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2/27 16:27
잠시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80년대 그 시절 나는 다른 모든 진지한 청년들과 마찬가지로 맑스주의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나는 한참 동안 맑스를 읽으면서도 예수와 수운을 함께 읽어야 비로소 안도감을 얻곤 했다. 나는 당시 그런 나 자신을 늘 미심쩍어 했고(‘나는 왜 이리 리버럴할까’ 하는) 80년대 후반에 이르러선 그런 것에 한눈 팔 여유도 없었지만, 돌이켜보면 그런 미심쩍은 행동들이야말로 소중한 것이었다 싶다. 그 미심쩍은 것들이 처음부터 없었다면 나는 나와 함께 맑스주의에 빠져들었던 많은 청년들이 그랬듯 맑스주의를 버렸을 것이다.

우리가 흔히 잊고 있는 사실은 맑스는 인간 해방의 문제를 완전하게 해명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맑스는 여성이나 환경, 혹은 문화 예술의 문제에서 별다른 진척을 남기지 않았거나 당시의 습속에 사로잡힌 평범한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다. 물론 그건 맑스에게 책임 지울 문제가 아니며 ‘맑스주의의 결함’은 더더욱 아니다. 맑스는 한 번도 자신의 의견이 인간 해방의 완전한 방법이라고 공언한 적이 없다. 맑스는 오히려 자신의 의견을 철저하게 한정했다. 맑스는 인간 해방의 문제에서 가장 직접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라 여겨진 정치 경제적 문제를 해명하는 데 일생을 바쳤다. 맑스는 인류의 가장 큰 적으로 나타난 자본주의라는 괴물을 해명하고 그것을 잡는 방안을 ‘시안’ 형태로 제시했다.

맑스는 그의 동지와 후배들에게 ‘맑스주의’라는 숙제를 남겼다. 자신의 성취에 살을 입히고 피를 통하게 하는 숙제. 맑스주의에 인간의 삶과 관련한 모든 문제를 담아내는 숙제. 그러나 “나는 적어도 맑스주의자는 아니다”라는 맑스의 자조대로 그의 동지와 후배들은 그 숙제에 소홀했다. 특히 맑스의 ‘시안’을 근거로 만들어진 현실 사회주의 사회에서 맑스주의는 ‘이미 완성된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완성된 맑스주의’에는 자본주의에 대한 정치 경제적 해명 말고는 무엇 하나 제대로 담겨있지 않았다. 심지어 ‘민주주의’나 ‘개인’과 같은 부르주아들의 정신적 성취들조차 들어있지 않았다. ‘지도자 동지’의 주검 앞에서 울부짖다 수천 명이 깔려죽는 ‘봉건적 풍경’은 괜한 것이 아니었다.

앙상한 맑스주의. 그것은 현실 사회주의뿐 아니라 20세기의 사회주의 운동에서 전반적으로 나타나는 문제였다. 한국처럼 80년대 중반 이후 불과 몇 년 동안 급진화한 사회에서 그런 편향들은 더욱 압축적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현실사회주의가 무너지자 다들 ‘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중얼거리며 집으로 돌아가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동료들이 모두 돌아가고 남은 맑스주의자들은 그 앙상한 맑스주의가 만들어낸 모든 오해와 편견의 주인공이 되었다. 한국의 잔류한 맑스주의자들은 자신들의 활동을 벌이기 전에 자신들이 ‘역사적으로 증명된’ 앙상한 맑스주의자가 아님부터 증명해내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는 일상에서 우리도 모르게 엉망으로 꼬여버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그것은 바로 얽힌 실타래를 풀듯 그 문제의 경과를 천천히 복기해보는 것이다. 엉켜버린 우리의 맑스주의도 그렇게 해보는 게 어떨까. 특히 우리는 80년대 중반을 넘어 우리가 급격하게 맑스주의에 빠져들 무렵 우리 스스로 ‘운동에 도움이 안 되는 것’이라 미심쩍어 했던 것들을 기억해낼 필요가 있다. 그런 미심쩍은 것들이야말로 우리의 맑스주의에 살을 입히고 피를 통하게 하는 것일 수 있다.

그 ‘미심쩍은 것들’ 가운데 하나가 70년대와 80년대의 사이에 꽃을 피웠던 예수와 관련한 성찰들이다. 그것은 변혁운동에 대한 의지와 전망을 대놓고 표현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그 의지와 전망을 표현하는 우회적인 방법이기도 했지만, 바로 그 ‘우회’가 그 성찰들을 더욱 농익게 했다. 그것은 현실에 대한 실존적 성찰과 변혁에 대한 의지의 조화의 면에서 한국의 사회운동 역사상 가장 성숙한 정신적 성취였다. 동지들은 장일담을 아는가?
(노동자의힘 기관지, 계속)
2005/02/27 16:27 2005/02/27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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