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0/21 21:32
“거창한 거대담론을 말하는 게 아니라 일상의..”  한국 인텔리들, 특히 좌파 인텔리들이 즐겨 사용하는 설레발이다. 그들은 이런 식의 ‘거대담론 혐오’를 지적이고 세련된 태도의 증빙처럼 여기는 듯하다. 딱한 일이다.

20세기 중반 서유럽 좌파는 난감한 현실에 맞닥트린다. 유토피아적 기대에 부풀었던 러시아혁명은 스탈린주의로 귀결하고, 소련군은 헝가리 혁명을 진압했으며, 노동조합은 조직력을 가질수록 혁명성을 갖는 게 아니라 체제내 중산층화하고, 자본주의는 ‘자동 붕괴’되긴커녕 자기 수정 능력(케인즈주의와 복지 국가)을 보였고, 미국의 대량소비 체제와 인민의 의식과 감각을 장악한 대중문화산업은 그들의 상상을 벗어났다.

그들이 현실 변혁을 원하는 좌파라면 그런 현실 앞에서 그들이 가장 먼저 했어야 할 일은 자신들의 오류를 성찰하고(다음에 적겠지만, 그들이 받은 충격은 대부분 맑스주의에 대한 몰이해에 기인한다.), 치열한 사유와 토론을 통해 현실에 대한 대응력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모든 책임을 ‘맑스주의의 본원적 오류’로 돌리고 대대적인 현실 도피에 들어간다. 그들은 거대담론이나 지배의 거시성, 자본주의 경제적 토대 분석 등을 포기하고 지배의 미시성, 문화와 상부구조만 다루기로 한다. 그들은 그 대가로 제도 학술계와 지식시장에서 안정을 누리게 된다. 즉 그들은 시스템과 거래했다.

지배시스템은 거시성('계급' 같은)과, 미시성(‘정체성’ 등 계급으로 포획되지 않는)을 동시에 갖는다. 지배의 거시성은 미시성과 결부되어 작동하며, 지배의 미시성은 거시성과 결부되어 작동한다. 사실 둘은 지배시스템을 분석하기 위해 만들어진 개념틀일 뿐 분리할 수 없는 한 몸이다. 거대담론과 미시담론은 둘 중 하나를 부정하면 전체가 무너지는 구조라는 뜻이다.

그러나 한국의 좌파 경향 인텔리들이 ‘거대담론 혐오’를 지적이고 세련된 태도의 증빙처럼 여기게 된 건, 오류도 도피도 거래도 아니다. 서유럽의 모범적 지적 식민지인 한국의 좌파 인텔리들에게 중요한 건, 맥락과 역사가 아니라 ‘따라하기’다. 인텔리란, 자신의 사유로 말하고 행동하지 않는 것을 수치스러워할 줄 아는 사람이다.
2018/10/21 21:32 2018/10/21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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