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쓴 편지와 답장을 말 지에서 퍼다 실었던 모양이다. 거기 달린 코멘트인데 “김규항의 대단히 시의적절하고 올바른 비판”이라는 평가만 각자의 몫으로 돌린다면 누구라도 되새겨 볼 만한 글이다.(애석하게도 여전히 논의는 "너 지금 우리한테 뭐라고 했어!"를 맴돌고 있다.) “홍기빈”이라 적혀 있는데 칼럼 쓰는 홍기빈 씨인지는 잘 모르겠다.
저는 질문자인 고유미 님이라는 분의 의도와 진심에 대해 공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여성주의"냐 "마초"냐 하는 말의 문제로 인하여 김규항님의 대단히 시의적절하고 올바른 비판의 논점이 흐려지는 사태는 막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두 말 모두가 아주 모호하고 애매하기 짝이 없습니다.
첫째, 도대체 "여성주의자"의 정의가 무엇입니까? 하나의 "경향적 흐름"이라는 것 이외에, 여성주의자와 비여성주의자를 가르는 어떤 이념적 기준이라 할 것이 있습니까? 내가 알고 있는 어떤 정치적 이념도 이토록 피와 아를 애매하게 한 상태에서 공격적 배타적 방법으로 개념을 쓰지 않습니다. 제가 보기엔 이 애매함은 소위 gender와 sex를 분리하고 이를 편의에 따라 마구 적용하고 있는 현재의 페미니즘 이론에 도사리고 있으며, 또 그러한 애매함과 무원칙을 정치적인 타협과 이익에 따라 이용하는 페미니스트들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도대체 일반 여성들이 당하는 불이익이 혹시나 여성운동의 보수화로 커지지 않을까가 걱정이 되어 온갖 욕을 무릅쓰고 뛰어드는 김규항씨는 "여성주의의 적"이고, Herstory같은 잡지에다가 한 달에 한 번씩 음담패설 적어내는(저 이거 나쁜 뜻으로 말하는 것 아닙니다) 여성학 전공자들은 여성주의자입니까?
둘째, 이 Macho라는 말의 애매함입니다. 도대체 무슨 뜻입니까? 제가 보기엔 그 애매한 "여성주의"가 적으로 규정한 것들은 모조리 마초입니다. 그래서 마초의 정의는 여성주의의 적이며 또 여성주의의 정의는 마초의 적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순환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김규항씨가 "여성주의"를 공격했다는 이유로 "마초"가 되고, 그 바람에 그가 무슨 말을 하려했고 무슨 주장을 했는지는 묻혀지고 편 갈라 싸움이 벌어지는 꼴은 그야말로 시장판 싸움이상이 될 수 없습니다.
참고로, 이 마초라는 말 쓰는 분들은, 원래 이 말이 스페인 말로 무슨 뜻이고, 어째서 이것이 백인 중산층 여성들에 의해 전혀 다른 현재 우리나라에서 쓰이는 의미로 바뀌었는지 좀 알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 말을 쓰면서 자기들이 백인 중산층 여성주의의 입장에 서는 것 같은 어처구니없는 "서구 중심주의"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기를 빕니다. 현재의 여성주의 논쟁에는 "여성이냐 계급이냐"는 구도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서구의 소위 "진보" 지식계에 대한 정신적 노예 상태로 인한 3세계 민중들의 소외라는 또다른 모순 축이 존재한다는 것을 꼭 의식해야 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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