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10/03 21:13
동이 틀 무렵 들어와 잠자리에 들었다가 열한시쯤 전화벨 소리에 잠이 깼다. 밤새 담배를 많이 피운 탓인지 영 개운치가 않아 눈을 감고 누워 있는다. 김건이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아, 할아버지?” “...” “아빠 지금 자는 대요.” “...” “께임하면 아빠한테 혼나요.” “...” 잠시 후 거실에 나가 김건에게 묻는다. “김건, 아빠가 께임하면 무작정 혼냈어?” 김건은 ‘무슨 소린가?’ 하는 얼굴로 제 누나를 바라본다. 김단이 끼어든다. “아빠, 건이가 한 말은 께임이 아니라 아빠 깨우면 혼난다는 말이야.” “아, 그래.” 다시 김건에게 묻는다. “아빠가 자는 데 깨우면 화낸 적 있어? “안 냈나...?” “아빠는 그런 기억이 없지만 아빠도 이유 없이 깨우면 화낼 수도 있겠지. 그런데 할아버지한테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 되는 거야.” “왜?” “아빠가 왜 늦잠을 잤지?” “새벽에 들어오셔서.” “그래 그 이야기를 해야지. 그 말은 빼고 열한시가 다 되었는데 자고 있고 깨우면 화낸다고 말하면 아빠는 게으르고 나쁜 사람처럼 되잖아.” “맞아.” “다른 사람 이야기를 전할 때는 앞뒤를 잘 이야기하지 않으면 욕하는 것처럼 되거나 듣는 사람이 잘못 생각하게 되는 거야. 알겠지?” “알았어요, 아빠.”

그냥 넘어갈 만한 일을 예민하게 따진 이유는 근래 이 문제가 나에게 꽤 부각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이 마흔에 제 소통 스타일이 지나치게 거칠다는 걸 깨닫고 자책하는 후배 덕에 내 소통 스타일도 되새겨 보게 된다. 나 역시 그다지 섬세한 편은 아니다. 아무래도 남성성과 관련한 문제인 것 같고 내 아들은 그렇지 않길 바란다.

(저녁에 돌아온 아내에게 이 이야기를 하니 그랬다. “건이가 분명히 당신 깨울 것 같아서 단단히 단속을 하고 나갔거든.” 잠시 후 아버지가 전화해서 그랬다. “야, 건이 그놈 철저하더라. 아빠 깨우라고 했더니 딱 안 된다고 그러더라.” 이렇게 작은 역사도 사료에 따라 판이하게 달라진다. 대체 삶이란 얼마나 섬세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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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남자들은 커서 모두 착한 어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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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은 김규항씨의 블로그에서 일부만 발췌한 것이다 전문출처 : GYUHANG.NET (전략) .. "아빠가 왜 늦잠을 잤지?" "새벽에 들어오셔서." "그래 그 이야기를 해야지. 그 말은 빼고 열한시가 다 되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