 이런저런 수구적 잔재들에 매우 비판적이다. 그렇다면 이제 그들은 ‘레밍의 습성’을 벗어났는가?
애석하게도 아직 그렇진 않은 것 같다. 한국인들은 여전히 늘 대열을 이루고 그 대열에서 이탈하길 두려워한다. 최신형 휴대폰과 초고속 인터넷으로 무장한 그들을 이끄는 구호는 이제 “뜬다”이다. 전지현이 뜨면 모든 한국인들은 전지현을 이야기하고 이효리가 뜨면 모든 한국인들은 이효리를 이야기한다. 여성 연예인의 사생활 영상이나 연예인 X파일 따위가 뜨면 며칠 내로 모든 한국인들이 그것을 본다. 한국의 모든 젊은 여성들은 성형수술을 통해 한 개의 얼굴로 변신하는 중이다. 웰빙이 뜨면 모든 한국인들의 삶의 방식은 웰빙이 되며 아홉시 뉴스에서 무슨 음식이 몸에 좋다고 나오면 모든 한국인은 그 순간부터 그 음식을 먹어댄다. 반신욕이 뜨면 며칠 내로 온 나라의 ‘빨간 다라이’가 동이 난다. 한국인들은 한 시기에 한 가지 취향과 기호로 통합된다.
‘6월 항쟁의 재연’이자 ‘위대한 민주시민들의 승리’라 일컬어진 탄핵반대 광장에서조차 “탄핵반대”라는 한 개의 구호 외의 모든 구호는 ‘불순한 의도’라 몰아세워진다. “전쟁반대”라는 깃발조차 끌어내려진다.(얼마 후 그 깃발이 ‘뜨고’ 다시 광장을 가득 채운다.) 그 ‘위대한 민주시민들’은 자신들의 분노를 보완하거나 더 깊게 만드는 모든 시도를 거부한다. 아이를 목말 태우고 촛불행진을 하는 그들은 바로 그 광장에서 일 년 내내 방패에 목이 찍혀 넘어가고 군화에 배를 차여 피를 싸대고 몸이 얼어붙는 날 물대포에 맞아 주저앉은 사람들과의 연대를 거부한다. 그들은 뜨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그 분노의 대열은 한 일이라곤 야당과의 입씨름뿐인 어느 대통령을 민주주의의 순교자가 만들고 다시 민주주의의 부활자로 만든다.
반공파시즘 시절에 한국인들의 대열을 이끄는 구호는 ‘국가’나 ‘민족’이었다. 국가나 민족이라는 구호 앞에서 한국인들은 줄에 묶인 인형처럼 움직였다. 그 구호 역시 아직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 구호가 ‘죽은 아비가 살아 돌아오듯’ 등장한 게 2002년 월드컵이다. 그 때 한국이 얼마나 ‘소란했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소란이 무작정 나빴다는 건 아니다. 월드컵은 이미 세상의 어떤 축제보다 사람들을 흥분시키는 마력이 있다. 게다가 제 나라 팀이 4강까지 올랐으니 도무지 고단하기만 한 한국의 평범한 사람들이 흥분하는 건 당연했다. 대체 제 조국에 자부심을 가질 일이 얼마나 없었으면 고작 그런 일에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부”를 외치겠는가.
문제는 그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부’가 결국 누구에게 사용되었는가, 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그 가슴 아픈 자부의 대열은 대개 “고객이 행복이 우리의 행복입니다” 따위 사악한 광고나 일삼는 삼성이나 에스케이 같은 자본들과 자신의 문제를 ‘애국심’으로 통합하려는 지배계급에게 사용되었다. 그 대열은 그 대열을 이룬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나아지게 하는 데 전혀 사용되지 않았다. 지식인들, 특히 진보적이라 분류되는 지식인들은 그저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축구에 흥분했을 뿐’이지만 제 아무리 사소한 것도 그럴싸하게 꾸며 떠들어대는 그들의 재주를 한껏 살려 ‘국가’와 ‘민족‘으로 시작하는 온갖 장엄한 수사의 범벅을 만들었다. 그 가슴 아픈 자부의 대열은 고스란히 자본과 지배계급의 먹이가 되었다.
대열을 이루고 대열에서 이탈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습성은 이제 한국인들의 삶이 되었다. 그들은 그들을 옥죄던 모든 억압의 대열에서 빠져나와 마음껏 자유를 구가하는 것 같지만 실은 그들 스스로 만든 대열에 자신을 옥죄인다. 모든 일과를 마친 밤 인터넷에 모여 앉아 온 세상을 ‘종합 평론’하는 그들은 마치 세상을 만들어가는 듯 하지만(자본과 지배계급은 늘 그들을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라 부추긴다) 실은 이미 만들어진 세상을 되새길 뿐이다. 그들의 모습은 수십 년 전 복덕방에 모여 앉아 “대중이가 말야” “영삼이가 말야” 하며 ‘세상을 만들어가던’ 영감들을 빼닮았다. 세상의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이 언제나 그들 가까이에 있지만 스스로 세상을 다 아는 그들은 아무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수십 년 전 영감들이 신음하던 소수를 “세상을 모르는 사람들”이라 비웃었듯 말이다. 다시 ‘18’을 ‘25’로 고쳐 적어도 좋을까? (GQ 3월호)
2005/03/10 09:40 2005/03/10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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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들쥐, 혹은 레밍에 관한 단상'에 대한 두 가지

    Tracked from phlip의 홈페이지 2005/03/10 10:38  삭제

    좋은 글이고 절대적으로 동감입니다. 그래도 한국과 한국사람을 긍정하는 저이지만, 가장 참을 수 없는 획일주의, 혹은 개떼근성에 일침을 놓은 김규항님의 글에  더 토달 것이 없습니다.

  2. Subject: 이 시대의 진보세력

    Tracked from ALMEIDA WANNA BE Since 2005.... 2005/11/14 12:34  삭제

    <p>TrackBack From <a href="http://gyuhang.net/archives/2005/03/10@09:40AM.html" rel="nofollow">들쥐, 혹은 레밍에 관한 단상</a></p><p>지난주 주문한 김규항의 <strong>나는 왜 불온한가 </strong>를 읽고 있다 책 내용중 진?

  3. Subject: rsmjyyqh

    Tracked from rsmjyyqh 2008/04/07 17:22  삭제

    rsmjyyq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