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상이 놓인 방은 컨테이너다. 한쪽에 오디오도 놓고 책꽂이도 놓고 근사하게 꾸몄는데 어느 추운 겨울날 “물감을 찍다 붓이 뚝 꺾인” 다음부턴 한여름과 한겨울엔 비워둔다. 테레비를 안 보고 사는 화가는 건너 마을 동무네 집에나 놀러가야 "세상 소식도 듣고 올림픽 이야기도 듣고" 한다. 9.11사건 장면도 사흘 후에야 봤는데 “꼭 영화인 줄 알”았다. 그래도 화가는 인터넷 커뮤니티 활동도 하고 선거 때는 민노당을 찍었다. 박기범 동생이 그러라고도 했지만 “비판적 지지를 하는 사람들은 도무지 상상력이 부족해 보이"기 때문이다. “왜 함께 그리면 되는 걸, 나만 그려봐야 소용없다고 생각하”는지 화가는 알 수 없다. 화가는 요즘 공책에 풀을 그리느라 열심이다. 40여일 여행을 하고 돌아오니 텃밭에 풀들이 아이 키만큼 자랐다. “풀을 뽑을 수밖에 없게 만든 풀들이 미워서” 하나하나 그리는데 그리고 나면 한결 마음이 편해진다. 그러나 지금 화가는 그 어떤 일보다, 25년 만에 찾아온 사랑에 “정신이 하나도 없”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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