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2/18 14:30
우리는 물신주의라는 말을 즐겨 사용한다. ‘물신주의에 사로잡힌 사람’, ‘물신 숭배에 빠진 사회’ 같은 말들이다. 그런데 그런 말들은 물신주의의 의미를 은폐하는 역할을 한다. 죽는 날까지 돈을 쓸 줄은 모르고 쌓아놓기만 하는 수전노, 소비 욕구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청년, 대통령 직을 사기 행각에 이용한 이명박 같은, 어지간한 사람은 반감을 불러일으키는 사례들은 자본주의 물신주의의 본령이 아니다. 맑스는 자본론에서 임금이 노동의 대가가 아니라 노동력의 대가이며, 노동의 가치와 임금의 차이 즉 잉여가치가 바로 이윤임을 밝혀낸다. 이자와 지대는 자본가가 그 이윤을 화폐자본과 토지자본과 나눈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임금은 노동의 정당한 대가이며, 이윤과 이자는 자본에서 나오고, 지대는 토지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맑스는 그것을 ‘물신주의 3위일체론’이라 부른다. 물신주의는 계급이나 교양 여부를 불문하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갖는 신실한 미신이다. 미신은 자본주의 사회가 자랑하는 상식과 합리성, 공정과 정의는 물론 이런저런 호감 넘치는 대안 사회 아이디어에까지 속속들이 스며든다. 물신주의의 사악함은 물신주의의 범람을 개탄해마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가장 결정적으로 작동한다는 사실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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