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5/22 09:33
1980년 광주의 마지막 날, 고3인 강용주는 어머니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도청 사수파의 전사가 된다. 살아남은 그는 항쟁 당시 헌신적으로 부상자를 치료하던 의료인들을 기억하며 의대에 입학한다. 민주화운동에도 열중하던 그는 2학년 때 전두환 정권이 조작한 ‘구미유학생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투옥된다. 그는 전향서(준법서약서) 쓰기를 거부함으로써 '최연소 비전향 장기수’가 된다. 간첩이어서가 아니라, 인간의 양심을 포기하라는 폭력에 굴복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1999년 14년 만에 출소한 그는 복학했고 2008년 전문의 자격을 얻는다. 조작간첩사건 희생자들의 재심 소송에 연대하며 국가 폭력과 고문 피해자들의 치유를 돕는 광주 트라우마센터의 첫 원장을 맡는다.

그를 만난 사람들은 그가 오랜 투옥 생활을 통해 얻은 깊은 사유와 성찰은 물론 여느 사람들보다 오히려 더 자유롭고 낭만적인 인간이라는 데 놀란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이마에 낙인이 찍힌 채 사실상 투옥 중이다. 그는 이른바 '보안관찰 처분' 상태다. 3개월에 한번씩, 누구를 만났고 어디를 갔고 생활비는 어디서 벌었는지 신고해야 한다. 10일 이상 주거지를 떠나거나 외국여행을 하게 되면 동행을 포함 낱낱이 신고해야 한다. 그밖에도 관할경찰서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모든 내용을 신고해야 한다. 강용주는 그에 응하지 않았고 기소되어 재판 중이다.

현재 지구상에서 최소한의 민주주의 절차가 작동하는 나라 가운데 형을 마친 정치범이나 사상범에게 이런 족쇄를 채우는 나라는 없다. 나는 그 족쇄를 푸는 일이 최초의 제대로 된 우파 정부로서 문재인 정부가 꼭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가 '대통령의 시혜'로 자유로워지는 건 그에 대한 우리의 무례일 수 있다 생각한다. 우리는 극한의 폭력과 배제 속에서 끝내 인간의 위엄을 포기하지 않은 한 인간에게 표시하는 마땅한 존경으로 그에게 자유를 선사해야 한다. 그것은 또한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비로소 야만의 시대에서 구해내는 방법이기도 하다.

#강용주에게_자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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