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04/18 17:01
"낙천 낙선운동. '선거혁명'이라는 수사가 통할만큼 거대하고 일사불란하게 진행되고 있는 이 운동이 한동안 맥없이 살아온 한국인들에게 신명을 불어넣고 있다. 현재 시점에서 이 운동을 지지하는 일은 최소한의 정신건강만을 필요로 하는 것 같다. 물론 나 역시 이 운동을 지지하며 이 운동이 우리 사회에 분명한 유익을 남기길 기대한다. 그러나 나는 이 운동의 거대한 일사불란함 속에서 얼마간의 허전함을 느낀다. 허전함은 이 운동이 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그들, 몹쓸 정치인들을 뽑은 게 바로 우리라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오늘 우리가 온갖 비난과 분노를 쏟아 붓고 있는 그들은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이다.

허전함은 이 운동을 주도하는 총선시민연대에서도 온다. 그 연대는 여러 입장과 견해를 초월한 위대한 연대인 동시에 최소한의 상식과 원칙을 생략한 허황한 연대이기도 하다. 가장 끔찍한 경우는 이른바 음대협(음란폭력성조장매체시민대책협의회) 관련인사들의 참여다. 나는 도덕을 기준으로 온 세상을 판단하는 그들의 인생관을 비난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최종 선택은 전적으로 유권자에게 남겨두는 낙천 낙선운동과, 공권력의 힘을 빌어 <거짓말>이라는 영화에 대한 관객들(유권자들이기도 한)의 선택의 기회를 제거하려는 폭력이 그들의 머리통 속에서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정신분열적이다.

허전함은 또한 우리의 비굴함에서도 온다. 한국 정치가 복구 불능해 보일 만큼 썩었다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 모든 부분 가운데 유독 정치만 썩었다거나 한국 사회의 모든 불행이 정치에서 온다는 식의 주장은 우리의 비굴함을 드러낼 뿐이다. 그런 비굴함은 우리에게 진실을 주는 게 아니라 값싼 위안을 준다. 정확하게 말해서 한국정치는 한국사회에서 유일하게 썩은 부분이 아니라 그 썩음이 가장 도드라져 보이는 부분일 뿐이다.

한국 정치는 한국 사회의 거울이며 한국 정치인은 한국 국민의 거울이다. 우리가 또 다른 고문기술자를 뽑는다면 그것은 우리가 여전히 여자와 아이를 때리는 일에 익숙하기 때문이며 우리가 또 다른 도둑놈을 뽑는다면 그것은 우리가 여전히 돈 봉투를 교환하는 일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자성이 없다면 그들은 우리 앞에 불멸할 것이다. 이 운동이 선거혁명이 될지 선거혁명의 모양을 한 거대하고 일사불란한 카타르시스가 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해설 : 한 신문의 청탁으로 썼던 글. 그 신문은 낙천낙선운동을 지지하고 그 열기를 높이려는 의도로 여러 주에 걸친 캠페인 코너를 마련했고 나를 필진에 넣었다. 내 글은 캠페인 초입에 실릴 거라 했고 그 시점은 낙천낙선운동의 열기가 한껏 고조되고 "선거혁명이라는 수사가 통"할 무렵이었다.

캠페인이 중반을 넘어도 내 글은 실리지 않았다. 나는 조금씩 불편해졌다. 내 생각에 내 글은 그 안에 담긴 냉소가 그 운동의 대세를 거스르지 않고 그 운동에 유익을 줄 수 있을 만한 시점에 쓰여졌지만 시간이 지나 그 운동의 열기가 조금씩 누그러지고 그 운동을 훼방하려는 세력이 대열을 정비하는 시점이 되자 내 글 안에 담긴 냉소의 가치 또한 변하고 있었다.

캠페인이 거의 끝나갈 무렵(내 기억으로 총선연대 관계자들이 검찰에 출두할 무렵) 원고를 청탁했던 기자가 전화했다. 그는 몹시 미안해하며 내 글이 지나치게 냉소적이라는 게 자신들의 판단이라 했다. 나는 쓰게 웃으며 말했다. "현재 시점에서 그 글을 썼다면 내가 성격이 삐뚤어진 사람이겠죠. 없던 일로 합시다."

내 글에 담긴 냉소의 가치가 내 생각처럼 시점에 따라 상대적으로 변화한 건지 그 신문의 생각처럼 시점에 상관없이 지나치게 냉소적이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내 글이 그 캠페인에 포함되지 않았고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인정해야 할 현실이라는 점(더욱이 그 신문이 이 나라 안에서 가장 진보적인 신문이라는 사실 앞에서)일 게다. 이제 그 현실이 내게 남긴 질문은 이렇다. 우리의 캠페인은 놈들의 캠페인과 어떻게 달라야 하며 어떻게 다를 수 있을까. | 씨네21 2000년_4월
2000/04/18 17:01 2000/04/18 17:01

트랙백 주소 :: http://gyuhang.net/trackback/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