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1/14 16:50
김단이 읽을거리를 찾기에 해저이만리를 꺼내 주었다. 작년에 김석희 씨가 옮긴 쥘 베른 선집이 나왔다기에 옛날 생각도 나고 해서(나도 초등학교 때 쥘 베른을 처음 읽었는데 그 움울한 분위기가 무서우면서도 참 좋았다.) 몇 권 샀었다. 김단은 요즘 부쩍 과학이나 공상과학 쪽에 관심이 많아지고 있다. 한 참 지나 김단이 그랬다. “어려운 말이 많아서 못 읽겠어.” “예를 들면 어떤 말이지?” “뭐, 인광이라는 말도 모르겠고 모르는 말이 너무 많아.” “인광?” 우선 ‘인광’이 들어간 문장을 봤다.

때로는 인광을 발했고 고래보다 훨씬 더 크고 빨랐다.

‘인광’(燐光 phosphorescence) 같은 말은 달리 우리말도 없고 알아두면 나쁠 게 없다 싶었다. “국어사전을 찾아가며 더 읽어보지 그래?” “그럴까?” 김단에게 국어사전을 갖고 오게 해서 몇 쪽을 함께 읽어보기로 했다. 김단이 소리내어 한 문장을 읽고 잘 모르겠는 걸 나에게 묻고 하는 식으로. 첫 쪽은 그런대로 넘어간다 싶었는데 두 번째 쪽에서 다시 걸렸다.

하지만 그 괴물은 실제로 존재했고, 그것은 부인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이었다. 환상적인 것을 추구하는 인간심리의 경향을 고려하면...

김단은 ‘부인’ ‘엄연한’ ‘경향’ 등을 잘 모르거나 불편해 했다. ‘인광’과는 경우가 다른 것이라 나도 어째야 하나 싶었다. “우리나라 말에 사실은 한자말, 중국말이 참 많아. 그래서 어려운 거야.” “우리나라 말로는 없는 말들이야?” “없는 것도 있고 있는 것도 있지. 아빠가 풀어서 읽어볼까?” 나는 적당히 단어들을 풀어서 다시 읽어보았다.

하지만 그 괴물이 진짜 있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었다. 사람에겐 환상적인 것을 쫓는 마음이 있다는 걸 생각하면...

“무슨 말인지 알겠지?” “응, 그런데 그렇게 어려운 말을 꼭 써야 하는 거야?” “꼭 써야 하는 건 아니지.” “그런데 왜 써?” “글쎄.” “내 생각엔 자기가 남보다 많이 안다는 걸 자랑하려고 그러는 거 같아.” 김단은 마치 이런 생각을 오래 전부터 한 것처럼(실제로 그랬는지도 모르지만) 자못 화가 난 얼굴이다. “그런 것도 있지. 그런데 단이는 어려운 말 쓰는 건 다 나쁘다고 생각해?” “응.” “왜 그렇지?” “다른 사람이 못 알아들으니까.” “모든 책을 모든 사람이 읽으라고 쓰는 건 아니잖아?” “하지만 글자를 아는 사람이면 다 알아들을 수 있도록 써야 한다고 생각해”

슬그머니 웃음이 나오는 걸 간신히 참으며 나는 이 고지식한 여성에게 다시 물었다. “그래도 아빠 글은 좀 쉬운 편이지?” “잘 모르겠지만 아빠 글도 어려운 말 많지 않아?” “그래 단이 말이 맞다. 아빠도 더 쉽게 쓰도록 노력할게.”
2005/01/14 16:50 2005/01/14 16:50

트랙백 주소 :: http://gyuhang.net/trackback/455

  1. Subject: Lexicon

    Tracked from 앙겔루스 노부스 2005/01/14 20:10  삭제

    <FONT style ='FONT-SIZE: 9pt; FONT-FAMILY: 7441_9;'>Lexicon : <A target='_blank' class='con_link

  2. Subject: 어려운 책의 가치

    Tracked from http://blog.naver.com/JFury.do 2005/01/14 20:37  삭제

    <FONT color=#003366>...글자를 아는 사람이면 다 알아들을 수 있도록 써야 한다고 생각해.</FONT> <FONT color=#009966></

  3. Subject: 어려운 말

    Tracked from ... 전갈의 심장 언저리, 카르마. 2005/01/15 14:07  삭제

    <FONT face=바탕>.</FONT> <FONT face=바탕>.</FONT> <FONT face=바탕>.</FONT> <FON

  4. Subject: 알면서도 모르는 체

    Tracked from [julianus] 행복해지기.. 2005/01/17 15:57  삭제

    지난 주말 토요일에는 회사에 친분이 있는 동료가 집들이를 해 그곳에 갔었습니다. 그 즐겁고 좋은 자리에서 성당을 다닌다는 또 다른 동료의 여자 친구분께 "아, 저도 성당에 다닙니다. 예전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