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10/11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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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에 갔다가 동무들을 만나기로 한 저녁까지 어릴 적 살던 집을 찾아보기로 했다. 전북 정읍 옹동 후생촌. 박정희 정권이 전라북도 인근의 빈민들에게 산을 개간해서 부쳐 먹게 한 마을이었다. 옹동읍에 도착해 길가에 나락을 널어놓고 담소하던 노인들에게 말을 붙였다. “어르신들, 후생촌이 어딘지 아십니까?” “아 여기 뒤에가 다 기여.” 노인들은 별 싱거운 걸 다 묻는다는 얼굴로 웃으며 대답했다. 내 기억으론 읍에서 한참 들어간 곳이었는데... 마을 어귀 너머가 다른 세계인 어릴 적의 축척이란 언제나 이렇다. “전기도 안 들어오는 곳이었는데요.” “옛날에야 전기 들어오는 데가 어디 있었간디.” 마을은 이제 '농원'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옹동에서 제일 잘 사는 마을이라고 했다. 물어물어 내가 살던 집을 찾았다. 텃밭이 되어 있었다. "떳다"고도 하고 "죽었다"고도 하던 옆집 ‘이삐’(예쁜이) 아주머니는 읍에 살고 있었다. “그럼 자네가 항이여? 아이고 어쩨쓰까잉.” 거동조차 불편한 할머니가 된 아주머니는 내 손을 쥐고 눈물바람이 되었다. 가슴이 먹먹했다. 40여년 전 우리 부모들의 지독한 가난과 삶의 애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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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이빠이
옹동 가는 길에, 산외면에 차를 세우고 지도를 보고 있는데 할머니 두 분이 창문을 두드렸다. “아저씨, 돈 줄탱께 우리 쪼까 태워다 주실라요.” “예, 어서 타세요.” 할머니들은 집에 가져다 쓰려는 듯 빈 박스 몇 개를 들고 힘겹게 차에 올랐다. 할머니들은 40분이나 차를 기다렸다고 했다. 마을 입구에 세우라는 걸 마을 안까지 모셔다 드렸다. 2천원을 뿌리치느라 혼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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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아비
칠보를 지나는데 허수아비들이 길에 가득했다. 어린이집 표찰이 붙어 있고 한 걸로 무슨 허수아비 만들기 대회를 한 모양이었다. “쌀 개방 반대” 깃발 옆의 허수아비들은 웃고 있지만 전라도 농민들의 숱한 곡절들로 속을 채운 듯 쓸쓸했다. 전라도는 대체 언제까지 웃을 수도 없는 땅으로 남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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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인극장
공장이 된 옛 태인극장 자리. 오래 전 이곳에서 <범띠 가시네> 같은 영화가 상영되면 근처 미장원에서 머리를 지진 처녀들을 유혹하러 근동의 총각들이 꼬여들곤 했다. 내 고향 태인은, 왜군에 패퇴하던 동학농민군이 11월 27일 마지막 힘을 모아 전투를 벌인 곳이다. 이 전투에서 진 전봉준은 사로잡혀 죽임을 당한다. 동학전쟁의 패배 이후 저항의 고장은 전남으로 넘어간다. 오래 전 시인 김지하는 영화감독 하길종과 <태인전쟁>이라는 영화를 구상했다. 김지하가 그렇게 근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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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관
황토현 복판에 세워진 동학농민전쟁기념관은 아기자기 했다. 이 설치물은 ‘진혼’이라는 이름의 스텐인레스 상자 안에 있는데, 두 팔을 흔들면 수많는 내가 사방팔방에서 함께 손을 흔든다. 말 모형을 타면 비디오가 상영되는 장치도 있고 이래저래 오늘 아이들의 흥미를 끌어보려 애쓴 흔적이 보였다. 내 이십대 시절엔 ‘동학란’도 불온한 것이었는데 이젠 이렇게 체제내화 되었다. 아이들이 동학농민전쟁을 아는 것과 그 정신을 아는 것 사이에 우리가 있다.
2004/10/11 22:52 2004/10/11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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