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7/15 14:07
아래 '소극'이라는 글에서 '기지촌 지식인의 군락지 서울'이라 표현했는데, 의미를 묻는 이들이 있어 간략하게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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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사회가 인민에게 이전 사회보다 좋은 삶을 제공할 수 있었다면 그 현실적 틀은 민주화와 산업화였다. 인민은 민주화를 통해 왕이나 신의 복속물에서 자유롭고 소유권을 가진 개인이 되었으며, 산업화를 통해 혁신된 생산력 덕에 동물적 생존 이상의 삶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유럽은 그걸 가장 먼저 수행했고 대체로 지구에서 가장 낫게 산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한국은 늦게나마 산업화와 민주화를 수행했는데 왜 '지옥'을 맞았을까? 한국의 근대화엔 뭐가 빠진 걸까? 인문학의 가장 중요한 숙제는 바로 그 질문을 사유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를테면 유럽의 인문학이 파시즘과 미국식 자본주의와 소련식 사회주의가 보인 공통 분모를 분석하여 근대(계몽) 자체에 지옥의 씨앗이 들어있음을 발견한 건 70여년 전이다. 그들의 근대화가 지옥을 회피할 수 있었던 건 바로 그런 사유가 계속 진전하면서 그들의 근대를, 민주화와 산업화를 견제해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의 인문학은 어땠는가. 극우독재가 물러갔을 때 산업화는 되었으니 민주화만 되면 된다는 소박한 생각을 한 건, 그때까지의 피로와 성취감을 고려할 때 이해할 만도 하다. 그러나 시민운동이 만개하고 민주 세력이 집권할 때조차 지옥화가 줄기차게 진행되었다면 인문학은 그 사태에 정면으로 질문했어야 한다. 그러나 인문학이 한 건 생뚱맞게도 미국발 '프랑스 이론'(포스트모더니즘) 바람에 온통 빠져드는 것이었다.

여전히 한국 인문학의 주요한 임무는 신상 유럽 인문학을 발빠르게 수입하거나, 어쭙잖게 흉내내며 거들먹거리거나, 심지어 유럽 인문학자와의 친분을 과시하며 사회에 인민의 잉여노동에 기생하는 것이다. 옛 송탄이나 의정부 미군 기지촌에서 흔히 볼 수 있던 바로 그 풍경이다. 한국(서울)은 기지촌 지식인의 '세계적' 군락지다.
2017/07/15 14:07 2017/07/15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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